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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태후와 선덕여왕

제봉산 2009. 12. 30. 09:44

내폴더


<천추태후>와 <선덕여왕>

 
유럽에 17년 동안 살아온 사람으로서 한국을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이러한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방법 중에 하나가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입니다. 1990년대에는 <모래시계>와 <가을 동화>같은 한국에서 종영된 드라마를 비디오로 빌려 보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한국에서 방영된 당일 같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세상입니다.
 
단편이 아닌 연속극을 보는 것은 시간관계상 끝까지 보는 일이 드뭅니다. 헌데, 2009년 상반기에는 KBS의 <천추태후>를 하반기에는 MBC의 <선덕여왕>을 흥미롭게 시청했습니다. <천추태후>는 태조왕건의 손녀로 거란의 침략에 맞서 싸워 세 차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여태후를 중심으로 한 사극입니다.  <선덕여왕>은 삼국통일의 발판을 제공하는 역사상 최초의 여성 임금을 다룬 드라마인데, 특이한 것은 그간 남성주도의 사극을 여성 중심의 사극으로 이끈 작품이라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두 드라마의 주인공인 천추 태후 (채시라)와 선덕여왕(이요원) & 미실(고현정)을 비롯하여 많은 연기자들을 보면, 한국 드라마가 한류 붐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가 바로 경쟁력있는 재원과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연출 제작 능력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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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드라마의 주인공이 모두 최고의 권력을 잡지만 사랑하는 연인, 김치양(김석훈)과 비담(김남길)이 자신들에게 칼을 겨누는 가장 아픈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배신감이 극에 달하게 만듭니다. 드라마 설정 중에 이보다 처참하고 슬픈 상황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선덕여왕은 충신 유신의 칼에 비담이 쓰러지는 것을 처절하게 지켜보고, 천추태후는 자신이 직접 칼로 김치양을 찌릅니다. 두 장면이 모두 비극적이지만 공통점은 두 여인이 모두 마지막 순간 자신을 향한 사랑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싶어했다는 점입니다. 
 
‘대 고려’건설이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은 천추태후 그리고 신라를 바로 세워 '삼한일통(삼국통일)'의 대업을 여는 것이 자신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믿는 선덕여왕, 그리고  미실조차도 전방 병력이 증원군으로 올 때 전선으로 복귀할 것을 명하는 대목에서 국가안보가 권력찬탈을 위한 정쟁보다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이처럼 저마다의 명분과 이상을 지닌 애국적인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두 드라마에서 권력 쟁탈을 위한 노력들 그리고 성취 그러나 인생을 마감할 때 그 권력이란 것이 허무하고 허망함을 느끼게 합니다.

 
반 년 정도를 재미있게 본 드라마이기에 출연진들의 본명을 찾아보면서, 어떤 연기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 성의있는(?) 유럽시청자가 할 수 있는 감사 표현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추태후>를 중심으로 <선덕여왕>의 출연진과 비교하고, 역사적 사실이 아닌 드라마에 나타난 내용에 근거해서 포스트를 구성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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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태후(채시라)는 과부(경종의 비인 헌해왕후였기에)와 김치양과 연인 그리고 어머니 역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에 연기의 폭이 깊었다고 생각됩니다. 반면,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 결혼을 마다했고 그래서 자녀를 두지 않은 선덕여왕(이요원)은 극중에 한정된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두 사극에서 채시라와 이요원을 선한 편으로 분류해서 대비한다면, 이들의 넘어야 했던 맞수인 거란 소태후(심혜진)미실(고현정)은 적의 편에서 대비가 됩니다. 심혜진이 만들어 내는 공포 분위기와 고현정의 계략과 책략은 모두 분위기를 압도했습니다.
 
김치양(김석훈)은 신라왕족의 후손으로서 신라 복원의 꿈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루려했습니다. 강조의 아내 천향비(홍인영)가 김치양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시청자를 분개하게 만들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김치양의 대의명분은 천향비를 살해함으로써 퇴색됩니다.
 
강조(최재성)는  황보수에 곁을 지키며 그는 자신의 안에서 천추태후를 여자로 보는 마음이 점점 자라나 고통스러워한 장면들은 애처로웠습니다. 천추 태후를 끝까지 지키는 면에서 유신(엄태용)알천랑(이승효)이 선덕여왕에 끝까지 충성하는 이미지와 겹칩니다. 1980년대 공포의 외인구단의 주연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최재성의 반항적인 모습이 이제는 중후한 이미지로 바뀌었습니다.
 
강감찬(이덕화)은 서희와 함께 정의의 편에 서서, 하이틴 스타이후로 ‘영원한 멋쟁이’로 남을 작품을 했습니다. 제가 재미있다고 느낀 것은 강감찬이 살수대첩에서 걸친 망또인데, 불긋불긋 화려하여 마치 로마제국의 총독과도 같은 의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살수대첩 전쟁 장면을 다른 전쟁처럼 리얼하게 다루지 않고 넘어간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한편, 양규 (홍일권) 장군의 화려한 무술능력과 선한 마스크는 <선덕여왕>의 문노(정호빈)와 비견됩니다.

서희 (임혁) 는 문무를 겸비하였으며 성품이 진중하고 온유하며, 사리에 밝은충신으로 그려집니다. 972년에는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 수십 년간 단절되었던 송과의 외교에 물고를 트게 했고, 993년 거란의 1차 침입 시에는 소손녕과 담판을 지어 강동 6주를 얻어낸 걸출한 서희를 비스마르크나 리슐리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서희 역을 맡은 임혁씨는 충신역에 어울리는 마스크로서, 역사책의 서희의 이미지가 이러했을 것 같은 성공적 캐스팅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고려 제6대 국왕인 성종 (김명수)은 천추태후의 오라버니이자 적으로 나옵니다. 성종은 자신이 꿈꾸던 질서 정연하고, 혼란이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왕이기에 동생인 황보수와 끊임없는 대립을 했습니다.  한편 성종의 답답한 성정은 <선덕여왕>에서 무기력해 보이는 진평왕(조민기)과 이미지가 겹칩니다.
 
목종(이인)은 약하고 애처로운 왕의 모습을 보여주는 배역을 잘 해냈습니다. 목종의 아역을 맡은 박지빈은 천추태후와 선덕여왕에 동시에 출연한 아역 배우입니다.  다시 말해, KBS와 MBC의 라이벌 프로그램을 넘나든 아역 탤런트였습니다. 박지빈은 <천추태후>에서 간질이 발명하는 장면 연기는 섬뜩할 정도로 실감나게 했고, <선덕여왕>에서는 스승 문노의 책을 훔쳐간 유민들에게 독약을 풀어 대거 살해하는 악의를 품은 어린 비담으로 또 한 번 섬뜩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현종 (김지훈) 은 고려 제8대왕으로 태조의 여덟 째 아들 안종 욱과 헌정왕후(황보 설)의 아들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목종 퇴위 이후에 현종으로 등극하고 두 차례의 전란을 겪으며 점차 국왕으로서의 면모를 발휘하는데, 무엇보다도 큰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포용의 정치를 펼쳐야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선덕여왕이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서 미실측에 ‘합종’을 제의했던 모습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왕욱-경주원군 (김호진) 은 권세욕이 없지만, 세상을 보는 안목도 있고, 학문을 좋아하고 배우고 익히기를 좋아하며 후덕한 인품의 소유자로 그려졌습니다. 경종의 사후 사가로 나온 황보설(헌정왕후)을 다시 만나 사랑을 하게 되는데, 사랑의 기간이 짧게 끝나기에 더욱 아름다운 커플로 기억됩니다. 
 
헌정왕후 (신애)와 왕욱의 사랑은 <천추태후>에서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그리고 아역을 맡은 박은빈의 풋풋한 연기도 잔잔한 감동으로 남습니다. 박은빈은 <선덕여왕>에서 보종의 딸 보량궁주로 좋은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이주정( 김병춘)은 천추궁의 총괄 집사역으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천추태후의 곁에 머무는 노신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이름이 술주정을 연상시키고, 진지한 역사극에서 감초 같은 역할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은 인물입니다. <선덕여왕>에서 죽방(이문식)고도(류담)의 배역같이 말이죠.
   
거란 성종 (장동직)은 <아이리스>에서 테러리스트로 분해 인상 팍 쓰는 모습이 천추태후에서 모습과 오버래핑되었습니다. 그만큼 천추태후에서 강한 눈매가 각인된 탓이기 때문이겠지요. 근데 사극 비교하면서 왠 첩보액션 드라마 타령을 ... [쌩뚱 one]
  
야율분노 (김성현)는 거란 최고의 무사로 그려집니다. 거란 장수에 어울리는 마스크를 가져 캐스팅을 잘한 인물이라고 생각됩니다. <선덕여왕>에서 칠숙(안길강)과 비견되는 배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독연(이은정)  소태후의 호위무사로 부리부리하고 매섭고 강한 인상으로 깊게 각인되었습니다.독연은 냉혹한 무사에서 김치양의 수하로 있는 사가문(김형종)과 연정이 싹트는 장면은 천추태후의 또 다른 색상의 로맨스였습니다. 애초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여무사에서 연민까지 느끼게 하는 다양한 변신을 보여줬습니다. 이런 그녀가 웃는 사극 연기를 할 수 있을 지 궁금해 집니다. 헌데, <아이리스> 북한 공작요원 김소연과 날카로운 눈매 비슷하게 느낀 것은 저만의 관찰인가요? 또 주제에 벗어나는 첩보액션 드라마 얘기를… [쌩뚱 Two]

이현운 (최준용)은 얍삽하고 비겁하며, 얄미운 간신배 역할을 잘 소화해 냈습니다.  이충정( ? ) 에 의한 이현운의 독살은 비담이 염종(엄효섭)의 숨을 끊어버린 때와 같은 통쾌함이 있었던 것은 저만의 느낌이었나요?
 
한편 두 드라마의 조연을 잘 해낸 연기자들 중에는  <천추대후>의 조행수(오욱철)조두(강신조 ) 그리고 <선덕여왕>에서 미생(정웅인 )하종(김정현)등이 있습니다
 
<천추태후>에서 천양비역의 홍인영, 헌정왕후의 신애, 선정왕후 유씨역에 이인해와 아역의 한보배, <선덕여왕>에서 비담을 맡은 김남길, 김춘추역을 맡은 유승호, 덕만의 어린 시절을 맡았던 남지현, 천명공주의 박예진 그리고 아역을 맡은 신세경, 유신의 아역 이현우는 앞으로 한국 드라마를 이끌고 갈 재목들로 보입니다.

물론 <천추태후>에서 신정황태후-반효정과 같이 <선덕여왕>에서 진흥왕-이순재. 을재-신 구, 김서현-정성모,  그리고 유신의 어머니-임예진 같은 중견 연기자들의 힘이 후배 연기자들을 이끌고 있는 것이지요.
 



 

새해에도 개성과 연기력을 갖춘 이들 선남선녀들에게 어울리는 배역이 주어져브라운관/모니터를 통해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엮은 이 두 사극으로 2009년 즐거움으로 머리를 식힐 수 있었고, 덕분에 (일부 역사적 고증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하지만) 조선시대와 여성신분이 다른 신라와 고려사회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천추태후>와 <선덕여왕>의  제작진과 출연진 분들 2010년도 좋은 작품과 좋은 연기 보여주시고,
더 많은 한국 드라마가 고부가 가치“하이터치 상품”으로서 여러 나라에 소개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