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산 , 산행

오은선대장...세계14좌고봉 완등.

제봉산 2010. 4. 28. 08:20

오은선 대장, 故고미영과 `안나푸르나 약속` 지켰다
영정들고 등정…13년만에 8000m급 14좌 올라

"국민과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8091m)정상에 태극기를 꽂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세계 여성 산악인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를 모두 정복한 오은선 대장(44ㆍ블랙야크). 그녀의 머릿속에는 지난 13년간 도전했던 14개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27일(한국시간) 오전 5시 캠프4(7200m)를 출발해 13시간의 사투 끝에 안나푸르나 정상에 선 오 대장은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2000년 7월 엄홍길 대장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이후 박영석(2001년), 한왕용 대장(2003년)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네 번째로 14좌에 발자국을 남긴 것. 머리가 깨질 정도로 아프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힘든 14좌 완등 과정은 오 대장에게도 자신의 한계에 절망하며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오 대장은 2006년 시샤팡마 등정 길에 굴러온 얼음 덩어리에 맞아 갈비뼈가 부러졌을 뿐만 아니라 눈사태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2004년에는 에베레스트 꼭대기를 밟고 내려오다가 탈진해 겨우 목숨을 건지기도 했고 에베레스트 원정에서는 또 동료 산악인인 박무택이 로프에 매달려 숨져 있는 것을 보고도 정상에 올랐다고 해서 `독한 년`이라는 비난도 들어야만 했다.

게다가 작년 7월 오 대장의 14좌 완등 경쟁자이자 좋아하던 후배 고미영 대장이 낭가파르밧에서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은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통의 순간들을 이겨내고 14좌 완등에 성공한 이 순간 오 대장은 거세게 밀려오는 감정에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정상에 선 순간 지난해 세상을 떠난 고미영 대장(당시 42세)의 한을 풀고 약속을 지켰다는 것도 안나푸르나 정복의 의미를 더했다.

고미영 대장은 지난해 숨질 당시 11개 봉에 올랐고 오 대장은 12개 등정에 성공하며 14좌 완등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고 대장이 지난해 7월 히말라야 낭가파르밧 정상에서 내려오다가 유명을 달리하면서 이들 간의 경쟁은 막을 내렸다.

오 대장은 비록 고 대장이 세상을 떴지만 `함께 안나푸르나를 오르자`는 약속을 지키고자 이번에 고인의 사진을 품에 넣고 갔다.

하지만 여성 최초 14좌 완등을 이룬 오은선 대장은 과제가 있다.

오 대장과 최초의 여성 14좌 완등 기록을 다투는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Edurne Pasabanㆍ36)이 지난해 오 대장의 칸첸중가 등정 성공 여부에 대한 논란을 다시 제기한 것.

오 대장의 지난 2009년 칸첸중가 등정은 히말라야 등정 기록의 권위자에 의해 `논란인 상태(disputed)`로 표시돼 있다.

1963년부터 히말라야 고봉 등정에 관한 기록을 집계해온 엘리자베스 하울리(Elizabeth Hawleyㆍ86) 씨는 "오은선과 그의 셰르파가 나의 보조원에게 칸첸중가 등정에 성공했다고 통보해온 만큼 현재로서는 그들의 주장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정확하게 하기 위해 그들을 다시 인터뷰하겠다"고 말했다.

만약 하울리 씨가 오 대장의 칸첸중가 등정을 인정하지 않으면 최초 14좌 완등 타이틀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

산이 좋아 안정된 직장도 버린 철녀 오은선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은 어릴 적 아버지와 북한산에 오르며 산과 인연을 맺었다.

본격적인 산악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은 1985년 수원대 산악회에 입회하면서였다.
키154㎝, 뭄무게 50㎏의 가냘픈 체격이지만 대학에 다닐 때 대학산악연맹이 1년에 한 번씩 여는 마라톤 대회에서 언제나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체력을 타고났다.

피로 회복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고지대 적응 능력도 뛰어나 고산 등반에 적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정신이 혼미해지는 8천m 이상 높이에서도 등정하고 내려올 때 힘이 달릴 것 같으면 단호하게 포기할 줄 아는 냉철한 판단력도 갖추고 있다.

고산 등반에 필수적인 육체와 정신적 조건을 갖춘 오 대장이지만 평소 "특별한 능력이 있다기보다는 산에 대한 열망과 열정이 다른 사람보다 유난할 뿐"이라며 산에 대한 애정을 14좌 완등의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대학 산악부에서 산과 사랑에 빠진 오 대장은 1993년 대한산악연맹이 낸 에베레스트 여성원정대 모집 공고를 보고 당시 다니던 서울시 교육청에 장기 휴가를 내려고 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이 원정대의 지현옥 대장과 김순주, 최오순은 그 해 히말라야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8천848m) 정상에 발자취를 남겼지만 오은선은 당시 함께 갔다가 등반대장이 곧바로 내려오라고 해서 하산했다.

오 대장은 그로부터 꼬박 11년 뒤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에 단독 등정하면서 그때의 한을 풀었다.

첫 외국 원정의 아쉬움과 갈증으로 오 대장은 이후 더욱 고산 등반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원정에 드는 돈을 마련할 길이 없던 오 대장은 스파게티 가게를 운영하거나 학습지 교사로 일해야 하는 등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오 대장은 "당시만 해도 히말라야는 꿈이었다. 외국 원정은 경비 마련만 하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당시에는 여자에게 돈을 대 주는 곳이 없어서 스파게티집을 운영했다"며 외국 원정 초기 어려움을 회상했다.

에베레스트에 오르지 못한 오은선은 1997년 가셔브롬Ⅱ에 오르면서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14좌 완등에 앞서 7대륙 완등을 먼저 목표로 삼은 오 대장은 2002년 유럽 최고봉인 엘부르즈 등정을 시작으로 이듬해 북아메리카대륙 매킨리에 올랐다.

2004년 한 해 동안 에베레스트 등 5개 대륙 최고봉을 연거푸 오르며 여성 산악인으로는 12번째로 세계 7대륙 최고봉을 완등했다.

오 대장은 14좌 중 두 번째로 오른 에베레스트 등반을 계기로 고산 등반에 필요한 경험을 얻었을 뿐 아니라 14좌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하지만 에베레스트에서 그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2004년 에베레스트 원정 때 로프에 매달려 숨져 있는 동료 산악인 박무택을 보고도 정상에 올라간 것을 두고 매정하고 독하다는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나중에 오 대장은 "이미 상황은 종료됐다"며 "저렇게 죽지 않고 싶다고 본능적으로 다른 산악인 뒤를 따라 올라갔다"고 말했다.

2006년 시샤팡마, 2007년 초오유와 K2에 오른 오 대장은 2008년 5월 마칼루를 시작으로 2년 동안 매년 4개씩 8천m급 봉우리를 오르며 '철(鐵)의 여인'이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최근 수년 동안 1년의 절반 이상을 히말라야에서 보냈지만 국내에 있을 때는 수영과 마라톤, 가벼운 등산 등으로 기초 체력을 다지면서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해 왔다.

산에 빠져 40살이 넘도록 아직 독신인 오 대장은 "아직 산만큼 나를 사로잡은 사람을 찾지 못했다"면서도 주변 사람에게 14좌 완등 이후에는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오은선의 조건은...

피로회복 황영조보다 빠르고, 심폐기능 남자 축구선수 앞서

오은선 대장의 키는 1m55㎝에 불과하다. 몸무게도 50㎏이다. 작고 연약한 체구다. 그러나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여자가 됐다. 여기엔 남모르는 신체 비밀과 치열한 경쟁이 있었다.

◆타고났다=오 대장이 수원대 산악부에 가입하게 된 계기가 있다. 대학 새내기 오씨가 교내 체육대회 마라톤에서 여자부 1등을 하자 당시 산악부 선배였던 신동석(45)씨가 “산악부에 놀러 오라”며 가입을 권한다. 오씨는 바로 다음 날 산악부원이 된다. 오씨의 달리기 실력은 대학산악연맹에도 소문이 퍼진다. 1980년대 중반엔 연맹에서 해마다 체육대회를 개최했고, 대회 피날레로 마라톤 경기를 열었다. 그때마다 1등은 예외 없이 수원대 오은선이었다.

오씨는 심폐 기능이 일반인의 두 배나 된다. 지난해 9월 한국체육과학연구원에서 실시한 체력검사 결과, 오씨의 최대 산소 섭취량(체중 ㎏당 1분에 최대한 들이마실 수 있는 산소량)은 63.8mL로 측정됐다. 일반인의 최대 산소 섭취량이 30∼40mL, 남자 축구선수가 평균 60.9mL, 남자 철인 3종 선수가 63.7mL 정도다.

2001년 체력 테스트에선 마라토너 황영조보다 피로 회복 속도가 빠른 것으로 조사됐고, 적혈구·헤모글로빈 증가량도 많아 고지대 적응에도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씨는 또 탄탄한 하체로 유명하다. 블랙야크 박용학 부장은 “오 대장의 장딴지를 본 적이 있다. 그 딴딴한 근육을 보고 놀랐다. 바늘로 찔러도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경쟁의 힘=1년 전만 해도 오씨는 14좌 경쟁에서 뒤처져 있었다. 당시 여성 최초 14좌 완등을 놓고 경쟁을 벌이던 주인공은 모두 5명. 에두르네 파사반(스페인), 게를린데 칼텐부르너(오스트리아), 니베스 메로이(이탈리아), 그리고 한국의 고미영과 오은선이었다. 파사반과 칼텐부르너는 오 대장보다 두 봉우리 이상 앞서 있었고, 한국의 라이벌은 서로 격려하며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오씨는 5월 6일부터 100일 안에 네 봉우리를 잇따라 등정한다. 특히 5월엔 연속 등반에 성공한다. 봉우리를 오른 뒤 현지에서 바로 다른 봉우리로 이동해 공격하는 등반 방식이다. 무리한 등반 일정을 소화한 까닭을 오씨는 분명히 밝혔다.

“연속 등반이 아니었다면 한참 기록이 앞선 외국의 경쟁자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해야 최초를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해 10월 안나푸르나에서 실패한 뒤 오씨는 봄을 기다렸다.

그 사이 12좌에 그쳤던 파사반이 지난 17일 안나푸르나를 오르면서 둘은 동률이 됐다. 만약에 오 대장이 27일 공격에서도 실패했다면 파사반에게 영광을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뾰족하고 눈 쌓여 추락 위험… 1m 아래라도 정상 인정 관례

“지금 밟은 곳이 정상 맞아?”

“봉우리 제일 높은 곳을 손으로라도 찍어야 되는 거 아닌가?”

TV 생중계로 오은선의 안나푸르나 등정 장면을 지켜본 시청자들은 마지막 순간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태극기를 펼쳐 든 오은선 뒤로 1∼2m의 봉우리 끝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등정은 봉우리의 꼭짓점을 밟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8000m급 이상의 봉우리는 낮은 기온 때문에 정상이 눈으로 덮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점이 평평한 경우엔 문제가 없지만 안나푸르나처럼 뾰족한 데다 눈까지 쌓였다면 위험천만이다. 그래서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올라갔다면 정상으로 인정해준다. 또 히말라야 봉우리의 공식 높이는 표면에 쌓인 눈이 아닌 땅 끝 부분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눈이 쌓인 부분까지 밟을 필요가 없기도 하다.
이번에는 정상을 밟는 것이 생중계돼 논란의 여지가 아예 없었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 등정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사진 촬영이다. 등정자가 정상에서 찍었다는 사진을 제시하면 전문가들이 성공 여부를 판단한다. 사진을 찍을 때는 정상에 선 모습과 등정 높이를 보여주는 고도계 화면을 같이 찍기도 한다. 앞서 정상을 밟은 원정대가 정상에 남겨놓은 흔적을 회수해 오는 것도 증거가 된다.

오은선 14좌 완등의 숨은 주인공 셰르파

 

"함께 등정한 셰르파 3명이 (칸첸중가) 정상이라고 말해줘서 사진을 찍었다."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8천m급 14좌를 완등한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은 작년 말 그 해 5월 오른 칸첸중가(8천586m) 등정을 놓고 정상을 밟았느냐는 논란이 일자 이같이 말했다.

오 대장의 말 속에는 등정의 조력자인 셰르파의 중요성이 잘 드러나 있다.

티베트계 네팔인 부족 명칭인 셰르파는 히말라야 등반 초기 원정대의 짐을 나르는 이들을 가리켰지만 최근에는 단순한 짐꾼과 구별해 길잡이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오 대장이 14좌의 마지막인 안나푸르나(8천91m)에 오른 역사적인 현장에는 네팔인 셰르파 체징(29)이 함께 했다.

체징은 선배 셰르파 옹추 다와(39)와 함께 오 대장을 정상까지 인도했다.

이어 체징은 오 대장과 정상까지 함께 올라 등정을 확인하는 사진도 찍었다.

시시각각 날씨가 변하는 8천m이상의 히말라야를 오르려면 산을 잘 아는 셰르파의 존재는 필수다.

고산 등반을 하는 산악인은 정상 공격 시점 등에 관해 이들의 의견을 들어 결정한다.

체징은 이미 작년 10월 오 대장의 안나푸르나 1차 원정에도 함께 했다가 기상 조건이 나빠 발길을 돌린 적이 있다.

오 대장과 함께 등정한 것은 처음이지만 이미 다울라기리Ⅰ, 마칼루 정상 등을 밟아 이번이 14좌 중 4번째 등정이다.

정상 부근까지 오 대장을 인도한 노련한 셰르파 옹추 다와는 이번 안나푸르나를 비롯해 칸첸중가, 낭가파르밧 등 오 대장과만 히말라야 8천m 봉우리 6곳을 올랐다.

그는 이미 에베레스트, 시샤팡마, 로체 등 14좌 중 10곳을 오른 베테랑 산악인이기도 하다.

셰르파는 이처럼 산악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등반의 동반자지만 도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산을 탄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산악인 대접을 못 받기도 한다.
***
"세계 등반사에 영원히 기록될 기적"
[오은선 여성 첫 히말라야 14좌 완등] '14좌 완등' 국내외 반응

***"오은선 대장이 여성으로서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등정에 성공한 것은 세계 등반사에 영원히 기록될 쾌거이며 기적입니다."

2000년 아시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엄홍길(사진) 대장은 27일 오 대장의 완등을 이렇게 평가했다.

엄씨는 "남자들의 독무대였던 14좌 등정을 많은 외국 여성 등반가들이 시도하다가 사고로 사망하거나 중도에 포기했다"며 "오 대장의 완등은 히말라야가 선택해줘 이루어진 기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내 경험을 비춰봐도 14좌를 완등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라며 "비단 오 대장뿐만 아니라 그곳에 가서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은 "오 대장이 1997년 가셔브롬2에 오른 지 13년 만에 14좌 완등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며 "산악인의 자랑거리일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자랑"이라고 환영했다. 1977년 한국 에베레스트원정대 대장이었던 원로 산악인 김영도씨는 "2,000m도 안 되는 낮은 산으로만 둘러싸인 한국에서 자란 산악인이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올라간 그 기상을 높이 사고싶다"고 말했다.

한편, AP, AFP 등 주요 외신도 이날 긴급기사를 통해 오 대장의 히말라야 14좌 완등 성공을 일제히 보도했다. AFP는 "한국 여성 등산가가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첫 번째 여성이 됐다"며 "생중계를 통해 오씨가 안나푸르나 정상에 태극기를 꽂는 장면이 생생히 전달됐다"고 전했다. AP는 "오씨가 히말라야 14좌 정상에 모두 올라 스페인의 라이벌 에두르네 파사반을 눌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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