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일 내각 총리는 15일 만수당의사당에서 나기브 싸위리스총사장을 단장으로 하는 에짚트오라스꼼전기통신회사대표단을 만나 친선적인 분위기 속에서 담화를 하였다.”
2008년 12월 15일 북한 노동신문에 실린 기사인데, “이집트의 오라스콤전기통신회사의 투자를 받아 북한이 휴대전화 서비스에 나섰다”는 내용입니다. 저는 그때 TV·라디오·전화·편지·DVD 등 모든 기기의 유출입을 통제하고 내용까지 검열하는 북한이 왜 휴대전화 서비스에 나서겠다는 것인지, 신기했습니다.
이후 4년여 동안 북한의 휴대전화 서비스 관련 정보를 모니터링했습니다. 남한 거주 북한 이탈 주민과 단둥 부근 조선족, 북한을 자주 방문한 국내 인사들을 틈날 때마다 접촉했습니다.
현재 북한의 공식 휴대전화 사용자는 200만명이 넘습니다. 북한은 2011년 유엔(UN)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 조사에서 가입자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로 꼽혔습니다. 북한 휴대전화를 둘러싼 궁금증을 6가지로 정리해 봤습니다.
-
2008년 3세대 휴대전화 서비스 개시를 알리는 북한 포스터.
북한은 2002년에도 태국 록슬리사(社)를 통해 간부·부유층을 위한 휴대전화 서비스를 일부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2004년 4월 평북 룡천군 열차 폭발 사고가 일어났고, 일각에서 김정일 위원장 암살기도였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북한 당국은 김 위원장의 신변 정보가 휴대전화로 알려졌을 것으로 판단, 보급한 휴대전화를 모두 압수하고 사용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그랬던 북한이 2008년 12월 15일 3세대 이동통신서비스(WCDMA)를 선보였습니다. 이는 김일성 탄생 100주년(2012년)과 관계가 있다는 관측이 유력합니다. 북한 당국은 2012년까지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고 선포했지만 뾰족한 달성 방안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때 이집트 오라스콤텔레콤이 ‘달콤한 제안’을 했습니다. 북한내 휴대전화 독점 사업권을 주면 4년간 4억달러를 투자할 것이며 금융, 건설 분야에도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실제로 1987년 착공한지 4년 만에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돼 25년 동안 흉물처럼 방치돼 있던 평양 류경호텔은 이 오라스콤의 투자로 얼마 전 재건축을 마쳤지요. 북한 정권으로선 감시와 통제 부담이 늘어나도 실리적 목적이 더 강했던 셈이죠.
탈북자들이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해둔 고향 친척의 휴대 전화번호를 봤더니, 북한 휴대전화 번호는 ‘1912’로 시작하더군요. ‘1912년’에 태어난 김일성 탄생코드를 휴대전화에 심어놓은 것입니다. (1)에 대한 해답은 바로 ‘1912 코드’입니다.
(2) 북한 휴대전화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나요?
대답부터 드리면, “대체로 그렇다”입니다.
이집트 오라스콤은 북한 당국과 ‘고려링크’라는 합작법인을 세우고 휴대전화 가입자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북한 당국도 처음엔 당 간부 위주로 가입자를 모았지만, 요즘은 누구나 돈만 내면 가입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평양 시내에선 휴대전화로 수다를 떠는 대학생도 자주 보입니다.
단, 휴대전화를 살 때는 유로화나 달러 등 외화로 결제해야 합니다. 또 국제 통화는 엄격하게 차단돼 있습니다. 북한 당국의 휴대전화 내용 감청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북한 휴대전화 사업 진출을 검토했던 한 대기업 임원은 “북한이 감청, 감시 기술을 당연한 조건으로 내걸더라”고 하더군요.
2008년 말 북한의 공식 휴대전화 사용자는 1694명이었습니다. 그러나 2009년 9만명, 2010명 43만명, 2012년 2월말 100만명을 돌파했고 최근에는 200만명을 넘었습니다. 평양 등 주요 15개 도시와 중소 100여개 도시에서 휴대전화를 쓸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판매되는 휴대전화 한 대 가격은 200~300달러가 넘는데 500달러짜리도 있습니다. 중국 화웨이(華爲) 제품이 많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도 일부 유통 중이랍니다. 북한 근로자 월평균 임금을 감안하면 북한 근로자가 정상적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지요. 이렇게 보면 북한의 지하경제 규모가 크고 신흥부자가 많으며 계층간 소득 격차가 상당하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사실 한국에서도 IMF 외환위기 때 휴대전화가 급속 확산됐습니다. 매일 실업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도 휴대전화 가입자만은 폭발적으로 늘어 당시 SK텔레콤 직원들이 표정 관리하느라 힘들어 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
평양 거리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세련된 옷차림의 북한 여성. /자유북한방송
(3) 북한에 이동통신 독점권을 가진 오라스콤은 어떤 회사인가요?
오라스콤 그룹은 이집트 최대 그룹이며 중동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집단입니다. 1950년 온시 사위리스(Onsi Sawiris)가 창업한 후 현재 그의 세 아들이 각각 통신 분야, 건설 분야, 호텔과 부동산 개발 분야의 사업을 맡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위험 국가’ 진출을 즐기는 매우 독특한 기업입니다. 오라스콤텔레콤이 직접 서비스를 하거나 지분 투자 방식으로 진출한 주요 국가는 알제리, 파키스탄, 이집트, 튀니지, 방글라데시, 북한, 짐바브웨,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나미비아 등입니다. 경제가 열악하거나 정세가 불안정한 곳들이죠.
리스크(위험)는 높지만, 인구는 많고 이동통신가입률이 낮은 곳에 일단 진출해 사업만 안정시키면 좋은 점이 더 많다고 오라스콤텔레콤은 말합니다. 경쟁도 거의 없고 나중에 사업권을 제3의 통신기업에 매각해 큰 돈도 벌 수 있다는 이유에서죠. 2008년 북한에 진출해 4년 독점 사업권을 얻은 오라스콤은 최근 독점 사업권을 3년 더 연장했다고 합니다.
-
과거 평양시내 공중전화박스서 전화 걸고 있는 시민들
2009년 만난 탈북자들에게 북한에서 휴대전화를 뭐라고 부르는지 물었더니 대부분 북한 용어는 잘 기억하지 못하다가 “아, 서우지라고 한다”고 말하더군요. 서우지는 휴대전화를 일컫는 중국어 ‘쇼우지(手机·손기계)’였습니다.
북한의 휴대전화 공식 용어는 ‘손전화’인데, 왜 상당수 탈북자들은 ‘쇼우지’를 더 많이 떠올릴까요? 이는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이어지는 중국과 북한 국경지대에서 중국 휴대전화 사용이 매우 흔한 것과 밀접합니다. ‘고난의 행군 시절(북한 경제가 어려워진 1990년대)’부터 중국 접경 지역의 북한 주민들은 중국 휴대전화를 이용해 밀무역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중국 경제의 고속 성장에 힘입어 지린성, 랴오닝성 등 동북 3성에도 휴대전화 기지국이 촘촘히 들어섰습니다.
중국 기지국에서 발사한 전파가 북한 국경 도시까지 전달돼 압록강 두만강 일대에선 중국 망(網)을 이용해 중국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게 일상적인 풍경이 됐습니다. 탈북자들도 북한 휴대전화인 ‘손전화’는 못써봤어도 중국 휴대전화 ‘쇼우지’는 사용해봤던 것입니다.
이 중국 휴대전화가 요즘 북한 당국에 큰 골칫거리라고 합니다. 북한 무역상들이 중국 휴대전화로 정보를 교환하며 밀수하는 품목에 쌀·담배·술은 물론 라디오·TV와 남한의 드라마 DVD까지 있기 때문이죠. 조선족 탈북 브로커들이 은밀하게 탈북 루트를 알려주거나 남한에 거주 중인 북한 이탈 주민과 북한에 있는 이탈 주민의 가족, 친구, 지인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통로로도 중국 휴대전화가 요긴하게 쓰입니다.
그래서 북한 보안 당국은 전파 탐지기를 이용해 중국 휴대전화 사용자를 적발·압수하고 방해 전파를 쏘아 중국 휴대전화 송수신을 막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해 전파로 애꿎은 중국 휴대전화 사용자들이 송수신에 어려움을 겪는 바람에 중국 당국이 자주 반발한답니다.
(5) 북한에서 휴대전화 담당 정부 부처는 어디인가요?
“말도 마세요. 조선체신성이 최고 인기 기관이 됐습니다.”
2011년 어느 날 중국 단둥에서 근무하는 조선족과의 인터뷰에서 들은 말입니다. 그는 단둥·평양·신의주를 오가며 북한 통신 서비스에 관여해 북한 휴대전화 사정에 밝았습니다. 그는 북한 간부들이 조선체신성에 서로 들어가려고 경쟁한다고 귀띔했습니다.
북한 내각 산하 통신사업을 담당하는 조선체신성이 큰 인기를 끄는 이유는 바로 외화 때문입니다. 북한 원화는 가치가 별로 없어 외화를 취급할 수 있는 기관이 가장 ‘물 좋은’ 곳이랍니다. 사회주의권 붕괴와 중국·소련의 현물 원조 중단으로 1990년대 이후 북한의 각 국가기관은 재원 확보를 위해 외화벌이를 절체절명의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조선체신성은 휴대전화 구매 대금은 물론 휴대전화 요금까지도 유로화나 달러로 받고 있습니다. 북한 휴대전화 사용자가 200만명이니, 200만대에 달하는 휴대전화 판매대금과 200만 가입자의 월 사용료를 외화로 꼬박꼬박 받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취급하는 돈만 수억달러에 이르니 서로 가려고 난리인 게 이해됩니다.
-
북한 평양 거리에서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는 남자의 모습.
(6) '북한판 재스민 혁명'이 가능할까요?
북한의 휴대전화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공식적으로 20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얽히고설키며 온갖 거래를 하는데다, 북한 당국이 휴대전화로 손쉽게 거둬들이는 외화의 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죠.
서방에선 휴대전화가 중동 지역의 재스민 혁명처럼 북한에 ‘모바일 혁명’을 촉발할 지 주목합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올 1월 북한을 방문했던 에릭 슈미트 구글(Google) 회장은 방북 소감에서 “북한의 주민 통제 수준은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지만 일반 주민들은 할 수 없었고 휴대전화가 있지만 데이터 통신은 할 수 없었다”며 혹평했습니다.
북한도 세계적인 정보화 물결에는 부분적이나마 진입해 있습니다. 그러나 휴대전화 보급이 얼마나 북한 사회와 주민들의 의식 변화를 낳을 것인지는 제법 시간을 두고 관찰해야 할 듯 합니다.
'지금 북한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독재국가의 내구성 (0) | 2013.07.25 |
---|---|
[스크랩] 國土 색깔의 分斷 (0) | 2013.06.27 |
[스크랩] CNN-4년전에 촬영한 북한 실상 (0) | 2013.04.06 |
[스크랩] 요덕수용소 (0) | 2013.03.26 |
북한숙청"X파일"공개 (0) | 2012.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