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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대한민국 대표 예언서 ④ 기타 비결서

제봉산 2009. 1. 27. 20:50

대한민국 대표 예언서 ④ 기타 비결서

2009 02/03   위클리경향 810호

대부분 비결서 신흥 종교와 관련

 

 

사실 <정감록>은 일제강점기까지 취합한 비결서를 모아놓은 것이다.

1733년 전라 남원에서 일어난 궤서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발각된 <남사고비결>은 <정감록>보다 시기적으로 6년이 앞서지만

<정감록>에 수록돼 있다(1923년 호소이판과 김용주·현병주본 모두 수록).

백승종 경희대 학부대학 객원교수는 “넓은 의미에서 역성혁명과 내용상 일맥상통하는 비결서를 모두 일컬어 <정감록>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사적 문헌에 기록된 상당수 비결서는 그 이름과 약간의 내용만 전해 내려올 뿐,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승문연의> <경험록> <금귀서> 등이 그것이다.

<도선비기>는 점술서적의 부록으로 실려 있었는데, 조선왕조의 몰락을 예언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관련 사건이 기술된 문헌에는 “왜인 같으면서도 왜인이 아닌 것이 남쪽에서 온다” 등의 문구가 실려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들 도서들도 풍수·역성혁명 사상을 담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8년 도서출판 한울에서 출간한 <한국의 예언>에는

설총결, 청학동결, 화산결, 동고비결, 퇴계 선생 비결 등 총 29편의 참서(讖書)가 수록되어 있다.

비결서 연구가인 류정수(48)씨가 집대성한 것이다.

저자 서문에서 일부 입수 경위를 밝혀놓았지만 아쉽게도 비결서의 유래가 어떤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대신 비결서 내용 소개에 치중하고 있다.

비결서 연구가 이완교씨는 “어차피 대부분 비결서가 도참(圖讖) 사상을 담고 있고 원본 그대로 전수된 것이 아니라

필사를 통해 전래되기 때문에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흘러왔는지 경위는 앞으로도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라며

“다만 중요한 것은 일부 첨삭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었느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극적인 ‘발견 경위’가 알려진 경우도 있다.

1997년 2권짜리 해설서가 나온 <원효결서>가 대표적이다.

해설서를 쓴 김중태씨는 당시 언론과 인터뷰에서 “<원효결서>는 ‘문무대왕 수중릉인 대왕암’에서 1967년 발견된 것으로,

고등학교 동창의 소개로 1989년에 자신이 입수, 10년 동안 풀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씨가 책에서 밝힌 자세한 ‘내막’은 이렇다.

1967년,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초도순시 중 경주시 시장과 시 기획실장을 불러놓고 아무도 모르게 문무대왕릉을 열어볼 것을 명령한다.

그해 7월 초순 어느 야밤, 대통령의 명령을 받은 경주시 기획실장은 기중기가 설치된 배를 타고 문무대왕암에 접근, 바닷속으로 잠수해 석관 안으로 들어갔다.

석관 바위틈에 책상 서랍 모양의 손잡이가 5개가 보였는데, 그중 하나를 뽑아보니 반듯한 흰 돌판 위에 글씨가 새겨져 있더라는 것이다.

글씨를 사진 촬영한 뒤, 돌판을 원래의 자리에 다시 가져다 놓았다.

<원효결서>는 사진 속 글씨 총 467자로 되어 있는데, 그중 16자는 대통령에 보고할 수 없는 내용이라서 지워버리고 현재는 451자만 남아 있다는 것.

1300여 년 전 원효대사가 썼다는 이 <원효결서>에는 1960년과 61년 사이에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이 난을 일으키고(庚子辛酉南於亂朴),

박정희가 죽은 후(紫薇極熙), 전두환과 노태우, 김영삼(金冠三世) 세 사람이 차례로 대통령을 맡는다고 적혀 있는 것으로 김씨는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역사·고고학계에서는 울산 앞바다의 문무대왕암 가운데 석관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는 또 “<원효결서>에 따르면 김영삼을 끝으로 대한민국 국호는 사라지고 새롭게 태어난 나라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고 주장했지만 그후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호는 계속되고 있다. 참고로 책의 발간연도는 1997년으로,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이다.

설총결, 화산결 등 29편 수록

그나저나 비결서의 저자들을 보면 대부분 역사 속 유명인물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그들은 저런 내용의 비결서를 썼을까.
백승종 교수는 “도선이나 남사고·서경덕 등은 풍수나 점복에 조예가 깊은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살았던 연대와 책이 나타나는 시기 등을 볼 때 직접 저술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후대의 저술가들이 차명(借名)을 통해 권위를 빌린 것이라는 설명이다.

게다가 역사 사료 속에서 확인되지 않은 비결서의 경우 후대의 특정한 목적, 더 정확히 말한다면

신흥 종교 분파 등이 자신의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용을 첨삭·조작하거나 통째로 위조한 경우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예언서 연구가 김하원씨는

“<마상록> <홍록지> 등 시중에 떠도는 대부분 예언서는 사이비·신흥 종교인이 일제강점기 이후 조작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씨는 조선 중기 때 이조참판을 지낸 해월 황여일 선생이 지었다는 <해월유록>을 예로 들었다.

정도령, 진인, 구세주, 미륵, 마귀, 격암유록 등 거론되는 단어 자체에서 400년 전이 아닌, 근세에 특정 종교의 신흥 종파에서 위작한 가짜 비결서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는 것.

그는 “예언서 중 조심할 필요가 있는 것은 책의 저자가 종교인이면서도 종교에 대해 일언반구도 안 하면서 특정 종교로 유도하는 것인데

<해월유록>의 경우 노골적으로 종교 색채를 드러내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격암유록>의 경우 처음부터 박태선 전도관의 작품이라는 것이 드러났다면 광범위하게 주목받지 못했겠지만,

나중에서야 관련성이 드러나는 ‘우연’이 겹쳐 널리 알려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도참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새 지평이 열리는 분야도 있다.

비결서 연구가 류정수씨가 ‘한국요 참고’라는 이름으로 모아놓은 전래동요, 요참(謠讖) 역시 새로운 각도에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앞으로 다른 비결서가 새로 발굴될 가능성은 없을까. 있다.

하지만 “대부분 신흥 종교와 관련한 비결서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엄격한 사료 비판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관련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출처 : keiti
글쓴이 : 세발까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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