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쟁점.

광화문에 왠 스노우보드?

제봉산 2009. 12. 8. 15:39

광화문광장 ‘스노보드 월드컵’ 뜨거운 논란 

“역사 광장에 생뚱” “세계에 소개 기회”

 명물인가 흉물인가 … 광화문광장 한복판에 높이 34m 스노보드 점프대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길이 100m, 높이 34m(아파트 13층에 해당)의 대형 스노보드 점프대를 설치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7억원이 투입되는 점프대는 복원 공사 중인 광화문과 세종대왕 동상 사이 ‘플라워 카펫’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다. 이곳에선 ‘스노보드 빅에어 월드컵’ 대회 등 각종 행사가 11~13일 열린다.


7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뒤편 ‘플라워 카펫’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경사형 구조물을 세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인부 4~5명이 경사로 위에서 흰색 포대 수십 개를 풀어 얼음가루를 뿌리고 있다. 높이 34m(아파트 13층에 해당), 길이 100m의 이 구조물은 13일 열리는 ‘스노보드 빅에어 월드컵’ 때 사용될 점프대다.

이 스노보드 대회를 앞두고 광화문광장의 사용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이번 대회의 예산은 모두 17억원으로 서울시 5억원, 행사 참여 기업들이 12억원을 마련했다. 점프대 설치비는 7억원이다. 서울시 강철원 홍보기획관은 7일 “스노보드 월드컵은 도심에서 열리기 때문에 더 주목받는 대회”라며 “대회를 통해 해외에 서울의 랜드마크인 광화문광장이 자연스럽게 알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스노보드 점프대 설치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건축가 민현식(62)씨는 “광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곳을 쓰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인위적 행사나 관청 주도형 이벤트는 광장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디자인 평론가 최범(52)씨는 “대한민국 정궁(경복궁) 앞에 놀이시설을 만드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광장을 서울시 홍보시설로 쓰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울시 윤영석 마케팅담당관은 “런던·스톡홀름·파리·모스크바 등 세계 유명 도시들도 해외 마케팅 차원에서 이 대회를 치렀다”며 “일본 후지TV, 미국 폭스스포츠, 유로스포츠 등 전 세계 10개 방송사에서 대회를 중계 방송할 예정이어서 경복궁·광화문·북한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서울의 전경이 대회와 함께 전 세계에 소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장을 찾은 시민들 사이에도 찬반이 엇갈렸다. 전정오(57·서울 종암동)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문화 광장에 스노보드 점프대가 생기는 것은 생뚱맞고 광장 설립 취지와도 어울리지 않는다”며 “광장에서 잘 보이던 경복궁 일대 전경을 점프대가 가린 것도 아쉽다”고 지적했다. 대학생 임채학(28·한국외대)씨는 “외국 유명 도시들은 다양한 이벤트로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며 “권위적이던 태극기가 2002 월드컵을 통해 응원 도구와 디자인 도구가 됐듯 스노보드 대회를 계기로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을 더 친숙하게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스노보드 빅에어 월드컵=국제스키연맹(FIS)이 주관하는 스노보드 라이더들의 월드컵으로 2001년 첫 대회 이후 매년 열리고 있다. 점프대에서 도약 후 점프·회전·착지 등의 과정을 점수로 평가한다. 서울시는 올 5월 국제스키연맹에 대회 유치를 신청해 9월에 개최지로 확정됐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대회에는 전 세계 유명 스노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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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의 점프
11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 특설램프에서 열린 '서울 스노우 잼'에서 스키,스노보드 선수들이 서울 도심을 배경으로 점프 리허설을 하고 있다.

광화문광장 스노보드 대회에 열띤 관심

11∼13일 '2009 서울스노우잼' 열려
"신선하고 참신"…"굳이 광화문에서" 반대의견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사흘간 치러지는 스노보드 대회 `2009 서울스노우잼'이 개막하는 11일 시민들은 일찍부터 광장을 찾아 열띤 관심을 보였다.

세종대왕 동상 뒤부터 광화문 앞까지 260m 공간에 세워진 길이 100m, 높이 34m의 거대한 스노보드 점프대는 지나가는 시민들의 발걸음과 눈길을 붙잡았다.

이날 오후 3시30분께부터 이 곳에서는 세계 톱 스노보더들이 화려한 실력을 뽐내며 연습에 들어갔다.

스노보드, 스노 스쿠터, 스키로 무장한 선수들은 점프대에서 4∼5m 높이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며 두 바퀴를 돌거나 공중에서 360도로 회전했다가 착지하는 묘기를 선보이며 몸을 풀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광장과 대로변에 모여든 시민들은 멋진 장면을 놓칠세라 고개를 치켜들고 연방 카메라를 눌러대며 환호성을 질렀다.

일부 선수들은 엉덩방아를 찧거나 넘어져 구르기도 해 구경꾼 사이에서 탄식도 나왔지만, 시민들은 그마저 신기해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뉴스쿨프로선수 김광진(15)군은 "공중에서 두 바퀴 반을 회전하는 묘기를 선보이려 하는데 직접 뛰어보니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라고 연습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시민들은 광화문 한복판에서 열리는 연습 경기를 지켜보며 광장 이용이나 대회 개최와 관련해 서로 다른 의견을 냈다.

회사원 강모(59)씨는 "광장에서 이런 행사를 열 생각을 한 것부터 신선한 충격이고 참신하게 여겨진다"며 "국제적으로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것 같고 도시가 활기에 넘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개인사업을 하는 김모(60)씨는 "광화문은 우리나라의 얼굴인데 왜 굳이 이걸 광화문에서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안전도 걱정이고 뭔가를 보여주려는 `서커스' 같은 일이라 생각한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한편, 경찰은 대회가 열리는 11∼13일 광화문에서 세종로네거리로 향하는 도로 일부 구간을 통제하고 전의경과 교통경찰 등을 동원해 질서 유지와 안전사고 예방에 나서기로 했다.

대회는 이날 오후 6시부터 개막식을 시작으로 스노보드 프리스타일쇼가 펼쳐지는 등 본격적인 일정에 돌입한다.

12∼13일에는 세계 톱 선수들이 벌이는 토너먼트 경기 `슈퍼매치'와 세계스키연맹(FIS)의 '스노보드 빅에어(Big Air) 월드컵' 예ㆍ결선 경기 등이 치러진다.
 
***디자인의 적, ‘서두름’

2009.12.11

# 억지로 만들지 않는다. 내버려둔다. 자라게 하고 성기게 한다. 전라남도 나주 죽설헌(竹雪軒) 주인 화가 박태후의 생각이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조부의 묘 주변에 나무와 화초를 심기 시작했다. 파초, 탱자나무, 맥문동, 꽃무릇, 문주란, 옥잠화, 비비추, 노랑꽃창포, 왕버들 등등. 하지만 애써 가지치기를 한 적도 없고 이리저리 옮겨심기를 하지도 않았다. 그저 저들만의 세계에서 스스로 질서가 생겨나게 내버려뒀다.

# 덕분에 질경이들이 잔디처럼 깔리고 이리저리 타고 오른 등나무 줄기가 그늘을 만들며 야생화들이 꽃밭을 이뤘다. 그 터에 그는 집을 지었다. 그리고 남들이 버린 기와를 얻어다 높지 않으나 의연하고 품격 있게 담을 쌓았다. 애써 멋 부리지 않았기에 맛이 있고 자꾸 손대지 않았기에 멋이 배인 곳. 그 죽설헌이 던지는 화두는 “더디고 느리게 내버려두라”는 것!

# 진득하니 내버려두지 못하고 자꾸 서둘러 손대 덧난 것 중 하나가 서울 광화문 광장이다. 그런데 거기에 높이 34m에 달하는 스노보드 도약대가 순식간에 세워졌다. 국제스키연맹(FIS)이 주관하는 2009-2010시즌 스노보드 월드컵에 어제부터 사흘 동안 사용한 후 철거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울시는 “도시마케팅을 위한 수단이며, 평창의 겨울올림픽 개최를 지원할 필요가 있어 시작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왠지 이유가 궁색하다.

# 서울은 알프스에 있는 인스부르크가 아니다. 서울에 오면 늘 스노보드 활강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설령 스노보드 활강처럼 짜릿하고 흥분된 서울을 알리고 그 뒤로 펼쳐지는 경복궁의 모습 등을 담아 서울의 이미지를 보다 활기차고 신나게 연출하려 의도한 것일지라도 정작 스노보드 도약대가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모습을 보면 그냥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다.

# 여전히 공사 중인 광화문 처마 끝자락에서 활강을 시작해 세종대왕 동상의 뒤통수를 칠 것만 같은 스노보드 도약대를 보면서 아연실색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서울의 도시마케팅이 되고 삼수하는 평창 겨울올림픽이 유치라도 된단 말인지. 무르팍 위에서 노는 것은 재롱이라 볼 수 있지만 이건 머리 끝까지 올라가 상투를 틀어쥔 꼴이다. 백보양보해서 그래도 굳이 꼭 해야만 했다면 시청앞 광장도 있지 않은가. 조선의 정궁으로 통하는 대문 앞 육조거리 한복판에서 꼭 널을 뛰어야만 서울이 사는가? 나라의 격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 비단 스노보드 활강대만이 문제가 아니다. 기형화된 광화문 광장 자체도 문제다. 오죽하면 광화문 광장을 가리켜 ‘세계에서 가장 큰 중앙분리대’라는 비아냥 섞인 이야기가 나왔겠는가. 물론 광장이 섬처럼 돼버린 데는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욕심보다도 이명박 정부의 촛불 콤플렉스가 한 몫 단단히 거든 느낌이다. 광장은 광장인데 사람들이 모여 시위나 집회를 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는 정치적 강박관념이 은연중에 작용해 광장을 차도 속에 갇힌 섬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 내년에 서울은 세계디자인수도가 된다. 물론 서울이 세계 최고의 디자인 도시라는 의미가 아니라 디자인적으로 변화할 필요와 가능성이 큰 도시라는 뜻이 담긴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광화문 광장은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마음 같아선 모두 걷어내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피 흘리고 땀 흘린 이들의 이름 석자가 담긴 동판으로 광장 전체를 덮어버리고 싶다. 당분간 누구든 허튼 짓 못하게 말이다.

# 디자인의 진짜 적은 ‘서두름’이다. 125년이 넘도록 느리고 더디게 짓고 있는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리지 않나. 광화문 광장도 ‘느리고 더디게’ 하며 때로 내버려둬야 한다. 그래야 되살아난다. 나주의 죽설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