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최근 북한과의 전쟁에 대비하려면 꼭 읽어야 한다고 추천한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에도 폭찹힐 전투가 나온다. 이 책에선 미국의 의지를 시험하고 휴전 협상에서 양보를 얻어내려 중공군이 무모한 공격을 계속했고, 미군은 상부의 무관심 속에서도 일선 중대가 혈투 끝에 방어에 성공한 전투로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유권자가 알 수 있는 전투를 예로 든 것으로 보인다.
952년 45보병사단의 일원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에드워드 펜스 소위는 폭찹힐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워 53년 동성무공 훈장을 받았다. 그로부터 64년 후인 지난 4월 그의 아들이 한국을 찾았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집무실에 놓여 있는 사진. 아버지 에드워드 펜스가 폭찹힐 전투의 무공을 인정받아 1953년 4월 동성 무공성장을 받는 장면이다.
아들의 이름은 마이크 펜스. 현재 미국 부통령이다. 그는 “아버지는 45보병사단 소속으로 한국에서 복무하며 한국군과 나란히 전투에 참여했다. 이런 한·미 간 파트너십은 가족과 나에게 큰 자부심”이라며 “아버지가 받은 훈장을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그는 부친의 훈장과 훈장증, 훈장을 받는 모습이 담긴 사진 액자를 부통령 집무실에 놓고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백악관 집무실. 아버지 에드워드 펜스의 동성무공 훈장,
훈장증, 훈장을 받는 모습의 사진 액자가 보인다.
펜스 부통령은 방한 첫 일정으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아 참배했다. 또 아버지가 실제로 전투를 치렀던 중부전선을 둘러봤다. 펜스 부통령은 좌충우돌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듬직한 조언자다. 지난해 대선 때 상대편인 팀 케인 민주당 부통령 후보와의 토론에서 침착하게 대응해 트럼프의 승리에 일조했다.
마이크 펜스(가운데) 미국 부통령이 4월 17일 오전 항공점퍼를 입고
결연한 표정으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계단을 오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펜스 부통령을 배려한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인천상륙 작전은 한·미를 포함한 유엔군이 북한군을 상대로 펼친 것이었다. 그러나 폭찹힐 전투는 오로지 미군과 중공군과의 일전이었다. 물론 한국군이 카투사로 전투에 참가했다.
폭찹힐 전투 당시 모습. [자료 Pacific Paratrooper]
폭찹힐 전투의 막바지인 53년 7월 6일 간 미군에서 중대장 4명 등 243명이 전사하고 916명이 부상했을 정도로 맹렬히 싸웠다. 이중 163명의 유해는 끝내 찾지 못했다. 카투사도 15명이 전사하고 120명이 중상을 입었다.
폭찹힐 전투 당시 모습.
중공군의 인명피해는 이보다 막대해 1500여명이 숨지고 4000여명이 후송된 것으로 추정된다.
폭찹힐 전투 당시 모습.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국회에서 폭찹힐을 언급한 뒤 바로 전용기인 ‘에이포스 원’을 타고 중국으로 갔다. 한국에겐 한·미의 혈맹 관계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중국에게 미·중은 한때 적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노림수로 풀이된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사람에게 많이 알려진 건투는 장신호전투 폭잡힐전투 그리고 펀치볼전투등이 매스컴이나 영화 또는 소설등으로 널리 알려졌있다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