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상식

크리스마스 실

제봉산 2009. 12. 20. 10:20

크리스마스 실 이야기

‘김연아 실’ 못말리는 인기 … 휴대전화 전자파 차단용 실도 있어요

1932년 겨울, 무명저고리 차림의 여인이 파란 눈의 의사를 찾아왔습니다. 셔우드 홀 선교사였죠. 여인이 말했습니다. “이렇게 실을 가슴에 붙였는데도 결핵이 낫지 않아요.” 크리스마스 실이 처음 발행됐을 때 이야깁니다. 이 정도로 결핵에 대해 무지했던 우리나라가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결핵을 극복한 나라’로 꼽힙니다. 크리스마스 실이 한몫했다고 하네요. 퀴즈를 하나 낼까요. ‘크리스마스 실은 □□□다’ 네모 안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요? 정답, 지금부터 나갑니다


디자인이다.

‘김연아 실’ 보신 적 있으세요? 보진 못했지만 들어는 보셨다고요. 지난 10월 발행된 크리스마스 실 이야깁니다.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의 모습이 담겼습니다. 발행 기관인 대한결핵협회엔 요즘 실을 사고 싶다는 문의 전화가 빗발친다고 합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 선수는 크리스마스 실에 무료로 ‘출연’했습니다. 결핵협회의 직원들이 발품을 팔았지요. 매년 3월이면 그해 만들 실 디자인에 관한 회의가 열립니다. 아이디어를 공모하기도 하죠. 올해는 내년 초 열릴 동계올림픽 종목을 넣자는 의견에서부터 한국의 전통 한옥을 소재로 하자는 의견 등 10여 개 안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8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크리스마스 실 자문위원회’의 심의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건 ‘김연아 안’이었습니다. 결핵협회에서 김 선수의 소속사를 수 차례 방문했지요. 각종 NGO와 환우협회에서 들어온 도움 요청이 너무 많아 사실 결핵협회 측은 마음을 비우고 있었답니다. 김 선수가 승낙한 후에는 한국디자인협회로부터 디자인할 곳을 추천받았습니다. 그리고 10월부터 발행해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몇 개월에 걸쳐 디자인한 까닭인지 한국의 실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국제항결핵연맹(IUATLD)에서 매년 여는 ‘세계 크리스마스 실 콘테스트’에서 여섯 차례나 1위에 입상했을 정도입니다.

1988년 열린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 ‘호돌이’를 디자인한 김현씨도 실과 인연이 깊습니다. 김씨는 1972년 크리스마스 실 디자인 공모전에서 1등을 차지했습니다. 그때 받은 상금으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 공부했습니다. 디자이너가 된 후 여러 차례 실을 직접 만들었는데, 그가 도안한 1988년 실은 세계 콘테스트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청각 장애를 극복한 미술계의 거장 김기창 화백은 일제시대였던 1937년, 1938년 실을 디자인했습니다.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만든 1987년 실도 그의 작품입니다.

300원의 기부다.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하는 건 일종의 캠페인입니다. 결핵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한번 더 생각하게 하고 나아가 기금 마련에 동참하게 하는 겁니다. 1904년 덴마크에서 세계 최초의 실이 발행될 때도 그랬습니다. 코펜하겐의 한 우체국에서 일하던 아이날 홀벨이 쌓여가는 연말 우편물을 보면서 “실 1장씩을 붙이게 하고 실을 판 돈으로 결핵에 걸린 아이들을 치료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게 시작이었습니다. 유럽의 아이들도 결핵으로 죽어갈 시절이었으니까요.

결핵이 후진국에서나 ‘사람 잡는 질병’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오해입니다. 지난해 2300여 명이 결핵으로 죽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요. 신규 발병자는 3만 명이 넘습니다. 1965년 처음으로 결핵에 대한 실태조사를 했을 때, 100명당 5명이 결핵을 앓고 있었지요. 현재 북한과 같은 수준입니다. 2007년 현재 10만 명당 90명 꼴로 결핵을 앓고 있고, 그로 인한 사망자는 10만 명당 10명으로 추정됩니다. OECD 가입국 중 가장 높은 수칩니다. 미국과 비교하면 20배가 넘고 일본과 비교해도 3배가 넘습니다.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크리스마스 실이 발행되는 이유죠.

지난해 실 판매 수익은 57억여원. 올해 목표액은 60억입니다. 이렇게 모인 돈은 결핵 백신인 BCG 생산과 접종,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검진 및 치료, 연구 사업 등에 쓰입니다. 여러분이 산 실 1장, 결핵퇴치사업 기금으로 300원을 기부한다는 의미입니다.

역사다

한국 최초의 실은 1932년 셔우드 홀 선교사가 발행했습니다. 홀 선교사는 한국에 온 의료 선교사 제임스 홀과 로제타 홀 부부의 아들로 고국 캐나다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결핵 퇴치에 일생을 바칩니다. 실을 발행한 것도 사람들에게 결핵에 대해 알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외국인에게 판매해 기금도 마련하고요. 이미 유럽과 미국 등에서 발행 중이던 실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한 거죠.

홀 선교사가 애초 생각했던 디자인은 거북선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을 물리쳤던 거북선을 소재로 하면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반대에 부닥쳤습니다. 1932년 실에 남대문이 들어가게 된 건 그래서였죠.

영국의 여류 화가 엘리자베스 케이스가 그린 1940년 실도 일제에 의해 그림이 변했습니다. 색동옷을 입은 두 어린이 뒤편으로 눈 쌓인 높은 산이 있는 그림이었죠. 인쇄를 마치고 발송하기 직전 일제가 실을 압수했습니다. 배경이 된 산이 금강산이라는 이유였습니다. 결국 산을 축소해 재발행했지만, 다음해부턴 실 발행이 중단됐습니다. 홀 선교사가 스파이 누명을 쓰고 강제출국됐기 때문입니다.

광복 4년 후 실 발행이 재개됐지만 이듬해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다시 중단됐지요. 그러다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생기면서 실 발행이 본격화됐습니다.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크리스마스 실을 보면 사회가 보입니다. 일제시대 땐 실에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지요. 최초의 실엔 홀 선교사가 세운 ‘해주구세요양원’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결핵 요양원이죠. 1932년 이후 발행된 실엔 어디서 발행했는지에 관한 정보는 없습니다. 또 하나. 일제시대 실은 ‘Christmas and New Year Greeting’ 같은 영어가 들어가 있는데요, 구매자 대부분이 외국인이라 그랬다고 합니다.

광복 이후엔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었던 ‘대한민국’ 혹은 ‘Korea’가 실에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한반도 지도·태극문양·다보탑 등 한국을 의미하는 디자인도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1953년 발행된 실에는 색동저고리를 입은 소녀가 그려져 있는데요, 남아선호사상에 대한 반기였다고 합니다. 남아선호사상을 몹시 싫어했던 홀 선교사의 뜻을 따른 것이랍니다.

1977년과 1978년엔 ‘자연보호시리즈’란 이름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새와 야생화가 실에 그려졌습니다. 한복을 입은 어린이나 한국을 의미하는 사물 등이 실의 소재로 주로 쓰였던 것에 비춰보면 다소 파격적이죠. 이유가 있습니다. 그즈음 자연보호운동 물결이 일었거든요. 1980년 대 후반엔 ‘한국의 탈’ ‘한국의 연’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귀엽게 혹은 단순하게 디자인한 도안이 실에 반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적인 것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 까닭입니다.

2001년엔 한ㆍ일 월드컵을 기념해 만화영화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축구를 하는 그림이 실에 들어갔는가 하면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가 탄생한 2008년엔 우주를 테마로 한 실이 발행되기도 했습니다.

변화한다

실이 발행되기 시작한 지 올해로 일흔일곱 해. 사람으로 치면 희수(喜壽)를 맞은 셈이죠. 강산이 일곱 번 변할 동안 실도 변해왔습니다. 발행 이후 줄곧 우표 형태를 유지하다 2003년부터는 스티커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김연아 실도 우표처럼 생겼지만 스티커처럼 뗄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과거엔 편지나 엽서에 많이 붙였지만 e-메일이 활성화되면서 실을 봉투에 붙이는 사람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스티커랍니다. 어디든 원하는 곳에 붙일 수 있게 말입니다.

2004년엔 온라인 실이 발행됐습니다. e-메일을 보낼 때 함께 보낼 수 있게 만든 실이죠. 한데 생각보다 호응이 좋지 않았다고 하네요. 결국 발행 1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2006년부터 도입된 전자파 차단 실도 있습니다. 휴대전화나 컴퓨터 등 전자파가 발생하는 전자제품에 붙일 수 있도록 만든 거죠. 3000원이면 구입할 수 있습니다. 김연아 선수의 얼굴이 새겨진 전자파 차단 실도 물론 발행됐습니다.

실이 변화를 거듭하는 동안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습니다. 모금 방법입니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실 한 번쯤 사보셨죠? 크리스마스 실이 학교를 통해 판매되기 시작한 건 1957년 이후부터입니다. 그 해 이승만 대통령 부부가 크리스마스 실을 사면서 학교·공공기관 등을 통한 판매 체제가 도입됐다고 해요. 한때 영화표나 고궁 관람료에 소액의 결핵기금을 얹어 모금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시행 1년 만에 없어졌죠. 크리스마스 실 모금만 한 게 없었나 봅니다.

'일반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주맛의 비밀.  (0) 2010.08.01
pop광고  (0) 2010.07.23
겨울 내복을 입자.  (0) 2009.11.29
와인 디켄팅.  (0) 2009.01.14
포도주...신의 물방울  (0) 2009.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