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의 과정과 교훈
염돈재 지음|평화문제연구소|412쪽|1만5000원
먼저 저자의 이력이 이채롭다. 지금은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을 맡고 있지만 그는 국가정보원에서 40년 가까이 해외 업무를 담당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 청와대비서관으로 파견돼 북방정책을 입안하고 동구권과의 수교 과정에서 실무를 담당했고, 독일 통일 당시는 주독일 한국대사관 공사로 3년간 근무하면서 현장을 지켜보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국내에 전파돼 있는 독일 통일상(像)과는 상당히 다른 문제들을 제기하며 한반도 통일의 지혜를 추출해내고 있다.
저자는 먼저 독일 통일의 원동력은 사민당 브란트 총리의 '신동방정책'보다는 그 이전 기민당 아데나워 총리가 추진한 '힘의 우위' 정책이었다고 본다. 흔히 햇볕정책의 원조처럼 여겨지는 브란트의 정책은 통일정책이라기보다 통일을 포기한 '분단의 평화적 관리정책'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독일 사민당은 이후에도 일관되게 통일을 반대했다. 그 '원죄' 때문에 독일이 통일된 후 사민당은 흡수통일의 후유증을 강조하는 데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이 한국에서는 대북 지원의 당위성을 도출하는 근거로 활용됐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통일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대북 지원을 통해 북한 경제를 회생시켜 놓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과정에서 독일 통일 후유증이 거론되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는 한국 지식사회가 독일 통일의 주역인 기민당 관련 인사보다 통일의 반대 세력이었던 사민당 관련 인사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우리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하버마스, 귄터 그라스, 패트릭 쥐스긴트 등은 독일 내에서도 통일에 대해 가장 험담을 많이 하는 좌파 지식인들이다."
책은 통일문제의 시각에서 동·서독의 탄생부터 통일정책의 형성, 통일과정, 통일 후의 문제를 단계적으로 짚어가며 한반도 상황을 대입시켜 우리에게 실질적인 교훈을 이끌어내는 데 주안점을 둔다.
분단의 수준과 환경을 비교할 때 독일은 1952년 체결된 조약에 따라 제2차 세계대전 전승(戰勝) 4대국의 동의가 필수적이었지만 한반도는 남북한이 합의할 경우 이런 절차가 필요 없다. 외부적으로는 용이한 반면 내부적으로는 어려움이 더 크다. 남북한의 경우 내전으로 인해 상호 적대감의 수준이 심각하고, 집권층의 체제 수호 의지도 북한이 동독보다 월등히 높다. "북한의 경우 6·25전쟁, 대남 도발 및 주민 탄압의 죄과를 가진 세력들과 만경대학원 출신자 등 김일성·김정일 체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이 많고, 주민들이 공산주의 선전에 세뇌되어 있어 북한 공산정권이 붕괴하는 데는 훨씬 오랜 기간의 진통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책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중앙기록보존소에 대한 해설이다. 서독은 1961년 동·서독 국경지역인 잘츠기터에 동독의 악행과 인권탄압 사례를 수집·보존하기 위해 중앙기록보존소를 설치해 통일될 때까지 30여년간 약 8만명에 관한 기록을 확보했다. 그중 1만명은 통일 후 형사소추가 가능한 피의자들이었고 나머지 7만명은 증인 및 피해자들이었다.
중앙기록보존소는 정보기관은 물론이고 석방된 동독 정치범, 탈출한 동독 군인(장벽 설치 후 2600명), 동독의 각종 간행물, 동독 방문 서독인 등을 광범위하게 접촉하고 증언을 청취해 기록화했다.
한국에도 참고가 될 만한 이 기구를 설립한 이유에 대해 저자는 첫째 동독 주민의 인권 보호, 둘째 통일 후 법치국가적 질서 확립을 위해 정치적 목적으로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 마련, 셋째 미래의 처벌 가능성을 경고함으로써 정치적 폭력행위를 완화할 수 있는 것 등을 꼽았다.
저자는 독일의 경우에 비추어 탈북문제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독일은 1962년부터 27년간 34억여마르크를 대가로 지급하고 동독 정치범 3만3755명과 그 가족 25만여명을 서독으로 데리고 왔다. "이 사업은 인도적 측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동독 정치범의 서독 이주로 인해 동독 내 반체제 세력의 형성이 지연되었다는 점이 통일 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저자는 독일 통일 과정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째, 안정되고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북한 주민들이 선망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대북 화해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힘의 우위'를 확고히 해야 한다. 셋째, 경제적 지원은 전략적 고려하에서 이뤄져야 한다. 넷째, 한반도 통일에는 독일보다 훨씬 큰 위험과 희생이 수반될 것이기 때문에 국가 최고지도자의 확고한 통일 의지와 결단력, 정확한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 통일 후유증은 실은 분단의 후유증임을 인식하고 그 후유증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로타 드메지어 전 동독 총리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책을 끝맺는다. "분단은 분담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고통을 분담하려는 국민적 의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독일 통일의 원동력은 '햇볕정책'이 아니라 '힘의 우위' 정책이었다"
'사회쟁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해군기지건설...시비 (0) | 2011.08.06 |
---|---|
종북세력들은 살생부까지... (0) | 2011.07.17 |
토요일이 빨간요일이 되면.... (0) | 2011.06.29 |
KT의 2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중지안 무산... (0) | 2011.06.26 |
저축은행 부실실태... (0) | 2011.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