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산 , 산행

셰르파

제봉산 2010. 6. 5. 19:46

장비 지고 루트 개척, 등반가의 손발 되는 ‘셰르파’ 는...

“셰르파만 죽어서 다행” 이런 소리 다신 안 듣고 싶어요

히말라야의 셰르파들은 산을 오르는 등반대원들보다 죽을 확률이 높다. 먼저 올라 로프를 깔기 때문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히말라야 등반의 역사가 있었을까? 원정 장비를 지고 루트를 개척하며 정상까지 오르는 그들은 철저하게 그림자 역할에만 충실하다. 오은선 대장의 14봉 완등에도 다와 옹추 셰르파의 헌신이 있었다. 셰르파라 불리는 사람들. 그들의 그림자 인생에 빛을 비춰본다.

글·사진=신영철 사람과 산 편집위원  

오은선 대장의 14봉 완등에 큰 도움을 줬던 다와 옹추(오른쪽) 셰르파가 지난해 7월 오 대장과 함께 낭가파르바트 등정에 성공한 뒤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오은선 대장이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해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봉 완등에 성공한 데는 다와 옹추(37)라는 셰르파가 있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두 달여를 함께 보낸 옹추 셰르파와는 친구가 됐다.

“내 고향? 가깝다. 차가 다니는 도로부터 5일만 걸어가면 되니까.” 히말라야 나라답게 5일 도보 거리가 가깝다는 얘기다. 소수부족이면서 야크, 양 등 유목을 주로 하는 생활 때문에 셰르파들은 흩어져 사는 걸 선호한다. 그래야 목축에 필요한 풀을 많이 확보할 수 있으니까.

“세계 5위의 고산인 마칼루 근처 산골이 내 고향이다. 14살부터 카트만두로 나와 키친 보이, 쿡을 거쳐 셰르파가 되었다. 지금까지 총 19차례 8000m급 산을 올랐다. 에베레스트에만 네 번 등정했고. 오은선 대장님과는 현재의 안나푸르나까지 6개 봉을 함께 올랐다.”

산악계가 분류한 히말라야 14봉 중에 옹추는 10개를 올랐다고 했다.

“정식으로 고산 등반 셰르파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네팔등산협회에서 운영하는 고산 등산학교가 대표적인데 나 역시 그곳을 수료했다.”

옹추 셰르파는 셰르파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사다’인 동시에 오은선 대장에게는 고용인 이전에 든든한 자일 파트너다. 만년설에 그을린 탓일까? 까맣게 탄 얼굴에 눈가 주름이 깊지만 선한 웃음이 인상적이다. 통역을 맡은 대행사 직원 핀조가 “옹추는 원래 라마 스님 생활을 한 적도 있다”고 귀띔한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오은선 대장처럼 14봉을 오르고 싶다. 안나푸르나를 올라 10개째가 되는데 나머지도 모두 오르고 싶다. 네팔에서는 지금 11개를 오른 장부 셰르파가 있다. 가능하다면 그를 이기고 나도 네팔에서 1등을 하고 싶다.”

1934년 독일 원정대가 낭가파르바트를 오르다가 악천후를 만나 2주간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움직일 수 있는 대원 두 명은 식량과 장비를 챙겨 스키로 하산해 버렸다. 그 높은 곳에 남겨진 셰르파 9명은 모두 죽었다. 또 하나, 히말라야 등반 중 셰르파들은 죽고 겨우 생환한 한 원정대 대장은 “하느님의 도움으로 셰르파만 죽고, 우리는 무사했다”는 기도를 드렸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옹추 셰르파가 히말라야에 오르는 이유는 그래서 오직 하나다. 자신의 자식들은 그렇게 모멸적인 취급을 받으며 히말라야를 가지 않게 하기 위해 공부를 시키고 싶었다. 바로 교육비 때문이다.

“오 대장과 함께 오른 산 중 제일 힘든 산을 꼽으라면 캉첸중가를 들 수 있다. 너무 힘들었다. 엄홍길·한왕용 대장과도 캉첸중가 정상에 함께 섰다. 따라서 그 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이젠 다시 그 산에 가지 않을 것이다.”

근거 없는 이야기로 밝혀졌지만 항간엔 오은선의 캉첸중가 등정 시비가 있었다. 그 말을 전하자 옹추는 즉석에서 웃으며 말했다.

“내가 오 대장과 오른 곳이 정상이 아니라면 그동안 나와 함께 오른 사람들도 정상이 아닌 셈이 된다. 왜냐하면 정상은 내 눈에 익은 곳이기에 절대 실수할 리가 없다.”

올봄, 오 대장과 캉첸중가를 함께 등정하면서 옹추는 이 산만 총 네 번 올랐다. 이미 5개 봉을 오 대장과 함께 올랐던 옹추 셰르파가 지켜본 오은선 대장은 누구일까?

“성격이 직선적이다. 가끔 불같이 화를 낼 때도 있으나 뒤끝은 없다. 내가 맡은 임무는 오 대장을 도와 함께 정상을 오르는 일인데 그녀는 정말 등반 능력이 뛰어나다. 특히 7000m 이상에서는 내가 본 여자 등반가 중 최고다.”

생사를 넘는 고도에서 함께 생명을 담보하는 줄을 묶은 사람은 고용인과 대장 사이가 아니라 신뢰를 담보하는 파트너다. 옹추 셰르파에 대한 오은선의 신뢰도 전폭적이다.

“‘사다’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오은선 대장은 전체적인 대장이고 나는 네팔인들의 리더다. 현지인들을 통솔하지만 그것은 베이스캠프 셰르파에게 맡기고 나는 정상 등반에 전념한다. 원정대의 성공은 정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오르는 것이다. 그게 나에겐 가장 중요하다.”

옹추 셰르파는 등반을 선도했다. 셰르파들의 얼굴이 서로 다르듯 등반에 관한 생각도 다르다. 더군다나 목숨이 걸린 등반이라면 더 그렇다. 그러나 옹추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셰르파보다 먼저 등반에 나선다. 매번 그랬다. 명장 밑에 약졸 없는 법. 스스로 솔선수범하는 옹추를 셰르파들은 절대적으로 따랐다.

“옹추는 나와는 동서 간이다. 내가 아래인데 그는 아버지 같다. 항상 어려운 루트를 뚫을 때는 자신이 앞장서고 또 짐 역시 많이 지려 한다. 그런 점을 우리는 배운다. 셰르파 세계에서 옹추는 강인함과 동시에 넉넉한 마음가짐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함께 등반한 페마 셰르파의 말인데 옹추의 자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언이었다. 망중한이면 옹추는 불심 깊은 셰르파답게 늘 라마제단에 불을 피우고 청소를 했다. 언제나 새벽엔 그가 라마제단에 불을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옹추는 등반 중엔 라마 불교의 육자진언인 ‘옴마니반메훔’을 외운다고 한다. “작년 여름 낭가파르바트에서 오 대장과 함께 등반하며 숨진 고미영을 자주 만났다. 정상에 오를 때도 그녀를 만났는데… 나는 베이스캠프에 있을 때면 아침마다 라마제단에 향불을 피우며 고미영 그녀의 극락왕생을 빌고 있다.”

오은선 대장은 그간 13개의 최고봉 등정 시 에베레스트와 K2에서만 산소를 썼다. 그러나 자신의 셰르파에겐 안나푸르나에서도 산소를 쓰게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옹추가 말한다. “산소를 쓰는 건 내겐 기록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는 점 때문이다. 오 대장은 무산소 등정이라는 기록 때문에 절대 산소를 마시지 않는다. 또 그 비싼 산소를 우리 셰르파에게 쓰게 하는 건 비상시 자신을 구해 달라는 뜻도 있는 걸 잘 안다.”

 그의 희망이 이어졌다. “아이들이 공부가 끝날 때쯤이면 나도 나이를 먹고 현업은 후배
셰르파에게 양보할 것이다. 그런 다음엔 고향 마칼루로 갈 것이다. 거기서 야크 치고 농사지으며 여생을 보낼 생각이다. 다만 아직 히말라야를 무대로 활동할 때 네팔 최초로 14봉을
완등한 셰르파가 되고 싶다. 도와 달라.”

 옹추 셰르파의 소망이 이루어질까? 그럴 확률이 높다. 그의 묵직함을 아는 한국 산악인들
이 적극 추천해 올여름 K2 원정대에 고용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니까. 가을엔 한국 원
정대와 또 시샤팡마 등반까지 예약되어 있다. 아마 올해가 가기 전 여성 최초 14봉 등정을 만든 옹추 셰르파가 네팔에서도 1등이 되는 뉴스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21년간 에베레스트 등정 20번, 세계 최고의 셰르파 아파

“히말라야는 신성한 곳, 쓰레기조차 아무나 치울 수 없다”


지난 21년간 에베레스트를 20번 오른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아파(Apa·50) 셰르파. 세계 산악계에서는 그를 수퍼 셰르파(Super Sherpa)로 부른다. 아파는 올 5월 21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며 매년 그랬듯 자신의 기록을 또 갈아치웠다. 에베레스트 등반 역사에서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세계 최다의 기록이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가면 언제나 그가 있었다.

그에겐 일단 교만이 없다. 누구에게나 친절하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똑같아서 원정기간 동안 분쟁이 끊이지 않지만 결론은 늘 아파의 말을 따랐다. 그게 조용한 카리스마라면 행동하는 카리스마도 있었다. 2007년에 만든 환경 원정대가 그것이다. “히말라야는 신성한 곳이다.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면 이곳은 항상 깨끗한 청정 지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나 쓰레기를 치울 수가 없다. 그 책임은 우리 셰르파들에게 있다.”

그 말처럼 아파는 해발 8000m까지 올라가 빈 산소병과 각종 쓰레기를 수거해 내려왔다. 올해에도 그는 그런 봉사정신을 보여줬다. 베이스캠프를 출발해 본격적인 등반에 나서면 죽은 산악인들이 방치된 채 많이 보인다. 또 얼음 속에 숨어 있다가 빙하가 흐르면서 노출되는 시체도 있었다.

아파는 등반을 지연시켜가면서 그 시체를 거두었다. 나라도 다르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이번에도 3구의 시신을 베이스캠프로 내려 화장시켰다.

올 1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도 만났던 아파는 “봄에 에베레스트 정상을 꼭 올라야 할 이유가 있다. 정상에 에드먼드 힐러리 경의 유골을 뿌리고 라마불교식 천도재를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힐러리 경은 우리에게 달라이라마 같은 분이다. 실제로 우리 집엔 두 분의 사진을 모셔놓고 있다”고 말했다.

힐러리 경은 1966년부터 자선단체를 만들어 수십 개의 학교와 보건소, 그리고 다리를 네팔에 놓아주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죽으면 화장을 해 에베레스트 정상에 산골(散骨)해 주기를 희망했다.

1m65cm의 키에 55kg. 작은 체구인 아파의 고향은 힐러리 경과 함께 에베레스트를 초등한 텐징 노르게이 셰르파와 같은 쿰부 지역 타메(Thame) 마을이다. “나는 그곳에 작은 로지(여관)를 경영하고 있다. 원래 내 아버지가 만든 것이다. 아버지도 셰르파였는데 내가 12살이 됐을 때 산에서 죽었다.”

아파는 돈을 벌기 위해 포터 일부터 시작했다. 1990년 롭 홀과 처음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뒤 96년 한 번 불참한 것을 빼곤 매년 단 한 번의 등정 실패도 없었다.

“96년에도 롭 홀과 에베레스트를 오를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말렸다. 당시 타메에 있는 로지를 증축 중이었는데 일손도 바쁘지만 꿈자리가 안 좋다는 것이었다. 이혼까지 하겠다며 너무 강력하게 말려 결국 못 올라갔다.”

96년 그해 에베레스트에서 대참사가 일어났다. 에베레스트 등반 역사상 한 해에 가장 많은 사람이 숨져 무려 15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그 사고로 롭 홀도 죽었다.

‘수퍼 셰르파’라는 수식어는 누가 붙여준 것일까. “나와 락파 겔루(Lhakpa Gelu) 셰르파가 그렇게 불린다. 락파는 에베레스트를 10시간46분 만에 오른 기록 보유자다. 2003년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 때의 일이다. 최단시간 등정자와 최다 등정자라서 네팔 언론이 붙여준 것 같다.”

그 50주년 기념 등반 때도 아파는 정상에 섰다. 무사히 내려왔지만 아파는 엉뚱한 곳에서 죽음을 맞을 뻔했다.

“베이스캠프에서 우리가 타고 카트만두로 귀환하던 헬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4명이 죽었다. 그런데도 락파와 나, 둘은 살아남았다. 그래서 더욱 수퍼 셰르파라고 불러주는 것 같다. 아마 더 에베레스트를 오르라고 신이 살려준 것 같다.”

j 칵테일 >> 에베레스트에 남긴 사람의 발자취

8848m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사람들은 별의별 기록들을 탄생시켜왔다. 1990년 에드먼드 힐러리 경의 아들 피터 힐러리가 부친이 37년 전 올랐던 남동릉을 타며 최초의 부자 등정 기록을 세웠다. 올 5월 21일 13세인 미국의 조던 로메로 소년은 최연소 등정 기록을 수립했다. 최고령은 2008년 정상에 선 네팔의 민 바하두르 셰르찬으로 76세였다. 한국인으로는 1977년 고상돈씨가 처음 등정했다. 등정자로는 58번째, 나라로는 여덟 번째였다. 2000년 10월 슬로베니아의 다보 카르니카가 정상에 오른 뒤 스키활강으로 단 5시간 만에 베이스캠프까지 하산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앞선 1988년 프랑스의 장 마크 브와벵은 패러글라이딩으로 2캠프까지 하강에 성공했었다.

1994년 오스트리아의 마이크 라인베르거는 여섯 번의 실패를 극복하고 등정한 뒤 정상 바로 밑 20m 지점에서 비박을 했으나 다음날 사망했다. 지구상 가장 높은 곳에서의 비박이었다. 1999년 5월 6일 네팔의 바부 치리히 셰르파는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21시간을 체류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히말라야의 신이 사람에게 가장 너그러웠던 해는 2001년. 그해에 182명이 등정에 성공했고, 하루에 가장 많은 88명의 등정자 신기록을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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