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권력 서열 1위인 공산당 총서기 후진타오가 지난해 10월 1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17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 참석해 개막 연설을 하고 있다. 5년마다 열리는 이날 당대회에서 그는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의 유지를 전제로 한 정치개혁을 약속했다. [베이징 AP=연합뉴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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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왕조에선 좌천된 벼슬아치들의 임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근대 들어 풍부한 물산을 바탕으로 외부와의 교류가 가능한 전략 요충지로 변한다. 황제는 이곳에 특명대신을 파견해 영향력 유지를 꾀했다. 사회주의 중국의 ‘새 황제’들도 마찬가지다. 중앙에서 멀기에 모반의 꿈이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심복을 내려보낸다. 완벽한 통제를 위해서다.
이곳은 또 멀다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새 실험이 이뤄지는 무대이기도 하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이 좋은 예다. 후진타오(胡錦濤) 집권 2기가 시작된 요즘 광둥이 또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이 꿈틀거린다. 중국의 1인자와 광둥의 함수관계, 그리고 그 변화의 새 조짐을 살펴본다.
중국 남부 최대 산맥인 오령(五嶺)의 남쪽은 광둥(廣東)이다. 이곳이 영남(嶺南)으로 일컬어지는 이유다. 서구 열강의 철선들이 동아시아를 엿보던 서세동점의 시절, 청은 이곳을 중국 내지로 들어오려는 외세를 묶어두는 교섭지로 활용했다. 이에 따라 홍콩이 가장 먼저 영국에 떨어져 나가고 주장(珠江) 삼각주 지역이 개방됐다.
사회주의 중국에서도 광둥의 지위는 대단히 중요하다. 새로 등극하는 중국의 황제들마다 이곳을 새 실험의 장이자 막대한 재부를 낳는 ‘황금알의 거위’로 간주했다. 덩샤오핑은 광둥에서 그의 거대한 꿈인 ‘개혁·개방’ 실험을 먼저 단행했다. 최근 차세대 최고 지도자로 부상 중인 정치국 상무위원 시진핑(習近平)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이 당시 광둥 제1서기로 개혁의 바람을 잡았다. 덩은 개혁·개방에 반대하는 내부 목소리가 커지자 1992년 광둥에 내려와 ‘남순강화(南巡講話)’로 그 흐름을 다시 틀었다.
덩의 후계자 장쩌민(江澤民)도 마찬가지다. 고분고분하지 않던 광둥의 지역 세력들을 한 칼에 보내는 실험을 한다. 그 선두에 선 인물이 리창춘(李長春) 현 정치국 상무위원. 광둥 당서기로 부임한 그는 금융 인맥에 대한 대수술을 통해 ‘군기’를 잡았다. 그 뒤를 이어선 장더장(張德江·현 정치국원)이 최근까지 광둥을 장쩌민 세력 아래로 눌러두는 역할을 했다.
이젠 권력 후반기를 맞은 후진타오가 광둥 접수에 나섰다. 역시 진정한 1인자가 되려면 광둥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세력 다지기의 차원을 벗어나 지난해 6월 그가 주창했던 ‘사상해방’의 본격적인 실험대로 삼을 기세다. 후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전 충칭시 당서기 왕양(汪洋)이 새 실험의 선봉에 섰다. 왕은 지난해 말 광둥 당서기로 부임하자마자 이례적인 발언을 했다. 장쩌민 계열인 리창춘과 장더장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왕은 “현재 광둥이 더 이상 ‘특별’하지 못하거나 그런 특수성이 결여된다면 우리 스스로를 묶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개혁·개방 초기의 ‘혈로를 뚫는’ 기백으로 후진타오 주석의 과학발전관을 위한 새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광둥에서의 제3차 사상해방=중국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왕양의 이 같은 발언은 중국에서의 ‘제3차 사상해방’에 해당한다. 덩샤오핑의 1차 사상해방인 개혁·개방, 2차 사상해방인 남순강화에 이어 벌어지는 제3의 거대 실험이라는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덩샤오핑은 78년 개혁·개방 정책을 취하기에 앞서 “사상을 해방시키자”는 구호를 내건 뒤 ‘사회주의 초급단계론’(공산주의 단계로 향하기 전 자본주의적 모순 상태가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사실상 중국의 시장경제 도입을 천명)을 만들었다. 덩의 이 ‘사상해방’이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중국공산당 17차 당대회를 앞둔 지난해 6월이다. 후진타오는 당시 성장 이상급 고위 간부를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사상을 해방시키는 것은 당 사상 노선의 본질적 요구이자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를 발전시키는 아주 강한 동력”이라고 역설했다. 후진타오가 주창한 사상해방 구호가 요즘 다시 유행하고 있다. 그 핵심은 광둥이다. 왕양은 “목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는 강렬한 표현까지 써가며 사상해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중국 공산당의 관례로 볼 때 구호에 딱 맞는 정책적 표현은 항상 나중에 나온다. 그래서 지금 ‘사상해방’을 외치고 있지만 그 내용이 외부에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래도 산발적으로 나오는 표현들이 있다. 광둥 중산(中山)대학 공공사무학원 원장 런젠타오(任劍濤)는 최근 한 연설에서 “선전
◇광둥에서의 새 개혁 프로그램 전망=후진타오가 내세우는 건 ‘과학발전론’이다. 성장과 함께 내실있는 사회발전을 추구한다는 것으로, 경제와 정치적 균형발전이 주요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공산당이 향후 ‘진일보한 전제(開明的專制)’의 개념을 새로 표방할 것으로 전망한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삼권분립 등 서구사회에서 뿌리내린 정치발전이 중국의 새 모델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며 “경제적 성장을 그대로 이어가되 소득격차 등으로 불거진 정치적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법제화와 효율적인 행정체제 강화가 그 주요 내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광둥을 중심으로 사회적 불만을 다독이기 위한 정교한 행정망 구축, 법제화를 통한 공산당 부패 방지 시스템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실험이 벌어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유광종 기자
◇남순강화(南巡講話)=‘남쪽을 돌면서 말하다’는 뜻의 이 단어는 중국 개혁·개방이 천안문 사태와 소련의 붕괴로 위기를 맞이한 1992년 덩샤오핑에 의해 나왔다. 그해 1월 광둥을 기점으로 남부 지역을 돌면서 지속적인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역설함으로써 중국의 제2 도약에 불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