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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chanson

제봉산 2009. 1. 4. 15:34

샹송(chanson)이란?...

개요
프랑스어에 의한 세속적인 가곡.

샹송이라고 하면 언뜻 프랑스의 대중가요를 연상하게 되나

음악사상으로는 11∼13세기의 단선율(單旋律) 샹송, 16세기의 다성적(多聲的) 샹송이 보다 중요하다.

샹송은 중세의 음유시인 트루바두르와 트루베르 등의 기사가요(騎士歌謠)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1∼13세기에 전자-트루바두르는 남프랑스에서 프로방스어로,

후자-트루베르는 북프랑스에서 옛 프랑스어로 십자군과 영웅들의 이야기, 세속적인 사랑 등을 그려

단선율의 가곡으로 만들어서 불렀다.

 

이 음유시인들의 가곡은 14세기에 이르자 다성음악의 기법을 도입,

아루스노바기(期)의 기욤 드 마쇼 등의 다성샹송을 낳고,

비를레 ·롱도 ·발라드 등 여러 음악형식의 정형이 확립되었다.

15세기 플랑드르 출신의 기욤 뒤파유, 질 방슈와 등도 이와 같은 정형에 바탕을 두고 궁정적인 전아한

사랑을 노래하였다.

16세기에 이르자 프랑스 샹송의 성격은 일변하여 서민적인 색채를 많이 띠었다.

곧 정형이 배격되고 자유스러운 형식에 비교적 단선율적이고 리드미컬하며, 약간 비속한 가사로 서민적인 생활감정을 여유 있게 노래하게 되었다.

클레망 잔느캥, 클로 드 세르미슈 등의 합창샹송, 특히 잔느캥의 《새의 노래》 《전쟁》 등의 의음(擬音)효과를 사용한 표제샹송은 유명하다.

이때의 샹송은 약 25년간 파리에서만 1,500곡이 출판되었다고 하니 그 보급의 폭을 짐작할 수 있다.

17세기 초 파리에서는 센강에 새로 가설한 퐁뇌프 다리에서 거리의 가수가 정부의 고관이나 귀족을 풍자하는 노래를 불러 갈채를 받았다.

그들은 노래를 직업으로 삼은 최초의 가수였고, 따라서 퐁뇌프 다리는 샹송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와 같이 노래로 풍자하는 것을 샹소네라고 하며 그 작자 겸 가수를 샹소니에(여성의 경우는 샹소니엘)라고 불렀다.

샹소니에는 부르는 노래의 작곡은 다른 사람이 해도 상관없으나 가사만은 반드시 자작이어야 하고

풍자를 담아야 하며 재치가 넘쳐야 했다. 그래서 샹송가수 중에서도 샹소니에는 특별히 우대되었다.

또한 샹송을 발전시킨 온상 구실을 한 것은 음악으로 인기를 끌었던 찻집(카페 콩세르)이었다.

찻집은 프랑스혁명 후 파리 시민의 집합장소로 번창했는데,

1850년경 샹젤리제에 있던 ‘뚱뚱보 플루리’라는 찻집이 샹송으로 성공함으로써 카페 콩세르의 시초가 되었다.

찻집은 가수의 안정된 직장이 되고 스타의 탄생을 촉진하기도 했는데 이 때부터 노래의 테마나 가수의 스타일도 다양해졌다.

현대의 샹송은 1900년 전후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무렵 여성가수 이베트 길베르는 샹송의 모범을 확립하였고,

샹소니에인 아리스티드 브뤼앙은 예술가의 집합장소인 샤느와르(검은 고양이)라는 카바레를 중심으로 하층계급 사람들을 애정을 가지고 묘사하여 후세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제1차 세계대전 전에는 카지노 드 파리, 물랭 루주 등의 뮤직홀에서의 공연이 인기를 모았고,

1926년에는 《사 세 파리》 《발렌시아》 등을 창작하여 부른 미스탕게트와 모리스 슈발리에가 크게 활약하였다.

또 1930년에는 조세핀 베커가 《두 연인》을 히트시키고

뤼시엔 부아이에의 《사랑의 말을》이 제1회 디스크대상을 받음으로써 새로운 매체로서의 레코드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는 영화도 토키시대로 접어들어 《파리의 지붕 밑》(1930) 《파리제(祭)》(1933) 《마리넬라》(1936) 등 영화의 주제가인 샹송이 유행하였다.

제1 ·2차 세계대전 사이는 현대 샹송의 개화기였다고 하나, 화려한 노래와 함께 세태를 반영한 어두운 노래도 많이 나왔고 리나 케티의 《기다리겠어요》가 평화에의 기대를 담았다 하여 크게 히트했다.

이본 조르주, 프레르, 다미아 등이 당시의 3대 샹송가수로 꼽힌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반전감정을 담은 감상적인 노래가 유행하고,

종전(終戰)과 함께 《장미빛 인생》(1944) 《사랑의 찬가》(1949)를 자작하여 노래한 에디트 피아프,

《낙엽》의 이브 몽탕, 쥘리에트 그레코, 레코드에서 활약한 이베트 지로,

《파리의 아가씨》를 부른 자크린 프랑수아 등 새로운 스타들이 배출되었으며,

1950년 전후의 샹송계는 공전의 성황을 보였다.

샤를 트레네는 샹송에 재즈수법을 도입하여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질베르 베코는 다이내믹한 창법으로 젊은 팬들을 사로잡았으며,

샤를 아즈나블은 그것을 더욱 발전시켰다.

50년대 후반에는 로크조(調)의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무렵부터 전통적인 샹송은 그 기운이 꺾이기 시작하고 조니 아리디, 실비 바르탕 등이 로크조의 노래를 불러 인기를 모았다.

60년대에 접어들자 로크조를 소화한 내용 위주의 것이 만들어졌으며 이 무렵에는 아즈나블, 아다모, 앙리코 마시아스 등이 활약하였다.


(샹송의 특징...)

샹송은 가사가 중시되며 이야기풍의 노래가 많다.

그리고 가사도 일상회화에서 쓰는 말이 사용되고 때로는 은어도 섞였다.

곡은 쿠플레(스토리 부분)와 루프랭(반복 부분)으로 이루어지며 양자가 서로 엇바뀌어 나타난다.

 

가수는 작사가 ·작곡가와 더불어 존중되고,

노래의 좋고 나쁨이나 음악적인 정확성보다 그 노래를 어떻게 해석하며 얼마나 개성적인 표현으로 청중에게 그 내용을 전달하는가에 대해 평가하였다.

 

또한 어떤 곡을 처음 불러 히트시키는 것을 크레아숑이라고 하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이러한 전통이 지켜져 어떤 가수에 의해 크레아숑된 곡을 다른 가수가 부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샹송의 역사)

샹송의 역사(Histoire de chanson française)

샹송은 중세의 음유시인 트루바두르(Troubadours)와 트루베르(Trouvères) 등의 기사가요(Les chanson de geste)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1∼13세기에 전자는 남프랑스에서 프로방스어로,

후자는 북프랑스에서 옛 프랑스어로 십자군과 영웅들의 이야기, 세속적인 사랑 등을 그려 단선율의 가곡으로 만들어서 불렀다.


음유시인들의 가곡은 14세기에 이르자 다성음악의 기법을 도입, 아루스노바기(期)의 기욤 드 마쇼 등의 다성샹송을 낳고, 비를레, 롱도, 발라드 등 여러 음 악형식의 정형이 확립되었다.


15세기 플랑드르 출신의 기욤 뒤파유, 질 방슈와 등도 이와 같은 정형에 바탕을 두고 궁정적인 전아한 사랑을 노래하였다.


16세기에 이르자 프랑스 샹송의 성격은 일변하여 서민적인 색채를 많이 띠었다.

곧 정형이 배격되고 자유스러운 형식에 비교적 단선율적이고 리드미컬하며, 약간 비속한 가사로 서민적인 생활감정을 여유 있게 노래하게 되었다.

클레망 잔느캥, 클로 드 세르미슈 등의 합창샹송, 특히 잔느캥의 《새의 노래》 《전쟁》 등의 의음(擬音)효과를 사용한 표제샹송은 유명하다.

이때의 샹송은 약 25년간 파리에서만 1,500곡이 출판되었다고 하니 그 보급의 폭을 짐작할 수 있다.


17세기 초 파리에서는 센강에 새로 가설한 퐁뇌프 다리에서 거리의 가수가 정부의 고관이나 귀족을 풍자하는 노래를 불러 갈채를 받았다.

그들은 노래를 직업으로 삼은 최초의 가수였고, 따라서 퐁뇌프 다리는 샹송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와 같이 노래로 풍자하는 것을 샹소네라고 하며 그 작자 겸 가수를 샹소니에(여성의 경우는 샹소니엘)라고 불렀다.

샹소니에는 부르는 노래의 작곡은 다른 사람이 해도 상관없으나 가사만은 반드시 자작이어야 하고 풍자를 담아야 하며 재치가 넘쳐야 했다. 그래서 샹송가수 중에서도 샹소니에는 특별히 우대되었다.


또한 샹송을 발전시킨 온상 구실을 한 것은 음악으로 인기를 끌었던 찻집(카페 콩세르)이었다.

찻집은 프랑스혁명 후 파리 시민의 집합장소로 번창했는데, 1850년경 샹젤리제에 있던 ‘뚱뚱보 플루리’라는 찻집이 샹송으로 성공함으로써 카페 콩세르의 시초가 되었다.

찻집은 가수의 안정된 직장이 되고 스타의 탄생을 촉진하기도 했는데 이 때부터 노래의 테마나 가수의 스타일도 다양해졌다.

 

20세기 초엽에 카페를 중심으로 아리스티드 블뤼앙, 이베트 길베르가 등장하였다.
현대의 샹송은 1900년 전후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무렵 여성가수 이베트 길베르는 샹송의 모범을 확립하였고,

샹소니에인 아리스티드 브뤼앙은 예술가의 집합장소인 샤느와르(검은 고양이)라는 카바레를 중심으로 하층계급 사람들을 애정을 가지고 묘사하여 후세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제1차 세계대전 전에는 카지노 드 파리, 물랭 루주 등의 뮤직홀에서의 공연이 인기를 모았고,

26년에는 《사 세 파리》 《발렌시아》 등을 창작하여 부른 미스탕게트와 모리스 슈발리에가 크게 활약하였다.


제1차세계대전과 제2차세계대전 사이에 모리스 슈발리에, 다미아, 조세핀 베이커, 샤를 토레네 등이 크게 활약하였다.


또 30년에는 조세핀 베커가 《두 연인》을 히트시키고 뤼시엔 부아이에의 《사랑의 말을》이 제1회 디스크대상을 받음으로써 새로운 매체로서의 레코드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는 영화도 토키시대로 접어들어 《파리의 지붕 밑》(1930) 《파리제(祭)》(33) 《마리넬라》(36) 등 영화의 주제가인 샹송이 유행하였다.


제1·2차 세계대전 사이는 현대 샹송의 개화기였다고 하나, 화려한 노래와 함께 세태를 반영한 어두운 노래도 많이 나왔고 리나 케티의 《기다리겠어요》가 평화에의 기대를 담았다 하여 크게 히트했다.

이본 조르주, 프레르, 다미아 등이 당시의 3대 샹송가수로 꼽힌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반전감정을 담은 감상적인 노래가 유행했다.
전쟁기간중 등장한 에디트 피아프는 종전(終戰)과 함께 《장미빛 인생》(44) 《사랑의 찬가》(49)를 자작하여 노래하여 이 시기는 샹송의 명곡이 탄생한 때였다.

자크 프레베르와 조지프 코스마의 《고엽(枯葉)》을 이브 몽탕이 불러 전성기를 이룩하였다.

쥘리에트 그레코, 레코드에서 활약한 이베트 지로, 《파리의 아가씨》를 부른 자크린 프랑수아 등 새로운 스타들이 배출되었다.


50년 전후의 샹송계는 공전의 성황을 보였다.

샤를 트레네는 샹송에 재즈수법을 도입하여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질베르 베코는 다이내믹한 창법으로 젊은 팬들을 사로잡았으며,

샤를 아즈나블은 그것을 더욱 발전시켰다.


50년대 후반에는 로크조(調)의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무렵부터 전통적인 샹송은 그 기운이 꺾이기 시작하고 조니 아리디, 실비 바르탕 등이 로크조의 노래를 불러 인기를 모았다.

 

60년대에 접어들자 로크조를 소화한 내용 위주의 것이 만들어졌으며

이 무렵에는 아즈나블, 아다모, 앙리코 마시아스 등이 활약하였다.


그후 아메리칸 포퓰러 음악과 록 음악의 영향을 받아 프렌치 팝과 누벨 샹송의 젊은 가수들이 등장하였다.

시와 이야기를 중요시하던 문학적 샹송의 전통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샹송의 종류...)

샹송의 테마는 매우 넓으며 노래하는 창법도 다양하기 때문에 특별히 정해진 분류법은 없으나 편의상 몇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샹송 드 샤름(chanson de charme)은 매혹적인 샹송이라는 뜻.

주로 사랑을 노래한 달콤한 샹송이며 대표적 가수는 뤼시엔 부아이에, 티노 로시 등이다.

샹송 레알리스트(chanson realiste)는 현실적인 샹송이라는 뜻.

생활의 고통이나 인생의 비극을 사실적으로 엮은 노래이며, 아리스티드 브뤼앙이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샹송 팡테지스트(chanson fantaisiste)는 환상적인 샹송이라는 뜻.

자유스럽고 공상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재기가 넘치고 익살스러운 점이 많다.

대표적 가수로는 모리스 슈발리에, 샤를 트레네와

제2차 세계대전 전에 활약한 마리 뒤바, 린 쿠르베 등이다.

샹송 리테레르(chanson litteraire)는 문학적인 샹송이라는 뜻.

유명한 예술적 시에 곡을 붙인 것과 일류시인의 시작품을 대상으로 한 것을 말한다.


(한국의 샹송...)

한국에 처음 소개되기는 1930년대 중반에 프랑스영화 《파리의 지붕 밑》 《파리제》 등이 들어온 뒤 그 주제가에 의해서였다.

이 노래들은 당시 전문학교 이상 학생들의 인기를 모았을 뿐 대중화되지는 못했는데

그 이유는 일본이 중 ·일전쟁을 더욱 확대시키면서 이들 노래를 적성국의 것이라 하여 금지했기 때문이다.

또한 50년대 중반에 《낙엽》이 크게 유행한 일이 있고

60년대 중반에는 J.그레코의 내한공연을 계기로 한때 샹송붐이 이는 듯했으나 오래 가지는 못하였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샹송 50
출처 : MBC FM 골든디스크 1999년 11월

순위/ 노 래 제 목/ 가 수

1. Hymme A L'Amour (사랑의 찬가) / Edith Piaf

프랑스의 여류작곡가 M.모노가 작곡한 샹송의 명곡.
작곡 : M.모노
작사 : E.피아프
종류 : 샹송
제작연도 : 1949년

1949년에 작곡되고 1950년 1월 E.피아프가 작사하여 불렀다.

생사를 초월하여 영원히 맺으려는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당시 피아프는 권투선수인 M.세르당과 연애 중이었는데, 그가 1949년 10월 28일 비행기사고로 죽자 그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 것이라고 한다.


2. Le Feuilles Mortes (고엽) / Yves Mortand
3. Sous Le Ciel De Paris (파리의 하늘밑) / Juliet Greco
4. Tombe La Neige (눈이 내리네) / Adamo
5. Ma Solitude (나의 고독) / Georges Moustaki

6. Ne Me Quitte Pas (If You Go Away) / Jaques Brel
7. Solenzara (추억의 소렌자라) / Erico Macias
8. Monaco (모나코) / Jean Francoi Maurice
9. La Rein De Sava (시바의 여왕) / Sylvie Vartan
10. Puopee De Cire Poupee De Son (꿈꾸는 샹송인형) / France Gall


11. Kennedy Rose / Patricia Kaas
12. Papa Aime Maman (아빠는 엄마를 좋아해) Yvette Girud
13. Plasir D'Amour (사랑의 기쁨) /미레유 마띠유
14. Comment Te Dire Adieu (어떻게 안녕이라 말할 수 있어요) / Francoise Hardy
15. Comme Toi (나처럼) / Jean Jaques Goldman

16. Je T'Aime Moi Non Puls / Jane Birkin & Serge Gainsbourg
17. Comme D'habitude (My Way) / Claude Francois 

18. Dans Le Meme Wagon(사랑은 기차를 타고) / Majorie Noel
19. Emmanuelle (엠마누엘) / Pierre Bachelot
20. Mea Culpa (나의 죄) / 다니 도베르송

21. Ce Train Qui S'en Va (떠나는 저 기차) / H'elene (엘렌느)
22. Les Parapluies De Cherbourg (쉘부르 우산) / Danille Licari
23. Isabelle (이사벨) / Charles Aznavour
24. Sous Les Ponts De Paris(파리의 다리밑) / Vicky Autier (비키 오띠에)
25. Lame Des Poetes (시인의 혼) / Isabell Aubret (이자벨 오브레)


26. Mon Cadeu (선물) / Elsa
27. Un Homme Et Une Femme(남과 여) / OST & 미레유 마티유
28. Chanson De Amour-Manhatan Transfer Jacques Demy
29. Concerto Pour Une Voix (목소리를 위한 협주곡) / Danille Licari
30. Le Pont Mirabeau (미라보의 다리) / Tino Rossi (티노 로시)

31. Gloria / Michel Polnareff
32. Viens Valse Avec Papa (아빠와 함게 춤을) / Andre Claveau
33. Paroles Paroles (달콤한 속삭임) Dalida
34. Les Clouches De Bourgongne (부르고뉴의 종) / Anais
35. Monde D'Amour (사랑으로 충만한 세계) / Jean Michel Caradec

36. Viens Viens / Marie Laforet
37. Mon Je Ne Regrette Rien (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 / 마르셀 아몽
38. Les Yeux Ouverts (눈을 뜨고) / Enzo Enzo
39. Au Parc Moncean (몽소공원) / Yves Duteil (이브 뒤떼이)
40. Mademoiselle De Paris (파리의 아가씨) / Jacqueline Francois

41. Vanessa Paradis (바네사 빠라디) / Marilyn & John
42. C'est Bon Tout Ca Aquarette Et Jeumes Filles / Emmanuelle
43. Sombre Diamanche (우울한 일요일) / Damia
44. 13 Jours En France (하얀 연인들) / Francis Lai
45. Regrets / Mylene Farmer


46. Dominique (도미니크) / Singing Nun
47. Aux Champs Elysees (상젤리제) / Daniel Vidal
48. La Mer (라 메르) / Charles Trenet
49. Sous Les Toits De Paris(빠리의 지붕밑) / Line Renaud (린 르노)
50. Autour De Toi Helene (엘렌느 네곁에) / Anthony Dupray




(샹송 가수...)


알랭 바리에르 / Alain Barriere
1935년 11월 18일 브르타뉴 지방 라 트리니테 쉬르 라 메르에서 태어난 남성 가수 겸 작사, 작곡가로,

본명은 알랭 베레크다. 로리앙, 앙제 및 파리에서 교육을 받은 뒤, 졸업 후 4년간 공예 기사로 일했다. 1959년 샹송계에 들어가 59년 최초의 작품을 발표, 프랑시스 르마르크에게 인정을 받고

코크 들 라 샹송 콩쿠르에서 르마르크는 그 그 '카티'라는 노래를 불러 대성공을 거두었다.

1962년 유러비전 콩쿠르의 프랑스 대표가 되어 'Elle etait si jolie'를 불렀고,

2위 작품으로는 그밖에 '마리 지오콩드', 'Ma vie' 등의 히트 작품이 있다.


Alain Barriere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매니아들 사이에서 희귀음반으로 회자되고 있는 음반!!

배인숙이 부른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는 들어 보았지만 그 곡이 원래 샹송이었슴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Side 1의 두번째 트랙인 Un Poete가 바로 그 오리지널 곡이다.

세계적으로도 그 수가 많지 않은... 진정한 매니아용 음반이다.


Charles Aznavour / Plein Feu Sur Aznavour
1924년 5월 22일 파리의 생 지르망 데 프레에서 출생,프렌치 문화권 최고의 싱어 송 라이터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1947년 디스크 대상 수상! 샹송계의 대모 에디뜨 삐아쁘에게 인정받아 솔로로서 명성을 드높이게 된다.배우로도 활동한 만능 엔터테인먼트이며, 그의 곡 중 Isabelle(이자벨)은 지금도 그 절절한 부르짖음과 애타는 호소력으로 많은 팬을 갖고 있는 명곡이다.본작은 그의 76년 라이브 앨범!!

 

Edith Piaf [1915.12.19~1963.10.11]


프랑스의 샹송가수·작사자·작곡가.
국적 : 프랑스
활동분야 : 예술
출생지 : 프랑스 파리
주요수상 : 디스크대상(1951, 1952)
주요작품 : 《사랑의 찬가》 《파리의 기사》(1951), 《파담 파담》(1952)

파리 출생. 일찍이 카바레의 지배인 루이 르프레에게 노래를 인정받아 그의 카바레에서 데뷔하였으나

그가 피살되자 살인혐의를 받고 은퇴하였다.

시인 레이몽 아소, 여류 작곡가 마르그리트 모노 등의 격려로 다시 일어선 그녀는

1940년 J.콕토가 그녀를 위하여 쓴 희곡을 독연(獨演)하여 여배우로서 인정을 받고

그녀 자신의 작시에 의한 《장밋빛 인생》 《사랑의 찬가》 등 히트곡 외에도 《파리의 기사(騎士)》로 1951년에,

《파담 파담》으로 1952년에 디스크대상을 받아 이름을 떨쳤다.

이브 몽탕을 사랑하여 그를 인기 연예인으로 만드는 뒷바라지를 하였고,

23세의 젊은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48년의 일생을 마쳤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샹송가수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사랑의 찬가)
프랑스의 여류작곡가 M.모노가 작곡한 샹송의 명곡.
작곡 : M.모노
작사 : E.피아프
종류 : 샹송
제작연도 : 1949년

1949년에 작곡되고 1950년 1월 E.피아프가 작사하여 불렀다.

생사를 초월하여 영원히 맺으려는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당시 피아프는 권투선수인 M.세르당과 연애 중이었는데, 그가 1949년 10월 28일 비행기사고로 죽자

그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 것이라고 한다.


Elsa

1973년 5월 20일 파리에서 작곡가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8살 때 이미 영화에 데뷔해서 아역 배우로서 세 편의 영화를 찍었다.

하지만 엘자가 유명해지게 된 것은 바로 1986년 영화 '내 인생의 여인'에 출연, '떠나지 마세요'를 부르면서다.

이후 87년 싱글 '내 마음 속의 무엇'을 발표하면서 확실한 인기를 굳혔고,

'눈 오는 날', '우정 이야기' 등이 담긴 1집 '엘자'를 히트시키면서 하이틴 스타로서 확실히 자리매김을 했다.


Jacques Brel / Le Formidable Jacques Brel
불의에 대한 증오와 신랄한 유머와 통렬한 풍자로 노래하고,"영미 팝을 소화해낸 프랑스 샹송"의 틀을 만들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음유시인.

특히 그가 작사 작곡한 "Ne Me Quitte Pas"는 로드 맥퀸이 가사를 붙여 "If You Go Away"란 제목으로 세상에 널리 알린 불후의 명작이다.


Serge Gainsbourg / Love On The Beat
샹송의 대표주자인 Jane Birkin의 남편,영화 "귀여운 여도적"의 주인공 Charlotte Gainsbourg(샤를로뜨 겡스부르)의 아버지이며 그 역시 영화배우이자 싱어 송라이터이다.

레오 페레...에디뜨 삐아프...이브 몽땅과 더불어프렌치 팝과 문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브 몽탕 (Montand, Yves) [1921.10.13~1991.11.9]
이탈리아 출생의 프랑스 샹송가수 ·영화배우.
본명 : 이브 리비
국적 : 프랑스
활동분야 : 예술
출생지 : 이탈리아의 피스토이아 근교 몽스마노
주요수상 : 디스크대상(1951, 1952, 1954)
주요작품 : 《바르바라》《낙엽》《밤의 문》(1946)

출처 : keiti
글쓴이 : 세발까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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