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쟁점.

한국식"만장일치졔"와 "서남표식 카이스트 개혁"

제봉산 2012. 7. 14. 20:06

카이스트 이사회가 오는 20일 열릴 임시 이사회에 서남표 총장에 대한 계약 해지 안건을 상정하기로 했다. 카이스트 전체 이사 16명 중 대다수가 서 총장에게 우호적이지 않아 이 안건은 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서 총장은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 석좌교수로 있던 2006년 7월 카이스트 총장으로 부임해 첫 번째 임기 4년을 마친 뒤 2010년 재선임됐다. 서 총장의 전임이었던 노벨상 수상자 로버트 러플린 총장도 부임 2년 만에 물러났었다.

서 총장은 취임하자마자 "나는 카이스트를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 대학으로 만들기 위해 왔다"면서 그때까지 카이스트의 교수와 학생들이 겪어보지 못했던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등록금이 전액 무료였던 학생들에게 학점이 기준에 모자라면 성적에 따라 수업료를 차등(差等)해 물리기 시작했고 전 과목 수업을 영어로 진행했다. 교수 평가를 강화해 정년보장·재임용 심사를 통해 그동안 40명을 탈락시켰다. 그러자 해가 다르게 세계대학평가에서 순위가 올라가고 기부금이 몇 배씩 늘었다.

서 총장 개혁의 핵심은 대학 사회의 주인 노릇을 해온 교수 사회를 경쟁을 통해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경쟁 없이는 결코 카이스트가 세계 최고가 될 수 없으며, 카이스트인(人)은 경쟁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경쟁은 어쩔 수 없이 부담과 피로감을 수반한다.

교수들 투표로 총장을 뽑고, 총장이 그런 교수의 눈치를 봐야 하는 대학에서 개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교수 직선제로 뽑힌 총장들이 들고나오는,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를 주지 않는 만장일치(滿場一致)식 개혁이 속이 빈 말뿐인 개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 있다.

서 총장은 개혁에 대한 저항을 거역할 수 없는 명분을 앞세워 어렵게 헤쳐 나왔지만 작년 초 학생 4명과 교수 1명이 잇따라 자살하는 일이 일어나자 결국 뜻을 굽혔다. 차등 등록금제는 폐지되고 영어 수업은 축소돼 유명무실해졌고 교수들에게 부담을 주던 학내 융합연구기관 연구원 겸직의무 규정도 철폐됐다.

서 총장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일을 추진하고 사람을 다루는 방식이 거칠다고 비판해왔다. 학교의 발명특허 50여건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문제들이 있다고도 공격해왔다. 또 고교 2학년 때 이민을 가 평생 미국에서 산 탓에 사고방식이 한국적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 모든 주장에 일면(一面)의 진실은 담겨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이스트를 과학기술계의 최고 인재, 누구보다 앞서 문제를 파악하고 방향을 정해주는 창의적 리더의 산실로 만들고 싶다는 것은 그만의 꿈이 아니라 국민의 꿈이기도 하다.

한국 교수 사회의 벽을 돌파하려 했던 서 총장의 의지는 좌절될 가능성이 커졌다. '서남표식 개혁'이 실패로 끝나게 될 경우 카이스트가 앞으로 어떤 전략으로 세계 최고 대학이 되려고 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