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쟁점.

이어령이본 미네르바

제봉산 2009. 6. 4. 08:24

사이버 공간의 신뢰 위기가 ‘일그러진 인터넷 영웅’ 만들었다

이어령 고문이 본 미네르바
익명의 온라인이 가짜 정보 만들어
네티즌 스스로 자정능력 키워야

 검찰 수사 결과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31세의 무직자로 밝혀지면서 우리가 당면한 신뢰의 위기가 다시금 확인됐다. 전문가도 아닌 청년의 글 몇 줄로 인해 경제가 출렁이고 여론이 흔들린 것은 사이버문화의 역기능과 한국 사회의 부실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일그러진 ‘신화’는 왜 출현하고, 얼마나 만연돼 있으며, 이를 막을 대책은 없는지 3회 시리즈로 긴급 점검했다. 첫 회에선 이어령(얼굴) 중앙일보 고문에게서 미네르바 소동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봐야 할지 들어봤다. 이 고문의 분석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미네르바’ 사건은 예고된 것이다. 영국 국방부는 미래에 국가 안보를 해칠 수 있는 10대 위험 요인 중 하나로 인터넷 상의 허위 정보를 꼽고 있다. 신빙성 없는 정보가 인터넷을 타고 확산되면서 사회를 큰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9·11 테러 이후 번졌던 ‘부시의 자작극’ 등 음모론이 대표적인 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뒤에도 진한 잔상을 남기며 미국과 피해자들에게 2중의 피해를 주었다.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후에는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은 괜찮다’는 식의 루머가 인터넷에 퍼지고 있다. 아무런 ‘꼬리표’(근거)도 없는 정보지만 일반 네티즌에게는 강력한 설득력을 발휘한다. 키워드는 ‘수면 효과(sleeper effect)’다. 시간이 갈수록 신빙성 있는 뉴스를 외면하고, 오히려 신빙성 없는 뉴스는 믿는 역설적 사회심리를 가리킨다.


정보의 신뢰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 사이버 공간이다. 인터넷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대시키는 장점이 있지만 어마어마한 파괴력도 갖고 있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는 유언비어의 피해자가 일부에 그쳤지만, 디지털 시대인 지금은 경제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 번식력이 크다는 점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나 사스 같은 변종 바이러스와 비슷하다. 익명의 바이러스는 어느 날 갑자기, 한 순간에 사회 시스템에 고장을 일으킨다. ‘미네르바’ 같은 이들이 노린 것이 뉴미디어의 이러한 아킬레스건이다. 얌전한 사람이 술만 먹으면 달라지듯 평범한 시민이 웹에서는 공격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번 사건을 인터넷의 가공할 잠재성에 대비하는 모델로 삼아야 한다. 인터넷은 기술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의 산물이다. 인터넷이 정치·경제·사회와 청소년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부와 각 기관이 심도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 신문과 방송 등 기존의 미디어도 근거 없는 뉴스를 골라내는 검증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가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익사하지 않도록 ‘노아의 방주’ 역할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네티즌들의 자제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네티즌이 스스로를 통제하는 자제력과 서로를 견제하는 자정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제2의 미네르바는 계속 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