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자연

[스크랩] 한오백년과 엄마생각

제봉산 2007. 3. 26. 11:18

    한오백년과 엄마생각


    아버지는 늘 없었다.

    심지는 낮춰져 주변을 겨우 가리는 호롱불만 가물가물.

    오줌마려워 잠을 깬것 같은데,

    어두운 창밖이 오줌을 참게 만든다.


    시계는 없었다.

    갑자기 그땐 학교에 시간을 어떻게 맞춰서 다녔을까? 하는

    의문이 지금에사 생긴다.


    참 별일이다.


    엄마의 한이 서리서리 맺힌 노래.

    한오백년은 언제나 나를 눈물짓게 만든다.


    "한 많은 이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잠깨어 방안을 둘러보면

    엄마는 언제나 그랬던것 처럼 뜨개질을 하고 계신다.

    늘상 입속으로 나즈막히 흥얼거리시는 구성진 노래다.

    입모양을 봐야 노래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된다.

    하지만 어머니의 그 노래때문에 잠을 깬 적은 없다.

    오히려 자장가처럼 들렸으니까......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고

    한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난 이내 다시 잠을 청하고

    그렇게 밤은 깊어간다.

    엄마는 뜨개질로 우리남매 먹이고 입혔다.

    엄마의 삶 굽이굽이마다, 노래 서리서리마다

    엄마의 한이 서린 한오백년.


    "세월아 네월아 오고 가지 말어라

    이팔청춘 이 내몸이 백발 되기 원통타"



    참았던 오줌을 이제는 어쩔수 없어

    다시 잠을 깬 모양이다.

    들창문에 푸르스름한 빛이 비치기 시작하는데

    엄마는 여전히 뜨개질이다.

    그때의 밤은 아마 내게도 엄마에게도

    무척이나 길었던 모양이다.

    말 그대로 긴 긴 밤이다.


    "백사장 세모래밭에 칠성단을

    뫃고 임생겨 달라고 비나이다"



    털실로 짠 작아진 옷을 크게 다시 짜거나,

    모양을 고쳐 다시 짜는 일이었다.

    입던 털실옷을 다시 짜기위해 실을 풀면

    코구멍이 메케해진다. 실 먼지 때문에...

    내 머리통만한 실뭉치들...그땐 그것이 싫었다.


    "날 버리고 가려거던 정마저 가려나

    몸은 가고 정만 남아 애간장 끓누나"



    다시 푼 털실을 삶아 실타래가 만들어지면

    난 늘 엄마의 보조가 되었지.

    양손에 실타래를 걸고 엄마가 실을 감을수 있도록

    적당히 손을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그것도 일이라고 이내 싫증을 냈으니

    그땐 왜 그리도 철이 없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 서러워 마라

    명년 삼월 봄이 오면 다시 또 피지"




    그런 못난 아들을 조선팔도에 둘도 없는

    제일 잘난 아들로 믿고 언젠가 호강할 날 기다리다

    그렇게 그냥 가셨다.

    가끔은 가사를 바꿔 부르기도 하셨지.



    "니거 애비는 새끼들 두고 어데로 갔나

    남편이 아니라 둘도없는 웬수로구나"



    "남편복 없는 년 자식복도 없다는데

    애고애고 이내팔자 그누가 알리오"




    한오백년이란 노래만 들으면 난 눈물이 난다.

    그리고 이젠 아니계신 엄마생각이 난다.

    그 긴 겨울밤을 한오백년과 함께 꼬박 새며 뜨개질하신 엄마.

    당신이 미리 아신 듯 남편복 없고 자식복마저 없어

    지지리 고생만 하다 가신 엄마

    자식들 고생시켰다고 늘 미안해 하시던 엄마

    아들 공부 못 시켰다고 가슴에 못이 박힌 엄마


    설마 그곳에서도 뜨개질하시진 않겠지요?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한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2006년 3월 21일 글쓴이/비온뒤에

음악/한오백년 대금연주와 소금연주
출처 : 혼자 지껄이기
글쓴이 : 비온뒤에 원글보기
메모 :

'풍경.자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하의 아름다움  (0) 2007.08.30
자연의 신비  (0) 2007.05.14
용서와 화해  (0) 2007.01.09
[스크랩] 해돋이사진 모으기  (0) 2007.01.05
[스크랩] 아름다운 단풍(가을의 노래 -김 미숙 시낭송)  (0) 200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