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이야기

[스크랩] 신발속 돌맹이

제봉산 2013. 2. 23. 21:59

 

 

 

신발속 돌맹이

사람의 발은 손 못지않게 섬세하고 정밀한 조직으로 이뤄졌다. 발은 뼈 스물다섯 개와 근육 열아홉 개뿐 아니라 백일곱 개나 되는 인대를 갖고 있다. 덕분에 사람은 걸을 때 밑에서 올라오는 충격을 견디고 몸 균형을 잡는다. 감각도 예민해서 아무리 뭉툭하게 생긴 발이라도 금세 이물질을 알아차린다. 신발 안에 모래알이라도 들어가면 거북해서 걸음을 멈추게 된다. 서양에선 일상의 불편을 '신발 안 돌멩이(Stone in my shoe)'에 비유해 왔다.

▶영국 TV 코미디 '미스터 빈' 시리즈 중에 '신발 안 돌멩이' 편이 있다. 미스터 빈이 작은 돌이 든 구두를 신고 절뚝거린다. 빈은 구둣발을 길바닥에 쾅쾅 내리쳐 돌을 가루로 만들려 애쓴다. 구두 바닥을 벤치에 대고 문질러보기도 한다. 빈은 구두를 벗어 도로 옆 승용차 지붕 위에 올려놓곤 발바닥을 긁으며 미소 짓는다. 그러는 사이 차가 신발을 실은 채 떠나자 깨금발로 차를 쫓아가느라 낑낑댄다.


 

▶신발 안 돌멩이는 '역사적으로 해묵은 숙제'라는 뜻을 담기도 한다. 2003년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알제리 독립 41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방문했다. 시라크는 프랑스가 1830~1962년 132년이나 알제리를 식민 통치한 과거사를 사과했고, 알제리의 독립투사 추모비에 꽃도 바쳤다. 두 나라는 교류 협력을 강화하는 '알제리 선언'을 발표했다. 프랑스 신문 르 몽드는 "두 나라가 신발 안 돌멩이를 빼냈다"며 역사적 화해 순간을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번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업무 보고를 받은 뒤 '신발 안 돌멩이' 비유법을 꺼내 들었다. 박 당선인은 민생 문제 해결을 강조하며 "아무리 좋은 구경을 간다 해도 신발 안에 돌멩이가 있으면 다른 얘기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고 말했다. 앞서 박 당선인은 중소기업 애로 사항을 빼내야 할 '손톱 밑 가시'로 규정했었다. 이번엔 서민이 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한 제도를 '신발 안 돌멩이'로 표현했다.

▶덴마크 영화감독 라스 폰 트리에는 칸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아들고서 "영화란 신발 안 돌멩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 본성 속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는 영상 미학이 돌멩이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그런 돌멩이는 대통령의 신발에도 들어 있다. 측근의 직언(直言)과 국민의 비판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이런 돌멩이를 신발을 벗어 탁탁 털어버려선 안 된다. 돌멩이가 호소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시원해지고 국민이 편안해진다.
 

 

출처 : 演好마을
글쓴이 : 설봉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