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쟁점.

국민연금논란

제봉산 2015. 5. 8. 20:00

1.국민연금은 산회적보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 논란을 계기로 그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깊이 잠복해 있던 국민연금의 온갖 불편한 진실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공적연금으로 최소한의 노후소득 보장조차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부터 적립기금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는 기금고갈론, 후세대에 부담을 떠넘기지 않으려면 보험료를 큰 폭으로 올려야 한다는 보험료 인상론에 이르기까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같은 형세입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에서는 이참에 국민연금을 없애자는 폐지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근원적으로 국민연금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빚어진 일들입니다. 연합뉴스는 국민연금 제도의 취지와 기본 운영원리 등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국민연금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고자 '민간보험이 아닌 사회보험', '기금 바닥나면 연금 못 받나', '제도유지 위해선 보험료 인상 불가피' 등 으로 검토합니다.

'국민연금은 노후 소득보장을 위해 국가에서 시행하는 사회보장 제도입니다.'

국민연금공단이 국민연금을 설명할 때 항상 내놓는 답변이다. 말 그대로다. 젊은 시절 근로 활동을 하면서 소득을 올리고 있을 때 다달이 보험료를 내도록 했다가 나이가 들어 은퇴 후 생업에 종사하지 못할 시점에 노후연금을 지급함으로써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질병이나 사고로 장애를 입었거나 숨졌을 때도 장애연금을 받고, 남은 가족에게 유족연금이 지급된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18세 이상 60세 미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직장가입자나 지역가입자로 가입해야 한다.

보험회사 등 민간기업이 판매하는 개인연금 같은 민간보험과는 달리 강제 가입이기에 가입과 탈퇴의 자유가 없다. 왜 그럴까?

이 부분은 많은 국민이 가장 불만을 표시하는 대목이다. 국민연금은 이른바 '사회적 연대성'을 기초로 한 사회보험이기 때문이다.

공적연금으로서 국민연금은 '세대 내, 세대 간 재분배' 속성이 있다. 돈 많이 버는 사람은 많이 내고 낸 것보다 조금 적게 받고, 반대로 돈 적게 버는 사람은 조금 내고 낸 것보다 조금 많이 받는다. 또 현 세대가 후세대를 낳고 양육하며, 후세대는 현 세대를 부양해 사회 공동체가 유지 발전한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전제한다.

국민이 싫어하는데도 의무가입 제도를 시행하는 이유에 대해 김성숙 국민연금연구원장은 가입자가 미래에 자신이 늙거나 사고를 당해 장애를 입거나 숨질 것이라고는 아예 생각하지 않거나 생각하더라도 사업밑천, 빚 청산 등 다른 더 급한 곳에 보통 돈을 쓰게 되고 그러면 먼 미래를 대비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의학기술의 발달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평균수명은 계속 늘어난다. 반면 출산율은 감소하고 노인인구 비율은 급격히 올라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노후를 준비할 여유가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가입하고 싶은 사람만 가입하도록 하면 대부분 노인은 빈곤층으로 전락해 힘겨운 노후를 보낼 수밖에 없다. '소득 없는 노후'라는 위험을 사전에 막으려는 게 국민연금제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후, 사망, 장애 같은 미래 위험을 대비한 국민연금 같은 공적 사회보험제도는 어느 나라든 강제가입을 원칙으로 한다.

유럽 등 선진국 노인들이 빈곤의 위협을 받지 않고 비교적 건강하게 사는 것도 오랫동안 의무적으로 적용해온 공적연금 덕분이라는 게 국민연금공단의 설명이다.

공적연금제도는 1889년 독일에서 처음 시작됐다. 현재 170여개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8년 근로자 1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도입된 이래 단계적으로 가입대상을 넓혀 1999년 4월에 모든 국민이 국민연금에 가입하게 했다. 

민간보험과는 달리 중도해지도 안 된다. 국민연금을 중도에 탈퇴할 수 있으면, 주택 구매 자금이나 자녀 교육비 등으로 목돈이 필요할 때나, 국민연금이 없더라도 충분히 노후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개인연금저축처럼 해지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될 것이 자명하다. 이렇게 되면 누구에게나 닥치게 될 기나긴 노후기간에 대비할 수 있는 주요한 노후 보장수단을 잃게 된다. 강제 가입 및 중도 해지 불가 원칙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강제가입하도록 해 기분은 언짢을지 모르지만, 수익성으로 따지면 민간보험상품은 비교 대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유리하다.

국민연금과 개인연금은 매월 일정액을 보험료로 내서 노후에 연금형태로 받는다는 원리는 같다. 

국민연금은 개인연금이 도저히 따라올 수 있는 여러 장점이 있다.

장기수익 측면에서 따져봤을 때 국민연금의 수익비(낸 보험료 대비 받는 연금액)는 소득구간별로 1.3~2.6배로, 가입자가 국민연금을 탈 때 가입기간에 낸 보험료 총액보다 추가로 30~160% 정도를 더 받는다.

개인연금의 수익비는 근본적으로 1을 넘지 못한다. 어디까지나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회사가 설계해서 판매한 금융상품이기 때문이다. 민간보험회사는 가입자가 낸 보험료에서 각종 관리운영비와 영업마케팅 비용을 쓰고나서 남은 금액에다 약간의 이자를 덧붙여 약정한 명목금액만 연금으로 돌려줄 뿐이다.

이처럼 국민연금의 수익성이 높은 것은 1988년 제도 도입 당시부터 가입자가 낸 보험료보다 연금으로 돌려주는 급여수준을 높게 설정한데다 해마다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연금액수를 올려주는 등 실질가치를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2.국민연금기금바닥나면 연금못받나?

국민연금 기금은 올해 5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약 3분의 1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국민연금 장기 재정추계에 따르면 이 기금은 당분간 계속 불어난다. 2043년에는 2천561조원(2010년 불변가격 1천84조원)으로 정점을 찍는다. 이 막대한 적립금은 이후 내리막길을 걷다가 2060년에 바닥을 드러낼 전망이다.

들어오는 보험료보다 나가는 연금지급액이 많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민간보험 상품과는 달리 애초 제도 설계 때부터 가입자가 낸 보험료보다 더 많은 연금을 받게 돼 있다. 국민의 안정적인 노후소득을 보장하려는 취지에서다.

실제로 2011년부터 40년간 국민연금에 가입했다고 가정할 때, 연금보험료로 낸 금액 대비 급여액 비율, 즉 '수익비'는 최하위 소득자(월 평균소득 23만원)는 4.3배, 평균 소득자(월평균소득 188만원)는 1.8배다. 고소득자라고 해서 자신이 낸 돈보다 노후에 받는 돈이 적지 않다. 최상위 소득자의 수익비도 1.3배에 달한다. 보험료를 거둬서 가입자가 일정 나이가 되면 더 많은 연금으로 되돌려주다 보니 국민연금 기금의 소진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기금고갈론'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잊을 만하면 되살아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면 쌓아놓은 기금이 다 소진되면 더 이상 연금을 받을 수 없게 될까? 일반 국민이 막연한 불안감에 국민연금을 불신하면서 탈퇴하고 싶다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주요 근거다.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을 운영할 때 보험료를 거둬 연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적립방식과 부과방식이 그것이다.

적립방식은 상당한 금액의 기금을 일정 기간 차곡차곡 쌓고 그 기금을 주식이나 채권 등 금융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올려서 연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부분 적립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부과방식은 매년 근로자가 연금급여로 지급할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이다. 그 해 필요한 연금재원을 후세대한테서 그때그때 보험료로 걷어 현세대에게 지급하는 쪽이다.

미국, 독일, 스웨덴, 일본, 캐나다 등 오랜 연금역사를 가진 선진국의 공적연금도 과거 제도 초기에는 우리나라 국민연금처럼 많은 기금을 쌓아두었다. 제도성숙과 더불어 적립기금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부과방식으로 바꿔서 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선진국이 오래전부터 거의 기금 없이 연금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연금지급에 큰 문제를 겪지 않았다.

기금소진으로 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과 우려가 있지만, 결코 연금지급이 중단되는 사태는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국민연금공단이 잘라 말하는 이유다. 

비록 기금이 바닥나더라도 사회적 대타협을 거쳐 부과방식으로 바꾸면 연금기금의 중요한 재원인 보험료가 계속 들어오는데다, 아직은 국민연금제도 도입 초기단계여서 나가는 돈보다는 들어오는 돈도 많고 적립기금도 많이 쌓여 있어 재정적으로 안정된 상태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상대적으로 공적연금의 역사가 짧은데다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소득대체율을 낮추고 연금 수급 개시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늦추는 개혁을 단행했기에 연금지출 대비 적립금 규모의 배수인 '적립배율'이 높은 편이다.  

한국의 국민연금 적립배율은 28.1배나 된다. 일본(후생연금 3.8배, 국민연금 2.8배), 스웨덴(1배), 미국(3.3배), 캐나다(4.8배)보다 훨씬 많다.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연금도 다른 선진국 사례처럼 기금이 소진되면 부과방식으로 전환해 연금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3.제도유지를 위해선 보험료인상불가피:합리적수준에서 사회적대타협모색해야...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 50% 인상 논란에서 찬반 진영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힌 부분은 그 부담이 어느 정도며 누가 얼마만큼 짊어질 것인가이다.

소득대체율은 지금껏 내리막길만 걸었다.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친 연금개혁으로 애초 70%였던 소득대체율은 60%로, 다시 40%로 크게 떨어졌다. 명목 소득대체율은 국민연금에 40년 가입했을 때 가입기간 평균소득 대비 노후에 받는 연금액을 말한다.

이를테면, 월평균 100만원을 벌던 국민연금 가입자가 운 좋게 40년 동안 꼬박 보험료를 냈다고 치자. 그러면 이 가입자는 애초 연금 수급연령인 65세부터 월평균 70만원을 받아야 한다. 소득대체율이 70%→60%→40%로 하락한 것은 연금 수령액이 월 70만원에서 60만원으로, 다시 40만원으로 곤두박질 쳤다는 말이다.

게다가 전체 국민연금 수급자의 실질 소득대체율은 20% 안팎으로 명목 소득대체율의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현저히 낮다.

국민연금만으론 은퇴 전 경제활동 당시 벌어들인 생애 평균소득의 5분의 1 정도만 충당할 뿐으로, 최저 생계비를 겨우 웃도는 소득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여야는 이처럼 국민의 최소 노후 보장장치로서 공적연금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추락한 소득대체율을 정상화하는데 호흡을 맞췄다.

야당은 이렇게 소득대체율을 10%포인트 올리더라도 부담은 그다지 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복지부가 야당의 주문을 받아 계산해서 국회에 제출한 재정추계 자료를 보면, 보험료율을 9%에서 10.01%로 단지 1.01%포인트만 올리면 기금고갈 예상 시점(2060년)을 앞당기지 않고도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릴 수 있다.

직장가입자의 보험료는 사업장과 직원이 절반(4.5%)씩 나눠서 내기에 실제 개인 부담은 0.5%포인트만 늘어날 뿐이다.

국민연금제도를 책임지는 보건복지부의 주장은 야당과 차이가 있다. 복지부는 공론화 절차 없이 무턱대고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국민이 내야 할 현행 9%인 보험료율이 최소 15.1%에서 최대 18.85%로 지금보다 2배 가까이 뛰면서 미래세대에 큰 부담을 전가하게 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이런 복지부의 주장은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는 게 연금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복지부의 주장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쌓아놓은 기금의 규모와 고갈시점을 달리 잡아 계산했다.

복지부가 소득대체율 50% 인상에 필요한 최대 보험료율이 18.85%라고 한 것은 순전히 소득대체율 50% 인상에 들어가는 보험료뿐 아니라 기금고갈 예상 시점을 2060년에서 2100년 이후로 늦추고, 여기에다 2083년에 17년치의 연금을 나눠 줄 수 있는 기금을 적립하는 데 들어가는 보험료를 모두 합친 수치다.

이렇게 되면 2083년에 국내총생산(GDP)과 대비한 적립기금의 규모가 140.5%에 달하게 된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가장 큰 연기금을 축적했던 일본도 GDP 대비 30%를 넘긴 적이 없었다.

복지부의 주장대로 현행 40%의 소득대체율을 유지하더라도 2100년 이후에도 기금을 소진하지 않으려면 17년치의 적립금을 보유하려면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5.85%로 올려야 한다.

소득대체율을 올리든 지금처럼 그대로 유지하든 상관없이 국민연금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어차피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현재의 국민연금 재정운용방식은 현행 9% 보험료율을 고려할 때 제도설계상 제한된 기간(2060년)까지만 적립기금으로 연금지출을 충당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이후에는 보험료 수입만으로 연금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워 적자가 발생하면서 재정불안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해결책은 별로 없다. 보험료를 조기에 인상하거나 최후 보루인 세금을 투입해 기금고갈 예상시점인 2060년을 넘어서도 지출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밖에 없다.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는 방안이다.

따라서 선택이 필요하다. 보험료율을 올린다면 언제, 얼마나 올릴 것인지, 국고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사회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연금 선진국들도 우리나라와 똑같은 문제를 겪었다. 그런데도 선진국이 연금제도를 100년 넘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무수한 사회적 타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민연금연구원 이용하 연금제도연구실장은 "우리 사회가 그런 사회적 타협을 도출하지 못하면 사회적 합의로 유지되는 사회보험제도인 국민연금은 극단적인 선택, 즉 파산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현시대를 사는 우리 자신이 어떤 사회적 타협을 하느냐, 다시 말해 기금고갈 전에 사전 재원확보 노력을 얼마나 기울이느냐에 따라 미래의 연금재정 상태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