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산 , 산행

어떤 킬리만자로등정기

제봉산 2010. 2. 6. 10:58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정상 서쪽 봉우리(키보) 가까이에 말라 얼어 죽은 한 마리의 표범 시체가 나뒹굴고 있다.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은 무엇을 찾아 헤매었던 것일까?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후략)’

미국의 세계적인 작가이자 소설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1936년 발표한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The Snows of Kilimanjaro>의 서문 중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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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냐 나이로비에서 탄자니아 모쉬로 가는 도중에 우연히 만난 기린떼. 사파리가 아니고 실제 자연 속에서 사는 기린들이다.  

 

 헤밍웨이는 그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소설 속에서는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6,000m 가까이 되는 고도에서 표범은 살 수 없고, 더욱이 표범이 먹이를 구하러 그 높은 곳에까지 올라가지 않으리라는 것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헤밍웨이가 그의 인생 내내 강박관념에 시달렸고,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고독과 죽음, 그리고 그 이상의 세계를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킬리만자로,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5,895m)이고, 인간이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산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고, 몇 번쯤은 그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 킬리만자로를 9박10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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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랑고 게이트 입구에서 일행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 내리는 순간, 열대 지방으로 숨이 턱 막힐 줄 알았지만 시원한 느낌이 들어 전혀 의외였다. 나이로비는 적도에서 남쪽으로 불과 150㎞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열대지역이지만 해발 1,700m의 고지에 위치해 있어 연 평균기온은 18℃정도로 무덥지 않고 따뜻하다. 건조한 날씨에 바람도 선선하게 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모시로 향했다. 이미 비행기로 20시간 이상 날아온 터라 여독이 더 쌓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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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대의 밀림 속에서 일행이었던 GM대우산악회 팀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모시 현지 시각으로 밤 10시30분. 방콕에서 예상치 못한 비행기 연착으로 6시간을 더 지체해 한국에서 출발한 지 꼬박 32시간이나 걸렸다. 사람들은 모두 지쳐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인사할 여유도 없이 대충 요기나 하고 다음날 킬리만자로 등반 출발지인 마랑고게이트(MARANGO GATE)로 출발을 위해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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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랑고 게이트에서 만다라 산장 가는 길은 밀림의 우거진 숲을 즐길 수 있다.

 

 아프리카의 하늘은 깨끗했고, 밤하늘의 별들은 총총했다. 한국에서 보지 못한 별 같았다. 이국의 밤하늘을 보며 감상에 빠져든 시간도 잠시, 시계바늘은 순식간에 돌아 밤하늘을 빛냈던 그 별들은 아침이 되자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마랑고게이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약 1시간 걸린다고 가이드가 전했다. 아프리카의 도시 모시 시내 풍경은 처음 방문하는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열대과일을 길거리에서 그대로 팔거나, 양고기인지 소고기인지 고기를 걸어놓고 파는 부처(BUTCHER, 푸줏간)란 글자를 커다랗게 써놓은 가게도 자주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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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림의 우거진 숲은 계속 된다. 등산로도 잘 닦여져 있다. 사진 GM대우산악회

 

 드디어 킬리만자로의 출발지인 마랑고에 도착했다. 실질적으로 등산 첫째 날이다. 해발 1,970m인 마랑고게이트엔 킬리만자로 국립공원관리본부가 있어 등산객을 통제하고 안내한다. 킬리만자로 국립공원은 2,700m이상부터이지만 자연자원의 보존과 관리,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이곳에 있었다. 공원 안내판에는 국립공원이 시작되는 만다라(MANDARA)산장까지 3시간, 해발 3,720m의 호롬보(HOROMBO)산장까지 5시간, 4,703m의 키보(KIBO)산장까지 5시간, 5,681m의 길만스(GILMAN‘S)까지 5시간, 최정상인 5,895m의 우후루피크(UHURU PEAK)까지 1시간30분 걸린다고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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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랑고 게이트 입구에 있는 한스 마이어 동상.

 

 입구에는 독일인 한스 마이어(HANS MEYER)의 동상이 있다. 1889년 유럽인 최초로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른 인물이다. 바로 그 옆 동판엔 한스 마이어가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도운 가이드 요하나 라우워(YOHANA LAUWO)와 포터 맘바 코웨라(MAMBA KOWERA) 등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한스 마이어는 킬리만자로가 케냐가 아닌 탄자니아령이 되도록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시 마이어가 아프리카 최고봉을 등정하자,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킬리만자로가 탐이 났다. 빌헬름 2세는 영국령 케냐에 속해있던 킬리만자로를 독일령 탄자니아로 넘겨달라고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게 간청했다. 이에 빅토리아 여왕은 흔쾌히 받아들여 킬리만자로를 탄자니아로 넘겼다. 독일의 빌헬름 2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큰 딸인 제1왕녀 비키의 아들이었고, 빅토리아 여왕은 외손자인 빌헬름 2세에게 엄청난 생일 선물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직선으로 된 국경선이 킬리만자로에서 곡선으로 돌아가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처구니없는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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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랑고 게이트를 지나 해발 2700m의 밀림 속에 있는 만다라산장도 아직까지는 밀림이다.

 

 마랑고 입구에서 통과절차를 밟고 있는 동안 안개는 자욱했고, 비는 오락가락했다. 우의를 입어야 할지, 그대로 가야할 지 애매한 날씨였다. 마침 통과절차는 끝나고 만다라 산장을 향해 일단 그냥 출발했다.

 숲속 길이다. 포터들이 다니는 길은 차량이 다닐 수 있는 큰 길이었지만 등산객들은 숲속으로 부드러운 화산흙으로 복토해서 길을 안내했다. 숲은 울창했다. 아프리카의 밀림 모습 그대로였다. 무성한 이끼가 낀 상태의 거의 50m는 될 법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성인 몇 사람이 둘러싸야 겨우 감길만한 둥치 큰 나무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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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에 바위가 붙어 있다. 화산지형이라 가능한 모습이다.

 

 킬리만자로 지형은 대략 1,000m 고도에 따라 5가지로 나뉜다. 가장 저지대는 경작(Cultivation)지형이다. 이곳에서 농작물과 과일을 재배한다. 바로 그 위의 지형이 숲으로 우거진 산지(Mantane Forest)로 1,800~2,700m까지 해당되는 지역이다. 얼추 4,000m까지는 킬리만자로 관목과 황무지(Moorland)의 모습을 띤다. 5,000m까지는 고산사막(Alpine Desert 또는 High Desert)지형이다. 관목도 사라지고 풀들만 여기저기 흩어져 자란다. 그 이상은 만년설(Ice Cap) 또는 빙하지형이다. 킬리만자로를 오르면서 열대와 한대기후 모두 거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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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다라산장 바로 옆 밀림에서 살짝 모습을 보인 흰꼬리원숭이의 모습. 매우 귀하게 보였다.

 

 마랑고 게이트를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만다라 산장까지 7.1㎞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왔다. 등산로는 밀림 속 오솔길 같이 한적했고, 타잔과 원숭이나 동물들이 금방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숲 구경하기에도 여념이 없다. 지대는 조금 높지만 마치 거대한 ‘산소저장고’ 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기분마저 상쾌해졌다. 아프리카는 남미의 아마존 다음으로 산소를 배출하는 세계 제2의 밀림지역임을 실감나게 했다. 지금 그 속에 들어앉아 있다. 여태 경험하지 못한 멋진 신세계,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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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다라산장에서 1킬로 가까이 올라가면 마운디 화산 분화구가 하나 나온다. 나무의 모습들이 서서히 관목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점점 높아지는 고도로 인해 낮아진 기압이 귀를 압박하는 듯했다. 귀가 잠시 멍해졌다. 천천히 걸었다. 올라갈수록 나무의 모습과 형태가 달라지는 게 보였다. 원시 밀림의 굵은 나무에서 그 굵기가 점점 줄어들었다. 마치 우리 참나무 같은 굵기로 변했다. 나무에 기생하던 짙푸른 이끼들도 색이 많이 바래 있었다.

 출발한 지 5시간쯤 지나 만다라 산장에 도착했다. 해발 2720m로 적혀 있었지만 GPS로 측정해보니 2716m로 나왔다. 그 정도 오차야 기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랑구게이트에서 만다라 산장까지 GPS 거리로 9.3㎞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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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다라산장 식당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산장 주변엔 텐트 친 외국인들이 많았다. 그 중에 서울에서 온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부부 모두 60세를 넘긴 퇴직한 분인 듯했다. 케냐에 살고 있는 딸집에 들렀다가 킬리만자로 등산이나 갔다 오라고 해서 등정하고 내려오는 길이라고 했다. 부인은 머리가 아파 오르지 못했고, 남편은 거뜬히 올랐다고 자랑했다. 부인은 “지리산 종주나 설악산 오색코스보다 훨씬 쉬운 길”이라고 전했다. 이 말로 인해 킬리만자로를 쉽게 봤다가 고소증세를 심각하게 두 번이나 겪는 곤욕을 나중에 치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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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다라산장에서 호롬보산장으로 가는 길은 잘 정비됐지만 완전히 관목의 모습을 띠고 있다.

 

 만다라 산장은 밀림 중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 숙소는 숲과 가장 가까운 외곽이었다. 실제로 바로 옆 숲속에서 흰꼬리원숭이들이 살짝 모습을 비쳐줬다.

오락가락하던 비는 만다라 산장에 도착하고 마운디분화구(MAUNDI CRATER)까지 갔다 와서야 쏟아지기 시작했다. 밤새 계속 내렸다. 내일은 비가 오지 말아야 할텐데…. 만다라의 빗속의 밤은 훌쩍 지나갔다.

 

 ‘국내산행서 시속 4㎞로 걷다 킬리만자로서 1㎞로 가다… 느림의 미학 깨달아’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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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롬보산장을 향해서 포터들이 짐을 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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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롬보산장은 인종전시장을 방불케 할 만큼 세계 각국에서 등산객들이 모여 있다. 사진 신용보증기금 이병복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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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롬보산장에서 고도적응을 위해 해발 4,000m 조금 위에 있는 Zebra Rock에서 일행이 비를 피하고 있다. 바위가 얼룩말 같은 색깔을 띠고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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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00m의 고도를 지나면 황량한 사막같은 대평원이 끝없이 펼쳐지는 듯하다.   

 

***국내에서는 시속4km, 길리만자로에서는 시속 1km를 ***

다행히 이튿날 아침에 날씨는 개었다. 이날은 3,780m 높이의 호롬보산장(HOROMBO HUT)까지 가야 한다. 길은 순탄했다. 키 큰 교목들은 사라지고 관목과 초본식물들이 평원을 차지하고 있었다. 허브향을 내는 들국화 같은 식물들도 여기저기 만발했다. 등산로는 허브향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상큼한 분위기는 잠시 어찔한 순간을 느끼면서 신체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바뀌었다. 한참 걷는 와중에 갑자기 머리가 아파지면서 비틀했던 것이다. 순간 ‘아, 고소증세인가’ 싶어 GPS를 꺼내 고도를 확인하니 3,196m였다. 천천히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평소 습관대로 조금 빨리 걸은 결과였다. 그 때까지도 탄자니아 말인 뽈레뽈레(Pole Pole, 천천히 천천히)란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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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m를 지나면 우리 들국화 비슷한 관목들이 초원에 널려 있다. 허브향을 내는 꽃들도 많다.

 

‘조심조심 걸어야겠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무사히 호롬보산장에 도착했다. 만다라에서 호롬보까지 GPS 거리로는 11.9㎞였다. 호롬보는 킬리만자로를 찾는 많은 등산객들이 오르내리는 중간 기착지였다. 마치 인종 전시장을 방불했고, 이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음성다중 스트레오 방송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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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목들이 등산로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모시에서 출발할 때 잠시 만났던 미국인 여자(Meghan 메간)를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남한인지 북한인지 다시 물었다. “북한 사람을 여기서 본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전혀 없다고 했다. “아마 이런 곳에서 북한 사람들이 보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해줬다. 젊은 여자가 이렇게 높은 산에 오는 이유가 궁금했다.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Because there(거기 있기 때문에)” 서로 한바탕 웃고 성공적인 등산을 기원하며 각자 팀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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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힘든 곳을 오르느냐고 물으니 "Because there"라고 답한 미국 처자 메간. 사진 찍자고 하니 당돌하게 바로 어깨동무를 했다. 그녀의 왼손이 나의 왼쪽 어깨가 올라있다.

 

셋째 날은 호롬보 주변에 있는 마웬지산장 중간쯤 자브라록(ZEBRA ROCK, 얼룩말 바위)까지 고도를 4,000m까지 높여 고도적응 시간을 가졌다. 등산 내내 비가 오락가락, 안개가 잔뜩 끼었다가 순식간에 개는 상황을 반복했다. 아프리카 대륙에 우뚝 솟은 봉우리라 지나가는 구름이 쉬었다 가는지 일기변화가 더욱 심한 듯했다. 10㎞ 남짓 걸어 고도적응훈련을 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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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롬보 산장은 세계 각국에서 온 등산객들로 가득했다.

 

오후엔 산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저녁때쯤 뜻하지 않은 등산객 한명이 우리 숙소의 빈 자리를 찾았다. 거의 사색을 띤 얼굴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처음에 그 정도로 심각한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다. 동료들이랑 같이 왔다가 고도적응 시간 없이 그대로 올랐다가 심한 구토와 두통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이키, 이게 아니구나’ 싶어 일단 자리에 눕히고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급하게 내려오느라 침낭과 짐도 가져오지 못한 상태였다. 따뜻한 침낭을 내주며 한숨 자라고 권했다. 약도 먹였다. 너무 고마워 눈물을 흘리며 잠을 청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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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통상대로 하면 건기인데, 지구온난화의 영향인지 비 오고 구름끼는 날이 잦았다.

 

넷째 날인 다음날 조금 안정을 되찾은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안 사실은 그녀의 이름은 토모미 타카다(Tomomi Takata), 일본 도쿄 인근의 가나가와현 중학교 지리교사였다. 케냐의 국립공원에 올 기회가 있어 멀리서 바라 본 킬리만자로를 동경하고 있다가, <내셔널 지오그라피>를 보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실제 경험한 뒤 이론과 실제를 전달하는 게 훨씬 교육적일 것 같아 킬리만자로를 찾게 됐다고 했다. 매우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칭찬했더니 더없이 고마워했다.

그녀는 동료를 기다리다 두바이로 갈 거라고 했다. 덕담을 주고받은 후 마지막 산장인 키보(KIBO HUT)로 향했다. 길은 순탄했고 주위는 황무지와 같은 대평원이었다. 만나는 등산객들은 서로 “헬로우” “잠보(탄자니아 인사말)” 등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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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4,000m 남짓 고도적응 훈련 중인 일행들. 주변은 관목도 서서히 없어지고 있다.

 

이 때부터 ‘고도를 조심하라’는 말을 빼먹고 지리산 종주나 설악산 오색코스보다 순탄하다는 그 말만 기억에 담았던 죄값을 톡톡히 치르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조금 느린 속도로 나아가다 서서히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과 온몸이 쑤셔오는 고통을 겪었다. 가다 쉬다 가다 쉬다를 수차례 반복했지만 낫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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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m 남짓 고지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킬리만자로 세네시아. 이곳에서 있는 관목이다.

 

등산 중 모처럼 화창한 날씨를 맞았지만 풍광을 즐길 여력도 별로 없었다. 고도를 확인하니 4,092m. 마지막 식수 공급처인 라스트 워터 포인트(LAST WATER POINT)에서 휴식을 취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주변엔 아직 초본식물들로 가득했다.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이다. 길은 말 안장 같은 대평원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길 이름도 안장길(THE SADDLE)이라고 이정표를 붙여놓았다.

고도 4,326m를 확인하자 이젠 초본식물도 사라지고 황량한 들판의 연속이다. 중간에 조그만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화장실이다. 남자야 상관없지만 여자들에겐 요긴할 것 같았다. 하기야 여자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대충 눈에 띄어도 상관없이 볼일을 보곤 했다. 보는 사람도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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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2m에 있는 마지막 식수처인 라스트워터포인트. 식물의 변화가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4,492m의 높이에 키보산장이 보이는 곳에 마지막 쉼터가 있었다. 그곳에서 아예 누워버렸다. 하늘이 빙빙 돌았다. 포터가 주는 음식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겨우 견뎌 1시간30분가량을 쉬었는데도 현재까지 온 거리를 시속으로 계산해보니 약 1.4㎞가 나왔다. ‘이러니 이런 고통을 받는 거구나’하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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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막 식수처를 지나면 그야말로 황량한 대평원이 계속된다. 쉽게 오르다 정말 큰코 다친다.

 

호롬보에서 키보산장까지 불과 10㎞정도 되는 거리를 거의 7시간 이상 걸려 겨우 도착했다. 너무 힘들었다. 문득 ‘왜 내가 산에 올라가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 때문에? 산이 거기 있어서? 헤밍웨이의 존재와 죽음의 의미를 찾아서? 아님 헤밍웨이의 표범을 찾기 위해서? 온갖 상념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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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한 지대라 비나 안개가 내리면 바로 지면에서 수증기나 아지랑이 같이 솔솔 피어 오른다.

 

다섯째 날 정상 등반 시도는 밤 12시로 예정돼 있다. 키보 도착 후 3시간가량 쉬면서 식사를 하고 취침에 들어갔다. 하지만 깨어질 것 같은 머리는 좀처럼 진정되질 않았다. ‘여기서 포기할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몸 상태를 회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한숨 못 자고 일어날 때까지 심호흡을 시도했다. 밤 11시에 깼을 때 조금 나은 듯했다. 대충 누룽지를 챙겨 먹고 예정된 밤 12시에 킬리만자로 정상을 마침내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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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산장인 키보. 키보산장 바로 뒤에 킬리만자로 최정상 봉우리인 눈 덮인 키보가 있다.

 

심야에 등정을 시도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키보 정상에서 마웬지 봉우리위로 솟아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심야의 언 상태의 화산흙은 걷기에 편하다. 셋째로 정상의 기상은 오후로 갈수록 나빠질 가능성이 크고, 마지막으로 점심때쯤 늦지 않은 시간에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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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 맞은 편에 있는 또 다른 봉우리 마웬지. 키보와 달리 만년설이 녹은 게 눈에 확 띤다.

 

일행들은 일제히 헤드랜턴으로 컴컴한 킬리만자로의 밤길을 밝히며 발걸음을 옮겼다. 전날은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려 한숨도 못 잔 관계로 잠이 쏟아졌다. 발걸음이 늦어지고 조금 휘청거리자 불안한 지 포터가 한명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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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이 밤 12시 헤드랜턴을 켜고 정상을 향해 일제히 출발했다.  

 

일행과 거리는 점차 벌어졌다. 길은 전날까지 걸어왔던 길과는 전혀 달랐다. 경사도 급했고, 완전한 눈길이었다. 호흡은 더욱 가팔라졌다. 이제는 절실히 깨달았다. 처지더라도 절대 따라붙지 말자고. 심호흡을 계속했다. 정신 차리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 없었다. 포터에게 자고 가자고 했다. 영하의 날씨에 컴컴한 킬리만자로 만년설 바로 아래서 잠시 쪼그려 앉아 얼굴을 팔에 기댔다. 5분이나 흘렀을까, 포터가 흔들어 깨웠다. 이후에도 몇 차례 더 주저앉았지만 그때마다 포터는 깨웠다. 그는 너무 고마운 포터였다. 그의 이름은 리보(Libo). 혹시 킬리만자로를 찾는 등산객은 꼭 그를 찾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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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올라가는 길에 유일한 휴식처인 한스마이어 동굴. 일행들이 간식을 먹으며 쉬고 있다.

 

한스 마이어 동굴에 도착했다. 밤이라 보이지도 않았고, 정신도 없어 지나칠 뻔 한 걸 포터 리보가 가르쳐 줘서 알았다. 등산객들의 쉼터다. 조그만 동굴에 50㎝가량 길이의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틈만 나면 잠을 청했다. 이보다 더한 고통도 없지 싶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었다. 오직 ‘포터 이 녀석이 너무 고맙다’라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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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터 리보와 함께 길만스 정상에 섰다. 무척 고마운 친구였다. 여러모로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점점 동이 터고 날이 밝을 무렵 포터 리보 덕분에 마침내 길만스포인트에 올라섰다. ‘당신은 지금 5,681m의 길만스포인트에 있습니다’란 탄자니아 이정표가 반겼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먼저 도착해 있던 외국인이 반갑게 맞이하더니 캔디 반쪽은 먹고 반쪽을 건넸다. 입에 넣고는 서로 성공을 축하한다고 말하며 포옹으로 자축했다. 포터도 매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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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엔 빙하가 아직 조금은 남아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 같았다.

 

최정상 우후루피크까지는 2㎞ 남짓. 길만스포인트 바로 맞은편에 있다. 중앙이 빙하가 있는 ‘킬리만자로의 눈(eye)’이다. 옆에서는 보이질 않고, 상공에서만 보일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만년설 위로 걷는 무난한 길이다. 사방이 시원하게 트여 시원하게 느껴졌다. 잠은 여전했고, 더욱이 이젠 허기까지 왔다. 어느 덧 해는 바로 머리 위에 떠있었다. 마침 지나가는 팀에게 간식을 얻어 요기하고 몸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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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설 위로 정상을 향해 가고 있는 일행들.

 

드디어 아프리카의 최정상 우후루피크에 우뚝 섰다. 길만스포인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정표에는 ‘축하합니다. 당신은 지금 5895m의 우후루피크 정상에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최고봉이며,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세계 최정상 봉우리’라고 소개하고 있다. 다시 마주 친 외국인들과 덕담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축하했다. 키보에서 킬리만자로의 정상 우후루 피크까지 약 6㎞를 무려 7시간이 걸렸다. 하산은 올랐던 길로 되돌아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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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standing으로 갈 수 있는 세계 최정상 킬리만자로 우후루피크에 우뚝 섰다.

 

산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준다. 도전의식과 성취감, 아름다운 풍광. 느림의 미학, 인내 등등.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에게 무심코 가르쳐준다. 그게 바로 산이다. 특히 고산일수록 더욱 그렇다. 고산에서의 느림의 미학과 인내를 이번 등산을 통해 절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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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행들이 만년설로 하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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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목으로 난 등산로로 포터와 일행들이 올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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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목을 지나면 황량한 사막과 같은 high desert 또는 alpine desert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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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야에 일행들이 랜턴을 켜고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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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에서 여명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다. 곧 일출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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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년설 위로 아프리카의 해가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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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을 뒤로 하고 만년설 사이로 하산하고 있는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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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마랑고 게이트로 내려와 포터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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