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2007년 10월2일 평양의 만수대의사당을 찾아가 방명록에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글을 남겼다.
북한은 우상화된 수령이 지배하는 전체주의보다 더한 唯一(유일)체제이다. 주권은 수령 한 사람만 행사한다. 그래도 대외적으론 ‘인민주권’이라고 선전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급투쟁론의 화려한 포장인 인민민주주의를 존중한다는 것을 문서로 남긴 것이다. 지배층이 계급투쟁론의 포로가 되어 개혁 개방을 거부, 인류역사상 최악의 대기근으로 인구가 거의 10%나 줄어든 북한에 가서 ‘인민행복’ 운운한 것은 이스라엘 대통령이 아우슈비츠에 가서 ‘유대인의 행복이 나오는 전당’이라 쓴 것과 비슷하다.
1982년에 노무현이 좌경의식화 모임의 학생들을 만난 것이 그 25년 뒤 이런 결실을 본 셈이다. 부림사건은 북한과는 아무런 연계 없이 이뤄진 독서회 사건이지만 이 사건으로 복역하고 나온 한 사람은 북한에 몰래 들어갔다가 나와 實刑(실형)을 산 적이 있다. 부림사건 연루자들이 읽은 책들은 공산주의 原典(원전)이 아닌 좌경학자들이 쓴 것들이었다.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강만길의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E. H. 카아의 ‘역사는 무엇인가’ 등이었다. 이런 책을 읽는 것과 북한정권을 추종하는 것 사이엔 아무 관련성이 없을 것 같지만 계급투쟁론적 가치관을 흡수하면 노무현처럼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거룩한 이름을 갖고 가서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 이란 칭송을 북한 독재 정권 앞에 바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북한정권은 1968년 1월21일 특수부대를 보내 청와대를 습격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무장공비들은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을 노렸는데, 나무꾼의 신고로 軍警(군경)에 비상이 걸려 실패하였다. 북한 특공대는 산에서 잡은 나무꾼 형제를 죽이지 않고 풀어주었는데 이들의 반공정신을 과소평가하였던 것이다. 그해 11월 울산 삼척에 상륙한 120명의 무장공비들은 산간의 농민들 속으로 파고들어 거점을 구축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협조자를 찾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가장 못 사는 火田民(화전민)들도 공비들에게 협조하지 않았다. 화전민의 아들 이승복 소년은 초등학교에서 배운 대로 공비 앞에서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했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이때부터 북한정권은 對南(대남)공작의 주된 표적을 한국의 지식인 사회, 즉 대학생, 종교인, 언론인, 법조인, 교사, 종교인, 노조, 정치권으로 바꾼다.
1977년 12월 평양을 방문한 東獨 공산당 서기장 호네커에게 김일성은 이런 말을 하였다. 독일 통일 후 입수한 회담록에서 옮긴다.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자유의 허점을 이용하면 공산주의를 퍼뜨릴 수 있다고 본 김일성의 전략은 1980년대 대학가에 김일성주의자들(주사파)을 심는 데 성공하였다. 이들이 민주화 운동의 주도권을 장악, 사회를 좌경화시켜 갔다. 이른바 386 세대가 등장, 그 뒤 30년에 걸쳐 언론, 사법, 노조, 학교, 종교, 예술, 문화계를 왼쪽으로 끌고 갔다. 이런 흐름 속에서 노무현이란 ‘악마의 변호인’이 대통령까지 된 것이다.
북한의 對南공작이 서민층에선 실패하고 지식인층에선 성공하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2년 12월 大選 때도 우파 박근혜 후보는 블루칼라, 농민, 주부, 자영업자, 저소득층, 저학력층에서 몰표를 얻었다. 좌파 문재인 후보는 화이트 칼라, 고소득층, 고학력층에서 50% 이상의 득표를 했다. 한국은 겉으론 左右대결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계급의식이 顚倒(전도)되어 있다.
박정희 시대를 산 사람은 박정희를 지지하고 탄압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비판적이다. 체제의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이 체제부정적인 좌파를 지지하고, 상대적으로 덜 받은 사람이 우파를 지지한다. 위선적 명분론이 만든 이상한 구조이다.
"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대표
1945년 10월 일본에서 났다가 이듬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수산대학(현재의 釜慶大)에 들어가 2학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 제대 후 1971년 부산의 국제신보 수습기자로 입사해 언론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경찰, 공해, 석유분야를 다루었는데 1974년 중금속 오염에 대한 추적 보도로 제7회 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한국기자협회 제정)을 받았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현장 취재를 했다. 1980년 6월 신문사를 그만둔 뒤 월간잡지 <마당> 편집장을 거쳐 1983년 조선일보에 입사,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일했다.
저자가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月刊朝鮮>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보도로 1994년 관훈언론상(관훈클럽 제정)을 수상했고 ‘6·29 선언의 진실’ ‘12·12 사건-장군들의 육성 녹음 테이프’ 등 많은 특종을 했다. 1996년부터 1년 간 국제 중견 언론인 연수기관인 하버드대학 부설 니만재단에서 연수를 했다. 2001년 <月刊朝鮮>이 조선일보사에서 分社하면서 (주)月刊朝鮮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금은 <조갑제닷컴>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석유사정 훤히 압시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有故》 《국가안전기획부》 《軍部》 《이제 우리도 무기를 들자》 《朴正熙 傳記》(全13권) 등을 출간했다."
'사회쟁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욱 진화하는 IT범죄 (0) | 2014.01.30 |
---|---|
중등학교 한국사교과서의 좌편항문제... (0) | 2014.01.26 |
영화"변호인"은... (0) | 2014.01.12 |
[스크랩] 코레일 사상 첫 여성 CEO 최연혜 사장 (0) | 2014.01.03 |
[스크랩] <萬人必讀> 국가별 철도직원 평균연봉---한국이 세계 최고연봉이다! (0) | 2013.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