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일본정부의 재정적자는...

제봉산 2010. 2. 10. 10:11

1경1249조원 '천문학적 나랏빚'… 코너 몰리는 경제거인 일본

[또 하나의 괴물이 온다 '재정위기'] 3. 다시 잃어버린 10년으로 - 일본
빚 1초당 1561만원↑… 올 GDP 200% 넘을 듯
90년대 버블붕괴 이후 잇단 경기부양책 '부메랑'
세수감소·고령화 따른 재정지출 증가 난제 첩첩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유지 요코야마(오른쪽) 일본 도요타자동차 상무가 9일 정부에 리콜 관련 서류를 제출하며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일본은 최근 재정건전성 악화와 함께 대표 제조업체인 도요타의 리콜 사태까지 겹치며 총체적 난국에 직면해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제평론가 다카라베 세이치(財部誠一)가 운영하는 웹사이트(http://www.takarabe-hrj.co.jp)에는 '빚시계(借金時計)'가 돌고 있다. 일본의 나랏빚을 표시해주는 시계다. 이 빚시계는 지금도 초당 120만엔(한화 약 1,561만원)의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9월 일본 재무성이 발표한 국가채무는 864조 5,226억엔(한화 약 1경 1,249조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는 18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단연 1위다. 올해는 국가부채가 900조엔을 돌파해, GDP의 200% 즉 경제규모의 2배에 달하는 빚을 지게 될 전망이다. 일본 전체가 아무 것도 안 쓰고 2년간 번 돈을 꼬박 모아야 겨우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얘기다.

도요타의 리콜이나 일본항공(JAL)의 법정관리처럼 요즘 일본경제가 무너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지만, 사실 재정위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금융위기 이후 유독 일본만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진 것도 결국은 재정문제로 귀결된다.

시장에선 이미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는 일본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여차하면 실제 등급을 내리겠다는 뜻. 피치 역시 "일본이 국채를 대량 발행하면 국가신용등급을 재검토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이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 직접적 원인은 '잃어버린 10년'에 있다. 1990년대 부동산 버블 붕괴로 장기불황의 늪에 빠지자 일본 정부는 2000년까지 무려 9차례의 경기부양책을 통해 124조엔의 재정을 쏟아 부었다. 물론 재원은 대부분 빚(국채)이었다. 이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일본 정부는 결국 2011년으로 목표했던 재정흑자 달성시기를 10년 후로 미룬 채, 또다시 재정출혈을 감수했다.

하지만 재정지출이 이렇게 늘어나는데도 세수는 제자리, 아니 오히려 뒷걸음질이다. 올해 일본의 조세수입은 26년만에 최저인 37조 4,000억엔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신규 국채 발행액(44조엔)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나라살림을 꾸리는 데 자기 돈(세수)보다 빚(국채)에 더 의존한다는 얘기다. 가정이나 기업이라면 이미 쓰러져도 몇 번은 쓰러졌을 상황이다.

세수부진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국가이다 보니, 세금 낼 사람이 줄어드는 것. 게다가 고령화로 인한 사회보장지출이 늘어나 재정적자는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이대로가면 일본은 빚조차 내기 힘든 상황에 처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금까지는 그나마 가계가 국채를 직접 매입하거나 금융기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사들였으나, 저축률이 떨어지면서 국채소화 능력에도 한계가 온 것. 일각에서는 가계가 국채를 감당할 수 있는 기간이 10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가 현재의 세입-세출 구조를 유지하는 한, 어떤 경우라도 빚은 늘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재정적자 대부분이 (고령화 같은) 구조적 요인 때문에 발생하고 있어 경제가 회복되어도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유럽연합(EU) 회원국이 재정적자를 GDP 3% 이내로 의무 관리토록 하는 것처럼 일본도 상한선을 정해 재정수지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도 6월까지 중기 재정대책을 내놓겠다고는 했지만, 뾰족한 수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당장의 경기부양이 급한 정부로선, 재정건전성보다는 여전히 디플레이션 탈출이 더 관심사인 탓이다. 더구나 7월엔 참의원 선거가 있어, 사회보장정책 축소나 세율인상 같은 개혁안이 나오기도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본이 재정개혁을 늦추면 늦출수록 또다시 '잃어버린 10년' 아니 '영영 잃어버린 미래'가 올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