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안하고 파업 … 외국인 간부 가두고 … 중국 문혁세대가 꿈꾸던 혁명세상이 지금 여기 한국에 있다고 하더라”
김문수 경기지사가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그는 “중국은 잘짜인 정치 리더십 때문에 내가 갈 때마다 쇼크를 받을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며 “한국 정치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 |
지난달 26~27일 중국 상하이·우시·쑤저우를 다녀온 김문수 경기지사는 16일 “중국은 갈 때마다 확확 변한다. 매번 쇼크를 받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앙일보 편집국 소회의실에서 인터뷰에 응한 김문수 지사는 손바닥만 한 수첩에 깨알같이 적힌 글자를 가끔 살펴보며 ‘중국 쇼크’와 한국 정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 지사는 “중국은 확실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엄청난 속도로 가고 있는데, 대한민국에선 리더십에 대한 합의가 없고, 성장에 대한 반감만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의 변화상에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중국 공산당은 우리보다 더 기업 친화적이다. 중국 공산당원과 밥을 먹었을 때 내가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을 다 읽었는데 내가 본 중국은 그 사상과는 다르더라’라고 말하니까, 그 사람은 ‘인민들 잘살게 하고 국가가 발전하면 되는 거지 공산주의가 별거냐’고 하더라. 공산당의 높은 간부가 아닌데도 그의 입에선 이렇게 국가의 목표가 척척 나온다. 우리 국회의원들은 그런가?”
-현장에서 체감한 중국의 국력을 말한다면.
“중국은 세계 1, 2등을 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모두 64억 달러를 LCD 공정에 투자하겠다고 해도 안 받겠다고 한다. 이제 자기네가 세계 최고 시장이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골라서 투자를 받겠다는 거다. 나는 고작 2000만 달러를 유치하러 중국까지 갔는데, 저 사람들은 그 320배를 투자하겠다고 우리가 사정사정 해도 안 받아준다고 하니 내 ‘꼬라지’가 한심하더라.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에 투자했다가 철수했을 때 우리가 ‘먹튀’라고 욕한 탓도 있다. (쌍용차 사태 당시) 상하이자동차 부총재 2명이 쌍용차 파업을 얘기하며 ‘우리는 문화혁명 세대다. 당시 우리가 꿈꿨던 그 혁명 세상과 똑같은 것이 지금 여기 한국에 있다’고 하더라. ‘사람들이 일은 안 하고 공장 바닥에 앉아서 계속 파업하고, 외국인 간부들 잡아서 봉고차에 태워놓고 조사하고…. 일 안 하고 파업만 하는 한국 노조야말로 가장 혁명적인 노조’라고 하더라. 중국 문혁 세대가 그런 한국을 보며 학을 뗐다는 얘기다.”
-중국이 왜 그렇게 빨리 성장하고 있다고 보나. 정치 시스템이 좋기 때문인가.
“중국 공산당엔 인재 양성 시스템이 잘 돼 있다. 피라미드식 리더십 구조로 일정한 서열화가 돼 있어 (지도자급 인사들이) 적절한 때 물러나면 내부에서 훈련된 사람들이 올라가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공산당의 정신으로 일종의 애국심인 홍(紅)과 기술과 경영 마인드인 전(專)이 잘 결합돼 있다. 그런데 우리에겐 그런 게 없다. 리더십의 우월성이 없다는 거다.”
-우리가 중국 시스템을 배워야 한다는 얘긴가.
“배워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이 현상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우리는 어떻게 할 거냐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걸 하는 게 지도자의 책무다. 그런데 우리 여당에서조차 연구가 부족하다. 여당 국회의원과 간부들이 공부를 해야 한다. 북한은 요즘 어떤 상태인지, 친서민 정책이 맞는지 등을 놓고 전문가 등과 토론도 해야 한다. 우리에게 정쟁은 있지만 나라와 국민과 세계를 향한 모색과 토론이 과연 있다고 보느냐. 한나라당은 중앙연수원을 빨리 활성화하고, 여의도연구소를 강화해 국가 비전을 논의하고 민심의 동향에 대해 깊이 파악하는 등 시스템의 대개혁을 해야 한다.”
김 지사는 9일 경기도 월례조회에서 중국에 대해 언급하다가 “자고 일어나면 총리라고 나타나는데, (국민은) 누군지 모른다”고 말했다. 당시 정치권에선 김태호 총리 후보자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했다.
-당시 김 후보자의 등장을 비판한 것이었나.
“마치 그를 겨냥한 것처럼 비쳐져 전화를 걸어 ‘뜻하지 않게 됐다’고 사과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리더십엔 ‘깜짝쇼’의 측면이 많다. 포퓰리즘도 작용한다. ‘비장의 깜짝 인사’는 안정, 신뢰와는 배치된다.”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는 김 지사의 오랜 동지인데 그가 차기 대권에 도전한다고 하면 어떤 생각을 할 건가.
“정치인으로서 그런 (대권) 꿈을 꾸지 않겠나. 미묘할 거 하나도 없다.”
-이 후보자가 개헌을 적극 추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개헌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원 3분의 2를 확보해야 하는데, 어디 가서 확보하나.”
-‘임기 중 지사직을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걸 봤는데, 2012년 당 대선 후보 경선에 안 나간다는 건가.
“현재로선 어떻게든 지사직에 충실하려고 한다.”
-‘서민형 지사’로도 불리는데 정부의 친서민 드라이브에 대한 생각은.
“서민 아닌 사람들이 모여 서민들한테 다가가는 친서민이 아니라, 서민이 한나라당 구성원으로 동참하는 ‘원조 서민정당’이 돼야 한다. 대기업을 때리면서 친서민인 것처럼 하다가는 포퓰리즘에 빠질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나.
“박근혜 전 대표와 잘 못 지내는 게 한계다. 대통령은 싫어할지 모르나 나는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 늘 ‘박 전 대표가 당내 경쟁자였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한다’고 말씀 드린다.”
-박 전 대표를 평가한다면.
“우리 정계의 독보적인 수퍼스타 아니냐. 대중적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고.”
박 전 대표의 단점에 대해 묻자 김 지사는 “대중과 소통을 좀 더 많이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