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그들은 누구인가? : 치우, 신농, 복희, 여와
신시시대부터 이루어진 중화민들의 이동
중원인, 그들은 누구인가?
한인들이 이민족에게 지식을 전파하고 그들을 일깨워준 것은 어쩌면 화근이랄 수도 있었다. 그들은 한인들에게 보다 많은 지식을 공급받았다. 그리고 그 지식은 지혜를 부리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들은 지혜를 얻고 나자 더 이상 한인들의 제후가 되기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한인들은 자신들보다 못한 세력에게는 함부로 무력행사를 하지 않았다. 바로 그 점이 이민족에게 있어서는 종이호랑이의 모습이었다.
북방의 수많은 이민족들은 마한의 세력권 안에 있었다. 최초의 마조선은 북부여였다.
강력하게 변화된 북부여는 마한이라는 황제국의 주체세력이 되어 드넓은 북방의 강역 전체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곳에는 아직도 남아 있는 비리인·선비인·구막인까지도 포함되었다.
후에 서백제가 된 번한땅에서는 선군시대에 이민족과 한인들이 분명하게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번한의 한인들은 기름진 옥토를 차지하고 이민족을 모두 내륙으로 몰아냈다. 내륙은 비옥한 곳이 별로 많지 않았다. 바로 그것이 중화족을 분노케 했다. 중화족은 무슨 수를 써서든 비옥한 땅을 차지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기울였다.
번한은 후세의 서백제이다. 번한의 역사, 그리고 중화민족의 역사, 그것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역사이다.
중화인들은 분명 번한의 제후국이며 한인들에게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화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번한뿐만 아니라 그들이 현제 머물고 있는 곳은 물론 옛날에라도 머무른 적이 있던 곳은 모두가 그들의 땅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시각으로는 번한이 이민족이고 외부세력이었다. 분명 번한땅에 들어와 이민족으로 살았으면서도 그들은 번한땅을 자기네 땅이라고 여겼다. 그리하여 중화내륙과 번한땅은 전부가 중화인의 땅이라는 사상이 전개되었다.
이렇게 되니 중화인은 역사까지도 번한의 역사를 가져다 그들의 일부 역사로 삼았다. 그러고는 번한의 세력 때문에 황제라는 칭호는 할 수 없다 하여도, 내심으로는 자신들이 황제라는 사상으로 살아갔다. 결국 역사 자체가 번한의 역사인지 중화의 역사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자 세력이 완전히 둘로 나뉘게 되었다.
진정 그 땅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그것은 번한의 땅일까, 아니면 중화의 땅일까?
여기서 만약 번한의 힘에 의해 대륙이 통치되고 중화인들을 흡수하였다면 역사는 분명 번한의 역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강대했던 번한의 역사는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소멸되어갔다. 반면 중화인들의 힘은 나날이 커져갔다. 중화의 모든 문화는 번화의 문화였다. 의복, 농경법, 예절까지도 번한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중화의 역사 전부가 번한의 역사라 할 수 없지만 최소한 번한땅에서, 백제땅에서 일어났던 흐름은 모두 번한의 것이었다.
그러나 번한의 역사는 중화의 역사와 혼합되어져 번한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사라진 번한은 중화의 땅속으로 깊숙이 깊숙이 묻혀져갔다. 강대했던 고도의 정신문명은 중화인들 속에 중화되어갔다.
본래 '중화'라고 하는 것은 번한인들이 부르던 말이었다.
그것은 중심이란 뜻이 아니라. 그들이 번한인과 너무나 조화를 잘 부리며 빠른 시간 내에 동화될 수 있는 사람들이란 뜻이었다. 그리고 말 그대로 그들은 번한의 역사를 그들의 역사로 만들어버렸다.
우리 모두는 세 가지 존재에게 속고 속이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첫째 자기 자신이요. 둘째는 타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역사의 흐름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역사에 속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속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속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곧 울분이었다.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든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이 남아 있는 한 성인군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세월은 말없이 흐른다. 우리는 말없이 흐르는 세월을 살아가면서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왜곡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깨어난 자, 깨달은 자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옛 번하땅, 지금으로 말하자면 허베이성(河北省)·산둥성(山東省)·산시성(山西省)·허난성(河南省)·안호이성(安徽省)·창수성(長水省)·저장성(浙江省)·후베이성(湖北省)에 걸쳐 있는 번한의 흐름, 이제 누가 무어라 해도 밣혀질 때가 되었다. 진실, 진실의 역사가 이 순간부터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잠시 기다리며 주시하면 된다.
번한의 역사가 그랬듯 마한의 역사도 마찬가지였다. 강성했던 마한도 본래의 조선의 뜻과는 반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옛 연방자리를 지키고 있던 우르국인들은 이민족들과 혼혈이 되어 새로운 스키타이 종족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선비족은 흉족을 탄생시켰으며, 새로운 이민족 타타르가 이동하며 투르크와 키르키즈 모두가 이민족과 차츰 혼혈이 되어갔다. 선군시대 초기에는 대부분이 이민족들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들은 한인사회로 이동하였고,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민족도 될 수 없는 혼혈족이 되었다.
선군시대가 시작되면서 마한국은 이민족을 제후국으로 받아들이고 정착민으로 살아가도록 함께 동시에 최후에는 조선의 권한 속에 넣으려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기마족이며 사냥을 하면서 살아가는 종족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마한인들의 울타리를 거부하며 서쪽으로 이동하여 갔다. 이미 초기에 북방의 이미족들은 한인과 피가 섞이기 시작하였고, 그후 서양에서 다시 동양으로 이주하던 BC 10세기경에는 북방의 세력들 대부분이 혼혈로 변해 있었다.
최초에 마한조선이 있었던 곳은 지금의 몽고의 두투른 산맥이 있는 곳. 그러나 그곳은 비옥한 땅이 아니었다. 마한은 드넓은 강역을 다스릴 목적으로 그 수도를 두 곳으로 나누게 되었는데, 본래의 본거지는 북부여이며 남으로는 남옥저였다. 남옥저는 마한뿐 아니라 번한과 진한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으니, 이곳은 선군시대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위치였다. 말하자면 삼한의 본부라고나 할까? 이곳이 바로 진한의 선군의 자리였다. 드넓은 강역, 북으로는 마한을, 남으로는 번한을 다스리고 내부로는 한인들의 사회를 다스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중화인이 변하듯, 북방의 이민족들이 변하듯 한인들 사회에서도 변화의 물결이 일어났다. 그것은 곧 '우리'라는 마음의 변화였다. 왕검께서 개국하기 이전 이미 한인은 한인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이민족과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신뢰할 수 있었고 어진인간들이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며…… 말하지 않아도 제도하지 않아도 한웅시대로부터 내로온 한인들의 멋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인들은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도란 바람에 의해 일어나는 법, 선군의 역사 그 자체가 바람을 일으켜야 했던 역사였다. 강풍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고요한 바다를 이루던 마음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출렁이는 파도는 서로가 부딪쳤다. 서로가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파도는 서로 더 높이 솟아오르려고 몸부림을 쳤다. 마음이라는 거대하고 끝없는 바다는 전체가 요동치며 물보라를 일으키며 부딪쳤다. 순간순간 물의 형상이 변화하고 보기에도 무섭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바다, 물 그자체는 변화가 없었다.
선군의 역사라는 아…… 아…… 슬픔의 바람이여…… 거침없이 불어오고 있는 현실 앞에서 한인들은 피할 길이 없었다. 그것은 막을 수 없는 바람이었다. 서서히, 그리고 오묘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번뇌의 바람이요 암울진 모습이 담겨져 있는 매우 찬 공기였다. 선군의 바람은 말로도 글로도 다할 수 없는 역사이다.
그것은 비밀의 역사이며 비기의 역사이기도 하다. 선군시대의 존재들은 대다수가 역사를 남기기를 원치 않았다. 기록이야 어떻게 이루어지든 그것은 전혀 문제거리가 되지 않았다.
선군의 바람 속에는 시작이 9나라가 이루지는 뜻이 담긴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최후에 또다시 9나라가 된다는 뜻이 담긴 바람이기도 하였다. 이미 선군의 존재들은 바람을 초월하고 역사를 넘나들고 있었기에 흐름 그 자체가 하나라는 근본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대는 선군이 아니다. 그대는 근본을 모르고 있다. 근본을 모르고 있는 그대는 파도에 휩쓸리고 늪 속에 바져서 몸부림치고 헤매이고 있다. 늪 속에 빠져서 몸부림치는 가운데 기록된 역사를 앞에 놓고 우리는 싸움을 하고 있다.
그것은 분명 늪의 역사이다. 오직 늪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죽고 죽이는 어리석은 흐름의 연속일 뿐이다.
늪 속에서는 진실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대의 마음이 늪일진대, 과연 그곳에서 얼마나 진실의 소리가 나올 것인가? 그대는 선군의 바람을 알고나 있는가? 오직 늪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면서 늪의 역사가 진실인 양 지독스럽게 오인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더 안타깝게 하는 것은 늪의 역사마저도 왜곡시켜놓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선군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선군의 바람 속에는 우리들의 삶의 역사가 들어 있다. 선군의 바람이란 꿈의 바람이요 늪의 흐름이었다. 그대가 벗어나려 한다면 마음의 문을 만들지 말라. 모든 것을 허물어버려라. 늪 속에서 헤어나올 수만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꿈을 꾸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선군, 그들은 우리 영혼의 스승들이었다. 선군은 언제나 그대와 함께 하고 있다. 그대가 혹 선군의 이름을 욕되게 한다 하여도 그들은 지금껏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대라는 마음이 존재하는 한 미소는 영원할 것이다.
선군의 바람, 그것은 바로 그대 자신의 바람이다. 바람이란 바로 그대의 마음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그리고 망각으로 가는 것도 바로 그대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라는 거친 바람과 파도 속에 스승이 애정어린 숨결이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그 옛날 한인시대에도 한웅시대에도 선군시대에도 함께하였던 수많은 인류의 스승들…… 그들의 자비가 있었기에 우리라는 마음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모질게 요동치고 완전히 그대 자신을 망각하였을 때 인류는 전멸로 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껏 전멸되지 않은 속에서 이어져가고 있다. 그대가 완전히 망각할 적마다, 그리고 가장 큰 슬픔을 당하고 있을 적마다 스승의 숨결이 그대를 감싸주었던 것이다.
지구성에는 오랜 과거부터 스승이 있었다. 잠들지 않는 진정한 스승이 우리의 곁에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그 옛날 진한과 마한, 그리고 번한의 황제 모두가 스승이라 하지만 그들은 자재신이 아니다. 이들 존재 뒤에는 진정한 스승이 있었다. 잠들지 아니하는 바로 그 존재이다. 하지만 그 스승들을 말할 수는 없다. 그분들을 말하지 않는 것이 곧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들은 아직도 존재하고 계신다. 그대라는 존재가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미소를 머금고 함께하고 있을 것이다.
그대는 지금껏 자재신의 자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영혼의 스승을 향하여 무어라 했는가? 그리고 선군의 존재를 어떻게 여겨왔는가? 그대는 선군의 이름이나 알고 있는가? 삼한의 황제들을 말하자면 보살과 같은 존재였다. 보살이란 중생을 이해하며 부처의 자비를 함께하는 존재였기에 바로 그같은 상태의 인물이 맥을 이어가며 다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진정 그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 것인가? 우리가 가야 할 방향과 가고 있는 목적지를 알아차렸을 때에 그대는 변할 것이며 역사 또한 달라질 것이다. 어리석은 싸움은 스스로가 그만둘 것이며, 마음은 하루가 다르게 또다시 고요 속으로, 명상 속으로, 심연의 그곳으로 가고 있음을 그대는 알 것이다. 그것이 스승의 뜻이요. 자재신의 뜻이다.
아-- 아-- 선인의 나라여! 그들은 12연방에서 9나라로 나뉘어졌으니, 그것은 지고한 존재의 뜻과 함께 이루어짐을 나타낸 것이었다. 9나라란 부여가 둘이요, 옥저가 둘이요, 숙신과 낙랑, 그리고 청구와 남국, 구려였다. 이들 나라는 왕검이 오기 이전에 이미 이루어진 한인들의 나라였다.
지금의 위치로 부여는 내몽고 전역을 차지한 매우 강성했던 국가였다. 북부여는 부르노이 호수로부터 서쪽의 산맥 아래를 차지하고 있던 나라였고, 부여 못지않은 매우 강성했던 국가였다. 아니, 부여만이 강성하였던 것은 아니였다. 9한 모두가 강성했다. 약소했던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단순히 병사와 무기를 많이 갖고 있어서 강성했다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강함을 말함이요. 그 어떤 환란의 역사가 밀어닥친다 하여도 변하지 않겠다는, 그리고 물들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의 강함이었다. 그 때문에 문화를 중요시하였고, 정신적으로 가장 앞선 이를 추앙하여 각 고을의 군장으로 삼았다. 물질적으로 강함이 아닌 정신적 강성함을 9한 모두는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북옥저는 바이칼 호수 우측의 드넓은 곳을 터전으로 하여 살아가고 있었고, 남옥저는 오대산#1)으로부터 베이징, 그리고 부여와 인접된 국경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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