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인간이 있고, 길이 있었다. 영장류가 ‘인류’로 특정된 시점은 그들이 창조적 사고를 하며 직립보행을 하는 순간이었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로 불리는 영장류의 출현, 즉 ‘생각하며 꼿꼿이 걷는 존재’의 탄생이 인류의 시작이었다. 생각하는 인류의 출현 이후 효율적인 이동을 보장하는 단거리 공간에는 절로 길이 만들어졌다. 진화가 거듭되면서 인간은 스스로 길을 만들어나갔다. 역사의 발전에 따라, 시대의 필요에 따라 버리고 새로 만드는 일이 되풀이됐다. 생존과 진화를 위한 길, 인간은 먹고살기 위해 하루 수십km를 걷고 또 걸었다.
걷기는 인간의 대표적 이동수단이다. 인간의 두 다리와 반복된 걷기를 통해 만들어진 길은 스스로 문명을 만들고, 그것을 서로 전파했다. 실크로드, 누들로드, 페이퍼로드…. 걸음을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은 오직 우마(牛馬)뿐. ‘생각하며 걷는 존재’들은 길 위에 도시를 건설하고 시장을 만들었다. 많이 걷는 자가 더 큰 부를 얻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길을 선점해야 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대제국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알렉산더 동방원정대의 도보 이동거리는 무려 3200km에 달했다.
인간의 기억에서 멀어졌던 걷기
길은 이처럼 생존과 쟁탈의 터전일 뿐 아니라 문화의 본거지였다. 사연 없는 사람이 없듯, 그들이 걸어 다닌 길 곳곳에는 갖은 이야기가 별처럼 숨어 있다. 비록 길은 사라져도 길에 뿌려진 수많은 눈물과 사연은 설화로, 전설로, 신화로, 문학으로 살아남았다. 길의 문화는 곧 그 지역의 인문지리학적 특성을 구성했다. 이렇듯 자연과 인간은 길 위에서 하나가 됐고, 인간은 자연의 거대함에 순응했다. 오를 수 없는 절벽이 나오면 길은 순순히 산을 돌아갔다. 장삼이사는 권력층이 다니는 큰길을 피해 눈에 띄지 않는 숲 속 길을 개척했다. 오솔길, 둘레길, 모로길…. 그 길 주변에는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숲과 목마름을 달래줄 물줄기가 있었다.
그렇게 길은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소통 공간이자 문명과 문화의 전파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걷기와 자연의 길은 20세기에 들어 ‘기계 말’인 자동차와 콘크리트길, 아스팔트길이 출현하면서 인간의 기억에서 점점 멀어졌다. 급기야 인간은 자신의 본령인 ‘생각하며 걷는 존재’임을 망각했다. 아스팔트가 나라의 모세혈관을 장악하고, 자동차가 불어나는 속도만큼 ‘걷는 인간’의 수는 줄어들었다. 계단은 엘리베이터와 케이블카로 대체됐다. 하루 평균 3만 보 이상을 걷던 인간이 불과 100년 사이 하루 1000보를 겨우 걷는 존재로 바뀌었다. 문명이 고도화할수록 인간은 스스로 움직이기를 포기했다. 아니, 거부했다. ‘시간이 돈’인 세상에서 걷기는 가난뱅이의 전유물이 됐다. 그리고 불러오는 뱃살은 부의 상징이 됐다.
걷기 본능을 잃어버린 인간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둥피둥 살이 찐다. 단단했던 근육은 지방으로 변하고 머리에는 근심, 걱정만 가득하다. 자연으로부터의 격리로 삶의 의미를 잃었다. 인류는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동맥경화·우울증 등 온갖 질환이 엄습해 자신의 목숨 줄을 옥죄자, 그제야 ‘걷기 본능’에 주목했다. 돈을 벌 만큼 번 선진국 중산층은 서서히 육체적·정신적 건강이 시간보다, 돈보다 중요하다는 데 생각이 이르렀다. 이른바 ‘웰빙(well-being·참살이)’ 바람이 불어닥친 것. 그것은 하나의 조류가 아닌, 인간 속성으로의 복귀 선언이자 자연과의 새로운 조우를 의미했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웰빙 걷기 열풍
하지만 1990년대 인간에게 걷기 열망을 되살려낸 불씨는 정작 건강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구원’과 ‘극기’의 차원에서 걷기 시작했다. 넓은 의미로 해석하면 정신 건강을 되찾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는 ‘종교적, 철학적 자아 찾기’에서 비롯됐다. 대표적인 길이 유럽의 산티아고 순례길(800km)이고, 한국의 국토종단 순례길이다. 뙤약볕 아래서 수백km를 걷는 동안 사람들은 잃어버린 자신과 신(神)을 재발견한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쏟아지는 경험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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