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스크랩] 운도 좋은 중국 씨

제봉산 2008. 12. 29. 22:22

운도 좋은 중국 씨

 

원래 중국의 주변에는 여러 이민족이 살고 있었다. 서주시대에도 당장 하남을 벗어나면 동쪽에는 동이가 있었고, 남쪽에는 남만인 초가 있었으며, 동주 이후 중국이 확장되어가는 과정에서는 회하일대의 산월과 하북과 요서 일대의 동호, 감숙 일대의 저, 강 등과 만나고 있었다. 특히 진시황으로 하여금 만리장성을 쌓게 만들었던 흉노는 역대 한왕조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도록 했으며, 한무제와의 싸움에서 크게 피해를 입고서도 후한말까지 여전히 중원을 약탈하며 위협적인 존재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러던 것이 서진이 멸망하고 오호십국이 시작되면서 중원을 위협하던 이민족 대부분이 중원으로 들어와 왕조를 세우면서 대부분 중국이라는 세계 안에 흡수되어 사라져 버리고, 수가 건국될 무렵에는 돌궐과 고구려, 토번만이 겨우 남게 되었다. 선비, 저, 강, 흉노, 유연의 다섯 이민족들이 중원으로 들어와 서로 패권을 다투는 와중에 이들은 중원에 동화되어 사라져 버리고, 정작 중원을 위협하던 이민족이 크게 정리되어 버린 것이다. 수당대에 이르러 중국이 역사상 보기드물게 주위의 이민족을 상당부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강력한 이민족 세력이 중원으로 들어와 흡수되어 버린 탓이 컸다. 물론 그러함에도 여전히 토번이나 돌궐, 고구려, 거란 등이 남아 있어 심각한 위협이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남아 있던 이민족들에 대해서도 또 한 번의 거대한 재앙이 들이닥쳐 그 모든 것을 쓸어가 버렸다. 바로 저 유명한 몽골제국의 등장이었다. 몽골제국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동아시아의 정세는 매우 복잡했었다. 중원에는 여전히 송왕조가 있기는 했지만 동북의 요나 서북의 서하나 서남의 대리까지 너도나도 황제를 칭하며 송과 맞먹으려 들었고, 아니 아예 송으로부터 조공을 받으며 사대를 받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금에 이르러서는 북송마저 남쪽으로 몰아내고 강남을 석권하여 송으로부터 큰형으로 섬김을 받았었고.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몽골제국이 나타남과 함께 모조리 사라져 버린 것이다.

서하가 멸망하고, 금이 멸망하고, 대리가 멸망하고, 거란은 몽골의 원정에 따라 나섰다가 중앙아시아 어디에서인가 정착해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명이 건국되면서 한족이 중원에 있던 몽골의 세력을 몰아냈을 때에는 이미 주위에 중국을 위협할만한 세력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유일하게 남아 있던 것이 북원의 잔당인 몽골의 유목민족이었는데, 당연하게도 그것만 제대로 막아낼 수 있다면 동아시아에 명을 위협할만한 존재는 하나도 없게 되어 버린다. 중국이 명실상부한 중국이 되어 버린 것은 그래서 바로 이 무렵부터였다. 몽골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왕노릇을 시작한 것이다.

사실 고려가 요나 송에 목을 뻣뻣이 세웠던 것에 대해 조선이 명에 알아서 허리를 숙이고 들어간 것은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로 인한 탓이 컸다. 고구려만 하더라도 오호십육국의 혼란기에는 중국의 여러 왕조들과 대등하게 대립하기도 하다가는, 북조가 통일되자 차라리 사대를 함으로써 새로운 강대한 적과의 싸움을 피하려 하지 않았던가. 고려야 송도 고려를 상대하자고 전력을 기울일 입장이 못 되고, 요 역시 송을 두고 고려하고만 승부를 보자고 전력을 기울일 상황이 못 되니 그 사이에서 얼마든지 자존심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러다가 금이 들어서고서는 아무래도 상황이 그리 여의치 않으니 다시 사대모드로 들어간 것이었으니, 이미 중국을 견제할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조선이 선택할 수 있는 바는 전혀 없었다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정도로도 부족했는지, 하늘인지 뭣인지 그러한 위에 또 한 번 중국문명에 은혜를 베풀게 된다. 청의 등장이었다. 아다시피 청의 황제는 몽골의 칸도 겸하고 있었는데, 말 그대로 청은 중국과 만주족과 몽골족을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몽골의 뒤를 이어 동아시아의 가장 거대한 두 개의 문명을 하나로 통일한 왕조였다. 지금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몽골과 만주, 티벳과 운남은 바로 이때 청에 의해 하나가 된 지역이거니와, 가장 강력한 위협이었던 이들이 더 이상 중국을 위협하지 못하게 된 것만이 아니라 청이 멸망하고 나서는 청을 계승한 중화인민공화국에 의해 이들은 고스란히 중국의 영토가 되어 버린다. 그나마 소련에 의해 괴뢰정부가 들어서 있던 외몽골만이 지금에 와서 몽골공화국으로 겨우 독립을 유지하고 있고 보면 청의 지배야 말로 중국문명에 내려진 축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물론 나더러 이런 행운을 선택할 거냐면 솔직히 그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호십육국의 혼란으로 죽어간 이가 과연 얼마이며, 몽골족의 침략에 이르러서는 아예 한족의 목숨은 당나귀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었다. 그동안 개방적이던 중국문명이 폐쇄적으로 바뀐 것도 그때 워낙 지독하게 당한 트라우마 때문이었거니와, 그나마 청에 의해 정복되었을 때에는 명왕조의 무능함으로 인해 피해가 적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그래도 그 목숨값으로 지금의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끌리는 것은 사실이다. 당하기는 싫은데 저 너른 영토와 많은 인구는 끌리고...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

하여튼 보면 중국문명처럼 운이 좋은 문명도 없다. 다른 문명들은 이와 같은 외부의 침략을 받으면 아예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멸망하기 쉽다. 세계 4대 문명이라 일컬어지는 인더스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이 다 그와 같은 길을 걸었거니와 로마도 그리스도 그렇게 멸망한 뒤로 철저히 잊허졌었다. 그런데도 중국문명은 멸망하기는 커녕 침략을 받을 때마다 하나씩 커다란 선물을 넙죽넙죽 받아챙기고 있으니...

사실 그것은 중국문명이 갖는 독특함 때문이라 할 수 있는데, 중국문명에서 특히 발달한 것은 바로 정치사상에 대한 것이었다. 유교로 대표되는 중국문명의 정치사상은 설사 왕조가 멸망하고 도시가 파괴되었어도 심지어 새로운 정복자에까지 정통성과 명분을 부여함으로써 끊임없이 계승되어 이어지는 영속성을 부여하였다. 그리하여 한이 멸망해도 조위가 새로운 중국이 되었고, 조위를 멸망시킨 사마씨의 서진이 중국이었다가, 북조를 통일한 북위에로 그 정통성이 이어지고, 이후 남북조를 통일한 수로, 그를 계승한 당으로, 송으로, 명으로, 청으로 끊임없이 중국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러한 정통성과 명분이야 말로 중국문명의 실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 결과가 13억인구에 세계에서 두 번 째로 땅덩이가 큰 그 자체로 중국스러운 나라 지금의 중국이다.

중국과 비슷한 것으로 로마 가톨릭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로마제국이 이룩한 모든 성과는 로마 가톨릭에게로 계승되었는데, 로마 가톨릭의 사제들은 로마제국의 유산을 간직한 채 유럽 전역으로 흩어져 아직 야만적이던 유럽인들에게 그것은 전파했다. 말하자면 로마 가톨릭이야 말로 서로마 제국의 계승자라 할 수 있을 텐데, 단지 중국의 경우는 중국이라는 이름으로, 로마 가톨릭의 경우는 가톨릭이라는 종교의 이름으로 전해진다는 점이 같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것을 중국 자신도 지금에 와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일 것이다. 하나의 민족으로 만들 것 없이 그저 중국과 연관되면 다 중국으로 만들어 버리는 옛 선조들의 스케일을 근대화된 현대의 중국인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탓이다. 즉 지금 와서 아예 중국이라는 한계를 긋자는 것이니... 다만 그 한계가 엄한 남의 역사까지 침범하고 있으니 열받을 뿐, 하는 짓을 보고 있자면 화가 나기보다는 웃음부터 난다. 과연 이 중국인들이 그 중국인들인지... 거 참. 역사의 단절이 걔들도 심각하다.

출처 : keiti
글쓴이 : 세발까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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