서울 시내에서 자동차로 30여분 거리인 경기도 양평의 양수리딸기체험농장. 지난해 이곳을 방문한 유료 체험객은 2만명에 달한다. 이 농장의 지난해 매출은 2억원.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대식씨(50)는 4년 전 귀농한 초보 농사꾼이다.
지난 3월8일, 평일인데도 여러 명의 체험객들이 딸기를 수확하고 딸기잼을 만들고 있었다. 주말이면 600~700명 이상이 찾는다고 한다. 이씨는 “4인 가족이면 4만원 정도로 체험이 가능한데, 주말의 경우 2주 전에 예약이 만료될 정도로 인기”라며 “올해에는 2만5000여명이 다녀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유기농단지에 위치한 이 농장의 규모는 1만5000여㎡(4600평). 이 중 딸기를 재배하는 8000㎡(2400평)에 달하는 17동의 비닐하우스 농사를 이씨 혼자서 짓는다. 소독을 하던 중이었다는 이씨의 손은 굳은살이 박혀 마치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었다.
체험농장 내에는 부대시설로 동물농장도 있었다. 가족단위 체험객들을 위한 배려다. 아이들이 직접 당나귀, 염소, 토끼, 닭 등에게 직접 먹이를 주면서 만져보고 있었다. 이날 체험을 하러 온 이찬우씨는 “무엇보다 서울에서 가깝고, 딸기뿐 아니라 동물농장까지 있어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홈페이지·철저한 고객관리로 차별화
이씨가 귀농한 것은 2008년 12월. 50세가 되면 귀농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던 터였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인테리어 회사에서 19년을 일했어요. 나름 잘 나갔죠. 하지만 워낙 까다로운 일이라 스트레스가 엄청났어요. 거기다 건설경기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마침 농사일을 배워 농촌에 정착하려면 적어도 3년 정도 걸린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래서 귀농 결심을 몇 년 앞당겼죠.”
- ▲ 체험객들이 딸기따기 체험을 하고 있다.
“고추농사가 인근의 다른 농가보다 아주 잘 됐어요. 무농약으로 키워 다른 농가에 비해 60% 이상 높은 값을 받았죠. 그렇게 해서 3800만원 소득을 올렸어요. 근데 고추는 돈이 안 되겠더라고요. 고추 가격이 오르면 중국산 고추 때문에 금방 가격이 떨어지거든요.”
그는 처음 계획했던 딸기농사를 짓기로 했다. 직접 수확해 내다팔기보다는 체험농장 형태로 운영하기로 했다. 수확하는 데 필요한 인력을 줄이고, 골치아픈 판로확보 문제도 한 번에 해결하기에는 체험농장만한 게 없었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가깝고, 두물머리 등 인근 관광지가 많아 연중 줄을 잇는 관광객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딸기 주산지인 논산을 비롯해 여러 곳의 딸기체험농장을 방문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딸기농사 자체가 굉장히 어려워요. 재배하기가 가장 까다로운 작물 중 하나죠. 세심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하루 이틀 새 완전히 망칠 수도 있어요. 인근 농가에서 배우려고 했지만 잘 가르쳐주지도 않더라고요. 책을 보고 혼자 배웠죠. 또 농업기술센터도 수시로 찾아 재배기술에 대한 지식을 넓혔어요.”
2009년 9월 2640㎡(800평) 규모로 딸기농사를 지었다. 실패를 염두에 둔 시험재배 차원이었다. 그해 12월말부터 체험객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블로그를 통해 마케팅을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다른 농장과의 차별화가 필요했다. 그는 홈페이지에 주목했다. 체험객들이 인터넷을 통해 검색을 하기 때문이다.
- ▲ 1 체험농장 내의 동물농장. / 2 동물농장에는 쉽게 보기 힘든 당나귀 등이 있다.
철저한 고객관리에도 나섰다. 밤 11시가 넘어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고객에게도 놓치지 않고 감사의 글을 보냈다. 체험 전날에는 체험안내에 관한 문자메시지를, 체험 당일 아침에는 길안내 등을 문자메시지로 보냈다. 고객이 체험하러 오기 전까지 적어도 3번 이상 연락을 해 고정고객을 확보해 나갔다.
그의 전략은 주효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홈페이지를 보고 찾아 온 체험객들을 통해 입소문이 퍼져 나갔다. 2010년 7동의 비닐하우스에서 그가 거둔 매출은 8500만원. 시험재배라는 점을 감안하면 큰 성과였다. 자신감도 생겼다. 하지만 탄탄대로를 걸을 듯한 그에게 위기가 닥쳤다. 그의 농장이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수용된 것이다.
당장 농사지을 땅을 찾아야 했다. “이 지역에서는 대부분 파농사를 지었는데, 벌이가 시원치 않았어요. 지금의 임대료보다 3배 이상 주겠다고 땅 주인들을 설득했죠.”
이씨는 이미 인근에서 ‘지독한 농사꾼’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미친 듯이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다. 땅 주인들이 그에게 선뜻 땅을 임대해 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