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스크랩] 햇빛촌

제봉산 2009. 11. 13. 12:00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대학 시절로 넘어 오네요. 햇빛촌 시절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우선 햇빛촌의 인적 구성이나 결성 동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또 음악적인 리더는 누구였는지도...
- 특별히 만들어진 동기나 큰 뜻 같은 건 없었어요. 그냥 음악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모였던 건데, 비록 아마추어였지만 남들이 만들어놓은 기성곡 대신 직접 쓴 곡 부르고, 기타 치면서 같이 노래하는 모임이었어요. 저녁이면, 빈 강의실 들어가서 둘러 앉아 각자 만든 곡을 들려주고. 모임치고는 굉장히 독특했어요. 멤버는 한승민 씨와 최기웅 씨, 이정한 씨. 이렇게 세 사람이 어릴 때부터 음악 좋아하는 친구들이었어요. 한승민 씨는 서강대 출신이고 최기웅 씨는 서울예전, 이정한 씨는 홍익대학교 학생이었죠. 다 비슷한 나이 또래였는데, 두 세살 정도 많은 함영국 씨도 있었고, 최성호 씨 그리고 명혜원 씨 지금은 영화 감독하는 배경윤이란 친구도 있었어요. 염기정 씨와 김일준 씨도 있었고, (신)유미 언니는 주로 노래를 많이 하셨고... 멤버들보다 윗 기수인 선배도 몇 분 있긴 했지만, 특별히 누가 음악을 리드하거나 하진 않았던 것 같네요.

Q: 주로 통기타로만 연주했나요? 기타를 특별히 잘 연주하던 멤버가 누구였는지도 궁금하네요.
- 그 땐 통기타만 갖고 했죠. 누군 리듬 치고, 누군 멜로디 연주하고, 또 누군 간주 연주하는 식으로 분담해서. 기타는 다들 잘 쳤던 것 같아요. 선배인 최성호 씨와 함영국, 한승민, 최기웅 이 셋이 중심이 됐던 것 같네요. 한승민 씨는 리듬 기타를 주로 쳤고, 최기웅 씨는 원래 기타를 잘 치던 분이었고...

Q: 노래 스타일은 주로 1970년대 포크송에 영향받은 스타일이었죠?
- 그랬죠. 주로 어쿠스틱 기타 위주의 음악을 했죠. 지금 남아있는 건 별로 없지만 창작도 굉장히 활발하게 했는데, 햇빛촌의 자작곡이 무척 많았던 것 같아요. 또 지금 생각하면 7~80년대 통기타 음악보다는 우리가 했던 음악이 좀 더 (메시지 면에서) 강했어요. '강했다'는 말은 노랫말이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는 뜻이에요. 민중가요 정도로 직설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회적으로 표현한 노랫말들이었죠. 4.19를 다룬 굉장히 처절한 노래도 있었어요. 멤버들 가운데 특히 한승민 씨가 작사를 참 잘 했어요. 글들이 너무 예쁜 게 많았는데... 러브 스토리를 담은 노래도 상투적인 표현은 하지 않았어요. [햇살이 있는 풍경](1984) 앨범에 있는 노래들은 대체로 예쁜 노래들이 많지만.

Q: 그 때 만든 노래들 중에 남아있는 건 하나도 없나요?
- 저는 저에 대한 기사니 포스터니 뭐니 하나도 안 모으거든요. 정말 하나도 없어요. 보통은, 옆에 누가 스크랩 해주는 사람이 있거나 아니면 자기가 기념으로 모으곤 하는데... 저는 조금 모아놨다가도 다 버리곤 했어요,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요. 갖고 있는 게 노트 하나뿐이예요. 햇빛촌 시절에 부르던 노래를 적어놓은 노트가 있거든요. 스프링 노트 있잖아요. 그 안에 보면 가사만 빼곡이 써 있어요. 가사 위에 코드 적혀 있고.

Q: 한국 포크 음악의 중요한 자료가 될 것 같네요. 그런데 가사를 보고 멜로디가 기억이 날런지요?
- 다는 기억나지 않아요. 그 중에 너무 좋은 곡들이 많은데... 나중에 제가 언제 한번 불러 볼까 생각도 했는데 지금은 힘을 분산시키고 싶지 않아서 미루고 있죠. 지금은 하고 있는 음악 한 길만 지켜가려고 해요. 햇빛촌 때의 음악은 또 다른 색깔의 포크거든요. 가사도 시적이고, 시대적인 요소도 많고. 김민기 씨나 조동진 선배 같은 음악에 영향을 많이 받았죠. 사실 초기의 포크 가수들은 기존에 있는 곡들도 많이 부른 케이스고. 실질적으로 싱어송라이터라고 한다면 김민기 씨나 한대수 씨나 조동진 씨 정도잖아요. 이정선 씨는 좀 나중이구요. 그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분이 이장희 씨였던 것 같고... 햇빛촌의 창작곡 역시 그런 사람들의 영향이 있는 노래들이었어요.

Q: 음악을 잘 안 들었다고 말하더니 그래도 고등학교 때 방금 말한 음악들은 좋아하셨나 봅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들었던 국내 통기타 음악의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 글쎄요. 아까도 말했지만 학교 다닐 때는 진짜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좋아했다 어쨌다 말하기는 좀 그렇네요. 대학 들어가서도 그냥 햇빛촌 활동만 열심히 했죠. 기존의 유행가가 어떤지는 전혀 몰랐어요. 방금 한 이야기는 아주 개인적인 것이고... 햇빛촌에서는 거의 외부의 곡이 불려지거나 들려지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완전 100%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노래들만 불렀어요.

Q: 햇빛촌은 공연도 했었나요? 카페 같은 곳에서라든가...
- 카페에서는 안 했어요. 그 대신 일주일에 한번씩 지금 명동역 입구에 있는 카톨릭 여학생 회관에서 주말마다 공연했어요. 거의 일년 넘게 했는데, 저희끼리 돈 걷어서 팜플렛도 만들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팜플렛 돌리고 했어요. 그리고 한번 와서 본 사람들은 주말 저녁에 하는 걸 아니까 고정으로 보러 오기도 했었어요. 또 서대문 근처에 젊은 사람들 모이는 마당 같은 게 있었는데, 노사연 씨나 이광조 씨도 노래한 곳이었어요. 저희도 거기서 한번 공연했던 기억이 나네요.

Q: 이때의 햇빛촌과 나중에 생긴 다른 햇빛촌과는 어떤 관계인가요?
- 이정한 씨가 그냥 햇빛촌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이죠. 여성 멤버 고병희 씨는 이정한 씨가 오디션을 봐서 뽑은 거지요. 그러니까 햇빛촌이란 음악모임은, 저희가 졸업한 다음 앨범 한 장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끝낸 셈이죠,

Q: 일종의 기념 음반이었던 셈이네요. 당시 햇빛촌과 유사한 노래모임인 징검다리(한양대)나 뚜라미(홍익대) 등은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 같은 곳에 나온 것으로 아는데 햇빛촌은 그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그렇죠. 저뿐만 아니라, 햇빛촌 내에서는 '가수를 하겠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저만 해도 노래를 계속할 생각이 없었거든요. 노래를 매개로 만나긴 했어도 각자의 일이 다 있고 노래는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영화를 하려던 친구도 있고, 카페 같은 것 하면서 짬짬이 나와 노래하던 언니도 있고, 그렇게 그냥 대학 생활 때 즐겁게 노래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러고 보면 햇빛촌이란 모임 자체가 대학 노래모임 중에서도 (요즘 말로 하면) 약간 '인디' 같은 성격이 있었던 것 같네요. 소속사 같은 데에 구애받지 않았고, 프로페셔널이라기보다 아마추어정신으로 활동했으니까.

Q: 햇빛촌의 음반 [햇살이 있는 풍경](1984)에서는 소리두울 이름으로 "눈 오는 날", "아침 햇살", "겨울로 가는 길" 등을 부른 것으로 나오는데요. 이때 이미 소리두울이 있었던 것인가요?
- 그 음반은 한 사람당 두 곡 정도씩 부르는 식으로 만들었어요. 정확히 무엇을 부른지는 음반을 들어 봐야 알겠네요(웃음). 그런데 음반 제작 당시에는 소리두울이란 이름이 없었어요. 음반에 소리두울로 표시되어 있는 것은 이 음반이 소리두울을 결성한 다음에 나와서 인쇄를 그렇게 한 것 같네요.

Q: 음반 녹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장필순 님 경력에서는 최초의 레코딩이라고 할 작품인데... 그리고 이 음반은 1984년에는 오아시스 레이블을 달고 나왔다가 나중에 뮤직 디자인으로 바뀌었는데 그 경위에 대해서도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제 기억에 지구레코드의 벽제 스튜디오에서 녹음했어요. 한 방에 들어가서 기타 하나씩 들고 둥그렇게 앉아서 녹음했던 기억이 나네요. 제작자가 누구였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고, 오아시스에서 나온 이유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뮤직 디자인(대표: 서희덕)이 판권을 사들여서 다시 발매한 것 같아요.

Q: 조금 혼동이 생기는데 햇빛촌과 소리두울 간의 관계를 정리하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먼저 햇빛촌으로 언제까지 활동하신 건가요? 소리두울의 노래가 실린 [캠퍼스의 소리](1984)가 나왔을 때는 햇빛촌은 없어진 상태였나요?
- 글쎄요, 제가 졸업하고 나서도 다른 친구들은 4년제 대학교를 다녔으니까 햇빛촌이 한동안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졸업하고 난 뒤에도 서강대 가서 공연한 일도 있고... [캠퍼스의 소리] 음반이 나왔을 때는 햇빛촌으로는 더 이상 활동하지 않았던 것 같네요. 그러니까 햇빛촌 당시에는 소리두울이란 이름은 없었던 거죠. 햇빛촌은 동아리 비슷한 개념의 그룹이었으니까요. 노래를 해도 '햇빛촌의 누구' 하는 식으로 자기 이름으로 노래하는 식이죠. [캠퍼스의 소리] 음반에 나온 사람들과 함께 방송에 한번 출연했는데 그때만 해도 소리두울이 아니라 그냥 '김선희 장필순'이라는 이름으로 나갔으니까요.


출처 : 夢友
글쓴이 : 夢友...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