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북농업..4중수탈구조-주민몫은 거의없어

제봉산 2012. 7. 25. 08:57

김정은, 농작물 처분권 확대 등 개혁 착수하지만…
"50년대 협동농장 이전 개인에게 땅 줬던 상황과 비슷
수탈 따른 불만 완화하고 생산 의욕 높이려는 시도
협동농장은 주민 감시단위… 전면해체 힘들 것"

북한이 지난달 부분적인 농업 개혁에 착수한 것과 관련, 정부의 대북 소식통은 24일 "중앙당과 군대의 과도한 수탈에 따른 농민 불만을 무마하고, 협동농장의 생산성을 높여보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이날 한 특강에서 "북한 민생경제가 도탄에 빠진 지 오래됐고 지금도 북한 전역에서 아사자가 속출하는 상황"이라고 밝혔을 만큼 북한 식량난은 여전하다. 김정은에 대한 민심(民心) 이반으로 이어질 수 있는 수준이다.

특히 협동농장의 생산성은 주민이 개별적으로 일군 '뙈기밭' 생산성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김정은으로선 농민을 달래면서 동시에 생산 의욕을 자극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정부 관계자들은 밝혔다. 한 고위탈북자는 "1950년대 협동농장 이전 개인에게 땅을 나눠줬던 상황과 일부 비슷한 양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이 협동농장에서 농사를 짓는 기본 단위를 10~25명에서 4~6명으로 줄이고, 가족농이 처분할 수 있는 농작물 비율을 대폭 늘리는 등 농업개혁 내용을 담은 ‘신(新)경제관리개선조치’를 지난달 28일 공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북한 김정은(맨 왼쪽) 노동당 제1비서가 지난 5월 1일 평양 릉라인민유원지 건설현장을 시찰하는 모습.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월 통일연구원 특별 강연에서 "북한도 집단농장을 할 게 아니고 '쪼개 바칠 것은 (정부에) 바치고 네가 가져라'하면 쌀밥 먹는 것은 2~3년 안에 가능할 것"이라며 "젊은 지도자(김정은)가 그것 하나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이 대통령이 북한의 농업 개혁 정보를 입수하고, 그 필요성을 강조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노동신문은 지난 4월 19일자에 김정은의 "인민 생활 개선에 결정적 전환을 가져올 것이며, 식량문제를 빨리 해결하겠다"는 발언을 보도한 이후 경제 관련 보도를 계속 늘리는 추세다. 그러나 이 같은 북한의 시도는 토지를 개인에게 분배한 뒤 세금을 걷는 '중국식 개혁'과는 거리가 있다는 관측이 많다. 한 대북 소식통은 "농민의 토지에 대한 소유감을 어느 정도 충족시키면서 기존의 협동농장체제도 유지하려는 정책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부 당국자는 "협동농장이나 작업반 등은 농업 단위이자 감시 단위"라며 "완전 해체나 전면 개혁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강경파' 리영호 총참모장을 숙청하면서 농업 개혁에 나섰다는 점을 주목하며 북한의 전면적인 개혁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해외 유학파인 김정은이 개방에 적극적일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는 "캄보디아의 독재자 폴 포트도 프랑스에서 4년이나 유학했지만 200만명을 학살했다"며 "지금 수준으로 북한의 개혁·개방을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의 농업 개혁 착수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이번 조치가 북한 경제의 근본적인 체질 변화로 이어지거나 성공을 거둘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화폐 개혁처럼 실패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고위 탈북자 A씨는 "무엇보다 북한 주민이 당국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 농업이 엉망이 된 것은 분조의 규모 때문이 아니라 3중, 4중의 수탈 구조 때문"이라며 "농사는 농민이 짓고, 쌀은 군대와 정권기관이 뺏어가는 구조를 바꾸는 게 농업 개혁 성공의 열쇠"라고 했다.

황해남도 해주시 인민위원회(시청 격)에서 농산물 관리를 담당하다 작년 여름 탈북한 최영철(가명·45)씨도 "(북한 식량문제는) 봄철에 하달되는 비현실적 '알곡생산계획'에서 비롯되는 구조적 문제"라고 했다. 북한 당국은 매년 협동농장들에 "1정보(3000평·약 1만㎡)당 6t을 생산하라. 그중 1~2t은 농장원들에게 주겠다"는 지시를 내린다. 그러나 실제 수확량은 1정보당 2~4t이다.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량을 제시하고, 이를 근거로 권력 부서들과 군대가 수확량을 가져가니 농민이 건질 게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또 농업 개혁을 포함한 역대 북한의 경제 개선 조치들이 시행 수개월~수년 뒤 대부분 실패했다고 말한다. 국가정보원 3차장(북한 담당)을 지낸 한기범 고려대 객원교수는 "북한 지도자들이 경제 개선을 주장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며 "그러나 일부 개혁이 도입되면서 사상 통제가 어려워지면 개혁을 발상한 간부들을 숙청했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경제 개선 조치가 성과를 내려면 우호적인 대외 환경이 필수인데 북한은 지난주부터 대남·대미 비난의 강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며 "북한이 정말 경제 개혁을 할 의지가 있다면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