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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늙어가는 아내에게

제봉산 2012. 10. 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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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아내에게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그래,

 

그냥 살어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50년 전,늦가을,

낡은 목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 주었지

 

그런 거야,서로를 오래오래 그냥,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당신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 마이신을 한알 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옮겨 옴

    

 

Brothers Four - Come To My Bedside My Darling

 

출처 : 演好마을
글쓴이 : 이영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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