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소령(13:49)
한낮 벽소령산장은 더위에 지쳐 있다.
사람도 초목도 축축 늘어지는 시간대다.
벽소령(碧宵嶺)은 밤이 되어야 비로소 이름 값을 한다.
밤하늘을 총총하게 수놓은 별빛에 빨려 들거나 푸른 달빛에 노출되면 누구라도 시인이 된다.
몇해 전 이곳서 1박 하며 만월에 취하고 별빛에 홀려 잠 못 이룬 적 있었다.
"어둑어둑한 숲 뒤 봉우리 위에 만월이 떠오르면 그 극한의 달빛이
천지에 부스러지는 찬란한 고요는 벽소령 아니면 볼 수가 없다"
시인 고은 선생은 벽소령을 이렇게 찬탄했다.
밤이 아름다운 벽소령을 땡볕 내리쬐는 한낮에 걷는다.
산장을 막 벗어나 덕평봉 쪽으로 접어들면
산허리를 까고 축대를 쌓아 만든 길이 1km 남짓 이어진다.
빨치산 토벌을 위해 만들어졌던 작전도로 일부 구간이다.
이젠 토벌군 대신 산꾼들이 점령했다.
땡볕에 노출된 목덜미도 따갑고 발바닥도 욱신댄다.
어깻죽지도 쑤시고 목젖도 타들어 간다.
쉬었다 가라는 신호다.
팻말 아래 벌목된 잡목을 깔고 앉아 등을 기댄다.
세석대피소까지 4.6km를 가리키는 지점이다.
온 길을 손 셈해 봤더니 이곳까지 20.4km를 걸었다.(반야봉 포함)
연하천산장에서 보충한 물통이 그새 손가락 두마디도 채 안 남았다.
지도를 보니 덕평봉 너머 '선비샘'이 표시되어 있다.
한 모금만 아껴 들이키고선 물통을 집어 넣는데...
"저~ 죄송하지만 물 한 모금만"
빈 물통을 든 허우대 좋은 청년이 머릴 긁적이며 다가섰다.
힘들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 모금 남겨 두었던 물통을 꺼내 건넸다.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해 지리 종주에 나섰다는 이 청년과
짧게 나눈 몇마디에서 반듯함이 느껴졌다.
곧 샘터에 닿게 될거란 사실도 덤으로 일러줬다.
선비샘(15:17)
샘물은 석축 틈바구니에 박힌 竹筒을 통해 콸콸 쏟아진다.
물이 새어 나오는 죽통은 바닥에서 한 뼘 높이다.
샘물을 받기 위해선 누구든 허리를 구부려야 한다.
샘터 인근 덕평골에서 화전민으로 살다 간 한 노인의 무덤이 있다.
이승에서의 천대를 저승으로 가져 가기 싫었던 이 노인은 자식에게 유언했다.
"죽어서라도 남들에게 존경 받고 싶으니 샘터 위에 묻어 달라"고 했던 것.
의중을 간파한 효심 지극한 아들은 아버지를 이곳 샘터 위에 모셨다.
이곳을 지나는 산꾼들은 물을 얻기 위해 예외없이 허리를 구부리게 되는데
노인은 이런 방법으로라도 원없이 존경?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슬픈 사연이 있어 '선비샘'이라 불려지고 있다는데...
그나저나 물줄기가 무덤에서 흘러 나오는 모양새라서 여엉~.
전망바위에서 천왕봉을...
칠선봉으로 향하는 길목, 전망바위는 산꾼들로 장사진이다.
칠선봉 뒤로 선명하게 다가선 천왕봉을 눈에 담기 위해서다.
가시거리가 좋아서일까, 산꾼들은 봉우리 찾기에 열중이다.
천왕봉은 여전히 아득하다.
칠선봉
계단...젖 빨던 힘까지...
칠선봉(七仙峰:1,576m)(16:40) 영신봉(17:40)
일곱 선녀가 노니는 모습을 닮은 일곱 암봉, 七仙峰을 지나
오늘의 마지막 고비인 영신봉을 오른다.
벽소령에서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을 넘어 세석대피소에
이르는 이 구간이 지리종주 중 가장 지리하고 힘든 구간이라고들 한다.
그 중에서도 마의 코스는 단연 영신봉 계단 구간이다.
이 봉만 넘어서면 세석대피소에서 쉴 수 있다는 생각에
태엽이 풀어져 더욱 힘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밥심도 떨어졌다. 한계단 한계단을 오로지 '깡'으로 딛고 오른다.
진을 깡그리 뺀 후에야 영신봉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온몸은 파김치가 되었으나 기분은 달콤했다.
'고진감래'가 퍼뜩 뇌를 노크한다.
건너 촛대봉과 그 아래 너른 산등성이에 세석대피소가 보이자,
거짓말처럼 피곤이 싹 가시는 느낌이다.
세석대피소(18:00)
숫제 장터라 함이 옳다.
비박을 위해 공간을 확보하느라, 끼니를 준비하느라,
사방팔방에서 모여든 산꾼들로 북새통이다.
틈바구니를 겨우 비집고들어 앉을 공간을 확보하고서,
한잔 술로 지친 삭신을 어루만지는 사이 밤안개가 자욱하게 밀려든다.
밤안개는 일순 별빛을 가둬 버렸다.
지리산을 관장하는 산신은 시시때때로 심술을 부린다.
세석산장의 밤은 그렇게 밤안개 속으로 침잠했다.
지리 종주 둘째날(05:20)
난민처럼 바닥에 구겨졌다가 일어났는데도 몸상태는 좋다.
폐부 깊숙히 싱그러운 산 공기를 호흡한 탓일게다.
길 나서는 시간들이 제각각이라 대피소는 이른 새벽부터 부산스럽다.
헤드랜턴을 켜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 곤한 잠에 빠진 사람들
행여 깰세라 조심조심 발뒷꿈치 들고 바깥으로 나왔다.
비박 흔적들이 처참하다.
비박용 비닐은 이리저리 나뒹굴고 음식물 쓰레기 또한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다.
등산화를 잃어버려 난감해 하는 산꾼들도 하나둘이 아니다.
신발을 바꿔 신고 가는게 아니다.
아예 작정하고서 배낭 속에 넣고 사라진다.
신발 잃어버린 산꾼들은 이만저만 난감한게 아니다.
뒷설거지는 그대로 놔둔 채 제 몸뚱어리만 빠져 나간 족속들이나,
산에 와서 남의 신발이나 훔쳐가는 인간말종들,
일출 보겠다고 서둘러 길을 나선 모양인데
솟아 오르는 태양을 보며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에이%~
끓인 물에 누룽지를 넣어 간편식을 한 후 돌을 깔아 조성해 놓은
'세석자연관찰로'를 따라 촛대봉으로 오른다.
촛대봉(1,703m) (06:54)
촛대봉에 조망되는 지리산은 어머니 품처럼 넉넉하고 부드럽다.
가야 할 삼신봉, 연하봉, 그리고 천왕봉이 어서 오라 손짓하고
지나 온 산봉들은 손 흔들어 배웅한다.
촛대봉 봉우리는 군데군데 생채기가 나 있다.
풀숲은 산꾼들의 발길에 패여 벌거숭이가 되어 버렸다.
산 오르길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민망스럽다.
치유 후 보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반야봉을 휘감고...
연하봉(1,730m)(08:07) 제석봉(1,808m)(09:01)
하늘에 뭉게구름이 빠르게 번진다.
낌새로 보아 천왕봉에서의 지리 조망은 허락치 않을 모양이다.
삼신봉을 지나며 아쉬워 뒤돌아 본 산자락엔 운무가 용솟음 치며
반야봉을 휘감는다.
촛대봉에서 부터 삼신봉, 연하봉, 제석봉,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지리능선 중에서도 아름답기가 으뜸이라고들 하던데, 빈말이 아니다.
산모롱이를 돌아 봉우리에 올라서면 조금 전 보았던 모습이 아니다.
안주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으며 변신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 보는 높이에 따라, 보는 사람의 감성에 따라 변화무쌍하다.
연하봉으로 가는 길목, 산등성이 풀숲에는 들꽃이 지천이다.
들꽃들은 골바람을 타고 수줍게 살랑인다.
연하봉을 지나면서부터 하늘은 잿빛으로 변하더니
안개비를 내린다. 안개비로 촉촉해진 숲길이 운치를 더한다.
숲길을 벗어나자 웅성거림이 들린다. 장터목대피소가 지척인게다.
장터목대피소
대피소에 들러 영역 표시?만 한 다음,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제석봉까지 길은 줄곧 가파르다.
제석봉 산비탈에 안개비를 맞고 서 있는 고사목이 처연하다.
제석봉 일대 고사목은 自然死가 아니라 非命橫死의 사연을 안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통천문(1,814m) (09:25)
제석봉을 지나 천왕봉을 500m 남겨둔 길목에 통천문이 있다.
通天門, 즉 하늘로 통하는 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하늘과 맞닿은 천왕봉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천왕봉 (1,915m) (09:44)
지리의 주봉이자 곧 하늘인 天王峰.
거칠 것 없이 장쾌한 정상에서의 조망은 안개비 뒤에 숨었다.
지리 산신께서 오더를 내리셨다.
"좀 더 덕을 쌓아 다시금 통천문을 노크하라"고.
산꾼들의 영원한 로망, 지리 종주의 정점인 천왕봉에 섰다.
억겁을 지나오며 만고풍상을 견뎌낸 지리산,
삼라만상을 다 품을 만큼 부드럽고 넉넉한 지리산,
많은 산꾼들이 지리산을 열망하는 까닭이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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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에서 중산리 방면으로 내려섰다.
이 구간, 雜說은 접고 허접한 기록을 급마무리 한다.
개선문(10:45)
법계사
로타리대피소 (11:30)
중산리탐방센터(1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