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깨어 방안을 둘러보면
엄마는 언제나 그랬던것 처럼 뜨개질을 하고 계신다.
늘상 입속으로 나즈막히 흥얼거리시는 구성진 노래다.
입모양을 봐야 노래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된다.
하지만 어머니의 그 노래때문에 잠을 깬 적은 없다.
오히려 자장가처럼 들렸으니까......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고
한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난 이내 다시 잠을 청하고
그렇게 밤은 깊어간다.
엄마는 뜨개질로 우리남매 먹이고 입혔다.
엄마의 삶 굽이굽이마다, 노래 서리서리마다
엄마의 한이 서린 한오백년.
"세월아 네월아 오고 가지 말어라
이팔청춘 이 내몸이 백발 되기 원통타"
참았던 오줌을 이제는 어쩔수 없어
다시 잠을 깬 모양이다.
들창문에 푸르스름한 빛이 비치기 시작하는데
엄마는 여전히 뜨개질이다.
그때의 밤은 아마 내게도 엄마에게도
무척이나 길었던 모양이다.
말 그대로 긴 긴 밤이다.
"백사장 세모래밭에 칠성단을
뫃고 임생겨 달라고 비나이다"
털실로 짠 작아진 옷을 크게 다시 짜거나,
모양을 고쳐 다시 짜는 일이었다.
입던 털실옷을 다시 짜기위해 실을 풀면
코구멍이 메케해진다. 실 먼지 때문에...
내 머리통만한 실뭉치들...그땐 그것이 싫었다.
"날 버리고 가려거던 정마저 가려나
몸은 가고 정만 남아 애간장 끓누나"
다시 푼 털실을 삶아 실타래가 만들어지면
난 늘 엄마의 보조가 되었지.
양손에 실타래를 걸고 엄마가 실을 감을수 있도록
적당히 손을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그것도 일이라고 이내 싫증을 냈으니
그땐 왜 그리도 철이 없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 서러워 마라
명년 삼월 봄이 오면 다시 또 피지"
그런 못난 아들을 조선팔도에 둘도 없는
제일 잘난 아들로 믿고 언젠가 호강할 날 기다리다
그렇게 그냥 가셨다.
가끔은 가사를 바꿔 부르기도 하셨지.
"니거 애비는 새끼들 두고 어데로 갔나
남편이 아니라 둘도없는 웬수로구나"
"남편복 없는 년 자식복도 없다는데
애고애고 이내팔자 그누가 알리오"
한오백년이란 노래만 들으면 난 눈물이 난다.
그리고 이젠 아니계신 엄마생각이 난다.
그 긴 겨울밤을 한오백년과 함께 꼬박 새며 뜨개질하신 엄마.
당신이 미리 아신 듯 남편복 없고 자식복마저 없어
지지리 고생만 하다 가신 엄마
자식들 고생시켰다고 늘 미안해 하시던 엄마
아들 공부 못 시켰다고 가슴에 못이 박힌 엄마
설마 그곳에서도 뜨개질하시진 않겠지요?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한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2006년 3월 21일 글쓴이/비온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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