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쟁점.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제봉산 2011. 12. 2. 10:38

 

"자유주의는 민주주의 발전시키는 보편 이념, 진보가 경멸하는 것은 잘못… 적극 수용해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논문서 진보진영 시각에 쓴소리
親美 부르주아 이념이라는 진보 진영의 비판은 부적절
대한민국 건국때부터 자유주의였고 민주주의였다
과도한 민주주의의 열정 자유주의가 식혀주는 역할
민주화운동 주도한 민중주의, 그후 긍정적 결과 못 만들어

"한국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에서 얻을 게 많다." "자유주의는 현존하는 정치 이념 중 가장 보편적 이념으로 우리 사회에 적극 수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거부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최장집(68) 고려대 명예교수가 진보 진영의 민주주의관, 자유주의관, 정치관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2일 한국정치학회(회장 박찬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연례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논문 '한국에서의 자유주의'에서 진보 진영의 과도한 민중주의적 경향과 이들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편협한 이해를 비판했다.

현존하는 가장 보편 이념

최 교수는 "민주주의의 실제 내용과 성격, 방향은 민주주의만으로 규정될 수 없다"면서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여러 결핍 조건을 깊이 이해하고 개선하는 데 자유주의가 매우 강력한 유의미성이 있다"고 했다. 또 "자유주의 원리의 실천 여부와는 무관하게 한국은 처음부터 민주주의였고 자유주의였다"며 "진보든 보수든 자유주의적 과제를 해결해가는 데 유능함을 발휘해야 하며 그런 점에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매우 보편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고도 했다.

최근 학계 안팎에서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역사 교과서 기술 지침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것을 두고 논쟁이 뜨거웠다. 주로 보수가 찬성 편에, 진보가 반대로 양분되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진보 진영의 '간판'으로 꼽히는 최 교수가 진보 진영의 자유주의관을 비판하고 나섬에 따라 논의는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자유주의=친미 부르주아 이념은 잘못"

최 교수는 자유주의가 국내에 수용된 과정을 두고 '흥미로운 패러독스'라고 했다. "보수파는 자유주의를 말하면서도 이를 냉전 반공주의와 동일시하며 실천하지 않았다면, 진보파는 자유주의를 친미적 부르주아 이념으로 경멸했다"는 것. "그 과정에서 양쪽 모두 국가주의, 발전주의, 경제적 민족주의 등 반자유주의 경향을 공유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건국 이후 자유민주주의는 국가 건설의 존재 이유로 나타났지만, 민주주의가 정치적 실천을 통해 보편 이념으로 자리 잡은 반면 자유주의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라며 "민주화 과정에서도 독재 권력 타도의 정치적 목표를 넘어, 인간 자유와 평등의 구현으로서 자유주의적 가치와 원리의 중요성을 얼마나 일깨웠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이렇게 자유주의가 홀대받은 것은 과도한 국가중심주의 탓이라고 했다. 이는 진보 세력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 그는 "좌우를 막론하고 국가 권력 견제의 중요성이 정치의식 속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이 문제를 회피하는 태도는 개혁 열정이 강한 진보파 사이에서 결코 더 약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나아가 진보 진영의 민중주의 경향도 비판했다. 최 교수는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민중주의는 민주주의와 (혁명적/급진적) 민족주의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면서 "이 민주주의관은 실현 가능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범위를 훨씬 넘어, 어떤 이상주의적이고 도덕주의적인 체제로 이해되는 경향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또 "이들은 민주화에 앞장섰음에도 그 후 민주주의를 운영하고 제도적 실천을 통해 긍정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는 효과적이지 못했다"며 "우리가 자유주의의 냉정한 현실주의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이 지점에 있다"고 했다.
자유주의는 민주주의 해독제

그는 자유주의를 민주주의의 '해독제'라고 부르기도 했다. "자유주의에서 배울 게 있다면 민주주의가 이상과 목표를 과도하게 높이 설정하면서, 정치를 뛰어넘어 이를 일거에 해결하려는 경향성에 대한 어떤 해독제적 역할"이라며 "그로부터 과도한 열정을 차가운 열정으로 바꾸고 현실 문제의 복합적 구조를 이해하고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정치력을 키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교수는 "자유주의는 현존하는 정치 이념 중 가장 보편적 이념으로서 한국 사회에 적극 수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는 "자유주의의 장점은 그 개방성과 유연한 자체 교정 능력을 통해 사회경제적 변화와 만나면서 굉장한 현실 적응 능력을 실현해 왔다는 사실"이라며 "그것은 민주주의 발전을 풍요롭게 하는 사회·윤리적 가치의 이념 자원이라는 면에서 우리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 최장집 교수는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이론가

국내 주요 민주주의 이론가 중 한 명. 진보 진영에서 담론의 주축을 이뤄왔다. 최근에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문제를 파고들면서 일부 진보 세력과는 논쟁을 낳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의회주의자인 그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여전히 ‘미완의 과제’라고 말하면서도, 운동에만 기대는 세력에 대해 정당과 의회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런 입장을 두고 진보 진영 내의 반응은 엇갈린다. 최근 ‘최장집의 한국 민주주의론’이란 제목의 학술 심포지엄에서는 ‘엘리트주의’ ‘제도권 정치론의 한계’를 지적하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 박사. 고려대 교수와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 자유주의

자유주의(liberalism)는 국가권력의 행사 범위에 대해 어떤 경우에도 개인 기본권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입장의 정치 체제(이념)이다. 전체주의와 대비된다. 최근 논란이 된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에 등장한 경제 사조로서 경제 부문에서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 민주주의(democracy)는 권력을 누가 행사하느냐에 따른 분류 유형으로 인민(people)이 주권자인 체제다. 반대편에 1인에 의한 독재, 소수에 의한 과두제가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한 좀 더 진화한 형태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