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스크랩] 재미있는 사찰여행(4) 펌글,용문사

제봉산 2011. 7. 1. 22:14

● 전과 각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여기보시면, 대웅전, 지장전 등이 있고, 저기 보시면 삼성각, 범종각이라고 쓴 현판이 보이시죠? 어떤 건물은 전이라 하고, 어떤 건물은 각이라고 붙였는데요. 부처님과 보살님을 모신 곳에는 전이란 이름을 붙이고, 불상 이외에 신앙의 대상을 모신 곳을 각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을 모신 법당 뒤편으로 가면 한쪽 구석에 삼성각이나 산신각, 칠성각, 독성각 등이 있습니다. 이 전각은 우리 고유의 토속신들을 불교적으로 수용하여 모셔 놓은 건물입니다. 이들 건물들은 불교 본래의 것이 아니라 하여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자를 붙입니다. 또한 스님들의 생활공간, 수행 공간을 요사채라고 하는 데, 보통 감로당, 신검당 등의 명칭을 붙이기도 합니다.

 

● 적멸보궁(寂滅寶宮)

부처님이 없는 절도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하셨을 때 나왔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절들이 있는데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으므로 불단(수미단)은 있지만 불상이나 후불탱화를 모시지 않은 것이 특징이고, 다만 이 법당의 바깥이나 뒤쪽에는 사리탑을 봉안했거나 계단(戒壇)을 설치한 경우가 많습니다. 부처님이 안 계신 절을 어려운 말로 ‘적멸보궁’이라고 합니다. 적멸보궁이 있는 절로는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함백산 정암사, 영월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 등이 있습니다.

 

● 사찰(寺刹)에서의 예절

(1) 법당의 정문은 어간(御間)이라 하며, 그 사찰의 조실 및 주지스님만 출입하게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일반 불자들은 옆문을 이용해야 합니다.

(2) 일단 법당 안에 들어서면 먼저 불전을 향해 반배합니다.

(3) 합장은 한결 같은 마음의 공경을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스님이나 보살님들에게도 합장을 합니다. 또한 탑과 부도 등에도 합장을 합니다.

 

● 불교의 4대 명절이란?

불교의 4대 명절이란 부처님 오신 날(음 4. 8), 출가절(음 2. 8), 성도절(음 12. 8), 열반절(음 2. 15)을 말합니다. 이 4대 명절은 부처님의 생애 가운데 가장 기념할만한 4가지 사건을 뽑아 기리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날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성대하게 치뤄지는 행사는 바로‘부처님 오신 날’ 봉축법회입니다. 

 

● '성불하세요' 의 의미는?

→ 성불하세요. 말 그대로 부처님 되세요라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부처님 되세요라는 말은 이 다음에 미래에 부처님이 되라는 말은 아닙니다. "지금 당장 부처님 되세요"입니다. 지금 당장 부처님 되세요라는 말은 "부처님으로 사세요"라는 말입니다. 원래가 우리는 부처님입니다. 그렇지만 부처님이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가 부처님이니까 "부처님으로 사세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불자들의 인사인 "성불하세요" 입니다.

 

● 석등의 의미

세상의 어둠을 밝혀준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사랑이 어두운 세상에 널리 퍼지게 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불전에 등불을 켜고, 연등행사를 치르는 것은 부처의 지혜와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여 온 세상에 진리의 법등을 밝히겠다는 뜻이 담겨진 것입니다.

 

● 불교에서 유래된 단어들

불교는 우리 역사에서 천년 이상 문화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 언어에는 불교용어가 무척 많습니다.

▷ 야단법석의 유래

우리는 흔히 떠들썩하고 시끄러운 모습을 볼 때 야단법석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석가모니가 야외에 단을 펴고(野壇) 부처님의 말씀(法席)을 전하는 자리를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질서가 없고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처럼 경황이 없고 시끌벅적한 상태를 가리켜 비유적으로 쓰던 말이 일반화되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게 되었습니다.

▷ 아수라장(阿修羅場)

아수라(阿修羅;Asura)를 줄여서 <수라>라고도 합니다. 호전적이며 공격적인, 불교를 수호해주는 신장인 팔부중(八部衆)의 하나입니다. 생전에 몸시 공격적이고 시기심과 교만심이 강한 사람들이 죽어서 업장에 따라 가는 곳을 아수라라고 합니다.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아수라도. 인간도. 천상도 등 여섯으로 나눈 윤회하는 길, 그 중의 하나가 아수라도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항상 서로 다투고 헐뜯고 미워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곳을 가리켜 「야, 그곳은 정말 아수라장이다」라고도 합니다.

▷ 점심(點心)

불가에서는 아침과 저녁사이에 정식 식사라고 까지 할 수는 없는 아주적은 양의 음식을 먹었다고 해요 이것을 점을 찍는 것과 같이 적은 양이라 해서 점심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점심(點心)은 요즘엔 공식적으로 중식(中食)이라고 많이 씁니다.

▷ 아비규환(阿鼻叫喚):

뜻밖의 변으로 여러 사람이 몹시 비참한 지경에 빠졌을 때 그 고통에서 헤어나려고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는 모양을 ‘아비규환이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8대 지옥 중에서 아비지옥과 규환지옥을 더한 말로 계속되는 심한 고통으로 울부짖는 지옥의 현상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 이판사판(理判事判)의 유래

막다른데 이르러 어쩔 수 없을 때 "이판사판"이란 말을 쓰는데 결과야 어찌됐던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체념적 의지의 표현이죠. 도박판에서 번번히 잃어 마지막 판돈을 걸때 자주 쓰는 말로 별로 우아한 말은 아닙니다.

이판사판이란 말은 본래 불교용어로 이판은 이판승을 나타내는 말로 참선 , 수도, 포교 등 불교의 이치를 탐구하는 스님을 뜻합니다.

사판은 사판승을 뜻하는 말로 사찰의 행정업무나 살림살이를 담당하는 스님을 말합니다. 때문에 사찰에서 이판승과 사판승은 수례의 양 바퀴처럼 상호보완적인 관계입니다.

어느 하나 만으로는 종단의 운영과 유지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가 조선시대 엉뚱하게 바뀌었습니다. 승유억불정책(유교를 승상하고 불교를 금하는 정책)으로 스님은 사회의 최하층으로 전락하여 중이 된다는 것은 신분이 가장 낮은 계층으로 추락하는 뜻이 되어 버렸죠. 속되게 말해 인생이 끝장났다는 말로 이판사판은 "막다른 궁지" 또는 " 끝장" 을 가리키거나 뾰죽한 묘안이 없을 때 비유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 이밖에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할때의 명복(冥福)이 불교단어입니다. 미망인(未亡人)도 불교단어 이고요. 찰나(刹那)-눈깜짝 할 새- 등의 단어도 있습니다.

 

● 목탁(木鐸)의 전설

→ 스님들이 들고 다니시는 것 중에 목탁이라고 있지요. 이 목탁(木鐸)은 원래 목어(木魚)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염불, 독경, 예배할 때 사용하고, 공양(식사)할 때나 대중을 모을 때 등 불사(佛事)에 쓰는 도구입니다.

 

목탁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중국 동정호 가까이에 공부가 하늘까지 닿은 도승 한분이 있었습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이 스님의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수많은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중 한 제자가 공부는 하지 않고 장난과 게으름 피우기에만 열중하였습니다. 스님은 여러번 타일렀지만 계속 방종의 길로만 흘러갔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이 제자에게 벌을 주기로 결심한 스님은 신통력을 발휘해 그를 물고기로 만들어 동정호 속에 던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반성하면 다시 사람으로 되돌려 주겠으니 참회하고 근신하라고 했지만 물고기가 된 제자는 물속을 마음대로 헤엄쳐 다니며 처음 보는 물속을 구경하면서 더 재미있게 놀기만 하였습니다. 이를 안 스님은 더 무거운 벌을 주기로 결심하고 물고기의 등에 커다란 나무를 한그루 심었습니다. 등에 나무가 생긴 물고기는 마음대로 헤엄을 칠 수도 없고 먹이도 잡을 수 없게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풍랑이 칠 때마다 등의 나무가 흔들려 살이 찍어지고 피가 흘러 뼈를 깍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때부터 후회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고달픈 세월을 보낸 몇 년 후 스승인 스님이 동정호를 지날 때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고 살려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스님은 제자가 충분히 반성한 것을 보고 수륙제(水陸齊)를 베풀어 다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물고기 등의 나무로 목어를 만들어 절에 걸어두고 아침 저녁 사람이 모일 때 치면서 많은 제자들이 경계심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목어를 더욱 작게 만들어 늘 몸에 지닐 수 있도록 한 것이 목탁입니다.

※ 우리는 흔히, 사회의 목탁이 되어라 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이는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항상 바르게 행동하여 타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 법당 안에는 어떤 불상들이 모셔져 있을까요?

법당 안에 들어가면 어디에나 부처님 모습을 한 조각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 조각상을 불상이라고 합니다. 즉 불상이란 부처님의 모습을 형상화한 상입니다. 불상은 부처나 보살이 단독으로 봉안되기도 하지만, 삼세불 또는 삼존불이라 하여 세 불상이 함께 모셔지기도 합니다.

불교에서 삼존불을 모시는 것은, 석가모니 이전에도 부처님이 있었고, 석가모니가 열반한 뒤에도 계속 존재하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 세상에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 대웅전(大雄殿)은 어떤 곳일까요?

우리나라 절에서 가장 흔한 전각 이름이 이 대웅전입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보살로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 대웅전은 용문사의 주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처마선이 유난히 고와 날개를 편 새처럼 날렵한 인상을 줍니다.

현판인 ‘대웅전’이란 글씨는 완당 김정희 선생님의 글씨체입니다. 진품은 아닌 것 같고 추사체를 모방해서 쓴 것으로 추측됩니다.

내부를 들여다보시면, 석가모니불이 가운데에 계시고, 좌우에는 대세지보살과 관음보살이 협시불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뒤에는 탱화가 놓여 있으며, 삼존불 위에는 닫집이 아름답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법당의 구조를 보면, 부처님을 모신 상단, 신중(神衆)을 모신 신중단과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습니다. 대웅전의 내부는 다른 어떤 건물보다 화려하고 장엄하게 되어 있으며, 일반적으로 목조보개(木造寶蓋) 및 불단의 조각이 매우 섬세하여 목조공예의 진수를 찾을 수 있게 합니다.

 

● 주련(柱聯) 이야기

여기 글씨보이죠? 이것을 주련이라고 하는데요. 주련이란 사찰이나 전통 가옥에서 법문이나 좋은 글귀를 나무판에 새겨 기둥에 붙이는 것입니다. 시구를 연(連)하여 건다는 뜻에서 주련(柱聯)이라 부릅니다.

주련은 기둥 바깥쪽에 달려 있어서 법당이나 방 안의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으며, 이는 사람보다는 자연이 보고 읽어 달라는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이곳 대웅전에 쓰여진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佛身充滿於法界(불신충만어법계)

普現一切衆生前(보현일체중생전)

隨緣赴感靡不周(수연부감미부주) ※赴: 다다를 부/ 靡:쓰러질 미

而恒處此菩提座(이항처차보리좌)

부처님은 온 세상에 가득해서

널리 모든 중생들 앞에 나타난다네

연따라 두루 나아가 감응하지만

항상 깨달음의 자리를 떠난 적이 없구나

이는『화엄경(華嚴經)』권6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 글씨 석주 선생

 

● 십우도(十牛圖)는 어떤 그림인가요?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단계를 동자(童子)나 스님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서 묘사한 불교 선종화(禪宗畵)의 일종입니다.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합니다. 모두 10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는 인간의 본성에, 동자나 스님은 불도(佛道)의 수행자에 비유됩니다. 삼독의 때를 벗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중생을 구제하여 속세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소 대신 말을 등장시킨 시마도(十馬圖)가, 티베트에서는 코끼리를 등장시킨 시상도(十象圖)가 전해집니다.

1. 심우(尋牛)

심우(尋牛)의 의미는 소를 찾는다는 것으로 여기서 소는 곧 내 마음, 참 나, 불성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2. 견적(見跡)

본성을 찾아 수행하다보면 잊어버린 본성을 흔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3. 견우(見牛)

그 흔적을 따라 꾸준히 수행하다 보면 드디어 소(참된 나, 불성)를 보게 됩니다.

4. 득우(得牛)

드디어 참된 내 마음(불성)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나(삼독의 때가 묻은)와 내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는 갈등하게 됩니다.

5. 목우(牧牛)

찾은 불성과 내가 동화되기 위해서는 소를 길들여야 합니다. 나와 또 다른 나(불성)가 조화를 이루는 단계입니다.

6. 기우귀가(騎牛歸家)

동자가 소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며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정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때의 소는 전체가 완전한 흰색을 띠고 있습니다. 소와 내 자신이 일체가 되어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뜻하며, 구멍 없는 피리에서 나오는 소리는 깊은 마음자리에서 흘러나오는 본성의 소리를 의미합니다. 본성과 내가 하나가 된 모습입니다.

7. 망우존인(忘牛存人)

집에 돌아와 보니 애써 찾은 소는 간 데 없고 자신만 홀로 남은 상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국 소는 나의 본성을 찾기 위한 방편이었고, 이제 고향집으로 돌아왔으니 그 방편은 잊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는 뗏목을 타고 피안에 도달했으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합니다.

8. 인우구망(人牛俱忘)

소도 자신도 모두 잊어버린 상태를 원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객관이었던 소를 잊었으면 주관인 동자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기 이전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이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완전한 깨달음이라고 일컫습니다.

9. 반본환원(返本還源)

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없는, 즉 있는 그대로 비치는 자연의 경지를 표현합니다. '산은 산, 물은 물' 그대로의 모습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한 경지입니다.

10. 입전수수(入廛垂手)

중생 제도를 위하여 석장을 짚고 저잣거리로 나서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중생 제도에 있음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 지장전(地藏殿)

지장전은 지장보살을 봉안한 전각으로 흔히 명부전이라고도 합니다. 이곳에는 지장보살님과 함께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협시불로 모셔져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지장탱화의 구성을 보면 지장보살과 좌우보처인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중심으로 명부시왕, 판관, 녹사, 사자, 장군, 졸사, 사방을 지키는 사천왕을 그립니다.

아무리 절 규모가 작아도 지장보살을 봉안한 전각은 있게 마련입니다.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해서 효를 중요시하였고, 사람이 죽으면 특히 49재라고 하여 망자를 좋은 곳으로 천도하려는 의식을 치룹니다. 이것은 불교신자는 물론이거니와 일반인들도 상례화되어 있는 전통입니다.

그런데 그 의식을 치르는 곳이 바로 이 지장전입니다. 지장전은 곧 49재 의식을 치르면서 효도를 할 수 있고, 절에서는 공양을 받을 수가 있는 공간입니다.

지장보살은 평소에 악하게 살다가 죽은 자신의 어머니를 좋은 곳으로 천도하기 위하여 재산을 처분하고 절을 찾아 나섰다가, 불쌍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다 나눠 준 처녀였습니다. 보살이 된 뒤에는 ‘단 한 명의 중생이라도 지옥에 가면 성불하지 않겠다’는 대단한 서원을 세우고 죽음의 문턱에서 중생을 교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절에서 지장전을 짓고, 지장보살을 봉안하여 망자들을 위한 염원을 받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 주련(柱聯) 이야기

명부전 주련 - 지장보살도량의 발원문

地藏大聖威神力(지장대성위신력):

지장보살의 위신력이여!

恒河沙劫說難盡(항하사겁설난진):

항하 모래수(인도 갠지스강의 모래)의 겁세월 동안 설해도 다 할수 업네

見聞瞻禮一念間(견문첨례일념간): ※瞻:볼첨

보고 들으며 예 올리는 일념 사이에도

利益人天無量事(이익인천무량사):

人天(하늘에 사는 사람)에 이익됨이 끌이 없도다!

이 글은 일중거사(一中居士) 김충현 선생님의 글씨입니다.

 

● 관음전

이 관음전에는 관세음보살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관음보살은 고통에 허덕이는 중생이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즉시 중생의 고통과 소원을 모두 듣고 막힘없이 해결해 준다고 합니다. 이곳 관음전은 지은 지 3년 정도 되었습니다. 건물을 지을 당시, 한 지관이 이곳의 터가 아주 좋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이곳에서 기도했던 많은 스님들이 다른 사찰의 주지로 나가는 등 좋은 소식이 많았습니다.

이곳이 용문산이잖아요. 관료로 나아가는 것을 등용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이곳에서 기도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안겨줄 것 같습니다. 입사시험을 앞두신 분들은 한번 기도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삼성각

정면 3칸, 측면 1칸의 아담한 건물로 내부에는 산신과 칠성, 독성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삼성각은 어느 절이건 경내에서 가장 위쪽, 특히 산비탈에 세우는데, 이는 이곳에 산신을 모셔두었기 때문입니다. 삼성을 목각으로 조작하여 봉안하는 것도 볼 수 있긴 하지만 대부분 탱화를 걸어둡니다.

산신이나 칠성, 독성신은 사실 불교에서 전래된 신은 아닙니다. 산신은 우리 고유의 토속신으로 불교가 들어온 뒤 융화된 신이며, 칠성은 도교에서 유래된 신입니다. 독성은 홀로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흔히 나반존자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불교 외적인 신들이 절에 모셔지고 있음은 불교의 포용력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들 신들의 경우에 따라서는 꽤 영험을 나타낸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칠성신은 아이의 건강을 돌보는 신으로 절 이외의 장소에서도 신봉되고 있습니다.

 

● 요사채

요사채는 스님들이 생활하는 곳이자, 수행 공간입니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스님들은 이곳에서 안거를 합니다. 안거란 수행을 철저히 하는 것을 말합니다. 겨울철과 여름철 두 차례 시행합니다. 겨울철엔 동안거, 여름철엔 하안거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보통 스님이 되면 그 때부터 새로운 나이가 적용되어 이를 법랍이라고 부릅니다. 해마다 그냥 법랍이 하나씩 더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안거, 특히 동안거를 해야만 스님의 법랍이 추가되는 것입니다. 안거는 보통 3개월씩 하게 되므로 봄과 가을 이외에는 대개 안거하는 시기입니다.

절 규모가 큰 곳에서는 식사와 빨래, 혹은 다른 일을 위한 공간이 별도로 있으나 용문사에는 이 요사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 범종각

범종을 봉안하는 건물입니다. 좀 규모가 있는 절에는 2층의 누각을 세워 범종루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범종루라고 할 때에는 보통 사물을 모두 갖추게 됩니다. 사물이란 범종과 목어, 운판, 법고 네 가지를 말합니다. 보통 아침에 28번, 저녁에 33번을 칩니다.

이곳의 범종각은 좌우 1칸씩으로 아담한 정자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범종 아래 부분이 움푹 파헤쳐져 있는 모습이 보이시죠? 이는 종소리가 더욱 크고 깊게 울리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물은 종류에 따라 그 의미가 약간씩 다릅니다.

범종(梵鐘)은 지옥의 모든 중생들에게 까지 들리도록 하여 고통을 덜어주고 하늘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더 해 주기 위해 칩니다.

법고(法鼓)는 세간의 모든 중생들이 번뇌를 끊고 해탈을 이루게 한다는 의미가 답겨 있습니다.

목어(木魚)는 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하여 배부분을 파내고 안쪽의 양벽을 나무채로 두들겨 소리를 내는 법구입니다. 물속의 사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칩니다.

한편 목어는 물고기가 눈을 깜빡이지 않는 것처럼 수행에 힘쓰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운판(雲版)은 청동이나 철로 만든 구름 모양의 법구로써 허공에 날아다니는 새들을 구제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 사물(四物)을 치는 순서는 아침(운판→목어→북→범종28회), 저녁(범종33회→북→목어→운판)의 순으로 칩니다.

 

● 미륵불상

관음전이 지어지기 전에, 이곳에는 미륵불상이 서 있었습니다. 미륵불이란 미래의 부처님입니다. 경전에는 석가모니가 입멸한 뒤 56억 7천만 년이 지난 후 세상에 내려와 부처가 된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상징적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이미 미륵불이 왔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올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미륵신앙이 들어온 것은 불교도입 초기부터입니다. 그래서 삼국시대 불교유물 중에는 미륵불상이 많으며, 특히 통일신라 때의 미륵반가사유상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보다 뛰어난 조형미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미륵불상은 이렇게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는 미륵불이 장차 세상과 중생을 어떻게 교화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현재는 양평에 있는 미지유치원이란 곳에 옮겨져 있습니다.

 

● 삼층석탑, 탑과 부도의 차이점

이 삼층석탑은 1982년부터 대대적인 중창을 할 때 조성된 것입니다.

탑과 부도의 가장 큰 차이는,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것이고 부도는 고승의 사리를 모신 것입니다. 석가모니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는 처음엔 불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모습을 사람이 만든 상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대신에 탑이나 발자국 이런 것을 만들어서 모신 것입니다. 물론 그 이후 불상을 제작하고 이렇게 되지요. 그리고 탑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양에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여기저기 다 주다보면, 그래서 대신 불경이나 작은 불상 등을 넣어두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통도사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있다고 하는데 이곳에는 탑에 두지 않고 사리함을 따로 두어 모십니다.

탑을 해체하면 안에서 불경 등이 발견되는 것이 이러한 이유죠. 그래서 탑을 해체 하던 중 무구정광다라니경 같은 최고의 목판 인쇄물이 나오고 한거죠. 그리고 간혹 탑에서 사리함과 사리가 나오는데, 다 부처님 사리는 아니겠죠. 그리고 부도의 경우는 고승들의 사리를 모신 곳인데 일반적으로 위치도 절 앞이 아니라 한쪽에 모셔두고 양식도 조금은 다릅니다.

부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불교의 힘이 매우 컸던 신라시대 말기부터입니다. 그때부터 각 절에서는 스님이 입적하면 부도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선종 사상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곧 고승의 죽음은 부처의 죽음과 같다고 해서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하여 부도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부도의 모양을 보면 매우 다양합니다. 종을 엎어놓은 듯한 모양, 탑의 일부처럼 생긴 모양, 둥그런 항아리에 작은 지붕을 얹은 모양 등등이 있고, 모양이 비슷하더라도 크기와 조각수법이 천차만별입니다. 그래서 매우 우수한 유물도 많이 전해지며 국보와 보물 등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많습니다.

 

● 해우소(解憂所)의 의미

여기 해우소 보이시죠? 해우소는 근심 푸는 곳이라는 뜻으로, 사찰의 화장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내용물은 똑같이 냄새나는 곳일 터이나 뒷간·화장실이라는 언어와 달리 대소변을 미련 없이 버리듯 번뇌 망상도 미련 없이 버리자는 뜻이 담겨 우리 스님네들의 해학과 멋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사찰에서조차 해우소라는 표지판을 달 정도로 많이 알려졌습니다.

요즘은 해우소=사찰화장실이라는 인식이 많이 확산됐지만 해우소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한국전쟁 후 충남 동학사의 한 스님이 뒷간에 해우소라는 현판을 단 후 부터라고 합니다.

해우소라는 용어는 원래 해의소(解衣所) 즉 옷을 벗는 곳이라는 의미였다 합니다. 속곳·속바지·속치마까지 켜켜입은 옛 사람들은 옷을 몇 개쯤 벗어놔야 시원하게 뒷일을 볼 수 있었던지라 뒷간 이름도 옷 벗는 장소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옛날 송광사 스님과 선암사 스님이 만나 서로 자기 절 자랑을 하는데, 송광사 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우리 절에는 솥이 얼마나 큰 지 밥을 푸려면 배를 띄워 노를 저으면서 퍼야 한다네 하니, 이에 지지 않고 선암사 스님이 우리 절에는 뒷간이 얼마나 높은지 어제 눈 똥이 아직도 떨어지는 중이라 소리가 내일 아침녁에야 소리가 들린다네라 대꾸했습니다.

뒷간이 높으면 그 만큼 절 식구수도 많고 사세도 크다는 의미를 부풀려 말한 것입니다.

사찰 해우소의 가장 큰 의미는 뭐니뭐니 해도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는 공간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 곳은 인간이 섭취한 음식물이 마지막 처리되는 과정이자 또 다른 생명으로 환원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수세식 화장실의 보급으로 똥은 오물이자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했지만 농업이 중심이 되었던 시대에 똥은 농작물을 재배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기능을 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쓰레기가 아닌 자연순환의 매개체로 전통 해우소의 참뜻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정지국사 부도 및 비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 정지국사 부도 및 비(국가지정 보물 제531호(1971. 7. 7.))

이것은 정지국사 부도인데요. 정지국사는 고려말 고승으로 속명이 김지천이셨습니다. 1324년(고려 충숙왕 11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났습니다. 19세에 장수산 현암사에서 승려가 되었고, 30세 때인 1353년(공민왕 2년) 무학대사(1327~1405)와 함께 중국 연경에 들어가 지공(인도승)을 만나 그의 법을 이어 받은 나옹선사(혜근 1320~1376)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천대사는 개풍군 경천사에서 용문사로 옮겨와 대장전을 짓고 개풍 경천사에 보관되었던 구씨원각대장경 한질을 옮겨 보관하였으나 1907년 일본군에 의해 소실되었습니다.

1356년(공민왕 5년) 귀국하여 벼슬이 싫어 자취를 감추고 자신의 수양에만 힘쓰다가 천마산 적멸암에서 입적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리가 나와 조선 태조가 정지국사로 추증하였습니다.

1435년(조선 태조 4년) 조안스님은 용문사를 중창하고 주지로 있을 때, 김지천 대사의 입적 소식을 듣고, 그분의 사리를 용문사로 가져와 부도탑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부도는 팔각원당형으로 지대석 위에 연꽃문양이 조각된 사각형의 하대석을 놓았습니다. 그 위에 원통형의 중대석이 놓여 있고 옆면에 연꽃모양이 새겨진 팔각형의 상대석이 중대석 위에 있습니다.

탑신부는 팔각형으로 한면에만 ‘문’자 문양이 새겨져 있고 팔각형의 지붕들은 윗면의 합각선이 두툼하고 끝에는 꽃모양(귀꽃-석등이나 돌탑 따위의 귀마루 끝에 새긴 꽃 모양의 장식)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상륜부는 현재 양화석 부분만 남아 있습니다.

비는 부도에 딸린 탑비로 신라와 고려, 조선 초기와 병합된 조각 형식으로 1398년(태조 7년)에 건립되었습니다. 부도와 비는 약 80m 떨어져 있습니다. 조성 당시의 찬조자 명단과 정지국사의 공적에 대한 내용이 당시 학자였던 권근의 글로 새겨져 있습니다.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옛 신라시대의 양식을 따른 부로로 규모가 제법 큰 편입니다.

출처 : 오동추야
글쓴이 : 쟈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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