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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선의 "카첸증가"등정논란전말

제봉산 2010. 6. 7. 20:54

‘오은선 캉첸중가 등정논란’의 전말   
 

 여성 세계최초로 히말라야 14좌에 오른 오은선의 ‘캉첸중가 등정논란’이 일단락되는 느낌이지만 아직 완전히 결말이 난 건 같지는 않다.

 우선 일단락되는 느낌은 AP와 AFP 등 주요 외신과 히말라야 기록 권위자인 홀리(Holly)여사가 오은선의 등정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잇달아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27일 마지막 안나푸르나를 등정한 직후인 5월4일 오은선을 만난 홀리는 “내가 오은선의 등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의를 제기하는 측이 있기 때문에 '논란이 있는(disputed)'식으로 표현을 했을 뿐”이라며 “그녀가 진정 올랐다고 한다면 여성 세계 최초로 14좌 오른 사실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BBC도 처음엔 홀리의 표현 그대로 ‘disputed’라고 보도했지만 등정을 인정하는 쪽으로 다시 보도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AP․AFP 등 주요 외신도 “한국의 산악인 오은선이 여성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에 등정했다”고 보도했다. 오은선의 경쟁자였던 스페인의 파샤반도 5월 말에 히말라야 14좌 등정을 끝내고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은 의혹이 있지만 여성 세계 두 번째로 올랐다”고 시인했다. 이 정도면 일단락 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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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선 대장이 등정 보고회에서 가셔브롬2봉에 오른 영상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완전히 결말이 난 것 같지는 않다는 의미는 애초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확산시킨 당사자들이 처음보다는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아직 태도를 바꾸지 않고 수근거림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등정논란은 ‘오은선의 등정’을 인정하면 애초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논외의 대상이고, 여기서는 어떻게 등정논란이 일어났고, 누가 어떻게 확산시켰는가에 대해서 추적해보고, 그 과정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진단해보기로 하자.

 

 애초에 등정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산악인 A씨로 확인됐다. 당사자 A씨도 이를 인정했다. A씨는 기자와 만나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내가 맞다”며 “난 내가 올랐던 칸첸중가 정상 등정 장소와 오은선이 올랐다고 주장한 정상등정 사진장면이 달랐기 때문에 소속사인 코오롱과 산악계에 확인을 요청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조금 더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그와 대화한 내용을 그대로 전한다.

 

 “애초에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A씨로 알고 있는 데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당시 나는 오 대장과 경쟁상대에 있던 산악인의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문제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입장이었고, 우리가 조금만 더하면 여성 세계 최초로 등정할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어떻게 문제를 제기했습니까?”

 “오은선이 칸첸중가 등정장면이라고 내놓은 정상사진을 보니 내가 과거에 올랐던 장면과 많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어, 이거 이상하다’는 의문점을 가졌죠. 그래서 우선 소속사인 코오롱에 ‘오은선의 정상사진이 이상하다”고 확인해달라고 요청하고, 주변 산악인들에게도 얘기했습니다.“

 “‘오은선이 칸첸중가 정상에 오르지 않았다’고 얘기한 적은 있습니까?”

 “그런 적은 없습니다. 단지 당시 오은선 대장이 경쟁자였기 때문에 상황을 확실히 하기 위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지 ‘오르지 않았다’고 얘기한 적은 결코 없습니다.”

 “‘등정사진이 이상하다. 확인해달라’는 말은 한 다리만 건너면 바로 ‘오은선이 정상에 오르지 않고 거짓말한다’로 와전될 수 있다는 사실은 능히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만…, 당시엔 그것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었고, 저는 단지 경쟁자의 매니저로서 역할을 다한 것뿐입니다.”

 “그래서 그 이후엔 어떻게 했습니까?”

 “확인차원에서 산악인들과 의논하고 여기저기 자문했습니다.”

 

 그 이후 오은선 등정논란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경쟁자인 파샤반의 스페인 신문은 4페이지나 할애할 정도로 크게 보도됐다고 한다. 그 내용을 본 사람들은 “스페인 신문의 보도내용은 국내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다시 한번 크게 짚었을 뿐”이라고 했다. 영국 BBC에서도 논란을 보도했다. 그 내용을 직접 확인하니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이미 제기됐던 내용의 재확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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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선 대장이 세르파 옹추와 페마의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결국은 스페인이나 영국 언론에서 보도내용은 그들이 독립적으로 취재해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거나, 증거를 확보해서 보도한 게 아니고 국내에서 제기된 내용을 확대 가공돼서 다시 국내로 돌아온 경우였다.

 

 그러면 결국은 국내 산악인들이 여기저기 논란을 확산시킨 셈이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오은선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에게 얘기를 나누며 나름대로 추적해봤다.

 산악 칼럼리스트로 산악계에 잘 알려진 신영철씨는 “A씨의 얘기를 들은 산악인 B씨가 본격 문제를 제기하고 논란을 확산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사진이 다르다고 문제를 제기하면 여태까지 그가 등정한 히말라야 봉우리 중에 2개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다른 산악인이 오른 장면과 다르기 때문에 오은선과 같이 검증받아야 마땅하다”고 강력하게 반박했다.

 신열철씨는 산악인 B씨를 실명으로 거론했지만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산악인이고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알파벳으로 처리했다.

 

 다른 산악인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는 히말라야 클럽 회원이다.

 “산악인 B씨는 사석에서 오은선의 등정에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면서 옆에 앉아있던 엄홍길에게도 ‘형은 왜 가만있느냐, 같이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다그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일본 등산협회 간부도 있는 자리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굉장히 안 좋더라. 오은선의 등정문제를 제기한 산악인은 산악인 B씨와 C씨와 D씨 등 몇 명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산악인도 실명으로 거론했지만 당사자의 입장 때문에 알파벳으로 처리했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엄홍길 대장은 그 이후 ‘오은선 등정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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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선 대장이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오르고 안 오르고’의 문제는 본인에게 달렸다. 본인이 그 정도로 ‘올랐다’고 주장하면 오른 것으로 인정해야지, 같은 산악인들끼리 굳이 깎아내릴 이유가 뭐가 있나. 본인의 양심에 맡겨둘 일이라고 본다. 오은선 정도 되면 세계적인 산악인인데, 자신이 거짓말 했다면 나중에 파생될 문제가 얼마나 커질 지 분명 알텐데, 그렇게 어리석은 일을 하겠나.”

 

 오은선 대장도 “처음으로 등정논란을 보도한 신문의 부장이 나에게 산악인 B씨의 이름을 대며, ‘그에게서 정보를 얻어 기사로 실리게 됐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결국은 오은선 등정논란의 문제는 국내 산악인들이 첫 문제를 제기해서 확대 생산되고, 국내에서 논란이 되니, 외국의 경쟁관계에 있던 나라들이 ‘이 때다’ 싶어 의혹을 확대 재생산하는 꼴이 된 것이다. 한마디로 국내 산악인들끼리의 이전투구 양상이고, 볼썽사나운 장면의 연출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서 히말라야 클럽의 그 회원이 던진 한마디는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산악인들이 옛날에는 크레바스에 빠지면 위에 있는 동료를 살리기 위해 밑에 있는 동료가 스스로 자신의 밧줄을 끊는 희생정신과 뜨거운 동료애, 용기를 보였지만 요즘 산악인들은 밧줄의 하중을 줄이고 자신만 살기 위해 위에 있는 동료가 알아서 밧줄을 끊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은선의 등정에 관한 진실은 하늘과 땅과 오은선과 동행했던 셰르파만이 알고 있다. 그녀의 말을 믿고 안 믿고의 문제를 떠나서 그 진실에 관한 접근은 누군가 오은선과 같이 똑 같은 코스로, 똑 같은 셰르파와 함께 다시 한번 오르며 복기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오은선이 오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그에 대한 구체적 증거를 하나하나씩 확보해 나가는 게 우선일 것이다. 적어도 그런 상황과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다면 그녀의 말을 일단 믿는 게 순리라고 본다. 그게 나라망신을 줄이고, 동시에 산악계 망신도 줄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내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적이 가장 좋아하는 전략이고 전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악인 고유의 자세와 도전정신이 더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파샤반이 던진 말도 깊게 다가온다.

 “나는 내 자신과의 싸움을 했을 뿐 1, 2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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