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Se Qualcuno Si Innamorera' Di Me ...
(안개낀 밤의 데이트)
E Se Qualcuno Si Innamorera' Di Me... "안개낀 밤의 데이트"라는 곡입니다.
원래 이곡은 La Playa(바닷가)라는 영화에 주제곡이었는데 철지난 바닷가를
바라보며 뜨거웠던 한 여름의 사랑을 회상하며 아쉬워하는 내용의 노래로
영화의 내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노래가 1960년대 그리스영화 "안개낀 밤의 데이트"에서 프랑스 키타
리스트 클라우드 치아리(Claude Ciari)가 키타연주곡으로 삽입되어 유명 해졌읍니다.
이 영화의 내용은 매춘으로 살아가는 5명의 밤거리 여인들이 정부가 취한 매춘 금지법으로
인해 새 삶을 찾아가는 과정의 실패와 애환을 그린 영화라고 합니다.
“바닷가(La Playa)”라는 이 영화의 노래는 벨기에의 조반 웨터(Jo Van Wetter)가 작곡을 하고
프랑스의 피에르 바르(Pierre Barough)가 가사를 붙였다고 하는데
원래는 벨기에에서 힛트를 하고 프랑스에선 샹송으로 마리 라포레(Marie Laforet)가
이태리에선 칸소네로 마리사 사니아(Marisa Sannia)가 불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한 참후 능 옥란(Ngoc Lan)이 베트남 어로 불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도 하였답니다.
크라우드 치아리(Claude Ciari) guitarist
e se qualcuno si innamorera' di me
la mia chitarra suonera' per voi
ma se nessun mi vorra'
la mia chitarra nel silenzio piangera'
누군가가 나와 사랑에 빠진다면
내 기타는 우릴 위해 연주할꺼야.
하지만 아무도 날 원하지 않는다면
내 기타는 침묵속에 눈물을 흘릴꺼야.
e se qualcuno si innamorera' di me
il mio sorriso tornera' tra voi
ma se nessuno mi vorr'
la mia tristezza senza fine tornera'
그리고 누군가가 나와 사랑에 빠진다면
내 미소는 우리 사이에 돌아올꺼야.
하지만 아무도 날 원하지 않는다면
내 끝없는 슬픔은 돌아올꺼야.
amore ascoltami
ti ascoltero'
amore aiutami
ti aiutero'
내 사랑, 내 말 좀 들어봐
난 네 말에 귀를 기울릴꺼야.
내 사랑, 날 도와줘.
난 널 도와줄꺼야.
chi cerca un angelo lo trovera'
io cerco un attimo d'eternita'
e se qualcuno si innamorera' di me
la mia chitarra suonera' per voi
천사를 찾는 사람은 그걸 찾을꺼야.
난 불멸의 순간을 찾고
누군가가 나와 사랑에 빠진다면
내 기타는 우릴 위해 연주할꺼야.
ma se nessuno mi vorra'
la mia chitarra nel silenzio piangera'
la mia chitarra nel silenzio piangera'
하지만 아무도 날 원하지 않는다면
내 기타는 침묵속에 눈물을 흘릴꺼야.
내 기타는 침묵속에 눈물을 흘릴꺼야.
마리 라포레(Marie Laforet)
마리 라포레(Marie Laforet)는 1939년 10월 5일 프랑스 수락쉬르메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마이테나 무메낙(Maitena Doumenach)인데 어릴 때부터 노래에 재능이 있어
가수의 꿈이 있었다.
그러나 가수가 아닌 “알랭 들롱”이 욕망에 꿈틀대는 젊은 청년으로 등장하는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1960)에서 마지 듀발로 등장하면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어서 조르주 라우트너 감독의 액션 영화 < Flic ou voyou)“(1979)에 출연했었고,
역시 라우트너 감독이 만든 “나이스 줄리(Joyeuses Paques)”(1984)에서 비중 있는
역을 맡아 코믹한 연기를 펼치면서 다수의 영화에서 좋은 연기로 배역을 소화 해 냈다.
뒤 이어 페르난도 솔라나스 감독의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인
“Tangos, l exil de Gardel”(1985)에서는 마리아나라는 여인으로 등장해 아름답고
정열적인 라틴 음악에 맞춰 탱고를 선보여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또 프랑스 영화감독 엔키 비랄의 SF영화 “티코 문(Tykho Moon)“(1996)에 등장하여
57세의 마리 라포레가 열연하여 브뤼셀 판타지 영화제에서 시각효과상을 타기도 한다.
마리 라포레(Marie Laforet)는 40년 가까이 되는 영화 인생에서 작품 활동을 게을리
한 적이 없는 배우로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에서 끊임없이 노력해왔으나
그녀 역시 주목받지 못하는 영화의 출연과 사랑의 실패. 그리고 건강악화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서서히 스크린에서 밀려나야만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다른 재능이 숨겨져 있었다.
바로 이때 어릴 적부터 꿈꾸었던 가수로서의 도전을 하여 영화에서 기타를 치며
주제가를 불러 가수로 처음 데뷔했고 캐나다 몬트리올. 파리의 올렝피아 극장의 공연을
하면서 가수로서 성공을 하게 된다.
다소 병약하면서 신비스런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모습과 미묘하고 가녀린 표정으로
애처러움 마저 느끼게 하는 마리 라포레는 배우가 된 것은 아주 우연이었고 잃어버린
자신의 청춘의 꿈을 되살려 슬픔을 딛고 노래에 전념한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예쁜 눈을 가지고 있고 외모는 빛을 발한다라고 할 정도의 미모를
자랑하는 마리 라포레는 분위기 있는 비음의 소유자로 신비스러운 목소리와 부드럽게
속삭이는 창법으로 많은 샹송 팬들을 매료시키고도 남는 가수이다.
오독이 만들어낸 뜻밖의 성공이어서 일까?
그녀는 자신의 노래에서 단 한 번도 비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당장 장대비를 쏟아 부을 것 같은 암혹의 먹구름을 연상하게 한다.
마리사 사니아(Marisa Sannia
마리사 사니아는 1947년 지중해에서 시칠리아에 이어 두번째로 큰 사르데니아(Sardenia)
섬의 최대 상업도시 칼리아리의 이글레시아스(Iglesias)에서 태어났다.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마리사 사니아(Mrisa Sannia)는 산레모 페스티벌에서 배출하여
스타로 각광을 받은 싱거다.
물론 많은 칸초네 스타들에 비한다면 좀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지만
돈 배키(Don Backy)의 원곡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사랑받았던 'Casa Bianca(하얀 집)'
을 불렀던 가수라고 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올디스 팬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지중해에서 1947년에 태어난 마리사 사니아는 열아홉 때이던 1966년 이탈리아의
방송사인 RAI가 주최한 신인 발굴 페스티벌에서 우승하면서 음악계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 뒤 TV에 얼굴을 내밀기도 했던 그녀는 1968년엔 돈 배키가 만든 화제의 곡
'Casa Bianca'로 주목을 받았고 그 해에 TV 페스티벌인 칸초니시마(Canzonissima)
<1961년부터 매해 주제를 정해 행사를 열어서 주목을 받은 행사>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실력을 과시했다.
그 뒤 1970년과 1971년에도 산레모에서 'L'amore E Una Colomba(사랑은 비둘기)'와
'Come E Dolce La Sera'로 결선에 오르는 단골손님이 되었고
1984년에도 'Amore Amore(사랑, 사랑)'이란 곡으로 행사에 참가했었다.
1968년에 'Casa Bianca'와 '
E Se Qualcuno Si Innamorera Di Me(안개 낀 밤의 데이트)' 등이 수록된 데뷔작
"Marisa Sannia"를 시작으로
'L'amore E Una Colomba(사랑은 비둘기처럼)'이 실린
"Marisa Sannia Canta Sergio Endrigo E Le Sue Canzoni"(1970),
"Marisa Nel Paese Delle Meraviglie"(1973), 등의
앨범을 내며 대중들의 사랑을 흠뻑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1976년 앨범 "Lapasta Scotta"을 끝으로 활동이 뜸해졌고 1984년에 산레모 가요제에
얼굴을 드러낸 이후 별다른 소식을 전해주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1993년 "Sa Oghe De Su Entu E De Su Mare"로 다시 대중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며 여전한 노래 솜씨를 보여주었다.
능 옥란(玉蘭) Ngoc Lan
여가수 Ngoc Lan (능옥 란)은 베트남 해변도시 나짱(Nhtrang)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나짱에서 음악공부를 하고 다양한 지역행사에 참석하여 공연을 하였다.
Ngoc Lan(능 옥란)은 옥란(玉蘭)의 베트남식 이름인 듯 하며 1980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네소타에 정착 하고 2년 후에 캘리포니아로 떠나 그곳을 중심으로
연예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그녀는 딘 티엥과 호아이 후옹 같은 지역 카페에서 특출나게 노래를 하여 마침내,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능옥 란의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다.
능옥란은 첫 CD앨범을 다란이라는 타이틀로 출시하였는데
그녀는 리츠나이트클럽에서 계속 노래하며 세련되어졌고 특유의 목소리와
무대매너로 사랑을 받게 되었다.
능 옥란은 1993년 가수활동을 중단할 때까지 17장의 앨범을 남겼는데
2001년3월6일 화요일 오전 8시 25분,남부 캘리포니아의 벤코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어릴적 이름이 마라아 탄 란 르였던 그녀는 1957년에 출생 하여 사랑하는 많은
팬들에게 달콤한 목소리의 기억을 남긴 채 캘리포니아의 Vencor 병원에서 44 세를
일기로 떠나게 된다.
그녀는 애절하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샹송등을 베트남어로 멋지게 소화해 냈는데
그것은 오랜 시간 다가올 음악의 유산으로 맴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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