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행 무궁화호 열차는 한산했다. 아들 집에 왔다 내려가는 전라도 할미, 출장왔다 돌아가는 군청 공무원, 이등병 작대기 달고 휴가 나온 긴장한 청년까지 다 쳐도 열차 안은 빈자리가 남는다. 이른 아침 출근 인파를 헤쳐 구례구행 표를 쥔 우리 일행이 유독 눈에 띈다. 알록달록한 등산복에 대형 배낭,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차장은 이들이 어느 산에 갈지 알고 있다는 눈치다. 전날 배낭 싸느라 혹은 아침차를 타느라 잠을 설쳤는지, 아니면 그 산을 꿈꾸는지 일행은 약속이나 한 듯 곧장 잠이 들었다.
젊은 팀이지만 분위기는 묵직하다. 말하지 않아도 겨울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 종주)’를 나서는 이의 즐거운 긴장감임을 알고 있다.
- ▲ 써리봉 정상. 써리봉에선 지리의 색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중산리나 백무동의 편안함을 버리고 대원사의 긴 길을 택한 산객에 대한 지리의 화답이다.
-
지리산 종주도 급이 있다. 난이도가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대부분 성삼재에서 시작해 백무동이나 중산리에서 산행을 마치는 코스를 택하지만 과거 지리산 마니아들 사이에는 불문율이 있었으니, 지리산 종주는 반드시 화엄사에서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성삼재에 도로가 난 후에도 골수 지리산꾼들에게는 이 불문율이 이어져 코가 닿을 듯 힘든 오름길인 코재를 통해 노고단에 오르는 것을 진정한 입산의 과정이라 여겼다.
겨울의 지리산은 이 진정한 입산자만을 받아들인다. 적설과 빙판으로 성삼재 도로를 4개월여 뒤덮으며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눈 덮인 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지리산이 가진 진정한 크기를 한시적이나마 되찾게 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골수 지리산꾼들은 하산할 때도 편한 중산리와 백무동의 유혹을 버리고 중봉~써리봉~대원사로 이어지는 지겹도록 긴 길이 지리산을 제대로 갈무리하는 헤어짐의 방식이라 여겼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화엄사와 대원사의 앞 글자를 따 화대종주라 이름 붙였고 48km에 달하는 이 코스는 종주산행의 고전이 되었다. 누가 “화대종주 간다” 하면 으레 사람들은 대형 배낭을 메고 며칠씩 땀 흘리는 모습을 그렸고, 산 좀 타본 꾼으로 여겼다.
- ▲ (좌)벽소령에서 선비샘 가는 길. 상고대의 화려한 자태에 감탄이 절로 난다. (우)형제봉을 내려서다 홍승기군이 벌러덩 미끄러진다. 긴 산행이 심심하지 않도록 하려는 홍군의 배려다.
-
그러던 것이 최근에 와선 경주장이 되었다. 무박산행으로 15시간 연속 산을 달려 화대종주를 하루에 끝내버리는 자기 과시의 경연장이 된 것이다. 전국 각지의 안내산악회 버스들이 컴컴한 시간에 사람들을 뱉어놓으면 이들은 앞만 보고 죽어라 달려 정해진 시간 안에 골인지점에 와야만 하는 것이다. 세상사가 아무리 바삐 돌아간다 해도 지리산에 들 때만큼은 도시의 습성을 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에 안기는 게 바른 산행법이지 않을까.
구례구역에서 섬진강 재첩국을 먹고 화엄사로 간다. 짐을 나누고 배낭을 제대로 싼다. 3박4일을 함께할 4인조는 찾아가는 트레킹스쿨의 박은주 강사와 한양공고 산악부 3학년 홍승기군과 기자들이다. 박 강사는 등산강사로 꾸준히 산행을 했고 홍군은 백두대간과 금북·한북정맥을 일시종주로 끝낸 강인한 체력을 지녔다. 가장 젊고 힘센 홍승기군이 무거운 걸 더 짊어진다. 홍군을 보는 일행의 얼굴이 흐뭇하다. 지리산에선 힘센 자가 복덩이다.
- ▲ 돼지령에서 임걸령으로 이어진 능선. 지리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장엄한 경치가 산객을 맞는다.
-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순백의 풍경
대나무숲이 복잡한 속내를 정갈하게 만든다. 눈이 있으나 깊지 않아 아이젠 없이 오른다. 연기암을 지나자 본격적인 바위 오름길이다. 참샘에서 입가심을 하고 나자 길이 점점 치밀어오른다. 코재의 명성답게 코가 닿을 듯 가파른 길이 하늘까지 닿아 있다.
제대로 쉴 만한 터도 없으니 오로지 정면승부다. 지리는 견딜 자신이 없다면 지금 내려가라 엄포를 놓는다. 기 죽을 우리가 아니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폭발시키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노고단으로 돌격한다. 우리가 무찌를 적은 우리 안에 깃든 도시의 안락함과 이기적인 욕망임을 안다. 어둠이 내린 후 노고단대피소에서 김이 펄펄 나는 몸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수많은 별이 옹기종기 사는 게 지리의 땅에 든 게 비로소 실감난다.
다음 날, 북적북적 대피소 식당에서 등산객 틈에 끼어 아침을 먹는다. 대피소의 북적거림 역시 지리산다움이다. 노고단에 올라 등 뒤를 보니 운해와 안개가 뒤섞여 그림처럼 감미로운 산경이다. 지리에 왔음에 기뻐 다들 표정이 환해진다. 돼지령 가는 길은 사면 우회로라 눈꽃이 이채롭다.
- ▲ 노고단의 아침. 날이 밝자 잠에서 깬 산등성이들이 운해 속에서 꿈틀거린다.
-
길은 깊게 패여 러셀이 잘돼 있으나 1m만 벗어나도 무릎 넘게 발이 빠진다. 서북으로는 만복대가 구름 사이로 뾰족 솟아 신성한 분위기다.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순백의 풍경을 지난다. 임걸령 가는 길, 동남쪽 산국(山國)이 잠에서 깨어난다. 희뿌연 것들 속에서 늠름한 몸집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며 걷는 게 재미지 싶다. 약수가 좋은 임걸령에는 쉬는 산객이 많다. 오늘 어디까지 가는지 물으며 인사를 나눈다. 앞으로 며칠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만날 이들이기에 얼굴을 기억해둔다.
노루목에 닿으면 늘 반야봉에 다녀올까 말까 고민하게 된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핑계로 반야봉 길을 단념하고 능선에 발길을 파묻는다. 적설량이 많지만 날이 따뜻한 편이라 눈은 쿠션이 되어줘 오히려 걷기에 도움이 된다. 삼도봉에 닿자 뾰족한 삼도 경계석을 엉덩이에 꽂은 홍군이 익살스런 표정으로 일행을 웃긴다. 산행 중간에 춤도 추고 밝은 목소리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한다. 삼도봉에서 천왕봉, 중봉, 촛대봉 뒤로 반야와 노고단이 다 보인다. 지나온 길은 뿌듯하고 가야 할 길은 멋있어서 설렌다. 종주 둘째 날, 다들 기운 넘친다.
화개재에서 점심을 때우고 토끼봉을 오른다. 이름처럼 순하면 좋으련만 토끼봉을 오를 땐 늘 힘들다. 엄청 가파르진 않지만 쉼터 없는 오름길이 꾸역꾸역 밀려온다. 게다가 정상은 어영부영 정상다운 맛이 없어 종주에 있어 토끼봉은 재미가 덜한 구간이다.
명선봉을 우회해 닿은 연하천은 언제 봐도 반갑다. 화개재 이후 산행이 오름길이 많고 경치가 시원한 구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더 반가운 게다. -
*
- 둥근 산,절제와 베품의 미학으로 다가오다
-
- ▲ 중봉 일출. 천왕봉 일출과는 다른 맛이다. 한적하고 너른 육산의 정상에서 맞는 일출은 천왕봉 일출보다 더 따뜻하다.
-
몸에 절은 땀내는 지리 종주에서의 필연
삼각고지에서 명선봉의 우아한 몸사위와 남쪽으로 뻗은 계곡을 본다. 푸근할 정도로 깊고 둥글둥글한 산 덩치들, 순박하고 착할 거란 나름의 편견에 빠진다. 흔히 육산이라 보는 지리에서 바위가 거칠게 치솟은 형제봉은 내리막이 가파르다. 이에 걸맞게 장난끼 넘치는 홍군이 재미로 미끄러지다 실제로 미끄러진다. 그 길에 형제바위라 불리는 크고 작은 두 개의 바위가 있다. 그러나 19세기 초에 제작된 광여도에는 부자(父子)바위라 나와 있다.
지리산의 전설 중 인걸과 아미선녀의 이야기가 있는데 하늘로 올라간 아미선녀를 그리워한 인걸과 그의 자식들이 선녀를 그리워하다 돌이 되어버렸다는 얘기다. 그 전설의 모태가 된 지역이 벽소령 주변이며 이는 형제봉과도 가깝다. 그렇게 얘길 듣고 보니 아비와 자식이 하늘을 바라보며 어미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영판 닮았다.
정오까지는 날이 따뜻했는데 오후로 접어들자 날이 계속 쌀쌀해진다. 얼음 같은 바람이 목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게 뼈까지 얼어붙는 듯하다. 몸에 열을 내려 발걸음을 더 빨리 몰아붙인다. 벽소령대피소가 눈에 들자 안도감과 행복감이 동시에 든다. 저녁을 먹자 피로감이 스르르 밀려온다. 침상의 불이 꺼지자 기다렸다는 듯 꿈나라를 항해하는 이들이 “드르릉”하며 뱃고동을 울린다. 꿈꾸는 산객들 틈에서 조각 잠을 청한다.
우아하게 흘러가는 운무를 이불 삼아 느긋하게 아침을 즐기는 지리. 흘려보내기 안타까운 아침이다. 숲은 온통 하얗게 덧칠되어 아찔하리만큼 화려하다. 얼어붙은 나무의 겉은 아름답지만 속은 얼어붙은 견딤의 시간이다. 부조리한 세상을 묵묵히 견딜 줄 아는 지리의 진중한 무게감은 이렇듯 작은 것에 배어 있다. 볕 좋은 선비샘에서 목을 축이자 잠에서 깨어난 산등성이들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 ▲ 형제봉 부자(父子)바위 곁을 지난다. 형제바위라 흔히 불리지만 19세기 초에 제작된 광여도에는 부자바위라 기록되어 있다.
-
칠선봉 가는 길, 죽은 구상나무가 대성골 풍경을 완성한다. 얼마나 잘살았기에 죽음 후에도 저리 조화롭단 말인가. 명조망터인 칠선봉 정상은 칼바람이 내려가라 재촉한다. 정면에는 영신봉에서 남녘으로 길을 잡은 삼신봉 줄기가 기품 있는 선을 자랑하며 굵직하게 섰다. 겹겹이 늘어선 등성이 속을 보면 흰색과 검은색, 황토색이 뒤섞여 거칠 듯하지만 전체적으로 웅장한 분위기다.
영신봉 오름길엔 쉬었다 가기 좋은 철난간 조망터가 있다. 여기에선 대성골로 내려서는 산줄기들의 부드러운 겹침이 보기 좋으나 송곳 같은 바람이 매서워 얼마 버티지 못한다. 오후가 되자 햇살에 녹은 땅이 드러나며 세석평전은 백갈색이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촛대봉에 오른다. 사방으로 트인 바위 꼭대기답게 지평선까지 눈에 와 닿는다. 가만 보면 지리산은 무뚝뚝하다. 둥글둥글한 커다란 덩치로 가만히 앉아서 침묵하고 있을 따름이다. 눈을 확 사로잡진 않지만 첩첩산중의 부드러운 화폭은 은은한 깊이로 서서히 스며든다. 절제된 멋스러움이 담겨 있다.
제석봉과 천왕봉이 가깝다. 꽁초바위엔 옛날만큼 담배꽁초가 없지만 이름으로만 남았다. 연하봉을 넘는 길이 설렌다. 곧 장터목이기 때문이다. 연하봉에서 내려서서 장터목이 짠 하고 나타날 때의 기분이란 꽤 짜릿하다. 더 반가운 건 먹을 걸 싸들고 광주에서 지원산행을 온 김용재(57)씨다. 덕택에 든든한 저녁을 먹는다. 지리산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며칠간 씻질 못해 머리엔 기름기가 잘잘 흐르고 몸에선 땀내가 비릿하다. 불편하지만 이것이 지리에서의 불문율이기에 누구도 불평 않는다.
- ▲ 천왕봉 정상에서 본 서쪽 풍경. 일출을 보기 위해 막 올라오는 등산인들 뒤로 드넓은 구름바다가 일렁인다.
-
여의주처럼 떠오른 천왕일출
새벽 5시 천왕봉 일출 마중을 위해 어제 먹다 남은 밥을 누룽지로 끓여 먹곤 새까만 산속으로 몸을 던진다. 짙은 어둠 속에서 헤드랜턴에 의지해 걷는다. 힘 센 바람이 자꾸 겁을 준다. 앞서 간 이의 발자국을 따르며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새벽에 넘는 제석봉은 늘 고역이다. 일출을 위한 인내력 테스트인가.
거친 숨소리와 함께 지나간 어이없는 일들이 계속 재생된다. “왜 그렇게 살았니”하고 지리가 묻고 있는 게다. “그래 잘못 살았다”고 산에 답한다. 고통스러운 발걸음 끝에 천왕봉이 있다. 일기예보에선 날씨가 흐리다 했는데, 여의주처럼 뜨거운 해가 제멋대로 와락 솟구친다. 인파들이 “와”하고 함성을 내지른다.
아무도 시선을 두지 않는 일출 뒤편 서쪽은 구름의 왕국이다. 끝없이 펼쳐진 구름바다 끝에는 여러 산봉이 솟은 산군이 있다. 만복대와 고리봉이다. 그러나 마치 걸어서 갈 수 없는 환상의 산국인 양 아련하다. 매서운 바람의 천왕봉을 얼른 내려서 중봉에 올라서니 볕이 따스해졌다. 가야 할 줄기가 저 아래다. 하산할 일만 남았다.
- ▲ 노고단에서 돼지령으로 이어진 길. 눈의 터널이 막 종주를 시작한 산꾼의 발걸음을 설레게 한다.
-
한가한 써리봉 줄기는 마주치는 사람 하나 없다. 러셀이 되어 있는 게 다행이다. 농기구 ‘써레’를 닮은 줄기답게 오르내림이 계속 이어진다. 철계단과 거친 길이 남아 있던 힘을 서서히 빼놓는다. 써리봉 꼭대기에서 올려다본 천왕봉과 중봉은 우아한 거인이다. 어깨를 겨루며 힘자랑을 하고 있다.
다시 오르내림에 몸을 던져 조바심이나 잡생각이 다 사라지자 치밭목대피소다. 산장지기 민병태씨가 특유의 독설과 정으로 커피를 내준다. 지리산만큼 늘 변함없는 그의 툭툭 던지는 말과 그 속에 담긴 뜨끈뜨끈한 잔정이 반갑다.
이제부턴 그야말로 무심으로 걸어야 한다. 수려한 풍경 없는 길고 긴 계곡과 거친 사면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등산객이 드문 탓에 석이버섯과 감나무의 감이 그대로다. 평범한 계곡길은 주능선에 비하면 초라하고 가난한 풍경이다. 그 가난함 속에 겉멋 없는 지리의 순박함이 묻어난다. 대원사 버스정류소에 닿자 이번에는 지리산이 내 속으로 걸어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