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호성
통일 전망대에 걸어서는 들어갈 수 없다는 초병들과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사진 한 장을 부탁한 후 포즈를 취해본다. 이틀간의 강행군 끝이라 통통부은 얼굴에 잔뜩 찌뿌린 인상의 내 모습이 우스깡스럽다. 내 국토순례의 발진을 기념하기에는 그런데로 의미가 있는 것같아 여기에 첨부한다.
3워21일,아침 6시25분,계획데로 동서울을 출발하는 속초행 첫차에 몸을 실고 잠간 조는사이 버스는 어느새 속초에 도착해 버린다. 춘천고속도로가 개통된 후로는 동해안 길이 더욱 빨라진것 같다.
당초 속초에서 버스편으로 통일전망대까지 올라간 후 걸어서 내려오려고 계획했었으나 차편이 여의치 않고 시간도 1시간반이나 걸린다고 하여 속초 부터 치고 올라가기로 변경하고 걷기 시작한다
9시정각에 속초항을 끼고 돌아 속초등대전망대를 거쳐 해안도로에 접어드니 확트인 바다와 시원한 바람이 나의 장도를 축하해 주듯 반긴다.
도로에는 차량도 없고 인도까지 잘 닦인 길에 속도를 붙이니 주변경관이 휙휙 지나간다. 왼쪽으로 영랑호를 끼고 오른쪽으로 사진항,봉포항을지나 천진해수욕장에 이르니 내 만보계는 어느듯 1만보를 가르킨다.
배낭을 열고 두유와 빵을 꺼내 간단한 아침을 해결한다. “관광강원도” 라더니 해안도로도 좋을뿐 아니라 곳곳에 전망대와 화장실을 잘 갖추어 놓아 도보여행에 불편함을 모르겠다. 대한민국 참 좋은 나라다.
다시 길을 재촉하여 정간해수욕장,아야진해수욕장,교암리해수욕장,문암해수욕장,백도해수욕장을 거쳐 삼포해수욕장에 이르니 12시가 된다. 이곳은 해수욕장도 크고 해안 소나무숲이 우거진 사이로 커다란 코레스코 비치하우스가 버티고 있으나 인적이 없어 황량하기만 하다.점심먹을 곳을 찾아 한 참을 헤매다가 전원가든이란 식당을 발견하니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만큼 이나 반갑다. 황태해장국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서둘러 출발하니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볍다.
순식간에 봉지호해수욕장을 지나 송지호해수욕장에 이르니 송지호의 아름다움에 넋이 빠져 자꾸만 발길이 무디어 진다.타워를 높이 세워 철새관찰을 한다는데 올라가 보고싶은 마음 간절하나 지나치면서 철새들을 관찰하기로 마음먹고 그대로 통과한다. 왜가리 몇 마리가 나를 위로하듯 떳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따라온다.
공현진항구를 어슬령거리다가 공현진해수욕장을 거쳐 가진항과 가진해수욕장을 지나니 해안도로는 사라지고 7번 국도와 만난다. 다른 길이 없으니 고속화된 7번국도의 왼쪽로견을 따라 마주오는 차량들을 바라보며 걷자니 매우 위험하다. 잔뜩 움추린채 하얀 페인트로 그은 줄을 따라 조심 조심 나아간다.동네사람들은 어디로 다니는지 인적을 찾을 길 없고 나그네만 이렇게 약4키로를 행군하다보니 더 전진 할 마음이 없어진다. 다행이 7번국도는 해안쪽으로 휘어지며 눈앞에 반암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시간이5시, 아침9시에 출발하여 점심시간을 빼고 꼬박7시간을 쉬지않고 걸어 만보계숫자 가 46,632보를 가르킨다. 대략 33키로를 걸은것 같다.
서둘러 해수욕장으로 내려가서 제일 큰 텔콘(모텔과콘도의 혼합형 숙소) 찾아드니3층방으로 안내한다. 방문을 열자마자 펼쳐지는 푸른바다,그리고 하얀
백사장,밀려드는 파도,부서지는포말들........멀리 하늘 맞닿은 곳에 고깃배한척 떠있고 갈매기들 까지 노래하니 완벽한 한편의 그림이 완성된다.
넋을 잃고 쳐다보다 보니 가슴한켠으로 싸아하게 밀려오는 그 어떤 그리움..... 왜 이럴때 제일 먼저 벗들의 얼굴들이 떠 오를까?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 벗들에게 나의 순례제1신을 보낸다. 물속에는 물만 있는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 있는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그대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그대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나이가 들어가니 그리움만 깊어지는지 평소에 좋아하던 유시화시인의 “그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싯귀를 읖조린다. 샤워를 마치고 설렁탕 한 그릇으로 저녁을 떼우는데 둘러보니 인테리어가 예사롭지가 않다. 원목과 황토로 집을 짓고 각종 민속공예품과 기이한 나무로 치장한 실내가 매우 운치가 있어 보인다 주인의 취향과 안목이 나그네의 마음을 행복하게 어루만져 주는것 같다. 구석에 안마의자까지 있어 천원 한장으로 종일 굳어진 내 전신의 근육들을 속속들이 풀어준다. 이런것이 여행의 즐거움 아니겠는가 생각하고 숙소에 돌아와 오늘 하루를 정리해 본다.
적당한 피로와 안온한 마음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창문을 여니 찰싹이는 파도소리가 정겹게 들려오고 멀리 오징어잡이배들의 불빛이 휘황하다.
오늘은 날씨가 좋았는데 고맙게도 내일아침 일출을 감상할 수 있을는지?
큰 기대를 갖고 잠을 청한다.
6시 일어나자 마자 커든을 제치고 하늘을 본다. 바다쪽으로 구름이 쫙 끼어 오늘의 일출은 인연이 닿지 않은 모양이다. 텔콘에는 조리시설이 잘되어 있어 아침에는 라면같은것을 먹을수도 있건만 준비가 않되 두유와 빵으로 간단히 아침을 마치고 출발을 서두른다. 조용하고 잠자리도 편안한 좋은 곳에서 3만원으로 쉬고 갈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물론 시즌에는 훨씬 비싸겠지만 )
7시 위험한 7번국도로 다시 들어가 1키로쯤 걷다보니 거진검문소에 이르고
거기서부터 해안도로가 다시 시작된다. 거진해수욕장을 지나 거진항을 끼고 돌며 해맞이산림욕장과 해맞이쉼터를 지나 화진포로 접어든다.
2개의 거대한 호수 오른편으로 김일성별장과 이기붕별장이 나타난다. 시간이 너무 일러 내부 관람은 하지 못하고 주위만 빙빙돌다가 출발한다.
호수 사잇길로 넘어가면 금강산자연사박물관이 있다는데 시간이 너무 지체돨것 같아 아쉽게 마음을 접고 화진포해수욕장으로 들어가니 웅장한 해양박물관이 앞을 가로 막는다. 고성 8경중 으뜸간다는 화진포는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 붙여진 이름으로 둘레16키로의 동해안최대의 자연호수가 해안의 절경과 어우러져 기막힌 경관을 연출하고 두 호수사이로 보이는 금강산 앞자락인 눈덮힌 까치봉의 웅자가 한 눈에 들어와 과연 김일성이 별장터를 이곳에 잡은 연유를 알 수 있을것 같다 .2500원짜리 노인표를 받아드니 아리따은 아가씨들이 상냥하게 안내한다. 소라껍데기등등을 한바퀴 돌며 감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수정판매점에 이른다, 안내했던 상냥한 아가씨들이 사정없이 달라붙더니 할머니 선물을 골르란다. 여기 오시는 어르신들은 다 사가지고 가신다고 성화가 대단하다. 구경하고 다시 들리겠다고 하고 겨우 빠져나가 다음 건물로 들어가니 여긴 좀 볼 만한 수족관이다. 근해와 열대의 각종 물고기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넋놓고 구경하다가는 오늘밤 화진포 신세져야할 것 같아 훌훌 뿌리치고 떠난다. 역시 미련을 버리기는 어려운가 보다.
갈 길을 제촉하니 금새 초도해수욕장이 닥아서고 이윽고 최북단 대진항에 이른다. 대진시내와 항구를 굽이굽이돌아 대진등대를 넘어서니 멀리 송림사이로 금강산콘도의 큰 빌딩이 보이고 마가진해수욕장에 이른다. 실제로 이곳이 민간인이 갈 수 있는 마지막 해수욕장이고 해안선과백사장의 경관이 우수하여 여름이면 도로가 막힐 정도로 사람이 붐벼 움직이기도 힘들다고 아침부터 한 잔하신 민박집 아저씨가 길가에 서서 한참이나 자랑하신다.
통일전망대 박물관700m 를 표시하는 간판을 지나 마지막 피치를 올리니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가 나타난다. 시간은 어느새 11시다.
금강산관광이 한창이던 작년엔 이곳이 매우 붐볐을 텐데 지금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전망대 들어가는 셔틀버스도 운행하지 않아 도보로는 들어 갈 수 없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신고소를 기점으로 삼을 수 밖에는 도리가 없어 초병에게 부탁하여 기념사진 한 장 찍고 금강산콘도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속초에 이르니 벌써 1시다. 서둘러 점심을 사먹고 2시에 속초항을 출발하여 남행을시작한다
오늘 여기저기 너무 둘러보다가 본업인 걷기에 좀 소홀했던 점을 반성하고 속도를 내 보지만 청조호반을 빙 돌아 가는 시내길이 마음과는 달리 속도가 붙지않는다. 매연과소음에 시달리고 신호까지 자주걸리니 해변길과 달리 피로도가 여간 높지않다.
속초해수욕장, 외옹치해수욕장을 지나 인접한 외옹치항을 지나니 우리가 설악산등산할 때 자주 들려서 회 사먹던 대포항이다.
쭉 늘어선 횟집사이를 구경하며 빠져나오니 길은 다시 7번국도에 합해진다. 다행히 인도가 잘 구분되어 위험하지는 않으나 서울시내처럼 많은 차량의 매연에 가슴이 답답하다.
마스크와 보안경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쭉 뻗은 곧은 길을 걸어 걸어 물치해수욕장을 지나니 확 트인 바다가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준다.
정암해수욕장앞에서 바다가 보이는 텔콘을 발견하니 더 전진할 마음이 싹 가셔버린다. 오늘 걸어온 거리는 많지 않으나 여기저기 돌아보느라고 보행은 많았던지 만보계는 42,000보를 가르킨다.
큰 길갓집이라 약간의 소음은 있으나 바다와 백사장이 보이는 풍광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일품이다. 어제보다 바람이 크게 불어 일렁이는 파도가 어둑어둑한 하늘과 더불어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연출해 준다.
침대에 걸터앉아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넋 나간듯 바다만 바라보고 있으니 무아의 경지가 따로없는 것 같다. 혼자다니는 여행의 참 맛이 이런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시쳇말로 너무 알면 다친다고 하는 말도 있듯이 생각이 많으면 잡념이 끼어들기 쉽고, 말이 많으면 취 할것이 적은 법, 때로는 침묵으로 영혼을 맑히고 무념으로 자아를 해방시켜주는 시간도 필요하리란 생각도 든다.
요즈음 나의 화두는 국토순례다.
여행작가 김 남희가 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기를 읽은 후 도서관에서 유사
한 도보여행기들을 찾아 두루 섭렵해 본 후 실제로 걷기에 돌입하였다.
제주 올레를 비롯하여 송파올레, (사)우리땅걷기 행사, 한강변걷기와 석촌호수길 돌기 등등 많은 걷기를 통하여 하나씩 걷기의 묘미를 체득해 가던중
문득 우리 국토를 체계적으로 걸어보는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내가 살아온 지난 70여년간 나에게 삶의 터전이 되어준 우리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국토순례” 라 정하기로 마음먹고 우선 시작해 보기로 하였다. 계획이 너무 거창하면 용두사미가 될 우려가 있으므로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지 않고 상징적으로 고성의 통일전망대를 출발하여 무리하지 않게 진행해 가되,70세가 되는 내년3월까지는 1단계는 마칠 수 있도록 하였다. 나의 이 순례길이 몇 단계 까지 가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걷되 그 걸음 걸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내 살아온 자취를 되돌아보고, 지금의 내 삶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며 아울러 장래의 나를 념겨다 볼 수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나이70에 철이들다” 라는 제목의 책을 보고 깜짝놀라 읽어보니 우리나라 정형외과분야의 거목인 주 정빈박사의 자서전이었다. 아니 이런 분이 70에 철이들었다면 우리같은 범인은 죽어야 철이든다는 것 아닌가 하고 심히 낙담했던 기억이 되 살아난다. 여하튼 70이라는 나이는 예사로운 숫자가 아닌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우물주물 하다가 우리가 이제 70이 된다. 먼 훗날예기가 아니라 바로 6개월여 남았다. 지금에야 “인생칠십 고래희”라는 말에 큰 의미는 두지 않겠지만 건강한 70세를 맞는 남성의 잔여수명이 얼마라고 학자들이 발표를 할때는 관심이 아니 갈 수 는 없는게 사실이다.
뭔 가 매듭을 지어야 할 나이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국토순례는 내게 있어서 이와같은 매듭을 지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확신한다.
5년전, 20회로 “가족” 연재를 마치면서 92년 귀국이후 국내에서의 활동상을 70세 이전에 쓰겠다고 약속했으나, 지난 예기 자꾸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접어버리고 국토순례중에 생각나는데로 적어 나가려고 이 글을 적게 되었다.
정신없이 산에 오르던 지난 몇 년여간에 사람들은 나에게 왜 산에 가느냐고 묻곤 했었다. 여전히 요즈음도 나에게 왜 걷느냐고 묻곤 한다.
무슨 일이나 시작하면 몰입해 버리는 내 유별난 성격 때문에 그러겠지만, 그럴 때 마다 나는 그냥 웃을 뿐 대답하지 않는다.
혹자는 산이 거기있어 간다 라고 매우 철학적인 대답도 한다지만, 나는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즉 내 존재의 확인을 위하여 간다 라고 말하고 싶다.
산에 오르거나 걷는 것은 참으로 단순한 동작이다. 발을 내 딛고 팔을 뻗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동작의 반복일 뿐이다. 때때로 나는 단순동작의 무한한 반복을 통하여 일체의 잡념이 제거된 청정한 상태에 도달한 느낌을 갖게 될 때가 있다. 지극히 마음이 평온해 져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며 그들의 소리에 귀를 열고 내 속에 있는 나를 불러내서 대화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잘 자고 6시 기상하여 밖을 내다보니 눈보라가 흩날린다. 아니 갑자기 왠겨울이 다시 왔나? 놀라 바라보는 동안 눈발은 더욱 거세지더니 순식간에 온 천지가 새 하얗게 변해버린다. 동해안 눈은 서울과 달리 맹열히도 내린다. 하늘도 바다도 도로도 집도 다 파묻혀 버린다.
현관을 열고 나가보니 발목까지 쑥 빠져버린다. 어떻게 움직여 볼 도리가 없다. 계획은 사람이 세워도 그 성사는 하늘에 있다는 옛말씀이 옳은것 같다.
아쉬어도 여기서 1차 여행을 접어야 할 것같다.
눈 때문에 4일을 예정했던 일정을 다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그런데로 의미있는 시작이었다고 생각된다. 얼마를 갔느냐 하는 것 보다 어떻게 갔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걸으며 생각하고, 보고 느끼고,쉬며 마음을 비움으로써 더 큰 것으로 채울 수 있음을 확인한 여행이었다.
4월셋쩨주가 되면 나는 또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나설것이다.
눈으로 길이 막힐 염려도 없는 찬란한 봄 길을 걸을것이다.
이 골짝 저 골짝 다투어 피어난 봄꽃들은 그 고운 자태로 나를 반겨 줄 것이며 훈훈한 봄바람은 바다로부터 불어와 나를 감싸 줄 것이다.
소풍 갈 날을 받아 놓은 아이들처럼 또 가슴이 설렌다.
***제2구간.***
春來不似春이라더니 4월중순이 됬는데도 여전히 춥다.
봄은 어디서 해찰을 하고 있는지 찬 맞바람을 맞으며 한 참을 걷다보니 턱이 얼얼하다. 전국에 비소식이 있다고 출발을 연기하라는 주위의 성화를 뿌리치고 달려왔으니 이만한 추위쯤은 각오해야 할 것 같다.
윈드 스토파를 껴입으니 금새 땀이 베어 나온다. 얼굴에 찬 바람을 맞으며 등뒤로 촉촉이 베이는 땀맛은 산행의 큰 즐거움이었는데 오늘 양양해변에서 다시 느껴본다.
내 졸속 순례기를 읽어본 벗들의 격려에 힘입어 계획대로 4월20일,첫 차로 속초에 도착하여 시내버스로 한 참을 달려 정암해수욕장에 도착하니 9시30분이나 되어 버렸다.
7번국도를 타고 설악해수욕장을 지나니 곧 바로 낙산사가 나타난다.2005년 식목일 날 발생한 큰 산불로 인하여 의상대사가 창건했던 아름답던 낙산사의 목조건물들이 숲과함께 대부분 소실되어 지금도 복원불사가 진행되고 있어 올라가지 않고 지나친다.민둥산을 쳐다보는 마음마져 울적하던 차 산아래 일주문이 아름다운 소나무들과 함께 의연히 살아 버티고 있어 고마운 마음에 기념사진 한 장 찍는다.
낙산사의 화재는 문화재보호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
허무한 낙산사와는 대조적으로 낙산해수욕장은 매우 넓고 시설이 훌륭하다.
공항과 설악산이 가까워 많은 인파가 붐빈다고 한다.시즌에는
웅장한 낙산대교는 유유히 흐르는 양양남대천을 가로지르고 곧 바로 뻗은 해안도로는 나를 금새 솔비치 리조트로 이끈다. 작년에 손자들과 이틀을 쉬
고 갔던 곳이다. 해외 어느곳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만치 시설이나 운영이 훌륭했던 것이 생각난다.
솔비치 건너편에는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이 자리하고 있고 수학여행온 학생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선사까지 챙길 여유도 없어 그냥 통과 하기로 한다. 오른쪽으로 양양공항을 끼고 수산항과 수산해수욕장을 지나 확장공사가 한창인 해안도로언덕을 조심조심넘어가니 확 트인 동호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아침도 건너 뛰었으니 슬슬 허기가 지는데 문을 연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700미터에 이르는 동호모래사장을 지나니 길이 끊어져 버린다. 무작정 오른쪽 솔밭속으로 들어가 20여분을 헤맨 끝에 겨우 도로를 발견하고 나온후 한 참을 걸어 가도록 인가도 인적도 보이지 않는다.
KBS 기아체험프로에 참여하지 않고도 기아체험을 제대로 하는구나 하고 자위하며 가는데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도보여행자 한 사람을 만난다.
수인사하고 보니 해남 땅끝마을을 출발하여 속칭 한비야루트(내륙횡단코스)를 밟아 24일째 걸어오는 54년 말띠 김씨라 한다.처음으로 도보여행자를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직장을 사퇴해야 할 처지에 있어 여러 가지 생각도 할 겸 한 달 휴가를 내고 무조건 떠나왔다고 한다.발바닥이고 발가락이고 성한데가 없어 고통이 극심하지만 마음만은 편하다고 한다.
띠동갑임을 알고 내 손을 부여잡고 형님, 형님하면서 눈물을 글썽인다.내 마음도 찡해진다.앞으로 좋은 일 만 있을것이라고 격려를 하며 아쉬운 작별을 나눈다.땅끝마을에서 800키로를 쉬지않고 걸어 통일전망대를 찾아가는 김씨의 앞날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하시길 간절히 빌어본다.
김씨를 만나고 보니 한달에 겨우 3,4일 걷는 나의 이 순례길이 무척 초라하게 느껴지며 요란하게 순례기까지 적어가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기 까지 한다. 허기가 지니 마음도 약해지는가 보다.
겨우 허름한 식당을 찾아 짜디짠 추어탕 한 그릇을 허겁지겁 비우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출발한다.
물빛이 맑고 모래가 곱기로 소문이 난 하조대 해수욕장을 둘러보다가 멀리 하조대(조선 개국공신 하륜과 조준이 머물렀다 함)를 바라보기만 하고 서둘러 7번 국도를 타고 기사문항을 지나니 38선 휴게소에 이른다.
38선 표지석을 대하니 휴전 직전,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수복하려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선배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휴게소에서 바라보는 해안경관이 너무 수려하여 한 참을 바라보다다 부라보 콘 하나 사들고 출발한다. 동신해수욕장, 죽도해수욕장, 인구해수욕장을 거쳐 남애해변을 지나 남애항에 이른다.
강원도 3대 미항중 하나로 이름날리는 항구답게 경관이 빼어나다. 바닷가에 핀 매화가 이 마을에 떨어져 落梅라고도 불렸다는 남애,여기서 일출을 보아야 제 멋이라는데 갈 길 바쁜 나그네에게는 그림의 떡 일뿐,동네에서 제일 좋은 모텔을 찾아드니 등대가 바라보이는 전망이 그윽하다. 혼자서 한 참 경탄을 하고 있자니 사장님이 다가서면서 저 곳이 영화 고래사냥을 찍은 곳이예요 하고 알은채를 한다.자신을 54년 말띠라고 하면서 금년3월 정년퇴직하고 이 모텔을 인수하였다고 하길레 나도 말띠라고 하니 반가워 하면서도 자꾸 쳐다본다. 42년 말띠라고 하니 박장대소하더니 형님 만났다고 한 잔해야 한다며 샤와하고 내려오라고 야단이다.
모르는 사람을 사귀고 부담없는 예기를 나눌 수 있는 이런 점이 도보여행의 참 맛인 줄은 알지만 너무 피곤하여 가만히 누워본다. 오늘 8시간,41,765보를 걸었다.
1차 순례를 마친지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세월이 하도 빨리가니 마치 KTX를 타고 달리는것만 같다.어제 모임에 다녀온 아내가 불쑥 “이제 당신은 곧 달마다 늙어 가겠군요” 라고 말한다.
50대는 50키로, 60대는 60키로 하던 말은 이제 고전이 되버렸고 요즈음은 60대는 해마다 늙어가고 70대는 달마다 늙어가고 80대는 날마다 늙어간다고 한단다.듣고보니 그럴듯 하기는 하지만 어째 운치도 없고 너무 직설적이라 삭막하고 씁쓸하다. 이러다가는 죽는 날까지 D 마이너스 몇일,몇일하면서 카운트하는 일까지 벌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설파하신 분도 있었지만 어찌보면 산다는 것은 하루 하루 죽음을 향하여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게 아닐까?
그래서 요즈음엔 웰빙보다 웰다잉이 더욱 중요하다고 열을 올리는 인사들도 있는 모양이다. 어려운 이야기다.
육체의 극심한 고통을 인내하면서 인생의 해답을 찾아나선 김씨와 희망찬 새사업을 열어가는 모텔사장님을 생각하면서 그 분들의 앞 날에 행운이 깃들기를 빌면서 오늘을 마감한다.
옅은 구름이 끼어 일출은 볼 수 없었으나 어제보다 바람도 자고 기온도 올라가서 걷기에 쾌적하다. 6시30분 숙소를 나서서 지경해변을 지나니 향호라는 큰 호수가 나타난다. 호숫가 수면위로 쭉쭉뻗은 마른 갈대숲의 흔들리는 모습이 수면과 어우러져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호수가 바다와 만나는 곳에 다리가 있고 다리를 건너면 주문진읍이다. 주문진은 백두대간길의 주요 기착지이고 유명한 소금강계곡을 끼고 있어 자주 왔던 곳이라 낯설지 않은 곳이다.
주문진해변과 소돌해변을 지나 동네 길로 한 참을 걸어가야 주문진항이 나온다.차로 다닐때는 몰랐는데 이 길을 걷자니 상당히 지루하다.
인구 2만여명의 주문진은 강릉지역에서 가장 큰 항구로 오징어잡이의 중요기지역할을 하고 있으며 강릉시에 편입된 후로는 더 많은 발전이 이루어진 것 같다. 특히 연곡천과 연곡해변관광지 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을 지나면 유명한 경포도립공원이다.
해안으로 송림이 우거지고 인도가 잘 닦여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순포해변,순굿해변,사근진해변을 차례로 지나서 경포호에 이르니 수변에 벚꽃이 만발하여 벚꽃축제가 한창이다.
관동8경 중 으뜸으로 치는 경포대와 둘레길이가 4.3키로에 이르는 경포호,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깃든 홍장암등 볼거리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강릉은 관광인프라가 잘 정비된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설악산 다닐때는 속초에 와서 살고 싶었는데 강릉을 걸어보니 단연 강릉이다.
속초가 남성적인 아름다움을 지녔다면 강릉은 섬세하고 부드럽고 자상하다.
이런 아름다운 도시를 가꾸는 사람들에게 감사와 찬사를 보내고 싶다.
시원하게 트인 강릉해수욕장에는 다른 곳과는 달리 구경나온 인파가 상당히 많다. 신발을 벗고 찌든 발을 찬 물에 담그고 모래밭을 뛰어 다니니 쌓인 피로가 말끔히 사라진다.
강릉 올 때마다 가고 싶었던 율곡생가인 오죽헌을 이 참에도 못가는게 못내 아쉽다. 거기 들르면 바로 곁에 있는 시립박물관까지 봐야하니 오후시간을 다 써야 할것 같아 아쉬운 발길을 돌려 해안도로를 찾아 남대천 다리를 건넌다.
그런데 이 때 부터가 오늘의 고생 시작이다.공군비행장 때문에 해안길이 막힌것울 모르고 안목해변에 들었다가 다시 시내로 나가 7번 국도를 찾아 시내를 빠져나가는 이 길이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다. 해안으로 지척인 곳을 장장 10여키로를 돌아 무수한 매연을 마시며 고행하듯 걸어 안인항에 이르니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누가 이 글을 읽고 걷기를 하신다면 경포호구경하고 시내로 들어와 오죽헌들려 시청앞으로 나와 7번국토를 타라고 권하고 싶다.동해화력발전소를 끼고 안인역곁에 자리잡은 안인항은 조용한 시골항구이다.전망좋은 곳에 위치한 모텔을 찾아드니 나이 지긋한 사장님이 친절하게 맞아준다.
자기는 44년갑신생이라며 내 나이를 묻는다. 나이든 사람이 배낭을 매고 도보여행하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다.임오생이라 답하니 깜짝 놀란다.자기집에 온 자전거나 도보여행자중 가장 연장자라며 칭찬이 자자하다.하도 고생하던 끝이라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 해도 고맙고 억울하던 마음도 좀 갈아앉는다.
4층 창문 바로 밑으로 기차 철길이 달리고 해안이 지척이다.마침 화물열차가 지나가는데 생각보다 시끄럽지도 않고 오히려 낭만적이다.
욕탕까지 갖추고 있어 뜨거운 물로 목욕을 마치고 나니 한결 부드러운데 방바닥이 펄펄 끓는다. 사장님에게 전화를 거니 일부러 불을 많이 넣었단다. 그래야 쌓인 피로가 확 풀린다고 하면서 줄여달래도 막 무가내다.할 수없이 창문을 열어 온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었지만 나를 생각해주시는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에 가슴이 훈훈하다.
내일은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데 걱정이 앞서지만 든든한 장비를 믿고 누워 잠을 청해본다.오늘 비행장 때문에 너무 고생을 많이하고 주행거리도 오바하여 무려 48,659보를 걸어 내일 행군이 은근히 걱정되어 잠들지 못하다가 늦게 잠이든다.
요란한 벨소리에 잠이 깬다. 항상 5시면 기상하는데 벌써 7시다.사장님이 내려와서 아침밥을 먹자고 하신다.사양해봐도 소용없어 내려가니 아주머니가 불편하신 몸으로 아침상을 차려놓으셨다. 된장국에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커피까지 대접받고 보니 그 훈훈한 인정에 가슴까지 따뜻해 진다.
배낭을 매고 김 명길사장님의 해안선모텔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나니 사장님은 내 손을 부여잡고 이별을 아쉬워 하며 여름에 꼭 놀러오라고 명함에 이름까지 적어 주신다. 어느틈에 아주머니가 비닐봉투에 싼 따끈한 고구마 두개를 배낭에 넣어 주시며 가는 길에 먹으란다.하루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 던데 우리는 만리장성보다 더한 인정의 장성을 쌓고 길을 떠난다.
밤새 비소리가 들렸는데 제법 큰 비가 왔었던지 길에 웅덩이가 많이 있다.하늘은 잔뜩 흐리지만 비는 오지 않고 바람만 거세 큰 파도가 일렁인다.
보안경에 마스크를 쓰고 등산용판초를 여미고 비장한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한 굽이를 돌때까지 사장님이 현관에서 내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 내 가슴도 먹먹해져 버린다.문득 내가 무슨 큰 일을 한다고 이 비바람속을 가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이대로 돌아가 따뜻한 방에서 김사장과 얼큰한 매운탕에 소주 한 잔하면서 이야기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강릉을 중심으로 북쪽은 해안선이 비교적 단순하고 육지와 높이가 비슷하여 모래사장이 자연스럽게 생성되어 해수욕장이 잘 발달되어 있고 남쪽은 산세가 급하고 절벽이 해안과 만나 바위가 많고 길이 위험하다.
멀리 산위에 솟아있는 여객선모형의 정동진 선크루즈리조트건물을 바라보며 급한 커브길을 조심 조심 돌아 나아가니 통일공원에 이른다.
가파른 산위에는 안보전시관이 있고 해변에 함정전시관을 차려놓고 잠수정 한척과 대형 군함을 전시해 놓았다.
이 지역은 1996년 북한 잠수정이 침투했던 지역으로 나포한 그 잠수정과 1944년 건조한 미해군퇴역함을 전시관으로 쓰고 있는데 한번쯤 구경 할 만 하지만 둘러보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친다.
우리 꽃다운 46명의 해군들이 산화한 천안함사건의 원인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때라서 북한 잠수정을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주위에 하슬라아트월드,동명락가사등 볼거리가 많지만 그대로 통과하고 625남침사적탑만 들려 둘러보고 정동진으로 접어든다.
역 구내로 들어가니 마침 요란한 치장을 한 관광열차가 들어온다. 평일이라 사람은 많지 않으나 의자가 바다쪽으로 배열된 모습이 특이하다.
신 봉승의 시비와 모래시계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처절한 역사의 격랑앞에 맨몸으로 마주서야 했던 어린 처녀역을 처연하게 연기했던 고 현정이 생각난다.연인들 앉아라고 만들어 놓은 바닷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수첩에 적은 시비의 싯귀를 큰 소리로 두 번 낭독한다.
정 동 진
벗이여
바른 동쪽
떠오르는 저 우람한
아침해를 보았는가
큰 발원에서
우리들 모든 번뇌를 씻어내는
저 불타는 태초의 햇살과
마주서는 기쁨을 아는가
벗이여
밝은나루
정동진으로
밀려오는 저 푸른 파도가
억겁을 뒤척이는 소리를 들었는가
처연한 몸짓
염원하는 몸부림을
마주서서 바라보는 이 환희가
우리사는 보람임을
벗이여 정녕 아는가
신 봉승
동해안 바닷가 조그만 간이역에 테마를 부여하고 스토리를 엮어 유수한 관광자원으로 일구어낸 관계자들의 노고에 찬사를 보낸다. 이제는 빙 둘러보는 관광이 아니고 이야기가 있고 의미가 있는 관광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감히 말 할수 있겠다. 지난해 송파구청장을 모시고 송파올레길 32키로 개통행사에 참여했을때 구석구석에서 스토리텔러 라는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고 그 지역의 역사와 전설을 들려주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정동진을 빠저나와 큰 언덕을 넘어 심곡항을 거쳐 유명한 헌화로에 접어든다.신라 성덕왕 연간에 한 노인이 수로부인에게 바쳤다는 향가 헌화가의 배경으로 알려진 총연장 6키로의 동해안최고의 드라이브길을 걸어서 통과한다.
인도로 튀어 오르는 물보라를 피하랴 절경을 지나칠 수 없어 사진을 찍으랴 정신없이 걸으며 온 몸으로 느끼며 이 길을 간다.언제 내가 다시 이 길을 걸어 보겠는가 하고 생각하니 마음속에 확실하게 영상으로 남겨 두고 싶어진다.
온천으로 유명한 금진항을 지나니 옥계항이다. 그런데 여기서 옥계항에 이르는 길이 심상치 않다. 옥계마을이 깊이 들어가 있고 해안도로와 7번국도가 엉켜있어 한참 연구를 하고 있는데 곁에 아담하게 새로 지은 민박집이 서 있다. 마침 배도 출출하여 아주머니가 넣어주신 고구마를 꺼내들고 민박집현관곁에 앉아 먹고있는데 인기척을 들었던지 젊은 부인이 나와 들어와서 먹으라고 한다. 갈 길이 바빠 사양하고 나서는데 부인이 뚝방길을 가르쳐 준다.이 길을 몰랐으면 또 한참 헤맸을 번 했다.
누가 강원도 인심이 고약하다고 했던가? 나는 여행 내내 줄곳 따뜻한 인정을 만끽하고 있다.
한라씨멘트 옥계공장을 지나니 강릉권을 벗어난다.여기서 부터는 동해권인데 갑자기 길이 험해진다. 인도도 없고 길섶도 좁아 진행이 상당히 어렵다.
그런데 나를 발견한 마주오던 운전자들이 예외없이 2차선도로의 중앙선을 넘어 나에게 길을 내준다. 내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다.손을 들어 인사하면 손을 들거나 크락숀으로 응답해주며 지나친다.
지극히 짧은 그 순간에 우리는 많은 것을 교감한다. 가슴이 훈훈해지며 피로도 싹 가셔버린다.나비없던 시절 하이 빔으로 신호를 주고 받으며 숨어있던 교통경찰들을 무력케 했던 우리나라 운전자들의 의리가 오늘날 이렇게 도로에서 약자를 보호해 주는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나도 이렇게 남을 배려하며 운전하고 있는지 나의 운전습관을 되돌아 보게 한다. 도보여행은 참으로 많은것을 배우고 느끼게 해 준다.
다행히 큰 비는 오지않고 이슬비만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발길은 어느듯 망상해수요장을 지나 묵호항으로 향한다.막상 휴전선 아래의 간성지역보다 이 지역의 경계가 더 철저한 것같다. 북한 잠수정침투로 인해서 그런것같다.
묵호항에서는 울릉도행 여객선이 출발하니 시간이 있다면 울릉도성인봉에 올랐다가 독도까지 한 바퀴돌아 오면 속이 후련하겠지만, 그냥 지나친다.
이제는 곧 바로 동해시다.지리산을 출발하여 덕유산,속리산,월악산,소백산을 거쳐 올라온 백두대간 길은 태백산에서 방향을 틀어 동해시 인근의 두타산을 지나 대관령으로 넘어가면서 두타산 계곡에 아름다운 무릉계곡을 선사한다.예로부터 신선이 노닐던 천하절경 무릉도원과 같다하여 무릉계곡이라 이름하고 무릉반석,용추폭포등 수많은 명승지를 자랑하고 있다.
지척에 삼척이 자리하고 있지만 차기에는 경상북도 울진으로 넘어가니 이번 달 순례 길은 여기서 접어야 겠다. 사흘간 100여키로를 걸어 양양,주문진,강릉,묵호,동해에 이르는 5개 도시를 거쳐 왔고 오늘은 45,677보를 걸었다.
길은 여러갈래로 뻗어 있지만 어떤 길을 언제 어떻게 가야 할 지는 오로지 자신의 선택일 뿐이다.어떤 길은 평탄하고 쾌적하고,또 어떤 길은 소란스럽고 위태롭다.때로는 피 할수 없는 눈,비바람에 몸을 움츠리기도 하지만,우리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걸어간다.차타고 다니며 느끼지 못했던 인정의 다사로움을,인간사의 오묘함을 느끼게 되며 자연의 속 깊음과 국토의 다양함을 체득하게 된다.
우리는 오랫동안 너무 복잡하게 살아왔다.그리고 끝없는 긴장속에서 살아왔다. 이제는 좀 단순하게 살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걷기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걸을 때는 아무 생각 안한다.그저 걷기만 하면 된다.
생각을 안해도 걷다보면 뭔가가 떠 오른다.음악가는 악상이 떠오르고,예술가는 테마가 떠오르고,사업가는 오랫동안 찾았던 새사업 아이탬이 떠오를 것이다.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고 영감처럼 떠오르는 것이다.이것은 지극히 감각적이고 직관적이서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닫혔던 마음이 열리고 어린아이처럼 순진해지면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흥분하고 감격한다.
세상에 온통 감사,감격할 일 뿐이다.
이번여행 건강하게 마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여행중에 마음을 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내가 산행을 즐길때는 그 즐거움을 혼자만 느낄뿐 권유하지 않았다.그러나 걷기는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홍보한다. 왠만한 건강이면 누구나 걸을 수 있고 비용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같이 걸어도 좋고 혼자 걸어도 좋다. 사단법인 우리땅걷기에서 석가탄일전후 3박4일간 지리산 둘레길 떠난다고 연락이 왔다.
그때 울진코스를 가야 하는데 고민이 많다. 얼마나 즐거운 고민인가?
제주올레에서도 새 코스가 열렸다고 메일이 온다. 작년에 큰 아들과 3일간 5개코스를 돌고 왔으니 불원간에 다녀와야 겠다. 지난번 순례기에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 올렸더니 큰 아들이 아담한 디카를 사주어 이번에 사용했는데 날씨가 흐려 좋은 작품을 뽑지 못했다.
계절의 여왕 5월이 다가 온다. 구두끈을 고쳐매고 밖으로 나가자.
가슴을 활짝펴고 신나게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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