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

이석기가 부른 적기가는...

제봉산 2013. 9. 9. 16:55

 

적기가(赤旗歌)’는 시체를 앞에 놓고 분노에 치를 떨 때 불러야 제 맛이다.

 

노래 자체가 “민중의 기, 붉은 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식어 굳기 전에 혈조는 깃발을 물들인다”는 맞춤형 구절로 시작된다.
 

인간은 누구나 분노한다. 그러나 어떤 분노인가에 따라 인간의 행동도 달라진다.

 

공포의 사슬 안에 갇힌 분노는 힘이 없다. 반면 죽음의 공포라는 사슬을 끊어버린 분노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괴력을 만든다.

 

적기가는 죽음과 비장함을 감정적 배경으로 깔고 인간의 분노를 용솟음치게 만들어 죽음을 불사케 하는 투쟁의 노래다.
 

인간이 이성적이라면 전장에서 전우가 옆에서 죽어갈 때 나도 저렇게 될 것이란 생각에 두려워 몸이 굳어져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우의 시체를 보면 분노에 눈이 뒤집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는다고 한다.

 

최근 시위가 끊이지 않는 중동에서 시위대 앞에 순교자의 관을 메고 행진하는 것도 잘 계산된 전술이다. 사람들을 분노케 해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들려는 것이다.
 

1930~40년대 만주 빨치산이 적기가를 애용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투가 끝난 뒤 이성과 공포라는 인간 본연으로 돌아올 감정을 장례의식을 통해 다시금 분노로 승화시키는 데 적기가만큼 적절한 노래가 어디 있나 싶다.

 

6.25 전쟁 때도 북한은 적기가를 통해 사람들의 분노의 감정을 계속 고조시켰다. 이 땅에선 적기가가 울려 퍼지는 곳에선 늘 피가 흘렀다.

 

적기가는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분노한 인간을 양산시키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공산주의를 당 강령에서 파버린 오늘날의 북한은 혁명가요를 가장 겁내는 나라가 됐다.

 

3대 세습의 왕조를 만들고, 옛날 적기가를 부르며 싸웠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대대손손 기득권을 물려받는 체제를 겨우 구축했는데, 이제 굳이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해 투쟁심을 고취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적대계층이라는 벗을 수 없는 신분의 굴레를 쓰고 분노를 씹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이들에겐 죽음의 공포를 이길 용기가 없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북에서 살았던 때 적기가를 공식 행사에서 불렸던 기억은 한번도 없었다.

 

황장엽 비서가 망명했을 때 북에서 적기가가 반짝 부각됐던 때는 있다.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라는 후렴 때문이었다.

 

하지만 “갈 테면 가라”고 해놓고 탈북자들을 악착같이 잡아다 엄벌하는 것이 북한이다. 오늘날 북한은 비겁한 자가 아니라 가장 용감한 자가 떠나는 나라가 됐다.
 

북한에선 적기가 뿐 아니라 ‘목숨 걸고 혁명에 나서라’고 추동하는 다른 혁명가요들도 시대착오적인 노래가 된지 오래다.

 

대신 김정일 부자 찬양과 충성을 고취하는 세뇌의 노래만이 차 넘친다.

 

만약 북한에서 ‘적기가’를 부르는 비밀모임이 적발된다면 정신병자라는 딱지가 붙어 수용소에 종신 격리될 것이 분명하다.

 

—————————————————–

 

※ 적기가 전체 가사와 동영상

          
민중의 기 붉은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굳기 전에 혈조는 기발을 물들인다
높이 들어라 붉은 기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

 

원쑤와의 혈전에서 붉은기를 버린놈이 누구냐
돈과 직위에 꼬임을 받은 더럽고도 비겁한 그놈들이다
높이 들어라 붉은 기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

 

붉은기를 높이 들고 우리는 나가길 맹세해
오너라 감옥아 단두대야 이것이 고별의 노래란다
높이 들어라 붉은 기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

 

 

—————————————————————————

 

한국에 ‘적기가’를 애창하는 무리가 있다면 반면 북한에서 내가 사랑했던 노래는 ‘조국과 더불어 영생하리라’라는 노래다.

 

1.가을도 저물어 찬바람 분다 굶주리고 헐벗은 우리 동포를
그 누가 광야에서 구원해주랴 일어나라 대장부야 목숨을 걸고
감옥도 죽음도 두렵지않다 조국과 더불어 영생하리라

 

2.사나이 이세상에 한번 태어나 나 하나의 안락을 찾다가 말랴
누구냐 이 나라를 구원해주랴 일어나라 청춘들아 목숨을 걸고
감옥도 죽음도 두렵지않다 조국과 더불어 영생하리라

 

3.찢겨진 겨레의 피타는 소리 혈육의 부르짖음 남북에 찼다
누구냐 이길을 막고 나선자 일어나라 겨레들아 때는 왔구나

미제와 앞잡이를 때려부시고 조국의 통일을 이룩하리라

 

 

직접 들어보면 적기가 못지 않게 비장하다.

 

이 노래는 1960년대 만들어진 북한영화 ‘성장의 길에서’ 주제가이다. 주인공은 남조선의 혁명가다. 그러나 이 노래는 현재의 북한 상황에 대입시켜 미제와 앞잡이란 단어만 바꾸면 기가 막히게 잘 맞아 떨어진다.

 

항일빨치산이 ‘적기가’를 부르며 결의를 다졌다면 나는 탈북하기 전에 홀로 이 노래를 자주 부르며 각오를 다졌다.

 

아, 대학 때 친구의 생일날에 참가해 노래를 부르라는 요청을 듣고 이 노래를 불러 좌중이 썰렁해졌던 일도 있긴 있다.

 

그런데 저 유튜브 영상을 보면 웃기는 것이 있다. 2절을 빼고 부르는 것이다. 청춘들아 목숨을 걸고 일어서라는 내용이 북한 당국에겐 정말 거슬렸고 무섭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 노래대로 조국을 위해 목숨도 내놓으리라 각오도 다졌고, 동지들도 모아봤지만, 결국 그 안에서 아무 것도 못하고 탈북할 수밖에 없었다. 뜻을 이루기 전에 적발돼 이름도 없이 처형될 확율이 99% 이상이었다.

 

나 하나의 목숨은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지만, 적발될 경우 연좌제로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친척들까지 멸족되는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없었다. 결국 수용소 안에서 죽음을 당하는 투사가 아니라, 수용소 밖에서 죽음을 줄 수 있는 투사가 되자는 결의를 다지며 수용소 체제를 벗어났다.

 

지금 북한에도 조국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있는 청년은 얼마든지 있다. 다만 그들의 뜻을 꺾고 체제를 유지시켜주는 것은 바로 연좌제이다.

 

그래서 나는 어디를 가든 항상 북한 인권의 핵심은 연좌제며, 연좌제만 폐지되면 북한은 민주화된다고 말한다. 북한 인권의 핵심 이슈로 떠오른 정치범수용소도 사실 알고보면 연좌제의 부산물일 따름이다.

 

조국과 더불어 영생하리라란 노래는 지금도 북한에서 널리 애창되고 있다.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20년 전의 나와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오늘날 북한의 ‘적기가’는 바로 이 노래가 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