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은 배달나라의 우사를 지내고 진(震)나라(서기전3528~서기전3218)를 세운 태호복희 때부터 싹이 튼 족속으로서 중국내륙에서 살아오다가 전기 염제신농국<서기전3218~서기전2697)을 거치고 서기전2698년 공손헌원의 독립시도로 실질적인 중국인의 시조가 되어 중국인들의 기초가 성립되었고, 요임금, 순임금, 하은주 나라를 거치면서 중국인의 틀이 잡혀 내려왔으며, 지금 중국인들의 역사가 되었다.
그러나 중국인의 실질적인 시조인 웅족 출신 공손헌원이 진작 배달나라의 제후국 왕이었으며, 요임금이 배달나라의 일부를 차지하여 천자노릇을 하였으나 곧 단군조선의 제후국이 되었고 순임금은 정통 동이족으로서 단군조선의 제후였으며, 풍이출신인 하우, 동이족인 은, 서이족인 주나라는 모두 배달나라 단군조선에서 갈라져 나간 일부 이족들과 공손헌원 때부터 이어온 헌구 토착인들인 황토족들의 혼합체로 지금의 중국인들의 근간이 되었고 그후 대대로 북방계 단군조선의 후예들과 혼합족이 되었다.
이에 반하여 한국인들은 구한의 한국과 구려의 배달나라와 구한(구이)의 단군조선의 백성들로서 정통성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혈통적으로 중국처럼 특정 일부의 혈족이라고 보기 보다는 원래의 뿌리가 나뉘어져 전세계적으로 흩어져 가다 보니 뿌리와 줄기만 앙상히 남은 격이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과 중국에 있는 공손헌원의 후예들이 모두 같은 족속이니 서로를 배척하여서는 안되는 것이며, 염제신농씨의 후예들도 한국과 중국에 살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서로 형제간이나 다름 없고, 역사적으로 볼 때 태호복희의 후손들도 치우천황의 후손들도 거의 중국땅에 살아왔으므로, 인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역사가 중요한 것이 된다.
중국의 기록에 의하면 중국의 최초의 국가는 태호복희의 진(震)에서 시작된다. 배달나라의 우사를 지낸 태호복희가 중토에서 시작하여 후에 염제신농국과 유웅국이 있었으며, 염제신농국은 단웅국이 되어 단군왕검이 섭정하던 나라로 그 정통성은 단군조선으로 이어졌고, 유웅국은 공손헌원의 웅국으로 이어져 요순 하은주로 이어졌다.
만약에라도 지금의 중국인들이 반고를 자기네들의 시조로 삼는다고 하면, 반고는 바로 배달나라의 서토의 가한으로서 또한 제후국이었으므로 국가의 정통성은 한국이 된다. 왜냐하면 배달나라와 반고가한의 서토는 한국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인과 중국인의 확연한 차이점은 언어에 있다. 한국어냐 중국어냐이다. 한국어와 중국어의 역사가 언제부터인지는 불명하다. 배달나라 초기부터 그림문자인 녹도문이 있었다. 이것이 창힐의 조족문자로 발전하여 중국역사에서는 지금의 한자가 되었다 한다. 창힐 또한 배달나라의 제후국이었다. 창힐은 배달나라에서 문자를 배워간 사람이다. 결국 지금 중국의 한자는 배달나라의 녹도문에서 시작된 것이 된다.
그러면 중국어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언어는 습관의 문화이다! 기초적인 단어로부터 시작하여 법칙이 체계화되어 한 언어가 이루어진다. 중국어의 어법은 한문의 문법과 동일한 법칙을 가지고 있다. 문자는 한자이지만, 어법은 백인종들의 어법체계이다. 이러한 어법이 언제부터 발생한 것일까?
이것은 중국의 역사로 추정할 수 있다. 중국의 기본틀이 잡힌 때가 바로 주나라 즉 서이(西夷) 시대이다. 그 이전의 은나라는 동이족의 나라로 은문(殷文)이 있었다. 은문은 당시의 단군조선의 신전(神篆) 또는 진서(眞書)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대진국의 3대 문황제가 남긴 글인 삼일신고봉장기에 보면 서기전1122년경 은나라 제후였던 기자가 왕수긍에게서 삼일신고를 은문으로 적게 하여 읽었다라고 하였는데, 이때 은문은 바로 지금 발견되고 있는 갑골문을 가리킨다. 이때 단군조선에도 은문과 같은 체계의 문자가 있었으니 바로 신전(神篆=전서체의 뿌리?)이다. 문장은 어법과 다르게 기록될 수 있다. 즉 문법과 다른 어법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한 문화집단의 문법과 어법이 같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지금 중국기록에 남아 있는 한문들이 모두 고대 기록 그 자체이냐이다! 아니다.
가깝게는 주나라 시대에 중국어의 어법이 완전한 체계가 잡힌 이후 옛 기록을 다시 적고 편찬하였다는 것이다. 멀게는 요순시대 하, 은 나라를 거치면서 원래의 기록이 어법을 따라 기록되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의외로 소위 고대 기록의 한문이 지금의 우리 한국어의 어법대로 풀이하여도 뜻이 전달되는 데 문제가 없는 문장이라는 사실이다.
단군조선 초기인 요순시대만 따지게 되면 한국의 글의 문장과 요순의 나라 글의 문장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즉 말과 글이 서로 통하였다는 것이 된다. 서기전2267년 단군조선의 태자부루가 순의 사공 우에게 9년대홍수의 치수법을 전수하여 줄 때 주었던 금간옥첩의 문장이 한국어로 되어 있었느냐 아니면 중국어로 되어있었느냐 문제가 남는다! 만약 중국어로 되어 있었다면 단군조선에서 중국어로 번역하여 주었다는 결론이 되고, 단군조선의 말글 자체로 적은 것이라면 하우가 이 글을 알고 있다는 것이 된다. 본인은 한국어법으로 풀이하거나 중국어법으로 풀이하거나 서로 통하는 글이었다라고 본다.
즉 단군조선의 기록이 한국어 어법으로 기록되었다라고 보는 것이 타당성이 있고 이 기록이 요순시대에 통용되었다라고 하면 당시 한국어와 중국어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결론이 되며, 나중에 중국어의 어법이 체계화되고 고착화 되어 지금의 중국어가 된 것으로 본다.
그러면 중국어의 뿌리는 언제부터일까? 바로 공손헌원 때부터로 본다. 헌구의 토착인들이 지금의 중국어의 선조가 된다는 점이다. 헌구는 유웅국 소전의 후손인 공손씨가 유배된 황토 언덕이다. 헌원이 공손씨의 아들 또는 후손으로 헌구 토착세력의 우두머리가 되어 염제신농의 나라가 쇠약해 지는 것에 야망을 품고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 헌구의 토착인들은 석기를 사용하였다 한다. 배달나라의 치우천왕의 군사들은 동철기를 사용하였다. 전쟁을 끝낸 후 공손헌원은 배달나라의 자부선인 광성자에게서 삼황내문경을 받아 수도하였다. 이 삼황내문의 문장이 녹도문에서 나온 우서(雨書)로 된 것이다.
공손헌원...요, 순, 하, 은 , 주나라를 거치면서 중국어는 굳어졌다. 배달나라에는 8음 2문이 있었다. 어떤 것인지를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신라시대 박제상이 지은 음신지(音信誌)가 나타나면 어느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어는 서기전924년 왕문의 부예(符隸)와 이두문(吏讀文)이 나오면서 말과 글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바른소리글인 가림토 문자가 이두문에 의하여 대체됨에 따라 쓰이지 않게 되어 사장되다시피 하였다가 그후 이두로 모두 표현한다는 것이 불편한 관계로 시대적 필요에 의하여 세종대왕의 노력으로 재편된 것이 된다.
중국어에도 허사라는 것이 있어서 문장을 보완하기 위하여 쓰는 글자가 있다. 가림토는 가리는데 쓰는 토씨 글자라는 뜻이므로 지금의 한자(원래 眞書)로 된 단어에다 토씨라는 뜻을 명확히 해주는 글자를 붙임으로써 문장을 표현할 수 있다. 가림토가 생긴 단군조선 시대에는 토씨로 쓴 것인지 아니면 한자의 발음도 적은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한자는 음독과 훈독이 모두 가능하므로 지금 우리가 한자를 배우듯이 한자의 발음과 뜻을 모두 적은 것으로 생각된다.
고대부터 한국과 중국의 교류는 매우 활발하였고 문자의 교류도 활발하였다. 즉 은문이 이어져 오다가 중국나름대로 발전되어 왔으며, 단군조선의 신전(神篆)도 그 나름대로 발전되어 오다가 중국의 진(秦)나라 때 <서기전249~서기전207> 정막(程邈)이 숙신(肅愼)에 왔다가 왕문의 부예를 배워간 후 지금의 한자(漢字)가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공손헌원 때의 조족문자라는 것이 배달나라에서 나왔고, 그것이 발전된 것이 은문이 되고, 진나라 때 정막이 부예를 본 딴 문자가 되었다가 지금의 한자(漢字)가 된 것이 분명하다.
우리말은 조사가 있어서 완성되지만, 조사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뜻을 전달할 수 있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한자로써 한국어의 어법상 순서로된 문장으로 하여도 같은 뜻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중국어의 어법에 따라 문장을 쓴 것은 아마도 하, 은 주나라 이후의 어법이나 문법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중국어의 어법에 영향을 결정적으로 미친 것이 바로 서양어인 백인인종들의 언어이다. 주어 서술어 목적어의 순서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언어인 아리안 계통의 언어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아리안 족은 단군조선의 구이 중 서이에 속하는 백이(白夷)였다고 본다. 이 백이는 모양새가 지금의 서양 백인종과 같게 기록되어 있다. 코가 높고 피부가 밝고 눈동자가 푸르다고 적혀 있다. 영락없는 백인종의 모습이다. 이 백족은 옛 한국시대부터 있어왔다. 즉 오족은 황족, 람족, 적족, 현족, 그리고 백족이다. 원래 백족은 사막사이에 살았다. 파미르고원의 동쪽에 있는 사막이다. 이들이 서기전7197년경부터 내려오다가 서쪽으로 가기도 하고 또 남았던 일부가 서기전1122년경 서이가 되어 주나라의 주축이 되었고 일부는 서쪽으로 간 것으로 생각된다. 인도지역의 아리안족은 서기전2,000년경이후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유럽어족의 언어는 지금의 영어와 같은 체계의 언어이다. 중국어도 그 틀에 속한다. 단지 단어가 한자의 음이다. 한자는 소리글자가 아닌 뜻글자로서 영어단어와는 체계가 다르다. 즉 중국어는 옛날에 있었던 그림문자(소위 조족문자)의 기본 음을 따서 사용하여 조합한 언어가 된다. 고대 중국인들이 한자의 음에 따라 원래 있었던 말을 표현하였는지 아니면 아리안계통의 말을 한자음으로 대체하여 중국어라는 언어가 되었는지는 연구할 대상이다.
즉 원래부터 한자의 음에 해당하는 언어가 있었는데 이를 한자가 생김에 따라 한문을 쓴 것이 되느냐, 아니면, 원래 아리안계통의 언어를 쓰다가 같은 뜻을 가진 한자음으로 단어를 대체하여 쓴 것이냐이다.
이것을 밝히려면, 중국인들의 중국어를 쓴 선조를 알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중국어는 주나라이후 굳어진 것은 틀림없다. 왜냐하면 공자는 기록을 하되 하은주 이래로 내려온 것을 적었다하였고, 공자의 문장은 중국어 그자체이기 때문이다.
은나라 시대에는 은문(殷文)이 있었는데, 이 은문은 주나라의 문자가 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은나라의 말이 어떠하였는지는 불명하다. 즉 은나라 지배족의 언어가 중국어였는지 한국어였는지 불명하다.
황제헌원의 헌구 토착인들이 중국 서이의 조상인 백이였는지도 불명하다. 단지 부도지에 보면 요임금은 마고성에서 일차로 출성한 지소씨(支巢氏)의 무리였다는 기록이 있음을 볼 때 요임금 시대에 아마도 공손헌원의 나라의 백성들이 지소씨의 무리로서 헌구의 토착인들이며, 백소씨(白巢氏)의 일파인 지소씨의 후손들이라고 강력히 추정되는 것이다.
백소씨는 백인종임을 알 수 있다. 마고성에서도 서쪽에 살았고 서기전10,000년경 파미르고원의 서쪽으로 이동해간 족속이다. 지소씨는 이 백소씨의 일파로 파미르고원 동쪽으로 먼저 이동해 갔던 족속으로 백족(白族) 즉 백이(白夷)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보면 중국인 중국어의 뿌리는 바로 백소씨이며, 실제조상은 지소씨가 되는 것이다. 이들이 곧 공손헌원의 헌구 토착인들이고, 요, 순을 거쳐 하, 은, 주의 백성이 되었고, 특히 은나라 서쪽에 있던 서이(西夷)가 곧 주나라가 되었으니, 이 서이는 단군조선의 백이(白夷)의 일부였던 것이다. 중국어는 바로 서이의 조상인 백이에서 시작되었는 바, 문자의 역사로 보면, 한자의 원류는 바로 배달나라 녹서, 용서, 우서, 화서, 조족문자이니 거의 확실하게는 중국어는 아리안계통 언어의 선조격인 백소씨의 일파인 지소씨의 언어를 한자의 음으로 대체하여 체계화 시킨 언어임이 드러나게 된다. 과연 한자의 음이 원래부터 어떤 음을 가졌는지 안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중국어의 한자음은 변해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 우리가 쓰는 한자음은 이씨조선 시대의 음으로서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시대의 음과 거의 같다. 즉 지금의 한자에대한 중국어 음과 한국어 음이 많이 틀리는데, 원래는 같은 음이었다고 본다면, 중국어는 많이 변했다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발음표기법이 우리보다 비과학적이다. 한글은 소리를 적는 데 탁월하다. 시대를 지나도 기본적인 음은 변하지 않는다. 즉 조선초기의 발음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원래의 한자의 발음이 받침까지 있었다는 결론이라면, 원래 한자는 우리 문자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 되고, 중국어는 한자의 음을 따서 사용해온 언어가 된다. 한자의 발음 표기법이라 할 수 있는 반절법은 지금의 중국어로는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고 한국어의 발음으로 따지면 완벽하게 들어 맞는다.
중국어는 한마디로 신비한 언어이다. 우리말과 같은 조사나 어미가 없이 뜻을 나타내는 데 거의 지장이 없다. 그러나 한국어에는 미치지 못한다. 편리성이나 의태어 의성어 등 자연의 모습이나 소리를 적는 데 부족하다. 그래서 결론은 한국어가 세계언어 중 가장 진보한 언어라는 것이다. 발음 상으로 가장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이다. 지금의 한국어는 옛 한국어의 발음이 없어진 것도 있고 간편화 된 것이 있어 그만큼 완벽하지 못하다. 원래 있었던 발음표기가 있다면, 세계언어 모두를 발음으로 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한국어의 어법체계나 단어를 한자(상형문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서 가림토문자가 생기게 된 것이며, 이로써 말과 글이 다르게 되어 문자가 그림글자(神篆, 眞書)와 소리글자(正音, 加臨土)가 있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중국어는 서기전1122년경 주나라 때 정착되었고 중국인들의 실질적인 시조인 서기전2698년경의 공손헌원 때부터 싹이 튼 언어임이 분명한 바, 중국인들[(공손헌원의 백성이던 헌구 토착인, 요임금의 고향(風夷:태호복희 나라의 후손) 사람, 우임금의 고향(풍이)사람, 주나라 서이(西夷)사람)]의 조상이 누구인지, 이들이 썼던 언어가 무엇인지 그 유물이 밝혀지면 드러날 일이다. 가깝게는 서기전1122년 주나라 초기 아니면 그 이전의 헌구(유웅국, 웅국) 토착인들의 미이라나 문자가 새겨진 유물이 나오면 밝혀지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