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쟁점.

청계천의 양지에 묻힌 그늘

제봉산 2009. 9. 30. 08:24

“청계천엔 수천명 상인들 눈물이 흐릅니다”

내일 개장 4돌… 상인들의 절망
당시 이명박 시장 약속 믿고 이주 동의
‘가든파이브’ 분양가 너무 비싸 계약 못해
신용불량자 전락… 市에 행정소송 검토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16년째 전자부품상가를 운영하는 최한재씨(47)는 가게 앞을 흐르는 청계천을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최씨는 연 매출 8억원이 넘는 어엿한 소상공인이었지만 청계천 개발의 여파로 이젠 희망근로로 생계를 연명하기 때문이다.

28일 신용학씨가 청계천을 바라보며 청계천 개발로 상권이 몰락하고 이주도 못한 사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근기자최씨는 지난 1일부터 자신이 거주하는 경기 양주시에서 희망근로를 시작했다. 낮시간 동안에는 점포 문을 닫아놓는다. 희망근로를 마치자마자 다시 문을 열지만 찾아오는 손님은 거의 없다. 그는 "텅 빈 상가를 지키다 쓸쓸히 집으로 들어갈 때마다 가족들 생각에 어깨가 축 처진다"고 말했다.

최씨가 세운상가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은 1993년부터. 16.5㎡(5평) 남짓한 크기였지만 직원 2명을 고용하며 연간 매출을 8억원 이상씩 올렸다. 청계천 개발 얘기가 나왔지만 최씨는 오히려 새로운 사업 확장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당시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 상인 이주대책으로 특별 분양을 약속했던 '가든파이브'에 대한 기대가 컸다"고 털어놨다. 최씨는 이어 "디지털 아이디어 제품을 판매하려고 사업계획서도 몇 개나 만들어놨다"고 말했다.

최씨를 비롯해 상당수 상인은 2005년 말쯤에 열린 청계천 상인설명회 이후 가든파이브 분양가가 1억원을 넘지 않을 것으로 잔뜩 기대했다. 그러나 4년 뒤인 올해 들어 가든파이브에 입주하려면 4억5000만원을 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비싼 분양금을 마련할 수 없었던 그는 "속았다"며 결국 계약을 포기했다.

최씨의 고통을 가중시킨 것은 세운상가의 경영난. 16년째 지켜온 세운상가는 이미 절반가량이 철거됐다. 조만간 나머지도 철거가 예정돼 있다. 월 50만원이던 가게 임대료는 상권 몰락으로 3년 전 30만원으로 줄었다. 그는 상권 몰락과 이주대책 실패로 3500만원의 세금을 체납했다.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최씨는 "공공개발을 위해 삶의 터전까지 양보했지만 현재까지 어떠한 법적 보상도 받은 적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결국 일당 3만3000원짜리 희망근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청계8가에서 중고물품상을 하던 신용학씨(54)도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차로가 줄어들고 상권이 축소되면서 금융채무불이행자로 전락했다. 신씨는 "청계8가에서 액세서리·시계 등을 팔았는데 상권이 죽은 후에는 귀금속은 사는 사람이 없어서 아예 치우고 시계만 팔고 있다"면서 "한 달에 1000만원까지 매출이 있었는데 현재 10만원대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신씨는 영세 자영업자라 대출을 받지 못해 가든파이브 입주를 포기했다.

청계천이 오는 10월1일로 개장 4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상권이 몰락한 청계천변 상인들의 이주대책은 아직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청계천 일대는 개발 전까지만 해도 공구상가 등 6만2000여개 상가와 노점이 성업 중이었다. 그러나 청계천이 들어서면서 상권이 변화됐다. 상가들이 떠나면서 집적효과는 떨어졌다. 공구 상가 등의 상권은 몰락했다. 노점상들도 숭인동과 동묘 등지로 쫓겨나 근근이 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시는 수차례 조사 끝에 지난해 청계천 일대에서 영업 중이던 상인 가운데 4757명에게 가든파이브 입주 자격을 부여했다. 그러나 1200여명만 계약을 했다. 상인들은 높은 분양가 때문에 계약을 못했다. 2000여명은 아예 계약과 입주를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서울시를 대상으로 행정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다.

가든파이브는 높은 분양가와 위치 등의 이유로 분양률이 일반분양을 포함해 38%에 그치고 있다. 입점률도 13.5%다. 개장은 올해만 세차례 연기됐다. 가든파이브의 시행을 맡은 SH공사는 4차례에 걸쳐 상인들에게 특별분양을 실시했으나 계약자가 없어 일반인들에게 분양하고 있다. 서울시와 SH공사는 "조건이 맞다면 현재 시중 은행에서 청계천 상인을 위한 융자가 최대 90%까지 가능하다"며 "공사비가 늘어나 당초보다 분양가가 올라간 건 사실이지만 상인들에게 특정 금액의 분양가를 약속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서울시와 상인들의 시각차가 커 보상을 둘러싼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청계천상인대책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과 개발로 발생된 주변 상인들의 영업 손실에 따라 보상 이주를 약속했지만 이를 이행치 않고 있다"면서 "피해를 입은 상인들이 모여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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