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옛길, 10월 10일부터 산수동~원효사~서석대 11.87㎞ 완전 개방
“싸목싸목 오감 열고 황소걸음으로 걷는 길”
황소걸음길, 연인길, 김삿갓길, 숲속의길, 무아지경길 등 이어져
- 무등산이 육산(肉山·흙산)일까, 악산(嶽山·바위산)일까? 정상 부근에 있는 주상절리, 즉 입석대와 서석대만으로 볼 때는 전형적인 악산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철쭉과 억새가 군락을 이룬 육산의 모습을 띠고 있다. 광주시민들은 무등산을 ‘광주의 진산이며, 포근하고 후덕한 어머니의 산’이라고 부른다. 도심 배후에서 도시를 감싸안고 있으며, 동서남북 어디에서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모나지 않아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광주시민들은 또한 도심 10㎞ 이내에서 해발 1,000m 이상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산이라고 자랑한다. 이 무등산에 옛길이 조성됐다. 이른바 ‘무등산 옛길’이다.
이 길은 무등산이 간직한 수천 년의 역사를 이야기로 녹여내는 길이다. 구간 구간마다 광주의 정사(正史)와 야사(野史)를 담아내고 있다.
- ▲ (위) 무등산 옛길 종점인 서석대를 지나 입석대로 내려오면서 앞으로는 백마능선이 길게 펼쳐져 있고, 주변엔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억새 군락지가 제철을 맞아 활짝 피어 있다. (아래) 지난 10월 10일 개방된 무등산 옛길 2구간 ‘무아지경길’을 찾은 등산객들이 자연을 즐기며 숲속 길을 걷고 있다.
무등산 옛길은 신수동~공원관리사무소에 이르는 포장도로 옆의 숲지대 속으로 조성했다. 현재도 작업 중이지만 일단 2구간까지 개통했다. 1구간은 산수동5거리에서 충장사~원효사에 이르는 총 7.75㎞로서 지난 5월 중순에, 2구간은 원효사~제철유적지~서석대의 4.12㎞로서 10월 10일 일반에 첫선을 보였다. 총 연장거리가 11.87㎞다. 이 거리는 무등산의 높이 1,187m와 숫자가 같다.
3구간은 연말까지 가사문학과 광주의 문화를 볼 수 있는 길을 담아 개통할 예정이다. 환벽당~소쇄원~식영정~명옥헌에 이르는 15㎞ 코스다. 3구간까지 개통되면 광주의 역사와 문화를 골고루 체험하는 길이 될 것이다.
1구간 출발지점은 산수동5거리다. 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주택가 바로 옆이다. 무등산으로 가는 좁은 골목길 앞에 ‘무등산옛길 입구’라고 적힌 커다란 플래카드를 걸어놓았다. 수지사 입구 비석도 같이 있다.
무등산 문화관광해설사 이애심(53)씨를 오전 10시30분에 만나 동행했다. 이씨는 5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매일 무등산에 오르내리며 단련된 건각을 자랑했다. 본인도 무등산에 오른 지 20년이 지났으며 “산에서 다람쥐같이 날랐다”고 했다. 군살 하나 없는 날렵한 체격에 발걸음도 사뿐사뿐했다. 뿐만 아니라 문화관광해설사에 숲해설가, 일어통역사 등 다양한 지식도 지녀 동행 내내 쉼 없이 정보를 제공했다.
출발한 지 1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나무 쪼는 소리가 “따따따따~” 하고 울렸다. 딱따구리였다. ‘야, 도심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이렇게 선명한 딱따구리 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굉장히 건강한 생태를 지닌 산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이 아니고 몇 번 계속 들렸다.
- ▲ 가을을 만난 무등산 억새가 석양과 어울려 아름다운 정취를 뽐내고 있다.
1코스는 천천히 걷기 적당한 길
이애심씨는 “광주 사람들의 무등산 사랑은 유별나서, 시에서 무등산에 손을 대기가 쉽지 않다“며 ”무등산 보존단체만 광주에 50여 개나 된다“고 했다. 한마디로 무등산이 훼손된다면 ‘벌떼’같이 일어나 반대운동을 벌인다는 것이다. 무등산에서 이 정도 건강한 생태가 보존되는 데 그들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소걸음길’이란 푯말이 나왔다. 출발지점부터 제4 수원지가 있는 청암교까지 황소걸음길이라 했다. ‘소에게 길을 물으며 황소걸음으로 걸읍시다’라고 안내하고 있다. ‘걷기’ 자체가 명상과 사색을 동반하는 느림의 철학이고, 경쟁보다는 공존을, 수직의 정복보다는 수평의 평화와 안정을 꾀하는 가치를 지닌다. 그렇게 걷는 길을 천천히 걷는 동물의 대표격인 ‘황소’에 비유했으니 이 길은 아예 서 있는 듯 걸으라는 것 같다. 이씨는 “싸목싸목 오감을 열고 주변을 살피며 걷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싸목싸목’은 ‘천천히’의 광주 사투리다. 싸목싸목 걸으려니 갈 길이 바쁘다.
이 길을 통해 옛날 담양과 화순 동복 사람들이 잣고개를 넘어 광주 양동시장과 대인시장으로 황소를 팔러 다녔다. 시장으로 갈 때는 소와 같이 천천히 걸었지만 돌아올 때는 소 대신 두둑한 봇짐을 메고 왔을 것이다. 그리고 거나하게 한 잔 걸쳤음 직하다. 그 옛날 선조들의 모습이 상상 속에 그려졌다. 그대로 집에 도착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간혹 불행한 일도 발생했다. 이 길이 황소길인 동시에 두둑한 봇짐을 노리는 산적들이 우글거린 길이기도 했다. 마침 황소바위가 길 중앙에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면서 쉬던 바위다. 산적은 방심한 사람을 최우선으로 노렸다. 서로 어떤 심정이었을까? 잠시 바위에 앉았다. 상상의 나래는 과거로 잠시 시간 여행을 떠났다.
무등산 옛길은 말 그대로 옛길이다. 사람이 조성했지만 옛길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무등산 옛길‘이란 이정표에도 ‘옛길에서는 쇠지팡이가 필요없습니다. 선조들의 길에 상처를 주는 스틱 사용을 자제합시다’라고 적혀 있다.
이제는 조금 가파른 계단길이다. 바로 옆엔 지붕부터 벽까지 전체가 온통 파란색을 띤 집 한 채가 덩그러니 있다. 여자 무당이 신내림을 받는 굿당이라고 했다. 커다란 초가 놓여 있고 여기저기 줄도 걸려 있다.
계단길을 올라 끝을 밟으니 무진고성(武珍古城) 잣고개다. 옛날 이곳에 잣나무가 많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고, 또 까치가 많이 날아온다고 해서 작고개(鵲峙·작치)로도 불렸다. 일제강점기엔 한자어로 척현(尺峴)이라고 쓰고 잣고개라 했다고 한다.
잣고개에 바로 무진고성이 길게 뻗어 있다. 무진은 광주의 옛 지명이다. 따라서 무진고성은 곧 광주산성쯤 되겠다.
무진고성에 올라서면 도심을 내려다보는 전망대가 있지만 옛길은 무진고성 아래로 이어진다. 신라 말에 축성하여 고려시대까지 사용한 고성이다. 무진고성 동문터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왔다.
바로 옆에 놓인 무등로 신작로는 옛길을 단절시킨 주범이다. 하긴 길이 무슨 죄가 있으랴. 옛길을 생각없이 훼손하고 새 길을 만든 사람의 행위가 문제지.
무등로 신작로 옆으로 겨우 한 사람이 다닐 만한 숲속 길로 무등산 옛길을 연결시켰다. 찻길 바로 옆은 소음이 심해 그 위로 또 다른 길을 새로 냈다. 제각각 ‘아빠의 길’과 ‘엄마의 길’로 명명했다. 차도 옆엔 ‘달리는 차보다 걷는 우리가 편합니다’라는 푯말이 있다. 황소걸음길이 끝나갈 즈음 아빠와 엄마의 길은 서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