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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바람의 아들 "이종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제봉산 2012. 4. 4. 11:01

 

불멸의 기록 남기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 "1·2군 오갈바에는…" 전격 은퇴
한 시즌 최다 안타 196개, 역대 최다 도루 84개, 한국시리즈 MVP 2회…
개막전 엔트리 제외되자 선언 "이럴거면 작년에 말해주지… 나 아니면 누가 이러겠나"

한국프로야구 무대를 거세게 뒤흔들었던 바람이 멈췄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42)이 정규시즌 개막을 일주일 앞둔 지난달 31일 전격적으로 은퇴했다. 이종범은 1일 전화 통화에서 "3월 30일 이순철 수석코치로부터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고, 31일 선동열 감독을 직접 만나 그 사실을 확인한 다음 미련없이 은퇴를 결정했다"고 했다. 그는 "나 아니면 누가 이런 행동을 하겠느냐"고 했다.

"아쉽지만 후회는 하지 않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술을 마시고 싶어도 야구 때문에 꾹 참았는데, 이제 원 없이 마실 수 있겠네요. 당분간 '놈팡이'생활 좀 즐겨봐야죠. 잠도 실컷 자고…."

개인 용무로 1일 서울에 왔던 그는 갑작스러운 은퇴 결정에 대해 "올겨울 동안 후배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정말 열심히 훈련했고, 살도 많이 뺐다"며 "선동열 감독님하고 나하곤 잘 안 맞는 것 같다. 이럴 거라면 취임했을 때 1,2군을 오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해줬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만약 당시 그런 얘기를 했다면, 그때 결정할 수 있었다는 얘기였다. 그는 "지금 내가 생각하는 내 실력이 1,2군을 오가야 할 정도라면 코치진의 선택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체력이나 기량으로 충분히 1군에서 뛸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내가 1,2군을 오가게 되면 주위에서 말들이 많아질 것이고, 그러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차라리 지금 시원하게 떠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힘겨운 결정을 내린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밝았다.

이종범은 향후 진로에 대해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개인적으로 공부할 시간을 많이 갖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도자가 된다면 KIA뿐 아니라 다른 팀에서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당분간 쉬면서 야구 선수로 활약하는 아들 정후(광주 무등중 1년)군의 그동안 소홀했던 뒷바라지도 할 생각이라고 했다. 정후 군은 서석초등학교 시절인 지난해 KIA타이거즈기 대회에서 MVP에 뽑힌 유망주다. 아버지를 닮아 타격에 소질이 있고, 발도 빠르다. 이종범은 "야구에 대한 열정은 내가 혀를 내두를 만큼 대단하다"고 했다.

프로야구 KIA의 이종범(42)이 지난달 31일 은퇴를 결정했다. 이종범의 갑작스러운 은퇴 소식에 많은 야구팬이 아쉬워하고 있다.
역대 최고의 유격수 이종범

이종범은 키(178㎝)가 크지 않았고, 힘이 대단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빠른 발과 강한 어깨, 그리고 찬스에 강한 스윙으로 한국 야구사를 스스로 써내려 갔다. 이종범은 1993년 건국대 졸업 후 KIA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자마자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쥐었다. 1994년엔 정규시즌 MVP와 타격 4관왕, 골든글러브를 휩쓸며 한국 야구 최고의 타자로 등극했다. 그가 1994년 정규시즌에 기록한 196안타와 84도루는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 기록이다. 그는 선동열 현 감독이 일본 주니치로 이적한 다음에도 1996,1997년 해태의 8,9번째 우승을 이끌었다. 역대 유격수 중 150개 이상 안타를 때리고 0.580 이상의 장타율과 1점대가 넘는 OPS(장타율+출루율)를 동시에 기록한 것은 1994년과 1997년의 이종범뿐이다.

1997년 해태에 9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안긴 그는 이듬해 일본 주니치 드래곤스 유니폼을 입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타격감이 살아나던 1998년 6월 한신전에서 상대 투수의 공에 맞아 오른쪽 팔꿈치를 심하게 다치고 나서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종범은 당시 스트레스로 원형탈모증까지 겪었다.

이종범이 국내 무대에 복귀한 것은 2001년 8월. 전통의 해태왕조가 KIA로 바뀔 시점이었다. 인기가 하강곡선을 그리던 프로야구에 이종범의 복귀는 '가뭄에 단비'였다. 그가 뛰는 경기엔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고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종범은 2003년 20홈런 50도루를 기록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2006년엔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주장을 맡아 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 4강 진출의 갈림길이었던 2차 본선 2라운드에서 자신을 버렸던 일본을 상대로 결승 2타점 2루타를 때리며 2대1 승리의 주역이 됐다.

2002·2003년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2009년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그는 2010년 7월9일 광주 한화전에서 2루타를 때려 한일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김조호 KIA 단장은 "올 시즌 내에 이종범의 이름에 걸맞은 은퇴경기를 거행할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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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의 진기록 

'바람의 아들' 이종범(42)은 기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선수다. 하지만 그만이 가능한 불멸의 기록들이 있다. 3년반 동안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는 바람에 통산 기록에서 손해를 본 것도 있지만 여전히 이종범만이 쌓을 수 있는 기록들이 존재한다. 단일 시즌 기록이든 통산 기록이든 이종범만이 달성할 수 있는 기록들이 불멸의 진기록들이 있다.

▲ 가장 오랫동안 4할 유지한 타자
프로야구 유일의 4할 타자는 1982년 원년 4할1푼2리를 친 MBC 백인천이다. 그 이후 가장 4할 타율에 근접한 타자가 바로 1994년 해태 이종범. 이종범은 그해 8월21일까지 정확히 4할 타율을 마크했다. 무려 107경기를 소화하며 4할 타율을 이어간 것이다. 원년 백인천도 80경기 체제에서 완성한 4할 타율이었으니 이종범은 어떻게 보면 가장 오랫동안 4할 타율을 유지한 타자다. 1987년 삼성 장효조가 71경기 동안 4할 타율을 유지한 게 다음 가는 기록이다. 그해 이종범은 아깝게 4할 타율 달성에 실패했지만, 역대 두 번째에 해당하는 3할9푼3리에 역대 최다 한 시즌 196개의 안타를 쳤다.

▲ 유일무이한 3할-30홈런-60도루
호타준족을 상징하는 30홈런-30도루에 정확성까지 겸비한 3할 타율까지. 이른바 '트리플스리'는 한국프로야구 30년간 단 5번밖에 나오지 않은 진기록이다. 그 최초의 주인공이 바로 '야구천재' 이종범이다. 1997년 해태유니폼을 입고 타율 3할2푼4리 30홈런 64도루로 최초 트리플스리를 작성했다. 3할-30홈런-60도루로 기준을 달리하면 이종범이 유일무이하다. 30홈런-30도루도 2000년 박재홍을 끝으로 10년 넘게 끊어졌지만 이종범의 3할-30홈런-60도루는 앞으로 더욱 나오기 힘든 기록이 될 것이다. 이종범은 발이 빠른 만큼 정확하고 힘 있는 강타자였다.

▲ 1회초·1회말 선두타자 홈런
1990년대 이종범의 경기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은 1회 선두타자 홈런이었다. 경기 시작과 함께 총알 같은 홈런으로 포문을 열었다. 1회초 선두타자 홈런이 20개, 1회말 선두타자 홈런이 24개. 통산 홈런 194개 중 44개로 22.7% 비율을 차지한다. 그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2위 기록들과 비교해 보면 짐작 가능하다. 1회초 선두타자 홈런은 유지현의 8개, 1회말 선두타자 홈런은 이영우의 10개가 2위다. 1회초와 1회말을 합한 2위 기록도 이영우의 17개. 이종범과 두 배 이상 차이난다. 당분간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기록이다.

▲ 510도루-성공률 81.9%
이종범은 바람의 아들답게 폭발적인 주루를 자랑했다. 1993년 신인 최초 70도루(73개)를 돌파했고, 1994년에는 역대 한 시즌 최다 84도루를 기록했다. 1993년 9월26일 전주 쌍방울전에서는 6도루로 한 경기 최다 도루 기록도 작성했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는 7연속 도루를 성공시키며 삼성의 배터리를 농락했다. 이종범의 통산 도루는 510개로 전준호(550개)에 이어 2위. 하지만 도루성공률에서는 이종범이 81.9%로 71.7%의 전준호를 압도한다. 통산 300도루 이상을 기준으로 할 때 이종범보다 높은 도루성공률을 기록한 선수는 없다. 양과 질 모두 대단한 주자였다.

▲ 도루저지율 100%
지난해까지 30년간 포수 마스크를 쓰고 출전한 선수는 모두 199명. 그 중 3명만이 도루저지율 100% 기록을 갖고 있다. 1984년 OB 배원영과 2005년 KIA 김성호가 각각 1차례와 2차례 100% 도루 저지했다. 그리고 한 명. 다름 아닌 이종범이다. 전문 포수가 아닌 이종범은 1996년 5월22일 광주 삼성전에서 백업 포수가 바닥 나자 9회부터 포수 마스크를 썼고, 10회에는 당시 도루 2위의 김재걸의 2루 도루를 총알 같은 송구로 저지했다. 이 도루 저지로 이종범은 100% 도루 저지자로 기록에 남아있다. 그해 8월23일 대전 한화전에서는 9회초 역전 만루홈런을 치고 9회말 포수로 수비를 옮겨 경기를 끝낸 진풍경도 연출했다. 이종범은 포수 뿐만 아니라 1루·2루·3루·유격수 그리고 외야 좌·중·우까지 모두 소화했다. 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섭렵했다. 다재 다능한 이종범이기에 가능한 퍼포먼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