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이 무겁다.
한뼘 내려진 차창 틈새로 강바람이 달려든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창 밖을 본다. 여긴 어딜까?
퇴촌을 지나 양평으로 향하는 남한강변 카페路인 것도 같고...
조금전 초밥에 곁들여 마신 쾰시맥주가 졸음을 관장하는
뇌신경세포를 자극한 모양이다.
세차게 고갤 흔들어 비몽사몽 모드를 해제한 후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니 남한강이 아니라 라인강이다.
그랬다.
깜빡 조는 사이 Bonn 시내를 빠져나온 차는 '왕의 겨울'이라는 뜻을 지닌 소읍,
쾨닉스빈터(Koenigswinter)를 지나 라인강 동쪽 42번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이방인을 환영이라도 하듯 도로 위로 하얀 꽃눈이 휘날리고
산마루에 올라앉은 중세 古城들과 산비탈에 드러누운 포도밭은
라인강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광을 자아낸다.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라인강은 스위스 알프스 산지에서 발원하여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국경을 지나 독일의 서부로 들어갔다가
네덜란드를 가로질러 북해로 흘러든다.
라인강변로를 달리며 양평 남한강변을 떠올린다.
라인강엔 대형 화물선과 유람선이 오고 가지만
남한강에는 모터보트와 수상스키가 물살을 가른다.
라인강변은 그림같은 중세풍의 가옥들이 있어 눈을 즐겁게 해주나
남한강변엔 휘황찬란한 간판을 내건 먹고 마시는 집들과
얄궂은 러브텔들이 줄지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쾰른을 기점으로 남으로 150km를 달려와 장크트 고아르하우젠(St. Goarhousen)이라는
강변의 조그만 마을로 들어섰다.
오른쪽 라인강 물줄기는 돌출된 산허리 암벽에 부딪쳐 S라인으로 굽이친다.
바로 이 암벽이 익히 들어왔던 로렐라이(Loreley)언덕이다.
로렐라이 언덕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산허리를 몇차례 돌아오르니
샛노란 유채꽃이 언덕 위 너른 평원을 뒤덮고 있다.
평원을 가로질러 강이 내려다 보이는 벼랑에 올라섰다.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134m 높이의 평범한 벼랑일 뿐,
유명세에 비해 어째 좀 썰렁하다.
발아래 라인강을 굽어본다.
도도한 물줄기는 언덕 부근에서 S자로 휘어지면서 폭이 좁아진다.
아마도 이로 인해 유속은 급속히 빨라지거나 불규칙해져
예로부터 왕래하는 배들이 암초에 부딪히는 사고가 잦았던 모양이다.
이러한 사실에 뼈와 살을 붙여 로렐라이 전설이 태어난 걸까?
금발머리 소녀, 로렐라이가 해질녘이면 라인강 절벽에 앉아
금발머리를 빗으며 애달픈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매혹적인 소녀의 모습과 노래소리에 홀려 강을 오가는 뱃사람들은 넋을 놓은채
로렐라이 언덕을 쳐다보다가 암초와 암벽에 부딪쳐 강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이 이야기는 브렌타노의 소설, Godwi에서 전파되었으며
이밖에도 여러 시인들이 '로렐라이'의 신비주의에 동참했다.
그리하여 라인강 중북부에 있는 그저 그렇고 그런, 바위벼랑을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둔갑시켜 돈벌이를 하니
우리의 봉이 김선달, 가슴 칠 일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 독일 주정부는 관광객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로렐라이 언덕의 바위 인근에 다리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내놓자,
최근 문화유산보호단체 등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기도 했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 쓸쓸한 이 말이 /
가슴 속에 그립게도 / 끝없이 떠오른다 /
구름 걷힌 하늘 아래 / 고요한 라인강 /
저녁빛이 찬란하다 / 로렐라이 언덕 /
저편 언덕 바위 위에 / 어여쁜 그 아가씨 /
황금빛이 빛나는 옷 / 보기에도 황홀해 /
고운 머리 빗으면서 / 부르는 그 노래 /
마음끄는 이상한 힘 / 로렐라이 언덕 /
로렐라이~ 언덕 /
로렐라이 언덕 위 카페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느긋하게 로렐라이 노랫말을 흥얼거리고 있는데
동행 중인 재독교포 K가 갑자기 서둔다.
오늘 오후 7시 프랑크푸르트발 인천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일이 꼬였다는 연락을 받고 서둘러 공항으로 가잔다.
사연인 즉 이랬다.
이번 독일 출장은 한국이 주빈국이 된 하노버박람회 탓에
항공권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행사 B를 통해 겨우 항공권을 예매했으나 입국 편이 애매했다.
4월 24일 서울로 돌아와야 하는데 24일은 물론 25일 것까지 매진된 상태라
양일은 Waiting 걸어둔 채 26일 입국편을 컨펌했다고 알려왔다.
출발 당일, 여행사 B는 '걱정 붙들어 매라'했다.
"26일은 무시하고 출발하세요. 떠난뒤 24일로 컨폼해 놓겠습니다"
찝찝했지만 출발했다.
그랬던 B가 방금 연락해 온 내용인 즉, 여태 Waiting이 풀리지 않았으며
출발이 어려울 지도 모르니 일단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빨리 이동하라는 얘기다.
로렐라이 언덕을 서둘러 내려와 라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도시,
Ruedesheim은 그냥 지나쳐 프랑크푸르트공항으로 향했다.
뤼데스하임을 지나 44번 아우토반에 올라서니
프랑크프루트 방향과 공항 표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4시30분에 공항에 도착, Waiting list를 보니 4,5,6번이다.
앞에 3명은 일가족이라 했다.
어쩌면 공항 바닥에 노숙을 해야할지도? 황당했다.
당황스러운 건 큰소리 쳤던 여행사 B도 매한가지다.
나름 항공사와 연락을 취해가며 노력 중인 모양이나
하노버박람회를 다녀가는 탑승객들이 많은 탓에
좌석 캔슬이 거의 없는 모양이었다.
아우토반에 보트도 달린다?
아우토반에 경비행기도 달린다?
아우토반에 오토바이도 달린다.
보딩 30분 전 쯤 카운터에서 급히 부른다.
4석이 캔슬되었는데 대기순서가 4,5,6이니 한 명은 탈 수 있다고 했다.
D사 사장과 직원, 그리고 나.
답은 하나다.
D사 직원을 먼저 태워 보내기로 했다.
내일 Waiting list는 1,2번을 약속받고 D사 사장과 함께
예정에 없던 프랑크푸르트에서의 1박을 위해 공항을 나섰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했던가.
내일은 '하이델베르크'로 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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