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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저우 시내에 자리한 다후(大虎) 라이터가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지난달 25일 찾은 이 회사 공장. 직원들이 라이터 품질 검사에 열중이다. 제품 안팎을 살피는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불량 상품은 우리의 밥그릇을 깨뜨릴 것이다(劣質産品將破壞我們的飯碗))’. 공장 벽에 걸린 품질관리 강조 표어가 눈에 띈다.
원저우는 세계 라이터 시장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는 라이터 생산단지다. 400여 개 업체가 각종 라이터를 쏟아낸다. 대부분 싸구려 제품이거나, 아니면 외국 브랜드로 생산된다. 그러나 다후 라이터는 다르다. 자사 브랜드인 ‘TIGER’ 상표가 붙은 중·고급 제품을 생산한다. 지난해에만 약 1000만 개의 고품질 금속 라이터를 수출했다(매출액 약 4억 위안. 약 520억원). 이 분야 세계 최대다. 설립자 저우다후(周大虎) 사장이 ‘라이터 대왕’으로 꼽히는 이유다. 저우 사장에게 성공 요인을 물었다.
“브랜드 전략이 먹혔고, 기술개발에 몰두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츠쿠나이라오(吃苦耐勞·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어려운 일을 참아내는) 정신’이라고 봅니다.” 저우 사장의 ‘츠쿠나이라오 정신’이 빛을 발한 건 1995년. 당시 원저우의 라이터 업계는 과잉 투자로 제살 깎기 경쟁이 치열했다. 중·고급 제품만을 고집했던 다후는 월급을 받지 못한 직원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폐업 위기에 몰렸다. 이때 일본의 라이터 업체인 히로타가 찾아왔다. 히로타의 기술력과 다후의 생산력을 결합해 합자회사를 세우자는 제의였다. ‘히로타’ 브랜드를 사용한다는 조건이었다. 기회라면 기회였다. 돈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저우 사장은 이 제의를 뿌리쳤다.
“몇 년 더 고생하기로 했습니다. 고생이라면 이골이 났으니까요. 남은 직원을 이끌고 공장에서 밤을 새우며 품질개선에 매진했습니다. 결국 98년에 업계에서 처음으로 ISO 9001 품질 인증을 받는 데 성공했지요. 이후 외국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원저우에는 ‘타이거’ 라이터 외에도 중국 국내외 유명 브랜드가 즐비하다. 중국의 대표적 가죽제품 명품 브랜드인 아오캉(奧康), 중국 최고의 남성복 브랜드인 바오시냐오(報喜鳥) 등이 그들이다.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원저우인들의 근성이 이들 유명 브랜드를 낳은 것이다. 함병석 원저우 한국상회 사무국장은 “성공한 원저우 기업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게 바로 츠쿠 정신”이라며 “더욱 무서운 건 원저우에는 이들을 따라 하는 중소기업이 수도 없이 많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원저우에는 현재 400개의 라이터업체 외에도 안경공장 1200개, 면도기공장 1500개, 단추공장 3000개 등이 세계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원저우인들의 ‘츠쿠 정신’은 해외에까지 뻗치고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바로 ‘싼바다오(三把刀·세 자루의 칼)’다. 구체적으로는 ‘젠다오(剪刀·재봉용 칼)’ ‘차이다오(菜刀·주방용 칼)’ ‘피다오(皮刀·가죽 가공용 칼)’ 등을 일컫는다. 가난을 피해 중국 내 다른 도시나 해외로 이민간 원저우인들은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그들은 거리에서 자리를 펴고 구두 수선을 하거나, 세탁소에서 옷 수선 일을 맡았다. 일부는 식당 주방으로 찾아갔다. 그러기에 ‘원저우인들은 재봉용 칼, 주방용 칼, 가죽가공용 칼 세 자루 중 하나를 들고 있다’는 말이 나오게 됐다. 원저우인들의 천부적인 ‘츠쿠 정신’과 손재주는 외지에서도 통했다. 싼바다오는 그래서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삶을 개척해 나가는 근성’을 일컫는 말로 통한다.
현재 원저우 시내 인구는 약 140만 명. 중국 다른 도시에서 활동하는 원저우인은 이보다 많은 170만 명에 달한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이도 40만 명에 이른다. 외지 원저우인들은 이제 원저우 기업 발전의 동력이기도 하다. ‘원저우 네트워크’는 원저우 상품의 중국 및 해외 시장 진출의 통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저우 시내에 자리잡고 있는 직원 300명 규모의 중소 구두업체인 팬쿠 제화. 이 회사는 지난해 전체 수출량의 30%에 해당하는 약 200만 위안(약 2억6000만원)어치 구두를 무역상이 아닌 독자 유통망을 통해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원저우 출신 화교로부터 주문을 받은 것이다. 장샤오바오(張小寶) 사장은 “화교를 통한 수출은 자체 브랜드로 이뤄지기에 마진율도 훨씬 높다”며 “앞으로는 전체 물량을 화교에 맡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싼바다오를 들고 해외로 진출했던 화교들이 원저우 기업과 해외 시장을 잇는 튼튼한 네트워크가 되고 있는 셈이다. 다후라이터, 아오캉, 바오시냐오, 캉나이 등 대기업들 역시 화교 네트워크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죽(竹)의 장막’이 걷힌 지 30년. 츠쿠(吃苦)정신으로 무장한 중국 국내외 화상(華商)들이 손에 손을 잡고 세계시장으로 달려나오고 있다. 그들이 전 세계 주요 시장에서 착실하게 뿌리를 내리면서 화상 글로벌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다. ‘죽의 장막’ 시대가 가고, 화상 기업들이 만든 ‘죽(竹)의 네트워크’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