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발효 농업 4.0시대] 우물안 농업 탈출
농군, 大농장주로 변신 - 국내서 1㏊ 호박 재배한 농부, 베트남서 200㏊ 땅 빌려 성공
동남아선 한국농업 선진국 대접 - "영농 노하우 알려 달라" 환영, 한류덕에 농산물 수요도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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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세 되던 해(2003년)에 한번 호박 농장을 크게 지어 보자는 꿈을 안고 비행기를 탔어요. 그 꿈이 이렇게 이뤄졌네요."
그가 처음 간 곳은 중국이었다. 수중엔 2만달러가 전부였다. 중국 하이난성의 한 농장을 찾아가 일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월급을 받으며 1년간 일한 뒤 주인에게 "땅만 빌려 주면 호박 농사를 지어 이익 절반을 나눠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런 식으로 4년간 100만달러를 벌었다.
이 돈을 들고 5년 전에 베트남으로 건너갔다. 베트남의 기후나 지질이 호박을 키우기에 최적이기 때문이다. 호박의 당도(糖度)를 높일 수 있는 고원 지역을 일부러 골랐다.
문제는 땅이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선 개인 간 땅 거래에 제한이 많고, 특히 대규모로 땅을 소유하는 것은 거의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짜낸 아이디어가 베트남에서 인기 있는 고무나무 농사였다. 그는 1년간 남의 밑에 들어가 고무 농사를 배운 뒤, 땅 주인을 찾아다니며 "고무 농사를 공짜로 지어줄 테니 땅을 빌려달라"고 설득했다. 그는 이렇게 빌린 땅에 고무나무와 함께 호박을 심었다.
"고무나무가 자라 햇빛을 완전히 가릴 때까지 7년 동안 호박 농사가 가능해요. 7년 뒤에는 다른 땅으로 옮겨 가면 되죠." 그에게 고무나무를 심어달라고 베트남 땅 주인들은 줄을 선다. 그는 이달부터 지금 농장의 3배가 넘는 700㏊ 규모 농장을 새로 연다. 전체 농장(900㏊)이 서울 여의도(840㏊)보다 넓어지는 것이다. 베트남에는 호박 외에도 고추, 대파, 감자, 고구마, 채소 등을 경작하는 한국 농장이 여러 곳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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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업의 해외 진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농장 설립 목적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기업은 2008년 17곳에서 지난해 85곳으로 늘었다. 투자액이 많지는 않지만, 1900만달러에서 6000만달러로 급증했다. 최근에는 기업뿐 아니라 일반 농민의 진출도 늘고 있다.
필리핀에선 우리 정부 주도로 5400㏊ 규모 단위의 농장이 여러 곳 건설되고 있다. 필리핀 정부가 땅을 제공하면 우리 기업과 농민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비료, 농약 등 관련 공장도 지어 운영하고 이익을 나누는 시스템이다. 현재 선진사료와 CJ사료가 사료 공장을 운영 중이며, 하림이 시험 재배를 하고 있다. 정부는 농민들이 농업 법인을 만들어 이곳에 진출토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최근 한류 붐을 타고 외국인의 한국산 농산물 수요가 늘고 있는 것도 기회다. 농식품 수출액은 2008년 45억달러에서 3년 만인 지난해 77억달러로 급증했다.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한국산 인삼을 부치면 중간에 포장이 뜯기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현지의 한 한인은 "내용물을 꺼낸 뒤 중국산 인삼 등 다른 것을 넣어 배송하는 사고가 자주 생긴다"고 말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 인근에 코피아(KOPIA)가 설치한 종자개량 시험장에서 인턴 사원들이 연구 결과를 점검하고 있다. 코피아는 농촌진흥청이 개도국에 농업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만든 센터로 베트남 등 16개국에 설치돼 있다. 농진청은 인턴 사원을 선발해 6개월~1년의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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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진출은 장기적으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가고 있다. 사람이 온종일 쪼그려 앉아 손으로 따야 하는 고추는 고령화하는 우리 농촌에서 재배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응웬 반 보 베트남 농업과학원장은 "베트남에 대형 농장을 일궈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하면 고추처럼 수확이나 재배가 까다로운 품종도 얼마든지 재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 시 겪는 기술 문제는 농촌진흥청이 개도국에 농업 기술 전수 목적으로 운영하는 '코피아(KOPIA)' 센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현재 베트남, 케냐, 콩고, 에티오피아, 볼리비아 등 16개국에 센터가 건립돼 있고, 20개 이상 국가가 개설을 신청한 상태다.
우리 농업은 한국에선 후진적이란 얘기를 듣지만, 동남아 같은 개도국에선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박현출 농진청장은 "기업농 위주의 미국 같은 곳보다는 노동집약적 가족농 위주로 발전해온 한국이 개도국에는 1차적인 벤치마킹 대상"이라며 "소량 재배를 하면서도 경쟁력을 갖추는 비법을 배우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영세농이 많은 개도국 시장에선 한국에서 많이 하는 '밭떼기' 같은 계약 재배 시스템도 유용하다. 조원대 코피아 베트남 소장은 "스스로 농사를 지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여러 농가와 계약 재배를 통해 물량을 확보하면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