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창(國唱) 임방울
▶임방울은 1960년 봄과 가을 잇달아 공연 중 피를 토하며 쓰러져 이듬해 봄 세상을 떠났다.
"소리를 하다가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평소 말하던 대로였다.
사상 처음 국악예술인장으로 치러진 임방울 장례식은 200여 명의 여류 명창이 소복을 입고 앞에 섰다.
행렬 끝에는 100여 명의 거지가 눈길을 끌었다.
공연 때마다 거지들은 무료로 관람시켰던 임방울에 대한 추모의 표시였다.
▶22~24일 광주에서 '제16회 임방울국악제'가 열렸다.
세월에 묻혔던 임방울은 1986년 기념비, 1992년 흉상이 세워지면서 사람들의 기억에 다시 살아났다.
"앞산도 첩첩하고 뒷산도 첩첩한디 혼은 어디로 향하신가. 황천이 어디라고 그리 쉽게 가�던가."
자신을 그리다 병으로 죽은 애인을 위해 만든 초혼곡(招魂曲) '추억'은 그가 단순한 소리꾼이 아니라 진정한 예인(藝人)이었음을 말해준다.
해를 거듭할수록 뜨거워지는 임방울국악제의 열기는 그의 예술혼이 오늘에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입력 : 2008.09.24 23:02 / 수정 : 2008.09.26 08:57
절창(絶唱)
이덕일·역사평론가
허균(許筠)은 광해군 2년(1610) 과거 시험관으로 있으면서 사정(私情)을 봐주었다는 이유로 순군옥(巡軍獄)에 42일 동안 갇혔다.
감옥에서 허균은 이런저런 생각들을 적어서 상자 속에 넣어 두었다가 유배지였던 전라도 함열(咸悅:익산)에서 정리한다.
그중 우리나라 옛시를 평론한 것이 '성수시화(惺�詩話)'다.
허균은 고려 문신 김극기(金克己)의 '시상(詩想)이 극히 교묘하다'면서 그가 겨울에 핀 이화(李花)를 보고,
"세상에 없는 향내가 굴속에 모여드니/한나라 궁중의 이부인을 다시 보네〔無乃異香來聚窟/漢宮重見李夫人〕"라고 쓴 것을 예로 들며,
"옛 시인이 아직 말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옛 시인은 고대 한(漢)나라 악사 이연년(李延年)일 터인데, 그는 한무제 유철(劉徹) 앞에서,
"북방에 한 미인이 있어/세상과 떨어져 홀로 서있네/
한번 돌아보니 성이 기울고/다시 돌아보니 나라가 기우네/
성이 기울고 나라가 기우는 줄 어찌 모르리/미인은 다시 얻기 어렵기 때문이지
〔北方有佳人/絶世而獨立/一顧傾人城/再顧傾人國/寧不知傾城與傾國/佳人難再得〕"라는 가무(歌舞)를 했다.
무제가 "좋도다. 그러나 어찌 이런 미인이 세상에 있겠는가"라고 한탄하자
동생 평양(平陽)공주가 이연년의 누이 이연(李姸)이라고 말하는데,
그가 바로 경국지색(傾國之色)의 이부인이라고 '한서(漢書)' 효무(孝武) 이부인 열전은 전한다.
이부인이 조사(早死)하자 무제는 그녀의 초상화를 감천궁(甘泉宮)에 걸어놓고,
"아름다운 사람 생각 잊을 수가 없도다〔懷佳人兮不能忘〕"라고 인생무상을 노래하는 추풍사(秋風辭)를 짓기도 했다.
허균은 또 대동강 부벽루(浮碧樓)에 걸려 있던 시는 중국 사신이 오면서 모두 철거했지만 정지상(鄭知常)의 시만은 남겨두었다고 전한다.
"비 그친 긴 둑 풀빛 푸른데/남포로 님 보내는 구슬픈 노래/
대동강 물이야 언제 마르리/해마다 이별 눈물 보태는 것을
(雨歇長堤草色多/送君南浦動悲歌/大同江水何時盡/別淚年年添綠波)"
허균은 이 '송인(送人)'에 대해 "지금까지 절창이라고 일컫는다"고 했는데, 현대의 사랑시 못지않은 절창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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