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칭다오에 진출한 한 전자분야 한국 투자업체에서 중국 직원들이 근무에 열중하고 있다. 이 회사는 중국보다 기술력이 월등한 핵심 부품을 한국 본사에서 수입, 이를 중국에서 조립하는 생산분업 과정을 거쳐 완제품을 만들고 있다. [사진=한우덕 기자] | |
흔들리는 삼각무역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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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농구공의 생산 및 유통 과정은 한·중 생산분업의 전형을 보여준다. 기존 양국 경협의 주류는 투자와 무역이 연동된 구조였다. 중국에 투자한 한국 업체가 한국 본사로부터 중간재(부품·반제품)를 수입하는 형태다. 한국의 대중 수출품 중 80%가 중간재로 구성돼 있는 점이 이 같은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중국 진출 투자업체는 한국에서 수입한 부품을 중국에서 가공, 미국이나 유럽 등으로 수출(일부는 국내로 역수출)한다. ‘한국-중국-서방’으로 연결되는 3각무역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이 구도에 이상이 발생하고 있다. 2003년 한때 48.7%에 달했던 한국의 대중 중간재 수출 증가율이 2004년부터 꺾이기 시작하더니 2006년엔 8.4%로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중간재 수출이 부진하니 전체 수출이 온전할 리 없다. 한국의 대중 수출 증가율 역시 2003년 최고치(47.8%)를 기록한 뒤 하락세로 돌아섰다. 승승장구하던 대중 무역흑자는 2006년과 2007년 계속 감소했다. 한국으로선 ‘중국에서 벌어 일본에서 발생한 적자를 메우는 교역구조’를 유지하기가 점점 버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기술 추격이 주요 원인
한·중 생산분업 구도가 흔들리는 근본 이유는 중국의 기술 추격에 있다. 이제까지 중국 진출 투자기업들은 중간재를 기술수준이 높은 한국에서 들여왔다. 중국에선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중국 기업의 기술 향상 및 다국적 기업의 대거 중국 진출로 중국에서도 고기술 부품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베이징에 진출한 현대자동차의 경우 진출 초기였던 2002 년 부품의 중국 내 조달 비율은 약 40%(금액 기준)에도 못 미쳤다. 그러나 지금은 90%에 이른다. 노재만 법인장은 “중국에서 조달하는 부품의 기술수준은 이미 한국 제품과 다르지 않다”며 “굳이 한국 부품을 쓸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스타 농구공’의 경우에도 부품의 한국 수입 비율은 진출 초기 90%였으나 이젠 25%에 불과하다.
분업 구도가 무너지는 또 다른 이유는 ‘무단 철수’로 상징되는 중국 내 경영여건 악화 및 이로 인한 중간재 수요 감소다. 쑤저우에 진출한 남동완구 이태훈 사장은 “현재 중국 진출 임가공 제조업체 중 정상적인 생산활동을 하는 기업은 거의 없는 실정”이라며 “당연히 한국에서 들여오는 부품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중국 진출 기업의 무단 철수가 대중 수출 증가율 둔화와 무관치 않다는 얘기다.
중·미 통상 마찰도 한·중 생산분업에 영향을 준다. 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팀장은 “위안화 평가절상, 중·미 통상 마찰 등으로 중국의 미국에 대한 수출여건이 악화되고 있다”며 “이는 중국 진출 투자기업의 수출 악화 및 중간재 수요 감소로 이어져 결국 한국의 대중 수출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진출형 투자로 바꿔야
변화하는 한·중 경협 패러다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양국 간 새로운 21세기형 협력구조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선 투자 형태의 전환이 요구된다. 3각무역 체제가 위협받는 지금 ‘생산 가공형 투자’보다는 ‘시장 진출형 투자’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패션브랜드 업체인 EXR이 중국 소비시장을 빠르게 파고들고 있고, 상하이의 CJ 홈쇼핑은 중국 유통업계에서 가장 성공한 업체로 평가받고 있다. ‘스타 농구공’도 중국시장 공략에 주력한 결과 전체 생산의 35%를 중국에서 소화한다. 중국인의 소득수준 향상에 따라 금융, 디자인, 물류, 유통 등 새로운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는 비즈니스 기회를 노려야 한다.
3각무역 체제 보완도 필요하다. 핵심은 기술이다. 기술력에 대한 보강 없이는 양국 생산분업 구조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부품·소재 분야에서 중국 기업보다 한 단계 앞선 기술이 없다면 중국과의 생산분업 공조는 불가능하다. 칭다오에서 피역사업을 하다 무단 철수로 물의를 빚은 K씨는 “내가 망한 이유는 중국의 값싼 노동력만 빼먹으려고 했을 뿐 기술 개발이나 내수시장 공략 등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라며 “단순 조립·가공에 의존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는 이제 중국에서 먹을 ‘떡’이 더 이상 없다”고 강조했다.
한·중 경협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도 절실하다. 유희문 한양대 교수는 “새 정부는 중·미가 운영하는 고위급 경제전략회의와 같은 한·중 경제전략회의 체제를 구축해 변화하는 패러다임을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한다. 각 부처가 각개약진식으로 중국에 대응해서는 21세기 한·중 경협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