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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일입니다. 대우가 법정관리로 넘어가면서 상하이(上海)에 갖고 있던 알짜배기 땅을 청산해야 했습니다. 최소한 투자금 9000만 달러는 회수해야 한다는 게 대우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가급적 빨리 팔라’는 채권단 요구에 협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중국 측이 이 약점을 간파, 협상을 질질 끌면서 결국 6000만 달러에 땅을 내줘야 했습니다. 여유가 있었더라면 1억 달러 이상은 받을 수 있었습니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대우그룹의 중국 사업을 이끌었던 전 사장의 뼈저린 회고다. 그는 “첫째도 여유, 둘째도 여유”라며 “조급하면 지고, 먼저 화내면 진다”고 말한다.
전 사장은 소설 『상도』에 나오는 ‘임상옥의 배짱’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상옥은 상단의 모든 자금을 동원해 매입한 조선인삼을 말에 싣고 조공단을 따라 베이징(北京)으로 간다. 중국에 돈 역병으로 인삼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중국 상인들은 냉담했다. 그들은 임상옥이 귀국 일정에 쫓겨 막판 헐값에 인삼을 넘길 것으로 보고 매입 시기를 늦춘 것이다. 전 사장은 “당시 중국 상인들이 쓴 게 바로 ‘만만디’ 전술이었다”며 “임상옥은 이를 정면으로 돌파, 인삼을 불에 태웠고 결국 타들어가는 인삼 앞에서 중국 상인들의 담합도 깨졌다”고 말했다. 제품의 품질과 가격에 자신이 있다면 협상장을 박차고 나올 배짱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중국인과의 협상에서 ‘칼자루를 누가 잡느냐’는 중요하다. 그들은 칼자루를 쥐었다고 생각되면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전 사장은 “품질·납기 등 모든 면에서 유리한데도 시간 때문에 협상의 칼자루를 중국 측에 넘겨주곤 한다”며 “방문 기간 동안 협상을 타결하라는 본사의 압력 때문에 눈을 뻔히 뜨고 손해보는 경우가 많다”고 아쉬워했다. 협상에 임하는 직원에게 재량권을 줘야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